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시대의 보수당
1. 요약(민주주의 시대의 보수당)
①19세기까지 영국 보수당과 자유당은 구체적 정책을 놓고 경쟁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당히 유사한 신조와 이상을 믿고 있었으나, 20세기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확신이 힘을 잃어감에 따라 보수당 내에서도 보호무역주의의 요청이 커 가고 외부적으로도 자유당 대신 노동당이 보수당의 상대 당이 됨. ②구두제조업으로 자수성가한 체임벌리는 관세개혁을 착안하여 영제국과 그 외의 국가간 관세 차별을 두고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폈으나 실패하고 1906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승리했으며, 보수당은 자유무역파와 관세개혁파로 나뉘어 갈등하였고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자유당으로 옮김. ③19 세기 후반 중간계급에 의한 노동조합 운동과 노동당의 부흥으로 위기에 처한 보수당은 1차 세계대전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전후 보수당과 자유당 간의 제휴와 협력이 이루어지면서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했으며 자유당은 몰락하고 노동당이 급부상하였으며 ‘볼드윈’의 ‘국민의 당’을 만드는 시도를 하여 노동계급을 끌어들여 보수당의 사회적 기반을 넓히고 안도감을 주는 리더십을 보여줌. 그는 1928년 선거법으로 남녀 평등 보통 선거제를 시작시켰으며 대중에 접근하기 위해 ‘영화트럭’을 이용하기도 함. ④보수당의 처칠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끌었지만 총선은 완전 패배하였으며 노동당이 47.8%로 완승함. 1945년 이 후 보수당은 노동당의 노선을 대부분 수용하고 30년간 ‘합의의 시대’를 열게 되었으며 보수당 내에서는 ‘하나의 국민’파가 중진으로 자리매김함. 보수당은 1951년 총선에서 다시 성공해 처칠이 수상으로 돌아 왔으나 노동당 정부의 복지정책을 계속 추진하였으나, 이념적으로는 도리어 자유를 수호하는 당이 되었으며, 1960년대 민주적 방법으로 에드워드 히스를 선출함.
2. 비평
책 189페이지에서 1951년 총선에서 처칠이 수상이 된 이 후 노동당 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계속 추진하면서 맥밀런이 주택건설부장관이 되자 주택건설에 매진하였는데 이러한 정책에 대해 보수당 자신이 일종의 ‘사회주의’를 채택한 셈이 되었다고 함. 그러나, 국가 주도의 건설이 사회주의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생산의 주체가 국가가 되었을 뿐인데 이것은 배분적 정의와 다르기 때문.
3. 소감
6장에서는 영국 보수당의 자유수호의 과정을 노동당의 성장과 더불어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음. 우리의 경우에도 자유주의의 주장은 “관용”의 정신과 함께 보수주의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인 것으로 보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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