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제10강)

presentlee 2024. 3. 2. 23:17

https://youtu.be/b0yFbHvmMpU?si=8tybx33umAtEKfki

House Leadership School

□ 요약(10-2장 창조적 리더십 : 창조력의 근원, 황금기)


①개인들의 삶이 변화와 리더십의 복잡한 과정을 설명해주진 않지만, ‘천재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창조력은 개인적인 현상인가? 사회적인 현상인가? 문화적 토양과는 어떤관계가 있는가? 일상의 변화와 ‘변혁적 리더십’ 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와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져줌. 오래전 사람들은 모든 창조적 아이디어를 신들로부터 부여받는다고 보았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창조적 통찰력이 인간 마음 그 자체와 그것을 조합, 결합하는 능력에 있다고 보았음(p219). 새로운 과학이 그 신비의 열쇄를 찾았다고 주장하게 되었는데, ‘유전인자’에 달려있다는 주장이었음. 예일대학의 식물학자 ‘에드먼드 시놋’(Edmund Sinnott)은 모든 자연은 ‘반보수적‧독창적‧창조적’이다고 보았음(p219). ②또한 그는 인간의 두뇌 속에서 ‘새로운 정신 패턴의 가능성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라고 보았는데, 타고난 진화의 힘과 그 결과 마음의 창조적 과정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무엇이며, ‘인간 정신활동의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1990년대 심리학자 ‘존 데이시’(John S. Dacey)와 ‘캐슬린 레넌’(Kathleen H. Lennon)은 “생물학적 요소들은 우리의 성장과정에서 우리의 유전자들이 하는 역할에서부터 성인의 건강 문제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라고 하며 심리학적 요소들은 인식과 인성발달의 모든 분야를 포함하고, 사회적 요소들은 가정, 학교, 동년배, 문화와 같은 영향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음(생물심리사회주의). 이와같이 초기의 설명들은 내적 특성에 따라 만들어지는 개인의 창조성에 중점을 두었으며, 특히 ‘유전’에 시선을 돌려 애덤스가, 루즈벨트가, 케네디가 같은 정치 명문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음(p220). ③20세기 초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창조적 상상력이란 ‘과도하게 강력한 본능적 욕구’와 ‘명예, 권력, 부, 명성,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얻으려는 욕망’의 불만족에 의해 추구되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함. 그의 제자 ‘오토 랑크’(Otto Rank)는 ‘창조성이란 미숙한 자기과시나 바보같이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고질병적으로 의존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함. 반대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창조적 자아’라는 개념을 가지고 개인을 ‘자기자신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존재’로 보았음. 그는 적극적, 건설적, 사회적으로 유형의 삶을 살아감으로 자신의 열등감과 부족함을 보정함(p221). ④‘매슬로’는 ‘창조성’을 인간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는데에 긴요한 심리적‧영적 건강의 핵심이라고 보았으며, ‘자아실현’이라는 그의 이상은 도전에 직면했을 때 변화에 창조적으로 적응하며,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임기응변을 잘하는 능력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것은 ‘리더십’의 중요한 특성임. 즉, 그는 ‘창조력’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잠재력’이라고 보았으며, 한편 사람들은 문화에 적응하면서 순응해야 된다는 압력에 못 이겨 이를 상실했다고 봄(p221). ‘호레이쇼 앨저’(Horatio Alger Jr.)는 “Pluck Make Luck”이라는 책에서 개인주의적 윤리성을 예시해 주었는데 행운도 용기를 만든다는 사실에는 신경쓰지 마라고 하였고, 명예와 성공을 열망하는 사람의 공훈을 강조하는 것은 ‘개인주의 이데올로기’의 일부가 되었지만 결국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창조성’이 비난받는 결과를 낳았음(p221). ⑤이러한 비판은 정당한데, 왜냐하면 ‘창조성’이 ‘천재성’과는 무관하다는 상식적인 결과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임. 즉, 지하실이나 차고의 수리공, 근무시간 후에 작업장에서 빈둥거리는 발명가 등 ‘창조성’은 보통사람들에게서 흘러나왔기 때문임. 그러나 ‘창조성’에 대한 ‘평준화’는 개인에 대한 탐구에서 사회적 조건들을 탐구하는 것으로, 기존 사상과 관습에 기꺼이 도전하고자 하는 창의적인 사람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연구로 방향이 전환되게 됨. ‘창조성’에 대한 주요한 함의는 ‘창조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있으며, ‘개인주의적 접근법’의 첫 번째 중요성은 변혁적 사회변화라는 집단적 과정에서 ‘창조적 리더십’이 가지는 역할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기여했다는 것임(p222). ⑥모든 문명들은 ‘황금기’를 가지고 있는데 문학, 과학, 예술, 정치력 등의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혁신들이 쏟아져나고는 것임. 로마의 학자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Velleius Paterculus)가 ‘창조성’이 순식간에 개회되었다고 말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 시대’(Periclean Age)가 전형적인 예에 해당함(p222). 고대 수메르 문화, 중국 문화, 키케로(Cicero)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 시대의 로마, 16~17세기의 인도 무굴제국,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도 이에 해당하는데, 구체적으로 1770년대에서 1830년대까지 60년을 살펴보면 미국인들은 혁명을 수행했고, 새로운 정치제도, 권리장전을 만들었으며, 민주적 정당제도를 확립하였음. 즉, 건국의 미국 리더십은 우수했음. 그 사이 프랑스에서는 혁명으로 왕정을 붕괴시켰고 결국 나폴레옹의 지도하에 새로운 제국을 수립했으며, 영국은 근대적 정당제도를 발전시키면서 1832년 ‘개혁법’을 통과시켰고, 위대한 독일의 시인, 철학자, 작곡가들은 낭만주의 정신을 명확히 하는 등 각 분야의 ‘창조자’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국제적․집단적 리더십을 발휘함(p223). ⑦무엇이 이러한 창조성의 폭발을 가져왔을까? 하는 질문과 관련하여 ‘문화’에 강조점을 두고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상호 배양하고, 상호 교류하며 교육과 지식기술의 발전, 새로운 사상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창조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임. 즉, 가정 내, 가정 사이, 학교, 일터, 정치․과학․예술집단과 전문가 모임 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곳에 ‘지도자’, ‘추종자’, ‘지도자가 될 추종자’도 있는 것임(p223). ‘뉴턴’이 자신이 멀리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이러한 문화를 반영한 것임.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런 시기에 모든 공동체가 동요하는데 ‘바람이 일고 또 일어 그것을 식힐 간격이 없어 대중은 열광에 빠져들고, 그 발단자가 없어져도 관성에 의해 지속된다’라고 하였는데, 이처럼 ‘리더십’의 상호작용은 그 자체의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폭제가 되는 순간에 도달하여 과학의 패러다임의 전환,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의 혁명적 재개념화가 일어나는 것임. 여기에서 공동체들은 경쟁과 투쟁을 통해 동료애와 협력관계를 이끌어 내고, 관습적 사고 패턴과 싸우는 중에 새로운 통찰력이 검증되는 등 ‘갈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정치․사회에서도 현상유지파와 수구파들은 지배위치 확보를 위해 싸우며, 이것이 개혁주의자들과 혁명가들의 새로운 사고를 더욱 심화․ 확장시키니는 등 모든 ‘창조적 역량’을 총동원하게 되고, ‘교환’과 ‘갈등’을 통해 ‘지도자’답게 행동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임(p224). ⑧‘본성이냐 양육이냐’(nature vs. nurture)에서 ‘양육’편을 든다면, 위대한 지도자의 어린시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대부분은 좋은 가정교육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와 다른 경우들이 있는데 한 연구에서는 400명의 역사적 인물 중 75%가 결손 가정, 가정으로부터의 거부, 과잉소유욕, 독재적 부모 및에서 고통받았고, 20세기 저명한 소설가, 극작가 등의 85%가 문제있는 가정에서 자라난 것으로 나타남. 예를 들면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는 자기 아버지를 ‘사악하고 완고하고 싸우기 좋아하고 말년이 불행했던 인물’이라고 까지 묘사하였음(p225). 14살에 학업을 중단한 ‘토마스 에디슨’의 예 등  ‘데이시’와 ‘레넌’은 “학교가 창조성을 억누른다”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음. 영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와 ‘톰슨’(Thomson)이 1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훈련시킨 것과 같이 교사들이 ‘변혁적 지도자’로서 창조적 사고‧행동 기회를 주어야 함(p226).
● 비평 
  필자는 ‘창의성’과 관련하여, ‘개인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원인들을 찾아가고 있으며, 집단적 창의성이 ‘교환’과 ‘갈등’에서 도출됨을 통찰력있게 논증함.
● 토의
  본 책에서 ‘변혁적 리더십’을 이루는 ‘창의성’은 창의적 교육 환경(특히   교사들)에 있음을 주장하였는데, 우리 현실은 어떠하며 창의적 교육 방법은?


□ 요약(10-3장 창조적리더십: 해리홉킨스,루이스발데스,아우구스토보알)


①‘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했던 짧은 기간 ‘프셰볼로드 메이어홀드’(Vsevolrod Meyerhold)와 같은 위대한 감독들은 창조적인 작품들을 만들었고, 붉은 광장에도 올려졌는데 1926년 볼셰비키 혁명 9주년 기념 축하행사는 담이 없는 극장이 되었으며, 미국의 비평가 ‘핼리 플래너건’(Hallie Flanagan)은 수많은 군중들에 대하여 “구경꾼들은 배우가 되어 그들의 동지들과 행진한다”라고 적었음(p226). 그는 이 극장이 그들의 삶, 희망, 필요, 공포에 대해 말하며, “관객과 배우가 공유하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라고 보았음. 그러나 이와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던 극장은 스탈린의 정통주의와 압제에 의해 사라져 버렸음(p227). ②193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공공사업 추진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을 설립하고, ‘해리 홉킨스’(Harry Hopkins)를 수장으로 임명하였는데, 바사대학의 학장인 ‘핸리 플래이건’의 지도 하에 ‘연방극장 프로젝트’(Federal Theatre Project)를 만들었으며, 그녀는 의기소침한 수천명의 배우를 소집하고, ‘자유롭고, 검열되지 않은, 성인을 위한 극장’을 미국 전역에 개설한다는 ‘어마어마한 과업’에 노력을 쏟아부었음. ‘플래너건’은 동 프로젝트가 어느 정당을 위한 도구가 되지 말아야 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것이 권력의 핵심에 일격을 가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생각함. 이 프로젝트는 유권자들을 ‘급진화’ 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연방의회의 반대자들과 충돌하였는데, 그 대표적 예로 <Triple-A Plowed Under>이라는 연극이 중간에 착취하는 거래상들에 대항하여 하나로 뭉치는 농민과 소비자를 묘사하고 있는 점 등임. 또 하나의 예로는 1937년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누더기를 거치고 영양결핍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의 처지를 환기시킨 루즈벨트의 연설에 영향을 받은 연극<국가의 3분의 1(One-Third of a Nation)>이 집주인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불을 붙여, 그 ‘변혁적 정치력’으로 새로운 ‘주택법’ 통과를 도운 일 등임(p228). ③1965년 농장의 계절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의 아들 ‘루이스 발데스’(Luis Valdez)는 캘리포니아 델라노 포도농장에서 농장노동자 노동조합을 조직한 ‘세자르 차베스’(Cesar Chavez)의 운동을 배우며 연극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그는 동조자들을 모아 농장노동자연맹 사무실에서 그들에게 정치연극이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했으나 일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그 때 그는 종이에 ‘파업자’와 ‘비조합원’이라고 써서 두 노동자의 목에 걸자 모두 그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렇게 ‘농장노동자극장’(Teatro Campesino)가 탄생함. 그는 익살과 은유로 찬 촌극을 선사하며 노동자들을 계몽시키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라”는 메시지를 전하였으며, 관객들은 배우들을 신뢰하고, ‘들판과 도시에서의 라 라사(La Raza) 대중투쟁’과 ‘우리 민중의 가슴 속에서’ 변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발데즈’의 주장에 귀를 기울임(p228). ④브라질의 감독 겸 노동운동가 ‘아우구스토 보알’(Augusto Boal)은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위한 연극의 변혁적 가능성에 광범위한 비젼을 가지고 있었는데, 곧 독재권력에 도전할 수 있다고 보았고, 1960년대 브라질이 두 번의 군사혁명으로 고통받던 시절에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을 만들어, ‘억압’을 대화가 아닌 독백에 의한 권력이라고 규정하고 제도정치에 문제를 제기할 제2의 목소리인 국민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였고, 이 연극을 본 ‘농부’들은 정부를 타도하는 일에 ‘보알’과 그 극단이 나서주기를 바랐으며, 특이한 점은 장면이 진행되는 중 관객의 해결방안이 있으면 연극을 중단하고 극의 흐름을 재조정하도록 한 것임(p229). ⑤‘보알’은 투옥되었고, 1971년 망명하여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에서 연출기법을 정련하고, 15년 후 브라질로 돌아와 1992년 ‘연극을 통해 정치과정을 민주화시키겠다’는 선거공략으로 의원에 당선되고, 그는 ‘창조적이고 변혁적인 법률의 가능성’을 가지고 ‘정치로서의 연극’을 만들었으며, 사람들이 도피처로 극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극장이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마음을 해방시키고, 그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힘을 부여한 것임(p229). ‘보알’은 대중연극이 1)지배자의 측면에서 현재의 제도가 “지배자가 생산수단인 토지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반면, 노동자는 신의 허락하에 노동에 종사하는 이 세상에서 가능한 최상의 제도”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측면과, 2)여기 반하여 ‘민중의 변혁지향적 관점’에서 “노동, 그리고 전통과 관습의 노예가 되어버린 인간이 그들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서 “영구적 변혁 상태 속에 있는 세상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고 보았음. 결국 연극이 ‘대중들의 의식에 도달할 구체적이며 피부에 와닿는 방식’으로의 정의와 자유라는 보다 폭넓고 시간을 초월한 인간 보편의 문제들을 다루게 되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모든 인간의 삶이 다 국민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라고 봄(p230).
● 비평 
  필자는 ‘창의적 리더십’에 대한 또 다른 예로서 연극‧영화와 같은 문화적 도구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해리홉킨스‧루이스발데스‧아구스토보알 등의 인물이 연극을 통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한 예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문화’의 ‘창의성’과 ‘변혁적 리더십’의 관계에 대해 설득력 있게 논증함.
● 토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승만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등 과거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면서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현상과 관련하여 ‘창조적 리더십’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 요약(10-4장 창조적리더십: 변혁적 비젼)


①‘창조적 아이디어’와 ‘리더십 과정’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다면, 창조적 관념의 원천보다 더 불가사의한 것은 없으며, 그 과정에서 창조성은 좌절된 ‘욕구’와 ‘필요’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남. ‘좌절’이 박차를 가하는 힘이라면 그 해결책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창조성의 잠재력은 독재적 부모 아래 압살되거나, 순응과 조화의 압력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고 종교적‧이념적 열정에 의해 분쇄될 수도 있으며, 친구나 동료에 의해 창조성의 신선함과 힘이 약화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가진 비젼의 한계나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과정에서 발생함(p230). ②‘창조성’은 전통적 사고와 너무 배치되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영감이 폭발할 때 가장 변혁적으로 제약들을 해쳐나가며, 이러한 혁신적인 비상식은 판매 박힌 문제 해결을 뛰어넘어 깊숙이 숨어있는 인간의 필요와 위기에 초점을 맞춤(p231). 심각한 변화나 위협을 설명하는데 익숙했던 의미들이 사라질 때 ‘위기’는 변혁적 창조성의 원천이 되는데, 기존의 익숙한 의미가 다른 대안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 소그룹이나 엘리트들만의 보호구역일 수 있기 때문임(p231). ③정치학자 ‘피터 시더버그’(Peter Sederberg)는 ‘설명의 붕괴’라는 상황 속에서, 점증하는 진정한 욕구는 무시되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한데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 ‘평등’ 같은 가치들이 주창되어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의적 권력이 은폐된다고 함. 예를들면 미국 독립혁명에서 영국인들이 천명한 가치, 즉 정부에 대표를 보낼 수 있는 권리와 그들의 실질적 식민지 지배방식 사이의 괴리에 의해 박차가 가해진 것임(p231). 정치학자 ‘셸던 올린’(Sheldon Wolin)이 혁신적 정치이론가들은 ‘이 세상이 궤도에서 이탈했다는 근본적인 믿음’에서 동기부여를 받는다고 한 것처럼, ‘변혁적 창조성’은 이러한 긴장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이 때 ‘질서를 다시 세워줄 이론을 만들 기회’가 제공됨. 즉 기존의 설명들에 대한 확신이 느슨하게 되는 것임(p231). ④‘좌절’, 즉 기존의 의미와 현실 사이의 심각한 갈등을 화해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식 및 이러한 갈등에 대한 ‘민감함’이 ‘창조성’의 전제조건이 됨(p231). 사회심리학자 ‘리온 피스팅거’(Leon Festinger)는 ‘인지부조화’는 변화를 위한 ‘동기유발의 단계’임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새로운 설명의 모색을 통해 의혹, 혼돈, 모순, 부조화, 개념의 갈등을 제거하고자 하는 강력한 필요를 창출하기 때문임(p232). 사회학자 ‘케네스 케니스턴’(Kenneth Keniston)은 미국 신좌파와 ‘히피’를 연구하면서 창조적 정신이 ‘제도화된 위선’을 파괴함에 따라 “원칙과 실제 사이의 보편적 괴리가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고 지적하였은데, ‘창조적 리더십’은 이러한 비판에 머무를 뿐 아니라 ‘해체’를 통하여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전망’을 열어놓게 되며, 창조적 정신은 복잡 다단한 상황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신선하고 생명력 있는 해답을 찾게 됨. 즉, 창조적 통찰력은 변혁적인 것임. 이것은 기존 패러다임, 제도에 대한 붕괴와 대체를 요구하는 도전을 불러일으키고 ‘근본적 규칙’의 새로운 탄생을 요구함(p232). ⑤‘창조적 리더십’은 사회와 그 속에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는 기초의 의미와 가정의 가치 함축적인 결정체인 ‘준거틀의 구성’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해 건설적인 역할을 함. 그러므로, ‘창조적 리더십’은 관념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의미들을 ‘재구성’하며, 우리가 속한 세계와 우리 자신의 최상위의 잠재적으로 가장 변혁적인 ‘결정체’로서 ‘가치’를 구성함(p233). 욕구나 가치와 실제 사이의 괴리에 대한 치료-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젼-은 도덕적 목적을 수행하는가와 가치를 살려내는가에 달려있는데, 천명한 원칙을 수행했는가의 기준이 사용됨(p233). ⑥‘토머스 로콘’은 가치변화의 3가지 방식으로 1)무엇이 정당한지에 대한 ‘가치 전환’, 2)현상들로부터 개념적 관련성을 창출하는 ‘가치 연계’, 3)‘루즈벨트’가 재임시 ‘보존’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등장시킨 것과 같은 ‘가치 창조’를 들고 있는 바와 같이 ‘재구성’은 ‘대변혁’을 의미함(p233).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평등’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고, 프랑스 혁명가들은 ‘박애’의 정신을 최상의 가치로 격상시켰으며, 미국 혁명가들은 가치를 혁신했다기보다 영국인들이 훼손한 변혁적 시민가치에 신선한 힘을 불어넣었다고 볼 수 있음(p233). ⑦‘리더십’이란 사회적 현상이며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올린’이 개척적 정치이론가들은 인간의 통제가 가능한 이상적 질서에 의해 동기가 유발되며, 그 이상은 ‘사상’과 ‘행동’의 결합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이, ‘창조적 리더십’은 과학자들이 ‘종이 위의 혁명’을 뛰어넘어 아이디어를 검증받는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함. 그럴 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바꾸는 것에서 세상 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임(p234). ‘미래의 추종자들’은 창조적 틀이 직접 와 닿을 때만이 리더십에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틀’이 가지는 ‘진리성’은 “아하!”하고 심금을 울리는 잠재력에 달려있음(p235).
● 비평 및 토의
  ‘창조적 리더십’은 소외된 욕구의 상태에서 새롭게 공유된 영역으로 ‘추종자’를 이끌어 ‘성찰적 참여자’로 만든다고 함(p235). 이처럼, 필자는 ‘추종자’들이 ‘출구가 없는 세상’에서 ‘언젠가는 변혁할 수 있는 다만 제약된 상황’의 관점으로 ‘추종자’의 ‘시야’를 바꾸어 주는 중요성을 이론․현실 측면에서 균형있게 다루고 있음. 우리 사회 닫힌 인식을 열어줄 ‘창조적 리더십’의 모습은?

역사를바꾸는리더십(제임스맥그리거번스)_24하우스(이현재)_10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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