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부 그리고 공유정부로 가는길
How's friend's 이 현 재
1. 주요내용(6장 정부 자리 차지하기, 탐하기-정부인사(정무직))
①초기 이승만 정부에 있어서 한복을 입은 사람은 전진환, 양복을 입은 사람은 안호상․윤치영․허정․이기붕․임병직, 중국 옷을 입은 사람은 이범석, 기모노를 입은 사람은 이인, 권승렬이라고 하는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구성되게 되며 그 결과 다른 습관과 배경에 따라 서로간의 충돌과 마찰이 발생함. ②정부 수립 후 이승만대통령은 (1)일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드는 것, (2)기관이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 이에 따라 큰 사람이 큰 자리, 작은 사람이 작은 자리를 채울 것이고, 작다고 하여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인적기준을 제시하였음. ③초대 내각이 대부분 정치인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정부 운영에 정파적 색깔이 강하게 스며들었으며 해외 유학파가 지금보다 더 많은 상태였음. 미국과 국제연합은 기구, 김규직, 조소앙, 안재홍, 김성수 등 한국의 ‘실력자’를 한데 묶어 ‘연립’ 내각을 수립하기를 원하였으나 이승만은 본능적으로 깨지기 쉬원 연립방식을 반대하며 각 계층을 막라한 초당적 조각을 원하였음. ④이승만은 인촌 긴성수에 대하여 “인촌은 애국자야. 애국자는 건국의 마당에선 수위를 한다 해도 받아들이는 거야”라고 하며 국무총리에 지명코자 하였으나, 초대 국무총리는 이범석에게 돌아갔으며 그는 “오직 나의 충성, 나의 정력, 나의 시간, 나의 생명을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다만 하루라도 바치고자 한다”고 하여 취임 승낙의 변을 밝힘. ⑤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인물도 필요하여 조봉암을 선택하였고, 대통령이 사회부나 농림부를 선택하라는 말에 농지개혁과 양곡매입법 제정을 약속할 정도로 농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농림부를 선택하였음. 그 외 내무는 윤치영, 교통부는 민희식, 법제처장에 유진오 등이었음.
2. 비평
초대 내각 구성 후 전학련 사건이 있은 후 유진산 구속과 관련 윤치영 내무와 전진한 사회가 국회에서 서로 옳다고 소리를 높이고, 정부 일에 환멸을 느낀 전진환 장관이 사표를 내고, 윤치영도 사표를 내는 등 대통령의 리더십에 도전하는 소신있는 장관들이 많이 있었던 것은 민주국가 형성에 선순환 현상임.
3. 질의
제1공화국은 기존의 독립인사들과 다른 배경을 가진 인물들로 채워져 각 부처간의 다툼과 언쟁이 많이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에 대한 평가는? 또한 각 부처를 통활하고 장관들의 의견을 조정해나갈 바람직한 대통령 리더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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