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6-13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0(링컨의 통합적 리더십)

presentlee 2026. 3. 29. 01:14

https://youtu.be/beb40VHkgsE?si=OVFwnhvesnlU0b77

 

[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0(26-열셋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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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3-1부 리더와 시대 8. 에이브러햄 링컨_변혁적, 거래적 리더십)


①훗날 ‘링컨’은 이렇게 말했는데, “해방 선언이 6개월 전에 공포됐더라면 여론이 지지하지 않았을 것을 확신한다. 그 이후 경계주에서 흑인을 징집하는 조치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노예 해방 선언이 더 빨리 취해졌더라면 징집은 시행되지 못했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다. 어떤 사람이 배나무가 자라는 걸 하루하루 지켜보며 열매가 익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가 그 과정을 억지로 앞당기려 한다면 열매와 나무가 상하고 망가질 수 있다. 하지만 끈기 있게 기다린다면 잘 익은 배가 결국 그의 무릎에 떨어지지 않겠는가!”(p409). ‘링컨’은 “그 위대한 혁명에 대해 여론이 느리지만 확실히 변해가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링컨’은 신중한 경청자답게 국무위원들의 의견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걸 놓치지 않았으며, 또한 신문 논설의 방향, 북부 주민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논조, 특히 병사들의 의견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유사히 관찰했고, 그는 노예 해방 선언이 공포되면 반대가 격렬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해방 선언의 목적을 무산시킬 만큼 강하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했음(p409). ②한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시기를 판단하는 뛰어난 감각은 ‘링컨 리더십’의 비밀이었는데, “그는 사건의 흐름에 끌려 다니거나 사건과 성급히 다투며 힘을 낭비하지 않았고, 항상 상황이 유리한 국면에 움직였다.” 노예 해방 선언이 공포되기 수개월 전의 가을에 ‘링컨’은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선언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으며, ‘링컨’에게 생각과의 다툼은 결코 비유적 표현이 아니었음(p409). 피곤할 정도의 정신적 다툼을 통해 ‘링컨’은 자신감과 통찰을 얻었는데, 물론 선언의 결정 자체도 힘든 시련이었지만, 그는 기나긴 의사 결정 과정이 올바른 방향을 낳으면 국민이 결국에는 기꺼이 그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확신했음(p410). ③국민의 의기가 크게 꺾이고 전쟁의 피로감이 확산될 때 ‘링컨’은 새로운 활력을 얻었는데, 많은 사람은 노예 해방 선언으로 건국 아버지들의 실험이 종말적 죽음을 맞았다고 보았지만, ‘링컨’은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았고, 진보적 변화에 이런 확신은 시대의 흐름을 올바로 읽었다는 증거였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끌어가기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었음(p410). 최종적인 노예 해방 선언이 공식적으로 공포되기 전에 내각이 긴밀히 협력했듯, ‘링컨’의 ‘리더십’하에서 군대의 신병 모집도 원만하게 이루어졌고, 연방 의회는 코퍼헤드의 반대에도 군비와 징집과 관련해 정부가 제시한 전쟁 법안을 빠짐없이 통과시켰는데, 4월초 보궐선거가 실시된 3개 주-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뉴햄프셔-에서 모두 공화당의 충직한 민주당 후보가 여유 있게 승리를 거두며 북부의 전쟁 지원은 합헌적 지위를 얻었으며, ‘링컨’이 1월의 암울하던 시기에 예상했던 것처럼, 코퍼헤드들이 “평화의 타협에서 도를 넘어선 때문이었다.”(p410) ④<뉴욕타임즈>는 이 뜻밖의 승리로 “‘링컨’ 행정부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끝까지 안전 운항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고, 쉽지는 않았지만 고비를 넘긴 것이 분명했으며, ‘링컨’은 패배주의적 감정에 대한 반발을 현명하게 유도했고, 새롭게 얻은 활력을 결집시키려고 애썼음(p410). ‘링컨’은 패배주의적 감정에 대한 반발을 현명하게 유도했고, 새롭게 얻은 활력을 결집시키려고 애썼으며, ‘링컨’이 노예 해방을 계기로 생겨난 승인과 통합과 권능을 향한 크나큰 움직임을 재조직하고 조정하며 창의적으로 꾸려간 이야기에서는 ‘변혁적 리더십’(tranformational leadership)이라는 드문 자질이 엿보임(p410). ⑤ [거래적 리더십과 변혁적 리더십을 결합하라] 학자들은 ‘리더십’을 이루는 많은 항목에서 상반되는 두 유형을 찾아내려 하는데, 하나는 상대적으로 흔한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이고, 다른 하나는 ‘변혁적 리더십’이며, ‘거래적 리더’들은 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그들은 추종자들의 개인적 이득을 자극함(p411). 거래와 교환에서 보상으로 주는 것을 활용해 추종자들로부터 지지를 끌어내고 그들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한편 ‘변혁적 리더’는 추종자들에게 자신보다 더 큰 무엇-조직이나 공동체, 지역이나 국가-과 자신과 동일시하라고 독려하며, 궁극적으로는 추상적인 개념, 예컨대 국가의 이념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수준까지 끌어감(p411). ⑥‘변혁적 리더’는 도덕적 원칙과 고결한 목표를 위해 희생을 요구하며, 현재의 순간을 넘어 노력해 얻을 만한 가치를 지닌 미래를 설정함으로써 이타주의에 가치를 부여하는데, 하지만 그의 긴 다리에 어울리는 바지, 그의 흐느적대는 팔에 어울리는 소매를 찾기가 쉽지 않은 듯 ‘링컨’은 두 유형의 ‘리더십’을 곧이곧대로 적용하지 않았음(p411). ‘링컨’은 거래에 기반을 둔 실리적인 전략을, 원칙에 기반한 ‘변혁적 리더십’에 반드시 필요한 보완재로 삼았는데, 예컨대 코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뉴햄프셔에서 봄에 예정된 보궐선거가 실시되기 전, ‘링컨’은 뉴욕의 공화당 실력자 ‘설로 위드’(Thurlow Weed)에게 전보를 보내 첫 기차를 타고 워싱턴에 와 달라고 부탁했음(p411). ⑦‘링컨’은 아침 식사를 함께하며 “위드 씨, 지금 우리는 궁지에 빠졌습니다. 합법적 목적을 위해 돈이 당장 필요합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끌어올 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이렇게 모셨습니다.”라고 말했으며, 그날 밤이 끝나기 전 ‘위드’는 3개 주 중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필요한 비밀 자금의 일부로 1만 5,000달러를 ‘링컨’에게 전달했음(p412). ‘링컨’은 설득하려는 대상에 따라 노예 해방의 당위성을 거래적 관점과 변혁적 관점으로 옹호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능력을 발휘했는데, 여러 도시에서 ‘링컨’은 충직한 연방주의자들의 사기를 드높여주는 동시에 코퍼헤드의 패배주의를 누그러뜨릴 목적으로 대규모 군중대회를 조직했음(p412). ⑧그의 고향이었지만 코퍼헤드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했던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서 예정된 대회를 앞두고, ‘링컨’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 군중에게 낭송되도록 했는데, 그 편지를 대신 읽을 오랜 친구, ‘제임스 콘클링’에게 “이 부분을 특히 천천히 읽게.”라고 낭송 방법까지 꼼꼼히 지시했음(p412). ‘링컨’은 그 편지에서 숨김없이 말했는데, “흑인들에게 이렇게 하는 제가 불만스러울 겁니다.” 그러고는 그런 불만이 잘못되고 부적절한 이유들을 하나씩 나열했는데, “우리가 합중국을 위해 싸우는데 흑인이 적군을 돕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적군이 그만큼 약해질 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묻고는 완전히 실리적인 관점에서 군중에게 “흑인이 군인이 되어 무엇이든 하면 백인 군인이 할 일이 크게 줄어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피력했음(p412). ⑨‘링컨’은 흑인 군대가 제공하는 실질적인 이점을 언급한 뒤에 위험을 무릎쓰고서라도 행해야 하는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흑인들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걸게 하려면 그들에게 강력한 동기가 주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해방의 약속입니다. 또 약속이란 것은 무엇이든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p413) 결국 공개편지는 실리적인 목표에서 도덕적인 목표로 교묘하게 올라서는 지침서로, 영감과 감화를 주는 ‘변혁적 리더십’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의 ‘변혁적 리더십’은 노예 해방에 대한 병사들의 태도 변화에서 그 영향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남북전쟁이 시작되고 처음 18개월 동안에는 병사 10명 중 3명만이 노예 해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말했고, 대다수는 합중국의 유지를 위해서만 싸우는 것이라고 대답했음(p413).  ⑩노예 해방 선언 이후에는 그 비율이 달라졌는데, ‘링컨’의 설득을 받아들여, 압도적 다수의 병사가 노예 해방과 합중국의 회복이 서로 밀접히 연결된 것이라 생각하게 됐음(p413).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링컨’은 어떻게 자신의 목적의식을 병사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을까?(p413)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링컨’의 남북전쟁 가운데에서 나타내었던 ‘변혁적 리더십’과 ‘거래적 리더십’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음. 특히, 북군의 전쟁에 대한 동기를 변화시켜가는 ‘리더십’ 특질이 잘 나타나 있음. ‘변혁적 리더십’ 우리 정치에서 필요한 이유? 


□ 요약(제3-1부 리더와 시대 9. 에이브러햄 링컨_섬김의 리더십)


①군대의 반응은 ‘링컨’이 전쟁 초기부터 일반 병사들에게 심어놓은 깊은 신뢰와 충성심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링컨’은 워싱턴 주변의 군대와 전쟁터로 병사들을 방문할 때마다 병사들과 함께 식사했고, 병사들이 잠자는 막사도 둘러보았으며, 병사들에게 가족의 안부를 물었음(p414). 또 퇴역 군인을 위한 휴양소를 방문해 그곳 사람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었고, 북군과 남군의 부상병들을 똑같이 보살폈는데, 따라서 병사들은 “대통령이 진심으로 우리에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우리는 대통령의 명령으로 싸우고, 대통령은 항상 우리의 안위를 걱정한다.”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았음(p414). ②어디를 가든 ‘링컨’은 군인들을 초대해 부당한 대우를 받지는 않았는지 물었는데, ‘링컨’의 초대를 받아 백악관을 방문해 환영받거나 애로사항을 전달하며, 총사령관과 대면한 병사가 거의 2,000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링컨’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개방 정책은 “일반 백성과 지배층을 이어주는 끈이고 연결 고리이다.”(p414). ‘링컨’과 병사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군대에 퍼졌는데, ‘링컨’의 관대한 성품과 노예해방이란 대의를 유지하려는 끝없는 노력에 대한 이야기도 다를 바 없었고, 군인들이 고향에 보낸 편지에서도 ‘링컨’의 공감 능력과 책임감, 친절함과 자상함이 확인되었으며, 심지어 병사들의 가족에 대한 동정심까지 읽혔음(p414). ③군인들은 ‘링컨’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며, ‘링컨’의 초상을 가슴에 품고 전쟁터로 향했는데, 위스콘신 출신의 한 병사는 “그의 미소를 보며 우리는 집중하고 감응하며 확신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고, 병사들은 ‘링컨’을 ‘아브라함 아버지’, ‘에이브 아저씨’, ‘우리 에이브’라고 칭했으며,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언급하고 가족 간의 호칭을 사용했다는 것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었고 인간적인 취약함을 공유했다는 뜻임(p415). 또한 ‘링컨’의 얼굴과 몸가짐에 고통과 고뇌를 읽어내고 함께 고뇌함으로써 전쟁의 위험을 함께 견디고 위험한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는데, 예컨대 펜실베니아 출신의 한 신병은 “그분이 근심 걱정으로 야윈 것 같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축복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편지에 썼음(p415). ④‘링컨’은 병사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희생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주었는데,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또 다른 병사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복무 기간이 끝나더라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평화의 시기에 살 만한 국가를 만들려면 전쟁의 시기에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겁니다. 그래서 힘든 군인의 삶을 기꺼이 참고 견딜 겁니다.”라고 말했음(p415). 병사들은 ‘링컨’을 무척 깊이 신뢰하기에, 더는 합중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합중국과 노예 해방이란 이중의 목적을 위해 싸웠는데 한 병사는 “‘링컨’이 모든 노예는 이후로 영원히 자유로울 것이라 말하면, 그렇게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고, 한 병사는 “나는 여태껏 노예제도의 폐지를 찬성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노예 해방을 위해 기꺼이 싸울 것이다.”라고 고백했으며, 요컨대 새로운 방향이 병사들에게 제시됐고 받아들여졌음(p415). ⑤노예 해방 선언에 대한 변화의 힘을 흑인 병사의 징집과 입대만큼 설득력있게 설명해주는 사건은 없을 것인데, 흑인 부대를 앞장서서 옹호하며 흑인 병사 모집에 적극적이었던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북부 도시들을 순회하며 흑인 청년에게 “더 똑바로 서게 될 겁니다. 더 자신 있게 걷게 될 겁니다. 마음속에 남은 작은 걱정도 지워낼 수 있을 겁니다. 흑인도 U.S.(아메리카 합중국)이란 황동 배지를 달게 된다면, 또 독수리가 새겨진 단추를 얻고 어깨에 머스킷총을 메고 총알로 주머니를 채운다면, 흑인이 시민권을 얻었다는 걸 부인하는 세력은 지상과 지하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약속하며 참전을 독려했음(p416). 흑인들은 입대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했고, 수만 명씩 참전했으며, 하지만 초기에 이런 뜨거운 열기는 금세 사그러들었는데, 흑인 병사는 백인 병사와 동일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게 알려졌기 때문임(p416). ⑥게다가 자원입대에 따른 장려금도 받지 못했고, 장교가 될 수도 없었는데, 더는 흑인 청년들에게 자원입대하라고 양심상 설득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글러스’는 ‘링컨’에게 직접 부탁하기로 마음먹었고, ‘더글러스’는 ‘링컨’과 처음 만났을 때를 “처음 만난 사람과 그처럼 신속히 더없이 편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고 회상했는데, ‘더글러스’가 ‘페어플레이’(fair play)가 없어 모병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소연하자, ‘링컨’은 “진지하게 경청하며 누가 봐도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p416). ‘링컨’은 정치적으로 시대에 편승하는 경향을 띠었지만 그때에는 차별 정책이 부당하다는 데 동의하며 “결국에는 흑인 병사도 백인 병사와 동일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고, 훗날 ‘더글러스’는 “그처럼 맑은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고 전했고, 첫 만남에서 신뢰와 공경의 관계가 형성됐고, 그 관계는 나중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링컨’은 나를 인간으로 대해주었다. 우리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걸 한 순간도 느끼지 못했다! 이제 그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개인적으로 병사에게 관심을 가지고 격려하는 모습이나, 흑인 병사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더글러스’가 임금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반응을 통해 ‘서번트 리더십’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이와같이 팔로우 개개인에 대한 관심, 배려가 리더십적 어떤 의미?


□ 요약(제3-1부 리더와 시대 10. 에이브러햄 링컨_공동체적 리더십)


①‘더글러스’가 ‘링컨’에게 제기한 흑인군사의 불평등 문제 해결에 대하여  ‘링컨’이 약속한 뒤, 결국 흑인은 거의 20만 명에 달하는 기록적인 수로 입대했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증거에서도 확인되듯이 용감무쌍하게 싸웠는데, ‘제임스 G. 블런트’(James G. Blunt) 장군은 초기의 교전이 있은 뒤 “흑인 연대처럼 용맹하게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용감하고 냉정하고 노련한 군인처럼 싸웠다.”라고 썼음(p417). 또 허드슨 요새에서 전투가 있은 뒤 한 백인 장교는 “며칠 전의 전투로 흑인 부대에 대한 내 편견이 완전히 사라졌다. 흑인 여단은 날렵하게 움직이며 싸웠다. 그보다 더 잘 싸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고 고백했고,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을 반대한 지휘관들도 “해방 정책과 유색인 부대의 활용이 반군에게 가장 큰 타격”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음(p417). ②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공명심을 심어주라] 노예 해방에 대한 전반적인 여론은 북군의 전황에 따라 흔들렸는데, 게티스버그 전투에서는 북군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리’ 장군의 군대가 탈출해 재무장한 끝에 스포칠베이니아, 콜드 하버, 피터즈버그에서 연이어 벌어진 악몽 같은 전투에서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이 이끄는 북군을 물리쳤음(p417). 북군과 남군 모두에게 1864년의 봄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둠과 죽음의 시기였는데, 여름이 끝나갈 즘에는 사상자와 체포되거나 행방불명된 병사의 수가 북군에서는 58만을 넘었고, 남군에서는 거의 47만에 달았으며, 따라서 절망에 빠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갈구하는 비명이 빗발쳤음(p418). ③북부 지역을 뒤덮은 의기소침한 분위기에 ‘링컨’의 재선은 위태로웠는데, 공화당 전국위원회(Republican National Commitee) 의장, ‘헨리 레이먼드’(Henry Raymond)는 ‘링컨’에게 “흐름이 우리에게 크게 불리하다.”라고 8월 말에 경고했으며, 선거가 그때 실시된다면 ‘링컨’의 재선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이었음(p418). 공화당 전국 위원들도 ‘링컨’의 재선 가능성에 지극히 회의적이었던 까닭에 그때까지도 당 조직을 동원하지 않았는데, 군사적 승리가 확실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노예 해방에 대한 ‘링컨’의 완강한 고집이 평화의 주된 걸림돌이라는 의혹도 큰 문제였으며, ‘레이먼드’는 공화당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려면 노예제도 문제는 훗날의 고려 사항으로 접어두고, 재통합의 “유일한 조건”에 대해 평화 회담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음(p418).  ④‘링컨’은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재선되고 싶다. 지난 4년의 내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 않겠는가.”라고 인정한 뒤 “이 일을 내 손으로 끝내고 싶다.”라고 덧붙였는데, 하지만 ‘링컨’은 리치먼드에 특사를 파견해 남부 연합의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 대통령을 만나라는 ‘레이먼드’의 간청을 거부했고, ‘링컨’은 노예제도의 종식을 요구하지 않고 평화의 조건을 타진하려면 ‘완전한 파멸’(utter ruination)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음(p418). 또 해방 선언의 포기보다 선거의 패배를 달게 받아들이겠다며, “합중국과 자유라는 쌍둥이 목표를 포기하면 지금은 물론이고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라고 격렬히 주장했는데, 노예제도 폐지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번 전쟁을 시작했다고 ‘링컨’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노예 해방 선언이란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인간의 힘으로는 이 반군을 진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고, ‘에이브러햄 링컨’이 자신의 의견을 고수한 강철 같은 의지를 표현하기에는 ‘단호함’(firmness)이란 단어는 부족했음(p419). ⑤9월 3일, 애틀랜타 점령으로 북부의 사기가 하룻밤 사이에 치솟아 올랐는데, ‘조지 템플턴 스트롱’은 “오늘 아침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정치적 위기가 한창인 때 들려온 멋진 승전 소식이었다.”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음(p419). 승전과 관련된 머리기사들이 북부의 신문들을 채웠고, 크고 작은 도시에서는 인파가 모여 축포를 쏘고 종을 울렸으며, ‘링컨’의 친구, ‘레너드 스웨트’는 수주 전만 해도 ‘링컨’의 재선 가능성이 없다고 썼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합중국에 영광스러운 승리를 안겨줘 “폭풍 속에서 커다란 파도에 거의 뒤집힌 배가 똑바로 서게 됐다.”고 믿었음(p419). ⑥병사들의 표에 선거 승패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민주당은 ‘조지 매클렐런’이 한때 병사들에게 헌신을 끌어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를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고, 동시에 노예제도 폐지와 재통합을 분리해 생각하며 전쟁을 조기에 끝내겠다고 약속했으며, 한 민주당계 첩보원은 “태양이 동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3분의 2가량의 병사가 ‘매클렐런’ 장군에게 투표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의기양양하게 예측했음(p419). 병사들의 표는 ‘링컨’에게 무척 중요했는데, 그들의 수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훨씬 심원한 이유에서였으며, ‘링컨’은 전쟁터를 직접 방문해 병사들과 맺은 유대감을 믿었고, ‘링컨’은 일반 병사들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낀 까닭에 “병사들에게 지지받지 못한 채 당선되는 쪽보다 병사들의 지지를 받아 패배하는 쪽을 선택하겠다.”라고 말할 정도였음(p420). ⑦다행히 그런 상황은 닥치지 않았는데, ‘링컨’은 선거인단 투표에서 212대 21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고, 병사들에게는 70퍼센트 이상의 표를 얻었으며, 병사들은 ‘링컨’에게 표를 던지면 개인적인 위험과 복무 기간이 연장된다는 걸 알았지만, ‘링컨’과 대화하며 깨달은 대로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쪽을 선택한 것임(p420). ‘링컨’은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는데, “[이번 선거는] 오늘만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나는 백악관을 잠시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내 아버지의 아들이 그랬듯 여러분의 자녀가 이곳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가 바로 나입니다. 우리가 예전부터 누려온 자유로운 정부를 통해 누구나 자신의 근면성과 진취성에 따라 교육받고 사업하는 공정한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또 삶의 과정에서 모두가 인간적인 열망을 품고 동등한 특권을 향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쟁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병사들은 개인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가 되어 싸우는 대의를 대표하는 사람에게 투표했음(p420). ⑧재선에 성공하자, ‘링컨’은 남부의 반발을 극복하고 노예 해방을 완성하며, 국가 전체를 포용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불태웠는데, ‘링컨’은 노예제도가 미국 전역에서 폐지될 것이란 약속을 가급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공식화하려 했으며, 그런 확약은 행정 명령에 머물지 않고, 헌법 수정을 통해 국법으로 성문화돼야 했음(p421). ‘링컨’은 전시에 비상대권으로 헌법에서 보장된 노예제도를 우회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헌법 자체를 수정해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항구적인 조치를 내려야 했는데, 그런 조치가 수정 헌법 제13조의 형태로 1865년 1월 6일에 의회에 제시됐음(p421). ⑨3주 후, 통과에 필요한 3분의 2에서 2표가 부족했다는 소식을 들은 ‘링컨’은 의원들과 협상을 시작했는데, ‘거래적 리더십’을 발휘해 의원들의 친척과 친구에게 공무직이나 해외 대사직을 약속하거나, 선거 보조금과 사면 등을 약속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의회는 부족한 2표를 찾아냈음(p421). 최종 결과가 발표됐을 때 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폭발적인 환호가 있었다. 미국 연방의회에서 전에는 듣지 못한 굉장한 환호였다.” 이튿날 저녁 백악관을 방문한 많은 축하객에게 ‘링컨’은 “헌법 수정은 미국과 전 세계를 위한 경사”라고 선언했으며, “아직 우리 앞에는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라며 의회가 고결하게 시작한 과업을 국민투표로 완성하는 과제가 남았다는 걸 상기시켜 주었음(p421).
● 비평
  필자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의 격화된 상황 속에서 전쟁에 지친 유권자들로 인해 ‘링컨’의 재선이 난관에 부딪힌 상황들을 당시의 진술들을 통해 잘 나타내며, 이 가운데 ‘링컨’이 타협하지 않고 단호함(firmness)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설명하고, 이렇게 끝까지 노예제 폐지를 향해 갈 수 있었던 ‘링컨’의 정치철학에 대하여 개인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신이 있음을 밝혔음.
● 토의
  ‘리더십’의 흔들림 없는 모습이 ‘팔로워’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가능?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6하우스(이현재)_에이브러햄링컨_변혁적,거래적리더십.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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