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제8강)

presentlee 2024. 2. 18. 00:15

https://youtu.be/dXg__TTIEp8?si=gLBe8mFRvmZqTK7q

House Leadership School

 

□요약(7-3장 갈등의리더십:미국-프랭클린 루즈벨트)

 

①때로 원칙에 의거한 리더십이 선거에서의 승리같은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오는데, 공화당은 창당 후 두 번째로 치른 186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을 내세워 ‘더글러스’의 민주당 등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으며, 공화당은 ‘원칙에 의거한’ 정당임을 주장하며 70년 이상을 계속 집권함(p180). 하지만, 세계대공황 및 민주당의 젊은 후보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함께 불어닥친 강풍이 공화당을 쫓아내었으며,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음. ‘루즈벨트’는 구 민주당원과 신 민주 당원, 노동자와 실업가, 농장주와 소비자, 흑인과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자, 진보적인 지식인과 도시 대중으로 이루어진 ‘루즈벨트연합’(FDR’s coalition)을 만듬(p180). ②그러나, ‘루즈벨트연합’이 거대해지면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공화당이 어떤 조직적인 반대도 하지 못할 경우 민주당 내부, 주로 마지못해 뉴딜을 지지해왔던 남부 보수주의자들의 반대에 직면한 것임(p180). 세계대공황과 뉴딜은 ‘루즈벨트’가 추구했던 ‘지속적인 진보적 정부’를 탄생시킬 진보적 정당으로의 전환에 시동을 건 것이었으나, 새로 시작된 거대 민주당은 ‘루즈벨트’가 우려했던 것 이상으로 의견이 갈리어 남부 보수주의자들은 공화당 의원들과 연합해서 루즈벨트 정책에 반대함. 이러한 배경에는 1937년 ‘루즈벨트’가 대법원을 진보적인 판사들로 채우려고 하는 대담한 시도가 있었음(p181).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부 보수주의자들이 지난 몇세대 동안 지배했던 정당 안에서 북부의 진보적인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간 것에 대해 저항하며, 그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는 규칙을 폐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 것임(p181). ③1938년 ‘루즈벨트’는 ‘변혁적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는데, 그는 진보주의자나 온건파 당원들을 상대로 후보자 지명을 호소하기 위해 민주당 예비선거에 뛰어들어 직접 남부 보수주의의 중심부를 공략하였으나, 그는 실패하였는데 민주당의 전환을 후원해줄 대중적인 지지를 동원하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미숙한 ‘예선위원회’(elimination committee)가 준비한 정치적 숙청은 성급하고 부적절했음(p181). 또한, 흑인과 가난한 자들을 투표에서 배제시켰던 남부 주들의 장애물들을 극복하지 못했고, ‘루즈벨트’ 갈등의 개편이라는 변화를 향한 중요한 단계를 넘지 못했음(p182). ④이 후 ‘루즈벨트’는 민주당의 전환을 위해 계속 노력했는데, 그는 오랫동안 무소속 의원들과 진보적이며 중도파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민주당의 경계를 뛰어넘어 그들과 접촉하기도 했으며, 1940년 ‘루즈벨트’는 오랜 진보주의자인 ‘헨리 월리스’(Henry Wallace)의 부통령 지명을 고집함으로 민주당에 진보라는 특징을 확실히 각인시키고자 하였음.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는 당파심을 누그러뜨렸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사회적 입법에서 진보적 목표를 추구했어며, ‘경제 권리의 장전’을 강력히 요구함(p182). ⑤‘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성공적인 선거연합 중의 하나를 탄생시켰으나, “현실의 요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일어나 싸우는” 원칙에 의거한 정당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며, 그는 위기와 변화의 시기에 유권자들에게 ‘확실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정당 간의 발전을 위한 원칙에 근거한 투쟁의 역할은 인정하였고, 그는 역사를 통해 뉴딜의 성과들을 담보할 강력한 정당이 없으면 “다음 행정부에서 뉴딜의 성과들이 흔적 없이 사리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 ‘루즈벨트’는 강력한 진보적 리더십이 없다면 보수적인 요소들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게 만들 것이고,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당명 외에 두 정당 간의 어떤 차이점도 발견할 수 없을 때 선거의 의미가 상실할 것이라는 점을 걱정함(p183). ⑥‘루즈벨트’의 뉴딜 리더십의 이념들이 미국 정치에서 이념적 갈등의 장을 지속적으로 변모시켰지만, 원칙에 의거한 민주당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결국 실패했으며, 그의 민주당 후임자들도 민주당 내의 북부 진보주의자들과 남부 보수주의자들 간의 억누를 수 없는 갈등을 해결하지 못함. 결국, 남부인들은 민주당을 탈당하여 공화당으로 입당하였고, 새로운 ‘골수남부’(Solid South)가 형성되어 공화당을 지배하게 되었고 당 내부, 정당간의 새로운 갈등의 전선이 만들어짐(p183).

● 비평

필자는 갈등의 리더십에 대하여 ‘뉴딜정책’을 둘러싸고 ‘루즈벨트’와 민주당이 취하였던 태도와, 이에 상응하는 당내 혹은 공화당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진보’와 ‘보수’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음. 결론적으로는, 정당간의 갈등을 통한 민주주의 시스템의 운영은 정당이 그 색깔을 명확히 함으로서 선거인들에게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에 핵심이 있음을 통찰력있게 논증하였음.

● 토의

본 책에서 민주당 내에 존재한 ‘보수’와 ‘진보’의 세력의 갈등의 핵심은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보수’와 ‘진보’의 본질적인 개념적 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 정치 현실 속에 이러한 구분이 명확한지? 아니라면 이유?

 

□ 요약(7-4장 갈등의리더십:러시아-조셉 스탈린, 미하일 고르바초프)

 

①정치적 반대를 다루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감금, 추방, 살해 등 방법 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것인데 ‘스탈린’(Joseph Stalin)은 잠재적 적, 측근, 추종자, 가족까지 제거하는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었음. 그가 통치한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통치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안전’이었는데, 러시아의 ‘차르’들은 자연적 경계가 없어서 거대한 영토 방어‧확장을 위해 싸워왔으며, 그들은 국민이 아닌 신민으로 간주되었고, 반대는 곧 ‘반역’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회변화’와 ‘개인의 독창력’은 질서에 대한 위협이었음(p183). ②제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군의 패배로 인하여 ‘차르’ 지배체제가 무너졌고, 권력은 온건한 혁명론자의 손을 거쳐 ‘레닌’과 ‘볼셰비키’로 넘어감. 내란‧사회적 혼란은 ‘투쟁적 공산주의’(war communism)를 가져왔으며, ‘레닌’은 두 세대 정도의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는 근본적 사회변화를 구상함(p184). ‘레닌’은 혁명 후 곧 사망하고, ‘스탈린’이 후임자가 되었는데, 그는 테러정책과 세뇌를 통해 소련인들을 복종상태로 만들어 30년간 소련을 통치함. 이러한 상황 속에서 러시아인들은 정치적 의견 표명의 자율성과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p184) ③1980년대 중반 새로운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통제를 완화하자, 레크리에에션 클럽, 록밴드, 문화‧역사단체, 협동조합 등이 등장하는 등 러시아인들은 봄꽃처럼 활기를 되찾았으며, 1987년 말에 이르러서 적어도 3만 개 정도의 비공식적인 민간협회가 존재하였음(p184). ‘고르바초프’는 경제적‧정치적 부흥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를 위해 그의 계획을 실행할 적극적인 추종자들이 필요했는데, 그의 접근방식은 “새로운 형태의 대중 동원을 필요로 했다.” 사회학자 ‘빅토리아 보넬’(Victoria E. Bonnell)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정책에 의해 고무되지만, 자율적인 정치적‧사회적 활동과 정치적 토론의 장을 허용하는 제도화된 구조에 의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다.”라고 함(p184). ④민주화의 호된 시험은 정치적 성격이 명백한 단체들에 대한 ‘공식적인 관용’이었는데, 정치적 조직 중에서는 공산당 자체의 점차적인 분열로 등장한 것들도 있었음. 그러나,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도록 도와준 정당들의 분열과 무질서, 스탈린주의자 정당의 통치에 대한 기억 등은 정치활동의 증가를 어렵게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명백한 야당인 ‘민주동맹’(Democratic Union)과 스탈린의 죄상을 폭로한 ‘메모리얼’(Memorial) 등은 계속 번창하였음(p185). ⑤정치적 다원론을 지향하게 될 것은 당연했지만, 민족주의자 단체나 종교단체와 같은 우파에서부터 사회민주당 같은 좌파에 이르기까지 수백 개 이상의 정치적 성격을 띤 단체들이 조직되는 등 광풍이 불었으며, 그중 2~3천 명 정도의 당원들을 끌어모은 단체는 소수에 지나지 않음. 대부분은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즐기는 토론회에 지나지 않았고 당원 모집과 정치참여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음. 역사가 ‘주디스 데블린’(Judith Devlin)은 1990년을 즈음하여 등장한 정치적 단체들은 ‘지적토론에 의존했던 매우 소규모이고 취약한 상태의 지식계급 정당’이거나 ‘불신의 정치문화 속에서 조직된 정치가들의 정당’이었다고 하며 두 집단의 지도자 모두 현대 민주주의에서 어떤식으로 지지를 동원하는지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보았음(p185). ⑥‘고르바초프’는 “소극적이고 느린 개혁으로는 불충분하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음. 한편, 그는 권력을 잡은 지 5년이 지난 뒤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인민들은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해 이미 깨어났으며, 그들은 변화하고 있다.”라고 하며, “우리는 분명히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하였음. ‘타임’지는 그를 ‘과거 10년간의 인물’(Man of the Decade)로까지 선정하였으나, 1980년대의 영웅적인 개혁가는 1990년대로 접어들어 곧 잊혀진 사람이 되어버렸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p186) ⑦‘고르바초프’는 당내 강경파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위로부터의 혁명을 이끌었으나, 수동적인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솔선과 창의성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지는 못했으며, 적극적인 소수파는 본격적인 민주화를 향해 더 빨리 나아가기를 원했음.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의 ‘일당’으로서의 위치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정당-국가의 권력독점’이라는 범위 안에서 싸우는 ‘사회주의식 다원주의’로 갈등의 장을 제한하려고 하였음(p186). 정치학자 ‘캐럴 배너배리’(Carol Barner-Barry)와 ‘신시아 호디’(Cynthia A. Hody)는 “때늦은 지혜를 가지고 ‘고르바초프’는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작하였고, 점차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바뀌었다. 위로부터의 혁명을 시작한 사람들은 그들이 풀어놓은 힘에 대한 통제를 상실했다.”라고 결론내렸음(p187). ⑧‘고르바초프’와 그의 동료들은 붕개되었지만 아직은 힘을 유지하고 있던 구체제, 생기 넘치지만 논리과 일관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던 야당,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정치를 경험한 적이 없는 국민, 소련의 급속한 해체와 개혁을 야기한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자신의 업무를 잘 수행하였으며, 끔찍한 폭력 없이 새로운 정치체제가 등장하였음. 과연 ‘고르바초프’는 ‘시드니 후크’의 말대로 ‘이벤트에 묻혀 사는’ 지도자였는가, ‘이벤트’를 만드는 지도자였는가? ‘이벤트를 만드는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변화의 과정에서 그의 역할, 즉 계획되고 유기적으로 연관된 목표를 달성하고자 장애물들을 넘어섰는가에 달려있음(p187). ⑨그가 실각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획일적이고 자유가 없는 정치체제를 부수어버린 핵심적 변화의 촉발자로 서 있음. 그러나, 그는 아직 미발달상태인 정치의 엄청난 복잡성에 일격을 당했고, 국가-정당 관료정치 속에 훈련받았던 그는 이에 대한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음(p187). 결국은 그가 지배할 수도 그렇다고 따를 수도 없는 이러한 ‘힘’들 때문에 결정적 리더십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으며, 집단적으로 그 변화를 의도된 목표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91년에 그가 정권을 넘겨줄 때에 당내 강경파와 민주주의자 양쪽에서 모두 경시되었고 과도기적 인물로 간단히 처리되었음(p188). ⑩‘고르바초프’의 집권기의 전환은 폭력은 동반하지 않았으나 붕괴의 특징을 보여주었고, 야당은 기울어가고 있던 체제 내에서 결코 성숙하거나 일관성을 가질 수 없었으며, 억압에서 해방된 야당 인사들은 커져가는 이념적․정치적 진공상태를 채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음. 즉 공산당의 붕괴와 함께 민주정당의 건설이라는 기대도 무너진 것임. 여전히 야당은 토론가와 선동가의 파편화된 집단, 자유주의 지식인, 전문관료, 구 공산당원의 파편화된 집합에 불과했고, 결코 공동의 민주적 리더십을 형성하지 못했음(p188). ⑪‘과두정치가들’로 구성된 신료들을 통해 통치했던 ‘인민의 차르’(people’s tsar) 러시아 초대대통령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은 민주주의자들이 응집력있는 단일 정당으로 결합시키려는 일련의 노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하루살이처럼 단명한 수십개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경쟁했기 때문에 조직적 규범이 습관화된 공산당원들이 늘 강세를 보였음. ⑫힘을 다 쏟아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응집력있는 야당을 유지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며,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은 ‘벤자민 플랭클린’이 이야기한 것과 같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흩어지지 않도록 묶어줄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패배한 정당은 통합할 자원이 없고 책임론이 나오며, 몇몇은 즉각 승리한 정당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기도 함.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야당 지도자가 반대에 나서는가? 이익집단들이 등단할 것이며, 개별적 비판가들이 신문‧저널을 통해 의견을 피력할 것이지만, 이러한 것은 불충분하며 집권당에 대한 유일한 위협은 ‘다음의 선거’임. 이것을 위해 야당 지도자들은 연합을 꾀하며 이러한 연합 구성에는 ‘거래적 리더십’이 필요함(p189). ⑬만약, 지도자들이 피할 수 없는 도덕적 이슈가 등장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노예제도와 관련하여 20년 동안 민주당과 휘그당은 이 문제를 피하려 하였고 ‘1850년의 타협’에서 그 절정에 달하였으나 진정한 대립과 갈등이 없었다는 것은 양당정치의 실패를 의미함(p19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결론적으로 국민들이 억압된 가치들을 재천명함으로 해결을 모색할 때 ‘원칙에 입각한 갈등’이 ‘변혁적인 힘’(transformational power)을 나타냄을 미국, 러시아 사례로 잘 보여줌. 우리 사회에 억압된 가치는 무엇일까?

 

□ 요약(8장 리더십의 심리학:루스벨트, 간디, 매슬로우, 마르크스)

 

①‘루즈벨트’ 대통령의 재임기간은 최고 수준의 리더십이 발휘될 때 그것을 떠받치거나 저해하는 사회적‧정치적 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데, 1930년대 뉴딜정책의 수혜자들과 가난한 자, 실업자의 삶은 추종자들의 욕구, 필요, 동기, 열망을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줌. 그러한 사람들이 ‘투표’를 제외하고 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가 있는데, 대통령이나 영부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음(p192). 필자는 뉴욕 하이드파크의 루즈벨트 도서관에서 수백통의 편지를 보았는데, 후버 대공황 시절인 1930년에서 1932년까지 ‘루스벨트’ 주지사가 받은 내용은 가장 절박한 결핍을 호소하는 것이었음. 한편, 뉴딜정책이 실시된 1933년에서 1939년 사이의 편지는 경제적 여건의 개선에 관한 내용이 나타날 것을 기대했으나, 1930년대 초반과 거의 다르지 않은 것이었으며, 그들을 짓누르는 결핍, ‘진짜배기 결핍’을 발견하였는데 ‘루스벨트’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면서 해결하려던 종류의 것이었음(p193). 대통령은 또한 결핍과 연결된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제창함(p193). 1937년 1월에 행해진 연설에서 ‘루스벨트’는 국민의 3분의 1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라고 말하여서 뉴딜정책이 당초의 약속을 실현하지 못하였음을 인정하였음(p194). ②‘리더십’은 변화가 시작되는 곳에서 시작되며, ‘변화’는 사람들 사이의 강력한 물질적‧심리적 욕구가 싹트면서 시작됨. 매일 수만명의 아기들이 태어나서 긴급한 욕구와 함께 그들의 삶을 시작하며 즉각적으로 그들을 둘러싼 가정환경을 변화시키기 시작하는데, 이와같이 필자는 ‘욕구’가 가진 ‘힘’에 대한 논의부터 ‘리더십’을 이야기하고자 함(p194).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는 아이들의 필요를 규정지으며 아이들이 우리를 따르리라는 희망 속에서 리더십 역할을 자처하지만 아이들이 따르지 않을 때가 있음(p195). 또한, 욕구와 필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필요는 욕구에서부터 나오지만 이 둘은 다른 것이며 이러한 구분이 ‘리더십’에 대한 필자의 생각에 결정적인 부분이 되었음(p195). ③계몽주의 사상가 중 ‘흄’은 인간이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분된다고 여기고, 인간은 그러한 욕구를 조절할 능력을 타고난 것으로 봄. ‘벤담’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쾌락을 극대화하기를 원하며,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고, 이것이 행위의 중심축이 된다고 생각함. ‘밀’(John Stuart Mill)은 자연 그대로의 욕구와 고상한 욕구를 구분하면서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 지적‧도덕적 욕구라는 교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았음. 그들은 모두 고양된 인격 발전에 장애가 되는 무절제한 욕심에서 도덕적 위험상태를 발견했으나, 욕구의 팽창이 18세기, 19세기초의 사회적,경제적 지평을 넓혔다고 봄(p195). ④한세기 후 인도의 ‘간디’(Mohandas Gandhi)는 이러한 욕구의 폭발을 경고하였으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욕구를 서구에서 산업화를 이끈 ‘힘’으로 뿐만 아니라 만연된 착취와 불평등의 와중에서 권력과 부의 집중을 가져온 ‘힘’으로 보았으며, 서구의 “무제한적인 개인주의는 정글 속 야수의 법칙”이라고 하고, 욕구의 충족은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밖에 없으며,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말고 각자 ‘밥벌이를 위한 노동’을 분담해야 하며,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탈바꿈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치유책이라고 하였음(p196). ⑤그렇다면 60억가까운 사람들의 욕구의 ‘정글’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1940년초에 브루클린 대학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다른 사람들이 오직 무질서밖에 보지 못한 곳에서 질서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는데, 욕구와 필요에 순위를 매겨 ‘위계적 단계’로 이론화함. 대부분의 정신분석학자들은 욕구에 대한 부정과 그에 따른 사회적 폭력에 대하여 설명해왔지만, ‘매슬로’는 욕구의 충족과 그것의 위계적 단계에서 필요가 더 높은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일어나는 사람들의 동기유발과 행위에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음. 그는 선천적인 육체적‧생물적 욕구는 가장 밑에 놓았고, 일단 이런 욕구가 충족되면 ‘안전’에 대한 새로운 욕구가 지배적 동기가 됨. 그다음으로 가정과 이웃, 지역사회, 직장 등에서의 ‘사랑’과 ‘귀속감’에 대한 욕구가 발달되며, ‘자존심’이 가장 중요한 동기로 떠오르게 되며, 이것을 뛰어넘는 ‘자기발전의 추구’와 ‘자기실현’이 ‘매슬로’의 욕구단계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함(p196). ⑥정치학자 ‘제임스 데이비스’(James Davies)는 ‘매슬로’의 욕구단계가 가지는 정치적 함의를 강조했는데, 그는 생리적 욕구에서 논의를 시작했고, ‘매슬로’와 같이 ‘사회적 애정’ 또는 단순한 사랑, 자존, 자아실현 등과 같은 더 높은 단계의 욕구에 대해 인정하였음. 그러나 데이비스는 ‘질서, 예측 가능성, 기댈 수 있는 주위환경’ 등과 같은 ‘안전’에 대한 욕구를 단순한 욕구단계 중의 하나가 아니라 그 과정의 핵심이며, 다른 모든 욕구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추적인 수단으로 파악했음(p197). 필자는 ‘안전’에 대한 강조를 주목하였는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지역에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단순한 생존에 대한 열망 때문에 무정부상태의 혼란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준다는 약속만으로 독재자의 품속에 안겼기 때문임. 그러므로 필자의 리더십 체계는 ‘질서’로부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정치지도자라면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욕구와 필요, 희망과 기대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봄(p197). ⑦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매슬로’의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drive)과 ‘리더십’에 대한 동기 유발 사이의 연결 가능성이었는데, ‘자아실현’이라는 동기를 유발하고 그것을 특징짓는 창조성, 성장과 학습능력, 유연성, 개방성, 타인을 대하거나 환경을 다루는 효과성(로버트 화이트, Robert White-심리학자 언급)이 ‘리더십’의 자질과 유사하기 때문이었음(p197).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매슬로’는 자아를 실현하는 인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주적이며, ‘자신의 잠재력과 잠재되어 있는 자원’에 의존하는 것으로 파악한 반면, ‘리더십’과 관련된 ‘자아실현’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실현 과정을 통해 추구되고, ‘사람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와 목적’(아그네스 헬러 Agnes Heller, 페렌츠 페어-정치학자 언급)에 대한 ‘헌신’에서 유발되기 때문임(p198). ⑧필자의 1978년 책 “리더십”(Leadership)에서, 필자는 이러한 과정을 “leading by being led”라는 말로 묘사하였는데, 지도자의 자아실현의 본질은 외부지향적이며, 그는 추종자들의 ‘욕구’를 감정이입을 통해 이해하고, 그것을 하나의 가치로 정립하여 정당한 ‘필요’로 바꾼 뒤 이에 대처하며, 지도자는 추종자들의 욕구를 희망과 열정으로, 좀더 의미있는 ‘기대’로, 최종적으로는 ‘요구’로 탈바꿈시키게 도와줌(p198). 이러한 정치적 단계에서 지도자는 추종자들보다 한 발짝 앞서 나가지만,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추종자들의 욕구, 필요, 기대에 밀접하게 맞추는 능력에 따라 계속전진해 나가고, ‘추종자들로부터 배우고 지도되는 것’이라고 가정하였는데, 이것은 지도자와 추종자가 함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헌신’하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됨. 지도자와 추종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우연을 숙명’으로 탈바꿈시키는 변화의 적극적 행위자가 되는 것임(p198). ⑨필자는 ‘매슬로’의 개념들이 ‘리더십’과 밀접하게 관련지을 수 있는 인간 변화를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기때문에, 필자는 많은 다른 분야 학자들이 매슬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리라고 기대하였음(p198). 또한 ‘리더십’이라는 기나긴 고리의 첫머리와 그 근본적인 과정들에 완전한 설명의 토대를 놓는 데에 더 진전을 가져왔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필자의 이런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개념의 부정확성 또는 증명의 부담 때문일 것임. 그러나, 필자는 ‘매슬로’의 아이디어에 중대한 영향을 준 근본적인 가정들을 ‘매슬로’ 자신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연구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결론지음. 그 가정은 자유민주주의는 보편타당한 정부 형태라는 가정, 개인의 권리에 대한 보장이 중요한 민주주의의 잣대라는 가정, 변화가 개인노력 결과라는 가정임(p199).

● 비평 및 토의

필자가 ‘매슬로’의 욕구단계이론을 자신의 ‘리더십’이론에 비추어 면밀히 분석하면서 그 한계로서 ‘매슬로’의 이론이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 맞추어져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으며 종합적으로 바라본 시각이라고 생각됨. 그가 제시한 ‘상호자아실현’ 개념은 무엇이며, 우리사회의 구체적 예시가 있다면?

역사를바꾸는리더십(제임스맥그리거번스)_24하우스(이현재)_7,8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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