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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2(26-열다섯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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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Leadership School
□ 요약(제3-2부 리더와 시대 3. 시어도어 루스벨트_미 탄광파업 중 리더십)
① [초기 단계에 중립을 지켜라] 미 탄광파업에 대하여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세계적인 통계학자인 ‘라이트’에게 특별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후, ‘루스벨트’는 법무장관 ‘필랜더 체이스 녹스’(Philander Chase Knox)에게 “이것이 ‘캐럴 D. 라이트’의 중요한 보고서입니다. 꼼꼼히 읽고, 보고서의 공개 여부를 국무회의에서 논의해 봅시다. 나는 보고서의 논조가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듭니다.”라고 말했음(p435). ‘녹스’는 보고서의 공개를 강력히 반대하며, “그 문제는 대통령이 신경 쓸 바가 아니고, 보고서를 공개한다고 어떤 이득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으며, 또한 대통령은 파업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으니 보고서는 순전히 개인적인 정보를 위해 작성된 것으로 생각하라며 이렇게 덧붙였는데, “이 보고서를 공개하면, 대통령이 보고서의 조사 결과와 권고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것입니다. 대통령이 이 문제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p436) ②‘루스벨트’는 보고서 공개 여부를 심사숙고했고, 보고서에 ‘라이트’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조언했으며, 따라서 보고서를 공개하면 노동자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것 같았고, 대통령으로서 그가 특정 쟁점에 대해 섣불리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했다면 의무적으로 사태에 개입하라는 요구가 있더라도 그때쯤에는 “신망을 잃고 난처한 입장”에 빠졌을 것인데, 하지만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으면 이 또한 억압 행위로 여겨져 긍정적인 대책을 학수고대하는 진보주의자들을 화나게 할 가능성이 컸음(p436).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곤경에 빠진 루스벨트는 당분간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음(p436). <여름> ③계절의 시계는 째깍째깍 흘렀는데, 한 여름, 국민 일상에 극적인 변화가 없었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공장과 학교, 병원은 물론 수백만의 주택 소유자도 겨울을 넘기는 데 필요한 석탄을 확보해야 할 날이 가까워졌는데, 석탄 공급은 줄어들었고, 석탄 중개인의 저장고도 점점 비워졌음(p436). 소매가격은 50~60퍼센트 가량 올랐는데, 이러한 가격 상승은 대다수 국민에게 큰 부담이었고, 뉴잉글랜드의 크고 작은 도시에 전해지는 보도에 따르면, 부담스런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조차 석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석탄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해 소수의 중개인에게만 구할 수 있는 지경이었으며, <콜 트레이드 저널>은 “그 단계가 눈앞에 닥친 게 거의 확실하다. 조만간 무연탄 공급이 사실상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예측했음(p437). ④ [역사에서 배우고 균형감을 유지하라] 그해 여름, 의회는 휴회 중이었지만 ‘루스벨트’는 오이스터 베이(Oyster Bay)에 있던 가족 별장에서 파업의 전개과정을 면밀히 추적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이 퇴역 군인을 위한 휴양소에서 얻은 것-분쟁의 근원을 추적하고 사색하는 시간과 공간-을 ‘루스벨트’는 별장 서재에서 구했는데, ‘루스벨트’는 평생 역사를 공부한 역사학자였고 열렬한 독서광이었고, 그는 탄광 소유주와 광부, 자본과 노동, 부유층과 빈곤층의 충돌이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걸 알고 있었음(p437). “산업혁명의 여파로 노동 문제가 새로운 장에 들어섰다. 전국적인 규모로, 심지어 세계적인 규모로 거래하는 거대 금융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걱정거리를 가장 먼저 경험했다. 기업주와 고용인 간의 친밀하고 친숙한 관계도 차츰 사라졌다. 수세대 전에는 기업주가 상점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을 알았다.”(p437) ⑤하지만 탄광 노동자가 레딩 철도회사 사장을 예전에 만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그와 친구였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으며, 게다가 기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기업주와 개별 고용인 간의 협상 관계는 지독히 불평등해졌는데, 그 정도는 점점 심해졌음(p438). 탄광 노동자는 혼자 고용주와 임금을 협상할 때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 “단결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집단으로 협상해야만 공정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규모와 세력은 커질 수 밖에 없었는데, 탄광 경영자들은 이런 역사적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했음(p438). ⑥‘루스벨트’는 도금 시대(Gilded Age, 산업화로 미국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발전하던 1870년부터 1900년까지의 시대) 및 트러스트와 노동조합의 성장을 다룬 책을 읽었는데, 사실 그의 가족사가 새로운 산업 질서에서 재산이 어떻게 축적되는지를 보여준 뚜렷한 증거이기도 했음(p438). 할아버지 ‘코닐리어스 루스벨트’(Cornelius Roosevelt)는 상인과 은행가와 부동산 자산가로 크게 성공해 “뉴욕에서 가장 부유한 다섯 부자 중 한 명”이 됐고, 그런 할아버지에게 ‘시어도어’는 가족 기업을 물려받았으며, 또 뉴욕 자선 단체의 기둥이었던 아버지에게는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의무감과 책임감을 배웠는데, 한편 그 자신은 메인주의 숲을 탐험하고, 서부에서 카우보이들과 어울리며 색다른 경험을 쌓았음(p438). ⑦또 워싱턴에서는 공직자로, 뉴욕에서는 경찰위원회 위원장으로, 쿠바에서는 군인으로 일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길과는 다른 길을 걸었는데, ‘시어도어’는 미국의 다양성을 직접 맞닥뜨리며, 공직자로서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과 ‘리더십’에 대한 개념을 몸소 익혔고, 1902년의 파업에서 전개되던 역사는 그가 알고 있던 역사에서, 또 그의 삶과 시대에서 지극히 중요한 부분이었음(p439). 1902년 여름, ‘루스벨트’는 ‘존 니콜라이’와 ‘존 헤이’가 함께 쓴 ‘에이브러햄 링컨’의 방대한 전기를 읽기 시작했는데, ‘루스벨트’는 그 전기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큰 가르침을 얻은 듯하다.”라는 편지를 ‘헤이’에게 보냈고, 물론 ‘링컨’이 내전으로 인해 마주한 위기와 그에게 닥친 과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관련된 사람들과의 역학 관계는 무한히 다양하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생각했으며, ‘링컨’이 극단주의자에게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편에게는 지나치게 멀리 갔다는 이유로 비난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루스벨트’는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음(p439). ⑧당시 석탄 파업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은 “광부들에게 동점심을 보인다.”는 이유로 ‘루스벨트’를 강력히 비난했고, 진보주의자들은 ‘루스벨트’가 “석탄 재벌들의 숨통을 조이기를 바랐다.”(p439). ‘루스벨트’가 ‘링컨’의 전기에서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링컨’의 성품이었는데, 그 성품을 본보기로 삼아 ‘루스벨트’는 “온화하고 너그럽게 보이며, 복수심으로부터 해방되려고 애썼다.”(p439) ⑨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릴 수 있는 급작스런 반전에 대비하라] 얄궂게도 한 무정부주의자의 총탄 덕분에 ‘루스벨트’는 대통령이 됐는데, 그런 갑작스럽고 만화경 같은 반전은 그가 삶의 철학과 ‘리더십’ 개념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고, 그때까지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전개되던 파업이 12주차에 들어섰을 때, ‘셰넌도어’라는 탄광 마을에서 폭력적 사태가 벌어지며,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던 모든 희망이 뒤집히기에 충분한 위기가 닥쳤음(p440). ‘미첼’은 파업을 시작할 때부터, 광부들에게 도발적인 자극을 피하고, 피켓 라인을 질서 있게 지키라고 당부했으나, 7월 말이 되자 광부들의 신경은 위험할 정도로 날카로워지기 시작했으며, 7월 30일, 한 부보안관이 “의심스럽게 보이는 꾸러미”를 짊어진 두 사람을 탄광까지 데려다주고 있었는데, 꾸러미에는 광부용 장비가 있는 것을 보자마자, 시위자들은 그 ‘배신자들’에게 달려들어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팼음(p440). ⑩경찰들은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왔고, 광부들은 길거리에 모여들었으며, <뉴욕타임즈>는 “1,000발 이상의 총성이 울렸다.”고 보도했는데, 수십 명의 파업자와 지역 주민이 맞았고, “많은 사망자가 뒤따를 것이라 예견됐다.”(p440). 부보안관을 도우려던 시민조차 파업자들에게 두들겨 맞어 죽임을 당했고, 전국에서 신문들은 앞 다투어 머리기사에 “공포 시대”(reign of terror)를 선언했으며, ‘루스벨트’는 오이스터 베이에 있는 가족 별장, 새거모어힐에서 폭력 사태에 대한 보고를 받고, 워싱턴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음(p44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에이브러햄 링컨’의 전기를 읽고 그의 성품에 집중했음을 세심한 시각으로 잘 관찰하여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또한 1902년 당시 일어난 탄광파업이 심화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음. 이와 같이 위기의 순간에 ‘리더십’의 어떤 성품적인 측면이 중요하며 왜 중요한지?
□ 요약(제3-2부 리더와 시대 4. 시어도어 루스벨트_탄광파업의 심화 및 인내)
①탄광파업에서의 폭력 사태가 계속되면, 펜실베니아 주지사가 질서 유지를 위해 연방군의 파견을 요청할 가능성이 컸는데, 훗날 ‘루스벨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한 친구에게 “군중이 폭력을 행사한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그런 개입은 분명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에 속했지만, 연방군의 파견이 경영자를 위한 강압적 조치, 즉 파업을 분쇄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루스벨트’는 역사에서 배워 알고 있었음(p441).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두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 어떤 조치를 불가피하게 취해야 하는데, 그 조치가 가난과 고통에 짓눌려 분노한 사람들의 죽음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다.”(p441) ②‘루스벨트’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 지 지켜보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고, 별장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그런 인내는 결국 보상을 받았으며, 이튿날 ‘존 미첼’이 폭력 현장에 도착했음(p441). 광부들의 대의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도 법과 질서의 파괴를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미첼’은 잘 알고 있었으며, 그가 스크랜턴에 도착하자 1만 명의 광부가 열렬히 환영했고,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광부들은 ‘미첼’의 등장에 뜨겁게 열광하며 폭력을 자제하라는 ‘미첼’의 호소를 귀담아 들었음(p441). ③“여러분 중 한 명이라도 법을 어기면 동료들에게 최악의 적이 되는 겁니다. 이번 파업에서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여러분이 승리하면 앞으로 더는 파업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번 파업에서 패하면 조직도 잃게 될 것입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성급히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존 미첼’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탄광 지역에는 불확실하나마 평화가 회복됐음(p441) [여러 선택지를 재평가하라, 급변하는 상황에 적응하고 대비하라] 파업이 넉 달째로 접어들자 국민의 우려도 깊어졌으며, 양측은 금고를 다시 채우며 장기적인 투쟁에 대비했고, 경영자들은 광부들이 패배를 인정하고 일터로 돌아가야만 파업이 끝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는데, 한편 광부들은 전국의 노동조합 동료들에게 파업 자금을 요청하며 “장기적인 시련을 끝까지 견뎌낼 각오를 다졌다.”(p442) ④8월 21일, 교착 상태가 지루하게 이어지자 ‘루스벨트’는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법무장관에게 물었는데, “석탄 경영자들을 기소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이어서 묻는 겁니다.” 실제로, 석탄 트러스트가 노던 증권사(Sherman Antitrust Act, 산업의 독점을 막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1890년에 제정된 미국 최초의 트러스트 금지법이며, 법률적으로나 경영상으로 완전한 기업 결합 형태인 트러스트는 독점의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이윤추구, 효율성 제고 등의 목적을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었음)을 더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기자가 적지 않았음(p442). 1901년 말, J.P.모건의 주도하에 설립된 노던 증권사는 경쟁 관계에 있던 세 곳의 철도회사와 해운회사를 하나의 거대 기업으로 통합해 유에스스틸(U.S. Steel)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을 탄생시켰는데, 새로운 지주회사, 노던 증권사에 운임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권한이 있었음(p442). ⑤하지만 “합병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밖의 발표에 금융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사흘 후에 열린 백악관 모임에서 ‘모건’은 ‘루스벨트’에게 “우리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언제라도 우리에게 사람을 보내십시오. 그럼 우리가 바로잡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훗날 ‘루스벨트’의 증언에 따르면, ‘모건’의 태도는 대통령조차 단순히 경쟁 기업으로 생각하는 월스트리트의 관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었음(p443). 노던 증권사에 대한 소송은 ‘루스벨트’에게 ‘트러스트 파괴자’(trust-buster)라는 별명을 붙여준 일련의 사건 중 첫 사건에 불과했는데, ‘루스벨트’는 미국의 통치자는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연방정부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트러스트 금지법을 활용했던 것임(p443). ⑥석탄 경영자들을 트러스트 금지법으로 옭아맬 수 있겠느냐는 ‘루스벨트’의 질문에 ‘녹슨’ 법무장관은 석탄 경영자들이 트러스트 금지법에 저촉되도록 담합하지는 않았다고 대답했는데, 게다가 탄광 소유주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하더라도 재판은 워낙 느릿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당면한 위기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으며, 하기야 노던 증권사에 제기한 소송은 7개월이 지난 후에도 연방법원에서 첫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연방대법원은 그로부터 거의 3년 뒤에야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최종 결정을 내렸음(p443). 법무장관의 반대에 부딪힌 ‘루스벨트’는 논란이 적은 다른 해법을 심사숙고하고는, ‘녹스’에게 ‘라이트’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과거의 결정을 재고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녹스’는 “그 보고서를 공개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지금도 그 생각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음(p444). ⑦하지만 ‘루스벨트’는 다른 보좌관들과 상의한 끝에 결국 그 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는데, 게다가 경영자들과 광부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이 보고서의 부록에 포함됐고, 그 편지들에는 직원들을 향한 경영자들의 적대감이 분명히 드러났으며, 또한 경영자들은 ‘미첼’과의 면담을 거듭거듭 거절했음(p444).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시어도어’ 당시의 미국 내의 거대 트러스트의 조직 및 뉴욕 월가의 파워가 높아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며, 또한 경영자들의 사회적 무책임의 태도를 밝히려는 ‘루스벨트’의 시도를 높게 평가함. ‘리더십’은 약자에 대한 바른 태도는?
□ 요약(제3-2부 리더와 시대 5. 시어도어 루스벨트_탄광파업 문제해결 시작)
①광산파업에 대한 ‘라이트’의 보고서에서 모든 광부에게 최종 임금을 보장하자는 아이디어와 관련해, 경영자들은 광산마다 노동조건이 다르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 “그런 아이디어는 무지하고 병든 마음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명백하다.”고 반박했고, 보고서가 공게됨으로써 경영자들이 대중에게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음(p444). 예컨대 ‘라이트’가 경영자들에게 파업 해결을 위해 대통령에 도움을 구한다면 어떤 제안을 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경영자들은 “대통령이든 누구든 참견하지 않으면, 파업이 원만하게 끝날 것”이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했으니 말임(p444). ②‘루스벨트’는 보고서를 공개하면서도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권한도 책임도 없다는 ‘녹스’ 법무장관의 의견을 포함하는 신중함을 보였는데, 그러나 ‘루스벨트’의 생각은 점점 달라졌고, 그는 국민의 대표였으며, 따라서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것은 분명했음(p444). 또한 점점 격해지는 파업으로 생계가 불안정한 상태에 빠진 국민도 이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루스벨트’가 파업 초기에 심은 씨앗도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양심으로 삼아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요컨대 ‘루스벨트’는 발언의 정도를 점진적으로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고, 마침내 눈 앞에 닥친 폭풍의 눈에서 시민들, 특히 뉴잉글랜드 주민들의 지지기반을 구축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음(p445). ③ [의견을 명확히 밝히고, 위기로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지지를 확보하라] 석탄 파업이 극단적인 단계에 이르기 전, ‘루스벨트’는 다가오는 가을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의 지지 세력을 결집할 목적으로 늦여름 뉴잉글랜드와 중서부지역을 순회하는 연설회를 계획했는데, 장기화되는 파업으로 뉴잉글랜드 주민들의 걱정이 커진 까닭에 순회 연설회는 정치색을 짙게 띠었음(p445). ‘루스벨트’는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매사추세츠부터 버몬트와 뉴햄프셔와 메인까지 기차와 지붕을 접었다 폈다 하는 무개차로 이동하며, 가는 곳마다 많은 인파를 끌어들였고, <보스턴 데일리 글로브>의 보도에 따르면, “예포와 교회 종소리, 호루라기 소리, 관악대의 연주와 수천명의 환호”가 그를 맞이했는데, “공장은 작업을 멈추었고 상점은 문을 닫았다. 깃발이 올랐고, 사람들은 나들이옷을 입고 달려 나왔다.”(p445) ④한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작은 도시는 모든 주민이 ‘루스벨트’를 보려고 나왔다.” ‘루스벨트’는 주민들이 서커스를 보려고 모여드는 것처럼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루스벨트’는 결코 지치지 않았으며, 항상 미소를 띤 밝은 표정을 보였고, 역동적인 몸짓으로 군중들과 애정을 주고 받았음(p445). 또 어디에서나 시민정신과 인격에 대해 즉흥적으로 연설하며, “신분의 고하, 빈부의 격차를 막론하고 모두가 공정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루스벨트’는 사전에 준비된 연설에서는 석탄 파업에 대해 언급하는 걸 의도적으로 피했지만, 점점 강화되는 트러스트와 점점 확대되는 빈부격차에 대해 불만의 소리를 듣게 되면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음(p446) ⑤많은 사람이 향수에 젖어, “보통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더 자신에게 충실하게 살았던” 산업화 이전 시대를 뒤돌아본다는 걸 ‘루스벨트’는 알고 있었고, 하지만 ‘루스벨트’는 그들에게 뒤돌아보지 말고 앞날-중앙정부가 경제 질서 유지를 위해 개입하고 트러스트를 규제하며, 경쟁을 자극하고 소기업을 보호하는 건설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을 민심이 받아들이는 시대-을 내다보라고 독려했고, ‘루스벨트’는 ‘리더’가 변화를 꾀할 때 민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링컨’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음(p446). 여름이 끝나갈 무렵, ‘루스벨트’는 그런 민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는데, 국민의 눈이 도움을 구하며 백악관으로 향했고, 여론은 백악관이 나서라고 압력을 가하였으며, 마침내 한 신문은 “우리는 끈기 있게 참고 견뎠다. 이제는 국민의 목소리를 높일 때이다.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때이다.”라며 “우리를 억누르는 비대한 조직을 밀어내기 위해 영향력을 사용하라고 대통령에게 호소할 때”라고 보도했고, 결국 민심이 ‘루스벨트’에게 행동할 여지를 만들어주었음(p446). <가을> ⑥ [위기에 온진히 집중하기 위한 준비를 끝내라] 가을이 시작되지 석탄 파업이 극심한 단계로 치닫기 시작했는데, 순회 연설회를 절반쯤 끝낸 뒤여서 ‘루스벨트’의 정치적 평판과 통찰은 상당히 향상된 때였으며, 이번에도 그의 삶에 끔찍한 사고와 함께 기회가 불쑥 끼어들었고, 연설 약속 때문에 메사추세츠 피츠필드에서 레녹스로 가던 대통령 일행이 탄 마차가 전찻길을 건널 때 돌진하던 전차에 들이받히고 만 것이었음(p447). “전차가 마차를 때리는 요란한 소리가 주변을 완전이 뒤덮었고, 마차가 뒤집히며 바퀴와 차체가 산산조각 났다.” ‘루스벨트’의 총애를 받던 비밀 정보원, ‘윌리엄 크레이그’(William Crig)는 전차 바퀴에 깔려 즉사하고 말았고, 그런 아수라장에서 ‘루스벨트’는 10미터 밖으로 내던져졌으며, 턱과 눈가에 상처를 입었는데, 왼쪽 정강이도 큰 타박상을 입었음(p447) ⑦‘루스벨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마차를 함께 탄 모두가 죽었다고 확신했다.”라고 말했는데, ‘루스벨트’는 상처를 툭툭 털어내고 특유의 허세를 부리며, 예정된 순회 연설을 계속 하기로 결정했고, 인디애나에 도착했을 때, 그의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다(p447). 결국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고, 의사들은 즉시 수술하기로 결정했는데, ‘루스벨트’는 마취를 거부하고 의사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의사 선생님들, 너무 격식을 차리신 것 아닙니까? 장갑까지 끼시고 말입니다.” 소독된 장갑을 가리킨 것이었음(p448). ⑧한 의사가 재치있게 화답했는데, “대통령님, 대통령을 영접할 때는 장갑을 끼는 게 규칙입니다.” 고름집은 성공적으로 제거됐으며, 의사들은 ‘루스벨트’에게 심각한 합병증을 피하려면 적어도 보름 동안 발을 쓰면 안되므로 남은 연설회는 취소하라고 권했고, 워싱턴으로 돌아온 ‘루스벨트’는 들것에 실려 잭슨가 22번지에 마련된 임시 백악관으로 옮겨졌는데, 거주 구역과 행정관을 구분하려고 웨스트윙(백악관 관저를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건물로,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를 비롯해 대통령 보좌관들의 사무실이 있는 사무공간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백악관을 증축하고 있었기 때문임(p448). ‘루스벨트’는 개인적인 비극과 역경을 항상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극복해낸 행동가였지만 이번에는 꼼짝할 수 없었고, 파업의 부정적인 영향이 마침내 대중의 의식까지 파고들려던 순간에, 얄궂게도 그의 두 발을 묶어둔 상처 덕분에 그는 석탄 파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p448). ⑨실제로 ‘루스벨트’는 코네티컷 출신의 상원의원, ‘오빌 플렛’(Orville Platt)에게 “특별히 만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은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다리를 들어 올린 채 방에 틀어박혀 있는지 확인하려는 사람만 만나면 됩니다. 그 덕분에 석탄 파업과 관련된 모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두 다리로 서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음(p448). 보름간의 회복기 동안, ‘루스벨트’는 석탄 파업에 개입하기로 전례가 없는 결정을 내렸고, “그때까지는 헌법적으로나 법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 헌법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런 권리도 없었다.”라고 인정했지만, “내가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실패하더라도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처럼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여 실패하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대담한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 비평
필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광산 소유주들과 월가 금융가들이 합쳐지는 거대 트러스트로 인하여 월가의 금융세력의 권력이 커지는 가운데, 이 것에 대해 조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고, 그 중요한 방법으로 ‘라이트’가 조사한 특별보고서를 대중에 공개함으로 거대 트러스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거절 및 무시의 태도를 통해 민심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모습을 잘 묘사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또한, ‘시어도어’의 대통령 마차의 전차 충돌의 끔찍한 사건이 결국 ‘루스벨트’가 광산파업에 개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음
● 토의
‘리더십’이 대중적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한지? 어떤 측면에서 중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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