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kiFhm9z97IQ?si=5w-4j8zkLxwr008N
House Leadership School
리더십강의(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제4부 거래적 리더십
□ 요약(제12-9장 정당 리더십-프랑스, 호주 정당의 리더십 구조)
①급진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되어 일부 참신하고 젊은 ‘리더’들로 어필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한 번 오랜 약점들-지도부 분열, 무정형적인 노선, 확고하지 못한 당기(黨紀), 과도한 타협주의 등-이 노출됨으로 드골주의자들에게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음(p543). 프랑스 급진당과 아주 대조적인 위치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세력과 노선을 확립했던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인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동질적인 사회 내에서 전투적인 노동운동의 맥을 이은 오스트레일리아 노동운동은 초기에 전체 당조직 ‘리더’들과 입법부 내-특히 국회 내-‘리더’들간의 대립이라는 전형적인 문제에 봉착했음(p544). ②‘원내 리더’들이 계속해서 노동당 노선에 저항, 탈당하여 자유당이나 그 외 반대당과 연대하던 오랜 갈등의 기간을 거쳐, 당은 결국 승리했고, ‘원내 리더’들에게 엄격한 통제를 가하는 정책을 확고하게 수립함(p544).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자들은 필히 각지역 노동당에 속해 있어야만 하며, 그들의 입후보는 정부와 중앙당의 ‘리더’들에게 승인받아야 하며 만일 지명에 실패하면, 그들을 누르고 입후보자가 된 노동당 후보들을 지원해야 함. 지명된 입후보는 필히 ‘정당’의 정강정책에 입각해 선거를 치러야 하며, 당선되고 나서는 원내 노동당의 일원이 되어 코커스에서 회합, 정당노선에 입각해 제반문제를 논의하고, 다수결에 의하여 자신의 입장을 확정해야 힜음(p544). ③놀랍게도, 오스트레일리아 노동운동은 이 정당이 궁극적으로 집권할 것이며 그 때 사회를 변혁할 수 있을 조직과 이론적 기반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근거하여, 일시적인 정치적 패배를 감수하고라도 원칙과 단결을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수차 표명해왔음(p544).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강령의 핵심은 정부 내의 이 정당 ‘리더’들은-당내 ‘리더’들과 마찬가지로-노동운동의 봉사자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이 정당의 의원선거 입후보자들은 노동당이 길고 격한 논쟁 끝에 채택한 서약서에 서명하도록 되어 있는데, “본인은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뉴사우스웨일스 지부의 선출 또는 임명된 입후보자들 어느 누구에게도 반대하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본인은 또한 원내에 (재)진입할 경우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노동운동의 원리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을, 그리고 그러한 모든 문제들 특히 정권의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대해 코커스에서 다수결로 결정된 바대로 투표할 것을 서약합니다.”(p545). ④이 서약의 강요는 입후보자의 서약 준수의지 이상의 것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는데, 입후보자들과 국회의원들에게 당의 노선을 준수케 하는 것은 정당의 역량임(p545). 또한 궁극적으로 노동운동이 그 구성원들 사이의 지역적‧이념적‧종교적 차이들을 극복하고 또 일단 의회에서 힘과 특권을 얻은 사람은 꼭 배반한다는 고질적 노동운동‧사회주의계의 우려를 불식하는 것도 정당의 역량에 달린 문제인데, “우정은 너무 뜨겁고, 위스키는 너무 독하고, 소파는 너무 푹신하지. 내가 있을 곳은 강줄기가 갈라지는 곳, 양털 깎는 사람들 사이라네.”(p545). ⑤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들 중에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의 ‘철칙’에 버금가는 강령을 가진 정당은 거의 없을 것인데, 그렇지만 당의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으며 여러 자유당, 노동당, 사회주의 정당들에게서 다양하게 나타나 왔음(p545). 벨기에 기독교사회당과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은 당무위원에서 정부 내 ‘리더’들(각료 등)은 배제함. 여러 사회주의 정당들은 자당의 세력이 원내에서 비사회주의 정당측과 합작을 제한하려고 하였으며, 벨기에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의회 의원이기도 한 ‘리더’들의 당내 권력을 제한하려고 해왔음(p545). ⑥이 같은 조치들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단지 당의 권력구도 중 일부와만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결정은 ‘정당 리더’들보다는 정부 리더들에 의해 더 많이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음(p545). 많은 좌익 그리고 중도 좌익 원내 교섭단체들은 다당제하에서 상당한 응집성을 보였으며(프랑스 정당들은 이런 점에서 예외일 것임), 그러나 이러한 소수당들간의 응집은 정당의 당규와 조직보다는 대중정당 지향이라는 기본 노선의 일치, 그리고 반대당과의 대립 및 협력의 필요성에서 연유하는 것임. ‘엡스타인’(Ebstein)은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는데, “모든 의회주의 정부는 행정권력을 성공적으로 안정시키고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 정당들의 수가 어찌됐든 정당들간의 응집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물론 많은 정당들은 그러한 응집성을 보여주지 못하며,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동당과의 단결과 질서를 흉내낼 수 있는 정당도 별로 없음(p546).
● 비평
필자는 프랑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정당(특히 노동당)의 정치적 상황 및 그 속에서 나타나는 정당 리더십과 정부 리더십 간의 역할을 자세히 살핌으로 정당 리더십의 역할과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 토의
우리 현실 속에서 “의회주의” 중심의 정치 현실의 장‧단점은 무엇이며, 의회주의의 한계 극복을 위해 ‘정부 리더십’ 및 ‘정당 리더십’이 취할 수 있는 방법과 해결책이 있다면 무엇인지? 또한 우리 정치 가운데 발견되는 모습은?
□ 요약(제12-10장 정당 리더십 : 미국의 정당 리더십의 구조)
①우리는 결국 ‘정부 리더’들(의회나 내각에서 선고 또는 임명에 의해 공직을 보유하고 있는 당 소속의 리더들)이 정부에서는 물론 당내에서조차도 ‘정당 리더’들(당조직에 의해 선출된 리더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마련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임(p546). 이러한 결론은 서구식 의회 민주주의에 있어서 대부분 타당한데, 이 국가들 대부분에서 정부 내 ‘정당 리더’들의 영향력은 미국 정부 내 ‘리더’들이 ‘정당 리더’들에게 갖는 영향력에 비하면 별 게 아니며, 이 차이는 당조직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님(p546). ②다른 서구 민주주의 정당들처럼, 미국 정당들도 잘 짜여진 수직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정당은 수천의 동(洞), 구(區), 읍(邑), 시(市) 위원회들에 기반을 두고 있고, 주(州), 군(郡) 위원회에서 다른 나라 정당들의 집행위원회와 비슷한 중앙위원회가 이루어짐(p546). 그리고 국가권력의 궁극적 원천이 되는 대통령 선거 입후보자 지명대회는 4년마다 한 번씩 개최된다는 점만 제외하면 대부분 다른 정당들의 전당대회와 비슷한데, 사실 이러한 관측은 대부분 잘못된 것임(p546). 미국 정치구조에서의 실제 권력(공식적 권위가 아니라) 배분에 대한 보다 상세한 분석들은-몇몇 예외를 제하고는-유권자들을 설득, 조직화, 활성화할 수 있는 힘이 당조직 ‘리더’들보다는 정부 공직 소유자들 또는 공직 후보자들 주위에 형성되는 매우 사적인 집단에 있음을 보여줌(p547). ③이 불균형은 여러 유럽 옵서버들에게-심지어 미국인들에게도-비교적 늦게 포착되는데, 그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의 정당체계는 정당 보스가 입후보자들을 통제하고, 코커스가 입법부를 통제하며, 당이 시장, 군수, 그리고 이따금은 대통령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치구조의 전형으로 믿어져왔기 때문임(p547). 19세기 후반에는 사실 그러한 믿음의 타당성이 충분했는데, 각 시 지구당의 위원ᄌᆞᆼ들은 실제적으로 일부 시장과 시의원을 임면할 수 있었으며, 재계의 거물들은 일부 군수들, 상원의원들, 하급 공직자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또 일부 대통령들은 국사(國事)에서 극히 중차대한 문제가 아닌 후원문제가 기재되는 경우 ‘정당 리더’들과 협의하곤 했음(p547). ④그러나 당시 유럽의 정치 평론가들이 미국의 ‘정당 리더’가 갖는 영향력에 대해 온갖 환상적인 묘사를 하고 또 유럽 정당 정치인들이 더욱 엄격한 당내 질서를 수립하는 것은 곳 ‘태머니홀식(式) 리더 정치’를 벨기에나 네덜란드 또는 스칸디나비아 정당들에 도입하는 것이 된다고 경고하였어도, 미국에서 정당과 권력의 임무는 쇠퇴해가고 있었음(p547). 제퍼슨주의적, 잭슨주의적, 그리고 남북전쟁 이전의 리퍼블리컨 운동에도 불구하고, 정당들은 대통령 또는 몇몇 전국적으로 명망있는 상원의원들의 중앙집권적 영향력 밖에서 전국적 조직구축, 노선확립, 당의 단결 등을 이루어낼 수 없었으며, 미국 정당의 조직화와 중앙화 결여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음(p547). ⑤노동계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것과 같은 노력을 어렵게 만든 개인주의적 성향, 정부의 여러 수준에 권력을 분점케 하고 정당이 정부기구를 독점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방지한 연방주의 체제, 지역‧종교‧인종의 다양성이 커 정당체제 핵심부의 단일성과 강력한 국민성의 구현이 어렵다는 점, 대통령 성거 입후보자 선출에 정당 예비선거를 도입, 그로써 입후보자 선임권을 당조직에서 보다 다수이고 분산적이며, 정당 지향이 적은 투표자들에게로 돌려 균형을 노린 점, 주로 20세기 초엽에 이루어진 ‘롱 밸럿’(long ballot)에 의해 정부의 중간‧하위직 상당수를 선출직으로 만듦으로써 정당조직에서 모든 선거에 후보자를 낼 수 없게끔(그리하여 해당 공직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끔) 만든 개혁 등에 원인이 있음(p548). ⑥그 외에 이 모든 요인들의 결과, 정당에서 ‘독립적’이고 ‘비당파적’이며 ‘자발적’참여를 행하는 여성유권자연맹이나 보다 최근의 ‘커먼 코즈’(Common Cause 1970년 창립된 미국의 시민운동단체, ‘가드너’(J. W. Gardener)에 의해 회계사, 변호사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 선거운동자금 공개, 워터게이트 사건 규명 촉구, 의회법안 기초 공개 등 여러 가지 정치개혁을 촉구했음) 같은 조직들이 정당과는 별도로(또는 정당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보조적으로) 활동하면서 더욱 세력을 얻어가고 있는 점에도 기인함(p548). ⑦그 결과는 미국 정치가 활발한 정당정치의 외형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공직을 얻고 그것을 유지함에 있어, 그들이 당 노선에 입각하여 당내외에 조직한 사조직들의 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됨(p548). 당의 공식 조직보다는 후보자 개인이 모금하고 소비하는 정치자금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선거는 보통 당의 집행위원들보다는 후보자의 참모진들에 의해 치러지며, 일단 지명된 후보자들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당조직을 최대한 이용하기도 하고, 그것을 일체 무시하기도 함. 당선되고 나서는 당이 그들에게 갖는 것보다 훨씬 많은 영향력을 당에서 갖게 되며(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원하는 만큼), 연방정부는 정당보다 후보자들에게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함(p548). ⑧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정당의 힘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며, 대부분의 투표권자들은 정도야 어찌됐든 스스로를 공화당 아니면 민주당 중 한쪽으로 분류함(p548). 그러므로 입후보자들은 대부분의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로 후보 선출과정을 거쳐야 선거 당일의 다수표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임. 그러나 당조직은 보통 중립적 자세를 견지하므로 당의 지명을 얻어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따라서 그 같은 압도적 지명은 당조직보다 사조직에 기댈 수밖에 없음. 선거전에서 정당은 때로-승리 전망이 어두울 때-지명된 후보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포기하고, 보다 당에 직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당직 ‘리더십’에 보다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지역선거 후보자들에게 시간과 자금을 투입하는 경우가 있음(p549). ⑨그러므로 일단 당선되고 나면,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정책적 입장을 넘어서까지 정당의 통제에 순응할 필요가 없으며, 정부직 보유자가 당의 노선을 무시하고, 자신의 당선에 주요 기반이 되었던(추정컨대) 정당 지지층을 외면하거나 아니면 기대했던 만큼의 후원을 행하지 않았을 때라도, 그의 재선시 당측에서 최종 선거전 국면에서 해당 공직자의 사조직이 당의 공식 조직에 앞선다는 등의 단순한 이유 때문에 재지명을 거부하는 경우는 별로 없음(p549). 미국 정치체계 내에서 정부 내 ‘리더’들이 ‘정당 리더’들에 대해 갖는 우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대통령과 당총재 사이의 관계였는데, 일단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그의 소속 당과의 관계가 어떠했든-그는 현직 당총재의 사임을 요구하고 자신이 내세우는 인물로 대체할 수 있는 무제한의 권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 전통이었음(p549). ⑩100년 또는 150년의 역사에 고유의 조직과 전통을 지닌 대규모 국민 정당이 새로운 당선자에게 이처럼 휘둘리는 것에 거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대통령 후보자는 전국적으로 높은 명망을 지닌 인물을 당 의장직에 지명하는 일도 드물고,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당 의장을 하나의 보좌역쯤으로 다루며, 중앙 집행위원회는 당의 영도와 정치적 발휘의 원천이라기보다는 귀찮은 존재로 치부해버릴 가능성도 많음(p549). ‘닉슨’(Richard Nixon)과 공산당 사이의 관계가 이 같은 불균형을 잘 나타내주는데, ‘닉슨’은 1960년 그리고 1968년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 위해 이 당의 모든 분야에서 수년간 공을 들여왔으며, 그러나 일단 후보로 선출되고 나자, 그는 1968년 선거를 자신의 사조직으로만 치렀으며, 변변찮은 인물을 당 의장에 앉혔고, 1972년의 재선운동에서 공화당을 뒤로 하고 불법적 스캔들을 일으키는 사조직에 의존했던 부적절한 관계를 시사해주며 양대 정당의 중앙기구가 과거 ‘강력한’ 대통령 등에 얼마나 종속되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음(p550). ⑪공화당 당직 ‘리더’들은 워터게이트를 저지하기에 허약했는데, 이처럼 정부 내 ‘리더’들이 ‘당직 리더’들에게 갖던 우위는 ‘정부 보스’ 출현으로 나타나진 않았는데 ‘정부 리더’들은 스스로 정치적 보스가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을 알게 되었음(p55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견제와 균형, 연방주의, 예비선거, 롱 밸럿, 국민여론 등 권력 분담적 장치가 새로운 권력구조보다 정치권력 분산, 분열을 가져왔는데, 한가지 예외는 대통령직임을 통찰력있게 제시하고 있음. 우리 대통령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 요약(제12-11장 정당 리더십 : 일당체제의 리더십)
①20세기 초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당들이 조직원의 규모와 득표력에서 성장을 보임에 따라, ‘부르주아’ 정당들의 당의장들이 자당의 후보자들을 원내로 진출시키고 또 그들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느라 부심하는 동안 ‘좌익 리더’들은 냉소적인 즐거움에 잠겨있었음(p551). 그 당시 ‘좌익 리더’들은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계속해서 ‘리더십’과 권력의 난문제와 딜레마에 직면해 왔었는데, 그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정치꾼들이 서로 이권과 직책을 교환하는 거래적‧의회정치적 정치를 배격하고 기본 환경의 변혁전략을 채택함(p551). ②그러나, 변혁은 단순한 의지나 위압으로 달성 가능한 것이 아니며 대중의 잔인성, 분파주의, 단견, 보수성향을 극복하고, 간부들을 모집‧교육하며,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규율하고, 그 무엇보다도 의회 내에서 ‘리더’가 되고 그리하여 기회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쉬워져 적에게 사상을 팔아먹을 위험이 있는 조직원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정치조직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임(p551). 그러면 그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해 레닌과 여타 많은 혁명가들의 대답은 대중의 전위역할을 할 소규모의 단결‧의식화‧이념화‧규율화된 정당이었으며, 1900년 12월 레닌은 ‘이스크라(Iskra)’지의 창간호에 다음과 같이 기고하였는데, “우리가 강력하게 조직화된 정당을 확보하면 하나의 파업이 장차 봉기로 확대될 수 있고, 정권을 타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p551). ③수년간 그는 혁명보다는 사회개혁을 도출하려는 광범위한 민주화운동을 원했던 사회민주당 조직원들과 투쟁을 벌였고, 그 정당이 오래전부터 분열과 사기저하에 시달리고 있었던 반면,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혁명파는 호기를 맞고 있었음(p552). 1917년 집권하기 몇 개월 전, ‘레닌’은 아직도 사회민주당 ‘리더’들을 비난하면서 그들이 대중을 외면하고 “대중의 독자적인 정치생활을 규제하고, 아래로부터 국가를 민주적으로 재건하는 과정에 대한 대중의 직접적인 참여를 봉쇄하는……의회주의 부르주아 공화국에 경도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과거로부터 철저히 단절해야 할 필요를 가장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레닌’은 새로운 소비에트 노동자들과 병사들의 대표자들을 위한 기구로서 사회민주당의 간판을 내리고 ‘공산당’의 이름을 갖는 것을 희망했음(p552). ④‘레닌’이 만일 ‘사회민주’라는 단어 대신 ‘당’이라는 단어를 제거했더라면 그는 아마-신생 공산당의 이익은 어찌되었을지 몰라도-개념적 분명성에는 확실히 보탬을 주었을 것인데, 그가 새로운 러시아에서 힘을 얻도록 한 것은 ‘정당’이라고 불리기는 했어도 1)당비 납부 당원제 2)고위 당직의 평당원 투표제 3)당직 ‘리더’들과 정부 내 ‘리더’들간의 조심스러운 권력분립(실제로는 꼭 그것이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등 서구 정당들의 기본적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음으로써 실제적으로는 서구 정당과 별 관계가 없는 것이었음(p552). 새로운 공산당은 강령, 직책, 전략 그리고 ‘리더십’의 구현 등 보다 개념적인 면에서 적실성이 낮았는데, 그것은 평당원에게도, 정부 내 당 소속 ‘리더’들에게도 권력이 주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중앙당의 위원회나 평의회에도 실권이 없으며, 단지 모든 부문에 침투해 활동하며, 대규모 잿빛 관료제 내의 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인물들에게만 있는 것이며, 이는 정당의 가면을 쓴 지배장치임(p552). ⑤러시아의 공산당은 이 같은 기구가 작동하는 무대가 되었는데, 이 기구는 외형적으로는 전통적인 정당과 흡사하였는데, 여러 이유로 인해 확장과 수축(또는 숙청)을 거듭한 후, 러시아 체제 성립 제50주년 기념 시점에서, 공산당은 1200만의 당원과 준당원을 거느리게 됨(p553). 이 당원들은 인원 몇 안되는 것에서 수백에 이르는 조직단위들, 또 지구나 선거구 같은 지역단위나 관청, 농장, 공장 같은 경제단위별로 구분되어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 지방조직들은 시나 구 평의회에 대표를 파견하고, 그 평의회는 또 지구 평의회에 대표를 파견하며, 이어 공화국 당평의회, 중앙당 평의회로 대표를 파견함. 그러나 그 모든 수준, 모든 부문의 당활동은 정치국, 위원회 또는 일단의 ‘리더’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그들은 전체 기구의 통제기제가 되었음(p553). ⑥이 같은 ‘민주집중제’라는 올가미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의 모든 선전기관들은 공산당 ‘리더십’ 구조가 어떠한 것인지 드러내주고 있었음(p553). 1961년도 제22차 당평의회에서 채택된 개정 문건에 따르면, “러시아 공산당은…러시아 민중의 검증되고 확인된 투쟁전위로서, 자발적 기반에서, 보다 발전하고, 정치의식화된 러시아 노동계급, 집단농장 농민들, 그리고 인텔리겐치아를 하나로 통합하며, 당은 러시아 사회의 선도‧ 지도적 세력이다. 러시아 공산당은 정당활동에 대한 레닌주의적 기준-집단 ‘리더십’, 당내 민주주의 체계적 발전, 공산당원의 활동과 우선권, 비판과 자아비판-에 확고부동한 근거를 두고 활동한다.” 모든 분파주의와 도당적 활동은 배제되었음(p553). ⑦이렇게 ‘리더십’ 기구가 정당화되었다면, 그 기구 내에서 권력의 소재는 어디에 있는가? ‘슈만’(Schuman)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는데, “소수 권력자 집단이 실체와 허상을 뒤섞어놓고, 결국 무시되는 ‘원칙’을 엄중히 천명하며, 인간의 실제에서 다양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을 획일적으로 문서에 규정하고, 숨가쁜 속도로 당과 정부의 모든 기관들을 개조‧ 개편‧폐지‧혁신하는데서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훨씬 앞서 있다.”(p553). 일반적으로, 크렘린이 그어놓은 경계 내에서 대중, 당의 조직원들,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집단, 이념집단, 관료조직(군부를 비롯한), 당간부들의 욕구‧필요‧기대성향들을 인식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욕구와 필요에 맞도록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또는 그럴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공산당 내에서 ‘정치 리더십’이 행사되며, 어떻게 보면 ‘리더십’의 분산이 느껴질 수도 있음(p554). ⑧고도로 중앙집권화되고 조직화‧관료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자원동원능력은 핵심부처 ‘리더’들, 선전기관들, 붉은 군대, 비밀 경찰, 대규모 공화국들의 당간부들 그리고 중앙당의 핵심부처 근무자들과 연계를 맺고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연관됨(p554). 실력 행사, 위협, 보상 등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은 국가적 필요, 여론의 향배, 대의관계, 그리고 당기구 내의 권력관계 등에 의해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이런 점에 관해 ‘리더십’은 거래적이지만, 권력과 ‘리더십’은 놀랄 만한 수준까지 당서기장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또 당 최고간부회의의 지배파벌에, 그리고-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거의 드러나지 않는 당관료들에게 집중되어 있음(p544). ⑨일반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바르군’(Frederick Barghoon)은 크렘린의 기존 권력구도를 묘파하였는데, 바르군에 따르면, 최고 지도자들은 “균질적인 핵심보다는 강력한 개인들의 집합들로 이루어지며, 이 정치체제 내에서 초기에 이루어진 정치투쟁들에 미루어, 최고위층의 두드러진 파워집단들의 기능 분화선을 가로지르며 존재하는데, 그것은 유력한 정당 ‘리더’들이 단지 좁은 의미의 당 조직 내에서 동료와 동맹자를 찾을 뿐 아니라 경제부처, 군부, 비밀경찰 중에서도 찾기 때문임(p554). 잔혹한 공포의 위력은 항상 다양한 지휘선 체계가 당 중앙에 대립하는 일이 없도록 차단한다. 그러나 그 문제가 궁극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된 일은 없다.”(p554) ⑩체제 내에서는 어느 정도 유동성이 있을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레닌’의 정당에서 ‘스탈린’의 철권통치와 무자비한 숙청으로의 전환, 그리고 후르시초프와 그를 이은 후계자들의 훨씬 유연한 중앙집권체제로의 변화 등에서 우리는 러시아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리더십’ 경향을 볼 수 있는 것인데, 통치기구의 권력은 여전히 거의 불가침 상태로 남아 있음(p555). 러시아의 일당독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위성국가들에서 나타난 지배체제의 원형을 제공했는데, 그들은 전시에 집권 기회를 얻었지만 볼셰비키와는 달리, 이들은 외부세력 즉, 러시아의 군사개입으로 인해 권력을 획득(또는 그것을 유지) 했음(p555).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러시아 볼셰비키를 통해 일당 체제의 정당 리더십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음. 공산주의 일당 리더십의 한계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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