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제11강)

presentlee 2024. 3. 9. 23:34

https://youtube.com/watch?v=1aloMBUXIFA&si=-DVm6Mn7jMr_4T9N

House Leadership School

□ 요약(11-1장 갈등과 리더십의 무장 : 갈등 개념을 둘러싼 갈등)
①‘위대한’ 또는 ‘위대한 대통령에 가깝다.’라고 평가받는 미국 대통령 중 ‘링컨’, ‘윌슨’, ‘프랭클린 루즈벨트’, ‘트루먼’ 네 명이 대통령은 전쟁이라는 가혹한 시련 속에서 그들의 리더십을 확증함.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미국-스페인 전쟁 중 쿠바에서 세운 공훈과 외교활동, 진보적 개혁 활동에서의 호전적인 웅변술로 자신의 리더십을 공고히 함. 반면, 베트남 전쟁에서 실패한 ‘존슨’(Lyndon Johnson)은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를 추진할 수 있는 그의 리더십 역량을 소실함(p259). ②힌두교 3대 경전 중 하나인 바가바드기타는 무사계급의 영적 완성인 정의의 전장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며, 이슬람교의 알라는 이교도와의 성전(jihad)에 참여한 전사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명령했음. 이처럼 갈등, 특히 비폭력적인 갈등에 대한 분석이 리더십의 결정적 차원을 밝히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데에 또 다른 역설이 존재함(p260). ③철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은 1)인간 일반과 어떤 특정한 사회가 합의보다 갈등적 행태에 따라 특정 지어지는 정도에 관한 것이며, 2)합의가 아닌 갈등이, 의도되고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리더십의 결정적 원천이 되는 정도에 관한 것에 대해서 의견이 갈라져왔음(p260). 고대 이래 사상가들은 첫 번째 문제에 전념하여 ‘헤리클레이토스’(Heracleitos)는 갈등이 세계 만물과 풀 수 없게 엮여 있다고 믿고, 200년 후인 기원전 3세기 중국 철학자 ‘한비자’는 전쟁을 사람들과 국가들의 조정자로 생각함. ‘플라톤’은 ‘대중의 광기’가 ‘아주 소수의 남은 자’인 ‘정의의 옹호자’를 위협했기 때문에 그리스 사회가 위험에 빠졌다고 보고, ‘화합’은 ‘소수의 남은 자’가 통치하는 이상적인 폴리스(polis) 안에서 시민들이 그들의 이해를 전체의 이해와 동일시 할 경우에만 이루어짐(p261). ④‘아리스토텔레스’는 오직 엘리트만이 합의와 통솔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위계급’들은 오로지 이기적으로 무엇인가를 움켜쥐려고만 하므로 “내분이 그들의 평상시 상태이다.”라고 하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구에 나타날 거대한 보수주의 전통의 창시자들이었음(p351).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을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물질과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한 격렬한 충동으로 인해 갈등에 시달리도록 타고난 존재라고 봄.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은 본성상 합의적이지만 또한 동시에 공공선(common good)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본성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함. 하지만 그는 인간 이성의 힘이 확대되면 갈등은 감소할 것이라고 낙관함(p261). ⑤‘홉스’와 ‘마키아벨리’는 인간 본성에 대해 비관적이었으나 갈등의 미덕을 이해했음. ‘홉스’는 인간이 타고난 이기심에 의한 갈등이 합의를 위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인간은 ‘만민의 만민에 대한 투쟁’상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절대적 주권자에 의해서 강제되는 절대명령을 수반하는 국가를 구성하는데에 ‘서로 의견이 일치’될 것이라고 함. ‘마키아벨리’는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하여 지도자들이 사회에 만연된 갈등을 이용하고 조정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함(p262). 18세기말 경제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은 인간 본성과 사회 변화의 핵심에서 갈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찾아내었는데, ‘맬서스’는 인구증가에 따라 생존을 위한 투쟁이 가속된다고 생각하였으며,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의 경쟁적인 이기심 추구에서 자신의 경제발전이론을 전개함. ‘다윈’은 생존과 성장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으로 진화를 정의하였음. 인간의 진화 초기에 사회 권력이 공격적인 사람들의 수중에 들어가자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구조를 결정지음(p262). ⑥사회학자들이 변화와 갈등의 창조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 인간사회의 투쟁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였는데,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 ‘루트비히 굼플로비치’(Ludwig Gumplowicz)는 사회 집단 간의 투쟁이 사회적․문화적 진화를 추진한다고 보았으며,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파레토’(Vifredo Pareto)는 모든 역사란 새로운 엘리트가 구시대 엘리트를 몰아내면서, 혁명적 폭력의 돌발이 초래한 단절로 점철된 엘리트들간의 패권을 위한 끝없는 투쟁이라고 봄. 미국에서의 사회학의 입장에서 ‘매디슨’은 자유주의 발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새로운 공화국 내의 수많은 파벌들의 의견을 반영한 헌법상의 견제와 균형에 두었으며, ‘섬너’(William Graham Sumner)는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영향을 받아, ‘진보’에 대한 이론을 다원주의 생존경쟁, 즉 자신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각 개인의 노력이 초래하는 경쟁, 적대, 상호배척에 바탕을 둠. ‘워드’(Lester Ward)는 적대적인 사회세력 간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격렬한 투쟁이 뛰어난 사회적 능력과 상위 문명을 향한 전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함(263). ⑦ ‘파슨스’(Talcott Parsons)는 합의적 접근법을 사회에 대담하게 적용시켰는데, ‘사회적 행동의 구조’(The Structure of Social Action)와 ‘사회체계’(The Social System)에서, 그는 국가 또는 공동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거대한 균형의 힘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갈등의 근원인 일탈 경향이 어떻게 저지되고 체계가 오래된 균형상태로 어떻게 복원되는지 자세히 검토함. 그는 붕괴와 역기능을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으로 치부하였으며, ‘합의’와 ‘안정’을 강조하는 사회학자들이 등장할 여건을 만듬(p263). ⑧‘합의 패러다임’은 새로운 갈등이론가들의 등장을 초래했는데, 콜롬비아대 사회학자 ‘밀스’(C. Wright Mills)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균형의 시기가 아닌 “위협받는 대중과 흥분한 군중, 군중과 정치적․사회적 운동”의 시기로, 변화의 동력으로 인식하며, 그는 ‘파슨스학파’의 ‘마술과 같은 갈등의 배제’, ‘불가사의한 조화의 성취’로는 역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즉 ‘역사적 사건의 기제와 과정’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기술할 수 없다고 비난함(p264). 투쟁이 만연했던 1960년대 수많은 사람이 활동적인 논쟁가인 ‘밀스’를 따르며, 그 추종자들은 대부분 균형이론을 특권과 압박, 무의미한 가치들, 그리고 사회적 정체에 대한 방어기제 즉 ‘권력 엘리트’ 최후의 보루로 인식하는 사람들임. ⑩‘파슨스’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는 “개인, 집단, 사회생활에서 독창성, 혁신, 발전 등은 모두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 개인의 내부의 감정과 감정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의 작용에 기인한다.”라고 주장하며, 모든 사회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어떤 사람들의 억압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하여, ‘파슨스’를 합의이론학파의 리더이자 상징으로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는 이 하버드 학자가 ‘상궤를 벗어난 사람들’(deviant)에 대해 명백한 불쾌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춤(p265). ‘다렌도르프’는 그들을 ‘유토피아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자, 이론의 ‘정연함’에 대한 위협, 심지어 희생양, 바람직하지 않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악랄한 아웃사이더로 특징지우며, 어떤 경우 그들은 사회적 통제기제를 통해 다루어진다고 함.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거부는 ‘파슨스 학파’의 보수적인 경향과 자기 만족을 반영하며, ‘다렌도르프’는 수많은 사회학자들이 폐쇄적인 ‘확실성의 세계’로 인해 “단순한 호기심의 충동, 체험 속의 수수께끼를 풀어보고자 하는 욕망,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고 함. ‘갈등을 배제하는 것’이 바로 ‘비정상적인 것’이며, 사회적 갈등이 변화를 가져오는 ‘위대한 창조적인 힘’임. ‘변화’는 ‘다렌도르프’의 최종점임.
● 비평 
  필자는 ‘갈등’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갈등’을 정의해오거나 ‘갈등’을 옹호해 온 이론들을 다루고, 이와 반대로 ‘합의’를 주장해 온 입장을 제시하며, 그에 대한 비판을 ‘다렌도르프’를 통해 다룸. 따라서, ‘갈등’이론적 측면이 강함.
● 토의
  ‘합의 이론’은 사회를 유기체적으로 보고 각 사회가 운영되기 위해, 사회의 묵시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임. 한편 ‘갈등 이론’은 애초에 사회에 ‘합의’란 존재하지 않으며 경쟁과 억압에 따른 ‘갈등’이 사회변화를 이끌어 사회를 더 낳은 방향으로 간다고 봄. 어떠한 이론이 적합한지? 제3의 대안이 있다면?


□ 요약(11-2장 갈등과 리더십의 무장:갈등의리더십-미국,페루,포르투갈)


①학자들 의견과는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등’을 믿지 않고 조화, 타협, 합의는 좋은 것이고, 갈등, 불화, 불일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함. 150년간 폭력적 갈등을 경험한 미국인들은 내전에서 더욱 치명적인 소형무기 개발, 초토화 전략, 무자비한 무조건 항복 등 대량 살상을 설계하였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계속 됨(p265). 지난 100년간 세계대전 등으로 최소 3천만명 가량의 군인들이 죽고, 1억 7천만명 가량의 민간인이 죽음.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갈등’은 단순히 ‘폭력을 수반하는 갈등’의 변형이 아니며, 이것은 다른 한쪽 즉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고 리더십을 고무하며, 역설적으로 사회 통합과 안정을 조성하는 강력한 힘임(p266). ②‘갈등’은 부족한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개인과 집단의 싸움에서 시작되며, 지위와 권력에 대한 욕규 등 사회적‧심리적 욕구로 이어지는데 ‘지위’와 ‘권력’도 희소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경제적‧정치적 행동으로 목적 실현이 불가능할 때 기꺼이 무력에 의존함(p266). 왜 우리는 비폭력을 강조하는가? ‘힘’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며, 물리적인 힘, 예측할 수 없는 군사행동, 우발적인 사건들로 소용돌이치는 세계로 우리 분석이 끌려들어가면 욕구 충족의 고정에 대한 이해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임(p266). ③‘비폭력적인 갈등’에서 보이는 무한대의 동기유발과 이에 따른 행동양식으로부터 ‘지속적인 행동양식’을 어떻게 이끌어내는가? 그들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리더십’이 어떻게 그들을 동원하고 있는지 고찰함으로 가능함. ‘리더십’은 이미 권력을 가지고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거나, 권력‧특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획득하려 할 때 그들을 위해 일어날 수도 있음(p266).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수가 부유한 사람들의 수보다 많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표를 더 많이 얻으리라 생각할 수 있으며 좌파 평등주의자들의 꿈이었으나, 극심한 빈곤상태가 아니고는 물질적 욕구가 인간의 동기를 전적으로 지배하지 못함. 즉 성, 민족적 기원, 종교, 지리, 연령, 인종 및 외국인 혐오증과 같은 비합리적인 것에 영향을 받음(p267). ④이런 모든 것이 지도자 지망자들이 갈등을 동원하는데 영향을 미치는데 만약 지도자들이 보수‧급진, 40세이하‧40세이상, 여자‧남자로 양분되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다면 간단해질 것이나 그것은 불가능함. 어떤 사회과학자들은 ‘대중사회’에서 그러한 단순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지만, ‘대중사회’는 구성원들이 지역공동체 등에 귀속되어 있지 않아 엘리트들의 노골적인 동원이 쉽게 동원될 수 있는 완전한 사회적 빈공간임. 즉 선동정치가, 광신자, 극단주의자의 손쉬운 먹잇감임(p267). 대중이론가들은 ‘바이마르공화국’이 비조직된 사회였고, 사람들은 소외되고 불안정하고 무규범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이 ‘히틀러’가 권력을 획득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밝혀냄. 하지만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독일’을 살펴보면 그 반대임이 드러나는데, 그 당시 독일은 정치, 사회, 경제 조직으로 이루어진 촘촘한 네트워크였으며, 1932년 나치가 승리한 하노버의 작은 마을에 스포츠클럽, 종교단체, 자선단체, 재향군인회 등 수십 개 조직이 있었음(p268). ⑤일반적으로 다원화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큰 뜻을 품은 지도자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유권자를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공식‧비공식 단체를 동원하며, 그 수뇌부를 상대하고, 게다가 상호작용하는 리더십의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구조가 만들어지면 지도자와 추종자가 바뀌기도 함. 민주사회에 안정성과 통일성을 가져다주는 것은 이 상호작용하고 ‘갈등하는’ 리더십의 구조인데, 안정과 통일성은 합의제적 사회에서 더 잘 조장되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 여론이 한쪽으로 수렴된다는 것은 수동성과 소외를 의미할 수 있음. 그 예가 20세기 옛 남부지역으로, 민주당은 백인 경제 엘리트를 위해 활동하고 흑인과 가난한 백인은 무시됨(p268). ⑥‘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를 비롯한 수백만명의 흑인지도자들이 나왔을 때 ‘억압적인 합의’가 ‘창조적인 갈등’으로 탈바꾼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비폭력주의를 고수하였는데 이것이 킹 목사 자신은 물론 수천 명씩 체포되는 원인이 되었고, 오랜 싸움 끝에 1964, 1965년 시민권법안과 투표법안이 통과됨. 그 당시는 불완전한 승리였지만 새로운 리더십 구조 및 흑인과 백인의 새로운 세력균형을 완성함(p269). 페루는 오직 도전적인 경제 엘리트와 군부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는 상황에서 ‘엘리아스 타구난’(Elias Tacunan)이 1930년대 초 원주민 마을을 조직화하고, 비폭력으로 변화가 가능함을 농부들에게 설득함. 군부가 그를 투옥하자 그는 이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1963년 그의 ‘선거인등록운동’은 ‘페르난도 벨라운데 데리’(Fernando Belaunde Terry)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데 도움을 줌. 그는 폭력적인 경향이 있는 좌익 조직의 유혹 사이에서도 민주적 절차를 신뢰하고 비폭력을 주장함(p270). ⑦영국의 노동당의 경우 1945년 총선에서 승리 후 인도 등 식민지 독립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리더십과 야당을 서로 경쟁시키는 민주적 절차를 식민지에 이식하려고 했음. 한편, 포르투칼은 식민지에 이 같은 양보를 하지 않았는데 갈등 역할 모델이 부재하였기 때문임. 1970년 포르투갈 ‘제국’ 포기 후 식민지 갈등 발생(p271).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갈등’이 허울 좋은 ‘합의’보다 사회 안정을 이루기에 더욱 적합하다는 역설을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탁월하게 제시하고 있음. 우리 사회 내에서 ‘합의’처럼 보이지만 소외된 곳은 없는지? 한편, ‘갈등’으로 극복할 방법은? 


□ 요약(11-3장 갈등과 리더십의 무장: 리더십의 힘)


①필자는 1960년대에 네명의 10대를 키웠는데 부모로서의 권위를 행사함과 동시에 아이들의 좋은 조언자이자 선생님이 되려고 하였으며, 이 작은 왕국을 통치할 합법적인 권위와 물리적 힘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가엽게도 권력적 상황을 잘못 계산하였다고 함. 문제는 아이들이 그들만의 특별한 욕구, 그들만의 희망과 기대, 그들만의 친구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데, 반항하는 시대에 아이들의 동기를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았으나, 필자가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다가갈수록 몇몇 문제에 관한 아이들의 견해에 공감하게 된 것임(p272). ②이같은 가족 간의 상호작용을 정치세계로 확장해보면, 통치자는 자신의 신민을 지배할 강압적인 힘을 가지고 있고 신민들에게는 통치자에 필적할만한 물질적 수단이 없으나, 통치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 즉 ‘동기’를 기지고 있으며, 사실 ‘동기’는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음(p272). ‘동기’는 갈등상황에서 ‘자원’이 되는데, 특히 비슷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을 때, 그 동기는 집단적인 동기부여로 탈바꿈하게 되며, ‘아렌트’(Hannah Arendt)가 썼듯이, “힘은 행동하는 능력이 얼마나 있느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어떻게 협력하여 행동할 수 있느냐에 따라 나온다.” ③항의, 행진, 보이콧, 동맹파업 등 이 모든 것이 집단효능감을 만들어내며, ‘동기’에 힘을 실어주는데, 이러한 행동의 배후에는 통치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기에 대해 반은한다는 측면이 있음. 통치자는 안전이나 자기 보존을 원하며 공정한 통치자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신민을 회유하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인정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동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동기’에 호소함(p273). ④‘케네스 볼딩’(Kenneth E. Boulding)의 말처럼 “힘은 그 힘에 의해 지배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그 힘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강력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됨. 물리적 힘보다 ‘동기’의 상호작용이 관계를 지배할수록 통치자는 지도자로, 신민은 권한을 부여받은 추종자 즉 시민으로 행동하게 됨(p273). 통치자와 신민, 지도자와 추종자 간의 다양한 권력관계는 역동적인 힘의 평행사변형을 그리며 그들은 제각기 ‘동기’를 가지고 있고 제각기 물리적 자원을 가지고 있음. 이러한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os)는 “인간 카이사르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 유배, 재산상실, 감금, 공민권 박탈을 두려워한다.”라고 하였음. 누구도 인간 카이사르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부, 호민관직, 법무관직, 집정관직을 사랑하며 이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통치자가 된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음(p273). ⑤1600년 후에 파스칼은 “권력은 인간이 갈망하는 것들을 소유한 데에서 나온다.”라고 하였으며, ‘버나드 배스’는 이러한 개념을 공식화하여 “가능한 보상을 분배하는 기회가 A에게 B를 지배할 권력을 주는 것은 B가 그러한 보상을 얻으려고 할 때, 즉 A가 분배할 수 있는 것이 B에게 보상이나 처벌이 되 때이다.”라고 함(p273). 결국 권력과 변혁적 가능성의 측면에서 이 세상에 인간의 욕구와 필요보다 더 풍요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상기하게 됨(p274). ⑥가장 ‘정상적인’ 권력관계는 동기유발과 ‘자원’ 간에 중대한 상호작용에 기초를 두지만, 때로는 그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다른 형태의 권력관계, 개인화된 권력관계를 형성함. 그 한쪽 극단은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 자존심이나 다른 동기에 얽매여 정신적‧물질적 강압에 의존하는 것이며, 다른 한쪽 극단은 추종자가 자신감이나 자존심을 상실 하여 힘을 행사하는 사람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임. ‘짐 존스’(Jim Jones)에 대한 추종자들의 자멸적인 헌신에서처럼 유사한 복종과 지배가 고도의 계산에 의하거나 심지어 대중적 기반을 전제로 전개될 수도 있음(p274). ⑦사랑의 멍에는 또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을 통해 힘을 행사하는 보다 광범위한 현상을 시사하는데, ‘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위협적인 문제에 대한 무언의 거부로써 행사될 수 있기 때문에 현직의 권력자들은 통제수단을 행사하지 않고도 권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임(p275). 예를 들면, 러시아의 ‘미하일 쿠투조프’(Mikhail Kutuzov)는 1812년 ‘물러서지 말고 싸우라’는 ‘차르’의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후퇴하여 프랑스 군을 매우 추운 러시아 중심부로 깊숙이 끌여들였다가 나폴레옹에게 모스크바를 내주고 ‘매서운 추위’로 인하여 프랑스군이 퇴각할 때 후퇴하는 프랑스 군을 기습하여 대규모 전투 없이 프랑스 군을 격파함(p275). 만약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 권력행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동기’를 형성할 수 있다면, 지도자와 추종자 간의 균형은 상실되고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 물질적 자원과 동기유발을 지배함. 그 과정에서 허위의 필요를 만들어낸다면 이것은 해가 될 것임(p275). ⑧‘힘’과 ‘리더십’에 관한 복합적인 개념들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개념들이 ‘힘’의 두가지 출처, 즉 자원과 연결된 ‘동기’에 대한 분석을 대신하지 않음(p275). ‘에픽테토스’는 이 점을 지적하였는데, 사람들은 카이사르를 사랑하기 때문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의 부와 지위를 사랑했고, 그것이 그를 ‘우리의 지배자’로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임. 그러나 그들의 여왕이나 권력자의 수중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전쟁보다 평화를, 서커스보다 빵을, 야비한 이기주의보다 욕구로부터 자유를, 지배보다 ‘리더십’을 좋아할 수 있음(p276). ⑨대영제국에 대항했던 간디의 독립운동, 미국 남부에서 백인의 억압에 대항했던 시민권 운동, 독재자 ‘마르코스’(Ferinand Marcos)에 대항했던 필리핀의 ‘민중의 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정책 타파, 동유럽에서의 전체주의 정권의 붕괴,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자원으로서의 동기유발이 가지는 ‘힘’을 입증해 주며, 그 힘이 보다 우세한 물질적 자원과 나름대로의 정통성으로 요새화되고 ‘형식적 요건을 갖추고 있는’ 힘과 대항하여 싸운 것임(p276). ‘저항적 동기’를 동원하고 활용하여 기존 권력에 대항하도록 만드는 도전 행위, 즉 상황을 변혁하는 행위는 ‘리더십’의 책무이며, 오직 ‘리더십’만이 리더십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고, 오직 권력만이 새로운 집단역량과 새로운 권력관계를 발전시켜 권력과 싸울수 있다고 하였음(크로지에와 프리드버그, Crozier & Friedberg). 카이사르가 지배하고 있는 자원 없이도 ‘저항적 리더십’은 추종자들이 가진 불만의 원인을 강조, 변혁적 가치에 호소, 변화의 청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상징적이고 무형적인 유인책’으로 추종자들의 ‘동기’를 유발시키는데 추종자들의 욕구와 동기에 가장 설득력 있게 호소하는 방법은 도덕적인 지도자였던 ‘간디’, ‘마틴 루터 킹’, ‘넬스 만델라’, ‘안드레이 사하로프’, ‘바츨라프 하벨’ 등와 같이 ‘도덕’에 호소하는 것임. 그들은 가치의 힘을 동원하여 그들의 사회를 변혁하였으며, 갈등의 지배자이다 희생자였음(p277)
● 비평
  필자는 ‘동기’를 ‘힘’의 주요한 원천으로 생각하며,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물질적 가치와 같은 가시적인 것도 있지만, ‘저항적 동기’와 같이 사람들의 ‘도덕’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으며 후자를 통하여 변혁을 이끌어 낸 사람이 ‘지도자’라는 것에 대하여서 역사상 많은 인물들을 통해 탁월하게 논증해내고 있음
● 토론
  우리 사회 가운데 ‘저항적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나 사건들이 있는지? 이러한 ‘저항적 동기’에 대하여 ‘지도자’로서 ‘갈등의 리더십’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역사를바꾸는리더십(제임스맥그리거번스)_24하우스(이현재)_11장.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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