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6-17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4(미탄광파업의 해결)

presentlee 2026. 4. 26. 01:35

https://youtu.be/qhATjL0vdGc?si=Y-Fh3I3YxAo36H4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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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4(26-열입곱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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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제3-2부 리더와 시대 9. 시어도어 루스벨트_미탄광파업의 개입)


① 미 탄광파업이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루스벨트’는 파업의 원인 조사 및 행정부와 입법부에 적절한 해법을 권고하는 조사 위원회(Blue Ribbon Commission)의 설립을 준비했는데, 개입의 근거를 찾아내던 ‘루스벨트’는 합중국의 상태에 대해 의회에 보고할 권한을 헌법에서 위임받았다고 주장했으며, 대통령을 대신해 그 역할을 맡아줄 위원회에 무게감을 더하려면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게 ‘루스벨트’의 생각이었음(p463). 따라서 ‘스티브 그로버 클리블랜드’(Stephen Grover Cleveland) 전 대통령에게 “이 나라에 대통령님만큼 조사 위원회에 무게감을 실어줄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고, 그렇게 제안된 위원회에는 조사 결과를 집행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권한보다 위원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인데, 하지만 조사위원회에 대한 기대는 ‘라이트’의 조사를 단순히 되풀이하는 수준을 넘어섰음(p463). ② 위원회는 그 자체로 다가오는 중간선거와 상관없이 초당적인 지지를 뜻했고, ‘루스벨트’가 어떻게든 파업을 종식시키기 위해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 계획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여론이라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을 구축하는 수단을 제공할 터였음(p463). [공격할 필요가 없을 때는 공격하지 마라. 하지만 공격할 때는 강하게 공격하라] 어느덧 10월 중순이었고, 조사위원회가 소집되어 조사를 진행하고 완료한 후에 결과를 발표하려면 수주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때쯤이면 너무 늦은 것일 수 있었고, 파업이 끝나더라도 석탄이 채굴되고 공급을 시작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걸 ‘루스벨트’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긴급히 필요한 조치는 주나 일의 단위가 아니라 시간의 단위로 계산돼야 했음(p464). ③‘루스벨트’는 “잘못이 어디에 있든 간에 현재의 관리 시스템은 실패했다. 현재의 국가 상황을 고려하면 실패를 지체없이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루스벨트’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 전략은 최고의 장군이 지휘하는 1만 명의 정규군을 탄전에 투입하는 것이었으며, 정규군이 경영자로부터 탄광을 몰수하여 노사 양측이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 정부를 대신한 관재인으로서 탄광을 운영하는 것이었음(p464). ‘루스벨트’는 퇴역 장군 존 M. 스코필드(John McAllister Scofield)에게 그 엄청난 임무를 맡겼는데, ‘스코필드’ 장군은 “분별력과 판단력과 행동력”을 겸비해 그 임무를 맡기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루스벨트’는 스코필드에게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어떤 세력의 눈치도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으며, 또 “경영자들이 소송을 제기해 그에게 영장을 보내면, ‘링컨’의 휘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영장을 대통령에게 보내기로 했다.”(p464). ④파업자들이 석탄 캐는 걸 방해하면, 연방군이 힘을 최대한 행사하여 파업자들을 견제할 권한도 ‘스코필드’에게 부여됐는데, 요컨대 연방군에게는 광부들 사이에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동시에 경영자들에게는 재산권을 박탈하는 임무가 부여된 것임(p464). 그런 전fir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연락망을 구축하려고 ‘루스벨트’는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상원의원 ‘매슈 퀘이’를 임시 백악관으로 불렀는데, ‘루스벨트’는 재산권의 압류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히지 않고, ‘퀘이’에게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스톤’과 상의해 대통령이 암호로 지시할 때마다 주지사가 연방군의 파견을 공식적으로 요청함으로써 대통령이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질서 유지-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함(p465). ⑤연락의 고리는 대통령이 보내는 평범한 내용-예컨대 “요청을 위한 시간이 왔다”-의 전보로 시작될 예정이었으며, 또 ‘루스벨트’는 일단 연방군이 배치되면 그 후에 일어난 모든 사태는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확약했는데, 훗날, ‘퀘이’ 상원의원은 실제 뒤이은 행동으로 자신을 성가시게 했다면 기꺼이 탄핵 절차를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했음(p465). 여하튼 이 대담한 계획은 ‘루스벨트’가 좌우명으로 삼던 격언, “공격할 필요가 없을 때는 공격하지 마라. 하지만 공격할 때는 강하게 공격하라!”를 실천한 사례였는데, 하지만 ‘루스벨트’가 허세를 부린 것일까? 요즘에는 ‘루스벨트’가 그 급진적인 계획을 실제로 시행할 의도는 없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역사학자가 적지 않음(p465). ⑥이미 시행되던 훨씬 덜 파괴적인 대책들도 “권력의 남용”이라는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석탄을 실제로 어떻게 채굴하겠다는 명확한 계획도 없었는데, 과연 정부가 관재인 역할을 하면 광부들이 복귀할까?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비조합원 광부들을 동원해야 할까? 석탄을 운반하는 철도회사 소유주들이 재산을 압류당하면, 석탄이 동부해안 연안까지 어떻게 운반될 수 있을까? 석탄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매커니즘을 어떻게 조절할지에 대해 아무런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음(p465). 하지만 ‘루스벨트’의 기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결코 허세는 아니었을 것이며, ‘루스벨트’는 파업 내내 신중하게 처신하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가 보호하겠다고 맹세한 국민이 중대한 위험에 빠질 정도로 당시 상황은 악화된 상태였음(p466). ⑦‘루스벨트’는 국민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연방정부의 무력한 상태”를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런 상황은 그가 인습을 타파하겠다고 나서기에 충분한 이유였고, 그는 당장이라도 전례를 깨겠다고 나섰는데, 대통령직까지 위험에 빠뜨리며 “나는 군최고 사령관이다. 나는 국민에게 석탄을 줄 것이다.”라고 단호히 말했음(p466). 훗날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연방군을 동원해 탄광을 압류하겠다는 계획이 파업을 해결하는 열쇠가 됐다고 주장했는데, 실현되지 않았지만 개입하겠다는 위협은 ‘엘리후 루트’가 뉴욕 앞바다에 띄운 J. P. 모건의 개인 요트 코세어 호에서 그를 만났을 때 가져간 ‘커다란 몽둥이’가 돼었고, 누구도 원하지 않은 대규모 군사 개입이 있기 전에 경영계를 설득할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강력한 석탄 트러스트의 원래 설계자인 J. P. 모건이었음(p466). ⑧ [체면을 세워주는 방법을 찾아내라] ‘루트’ 전쟁성 장관은 뉴욕행 침대차를 타기 전에, “경영자들이 굴욕을 당하지 않고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냈지만, ‘모건’과 협상하려면 완전한 재량권이 필요하다.”라고 ‘루스벨트’에게 말했으며, ‘루트’는 그런 재량권을 허락받아 대통령의 대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 자격으로 뉴욕에 가야 했음(p467). ‘루스벨트’는 ‘루트’의 요청을 받아들였는데, 하지만 ‘루트’는 평범한 시민으로 뉴욕을 방문하는 게 아니었으며, 누가 뭐라 해도 ‘루스벨트’ 대통령의 후광을 얻은 최측근 국무위원이었고, ‘루트’는 10월 3일 모임에 대한 속기사의 기록을 면밀히 분석했고, 당시 경영계는 쟁점을 중재할 대통령 위원회를 설립하자는 ‘미첼’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음(p467). ⑨경영계가 부정적 성향을 띠었지만, ‘루트’는 그들이 중재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미첼’의 제안이어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걸 알아냈으며, 그들에게 노동조합 ‘리더’인 ‘미첼’은 경영계의 권위를 전면에서 도전하는 존재, 또 ‘배어’가 경영계의 세계관으로 입버릇처럼 말하던 기본적인 가정-“기업 경영에 두 주인은 있을 수 없다”-을 위협하는 존재였음(p467). 훗날 ‘루트’는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위해 거짓말을 했다.”라고 말했는데, 예컨대 탄광 소유주들이 중재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며 ‘미첼’과 직접 대화하지 않는 걸 허용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며, 요크 코세어 호에서 ‘루트’와 ‘모건’은 경영자들에게 서명을 받아낼 각서의 초안을 작성했음(p467). ⑩각서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대통령이 그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조건하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위원회의 설립을 요청한다. 위원회에서 모든 쟁점을 다루고, 위원회의 결정은 우리 모두가 받아들인다.”였음(p467). 훗날 ‘루트’가 인정했듯이,  중재라는 아이디어를 경영계가 먼저 제의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으며, 분명히 말하지만, 중재는 ‘미첼’의 아이디어였음(p467).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미탄광파업에 개입해 들어가기 위해 펜실베니아 주지사 ‘스톤’과 암호로 질서유지를 위한 연방군 파견을 요청케 하는 주변인들을 통한 ‘리더십’ 행위를 잘 보여줌. ‘루트’에게 대한 ‘권한위임 리더십’의 필요성은? 


□ 요약(제3-2부 리더와 시대 10. 시어도어 루스벨트_미탄광파업 교착의 해결)


①전쟁성장관 ‘루트’와 ‘모건’이 만든 중재 아이디어가 경영자측 제안이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실제로는 노동자 대표 ‘미첼’의 아이디어였는데, 하지만 그 거짓말은 문서상에서 그럴듯하게 보였고, 경영자들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음(p468). 그날 저녁 ‘루트’는 워싱턴행 기차를 탔고, ‘모건’은 상황이 폭발 직전이라고 경고했으며, 탄광을 몰수하려는 군사 계획이 연구 중이지만, 중재에 합의하면 그 계획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도 덧붙였음(p468). ②탄광 소유주들은 못마땅했지만 합의에 동의하는 걸 미루면 어떤 결과가 닥칠지 알았던 까닭에 ‘무연탄 파업 위원회’(Anthracite Coal Strike Commission)는 다섯 분야에서 선발된 다섯 명의 위원-군 장교, 광산 전문가, 펜실베이니아 판사, 탄광과 석탄 판매에 오랫동안 관계한 기업인, 저명한 사회학자-으로 구성한다는 조항을 더한 합의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음(p468). ‘모건’으로부터 서명된 합의문을 받자마자, ‘루스벨트’는 노동계 대표가 빠졌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즉각 알아차렸는데, 하지만 ‘루스벨트’는 “상황의 긴급성을 고려해” 위원장으로서 자신이 가장 공정한 사람들로 다섯 분야의 전문가를 채울 것이라 믿고, 합의문을 받아들이라고 ‘미첼’을 설득했으며, ‘미첼’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지만, 위윈회에 노동계 대표가 포함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할 것이라 주장했음(p468). ③노동과 자본의 분쟁에서 노동도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반박이었는데, 또한 ‘미첼’은 대다수 탄광 노동자가 가톨릭 신자이니 가톨릭 주교를 위원에 포함시키자고 요구했고, ‘루스벨트’는 ‘루트’를 통해 ‘모건’에게 협상 재개를 위해 경영계 대표를 황급히 워싱턴에 보내달라는 전보를 보냈으며, 같은 날 저녁, ‘모건’이 파견한 두 명의 젊은 대표가 탄광 소유주들로부터 협상 전권을 위임받아 임시 백악관에 도착했음(p469). ‘루스벨트’는 목발에 의지한 채 다리를 절뚝이며 그들을 맞이했는데, 탄광 소유주들은 ‘모건’의 사무실에 모여 있었고, 그로부터 세 시간 동안 전화선을 열어두고, 그 젊은 대표들은 탄광 소유주들로부터 두 명의 위원을 추가하는 조건에 대한 동의를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다했으며, 탄광 소유주들은 가톨릭 성직자를 추가하는 조건은 고려할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노동계 대표는 용인할 수 없다고 버텼음(p469). ④‘루스벨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교착 상태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양보보다 내란을 각오하겠다는 생각의 틀에 갇혀 있었다.”라고 말했고, 자정이 점점 다가왔으며, 그때 임박한 비극이 희극으로 돌변했는데, “그들이 현상 자체가 아니라 이름에 반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들은 내가 누구를 지명하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동계를 대표하는 사람을 ‘노동계 대표’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지명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루스벨트’는 ‘저명한 사회학자’로 노동계 지도자이자 철도승무원 연합회(Order of Railway Conductors)의장이던 ‘에드거 E. 클라크’(Edgar Erastus Clark)를 제안했음(p469). “그들은 노동계 대표를 받아들이느니 대혼란은 감수하겠다는 각오였지만, 내가 노동계 대표를 저명한 사회학자라고 부르자 모두가 좋아하며 받아들였다. 그 순간, 내가 느낀 안도와 환희가 복합된 감정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p469) ⑤며칠 후 펜실베이니아 윌크스배리에서 열린 노동자 대회에서, 탄광 노동자들은 투표로 합의안을 받아들이며 일터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는데, “탄광 노동자, 이해관계와 쟁점을 대통령 위원회의 결정에 맡기기로 합의. 노사분규에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 이정표”라는 머리기사가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했음(p470). 163일간 계속되던 교착 상태가 끝났고, 미국 역사상 가장 재앙적인 결과를 낳을 뻔했던 파업은 평화롭게 마무리됐으며, ‘루스벨트’는 “국민의 대리인”으로 역할하며, 그때까지 민간 영역으로 여겨지던 노동과 자본 간의 분쟁을 공익의 관점에서 해석했음(p470). ⑥ ‘루스벨트’는 파업이 계속되던 5개월을 끈기 있게 지켜보고 한 번에 한 걸음씩 나가며, 결국에는 여론의 지속적인 압력으로 “연방정부가 최초로 관여한 구속력을 지닌 중재”에 노사 양측을 끌어들일 공간을 마련해 냈는데, ‘캐럴 라이트’는 “새로운 아이가 탄생했다. 그 아이가 우리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고 말했음(p470). [성공한 해결에 대한 공적을 함께 나누라] ‘루스벨트’는 그 아이의 친권을 너그럽고 기분 좋게 가정 먼저 J. P. 모건에게 돌렸는데, “당신이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파업이 지금쯤 해결됐을 것이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축하의 인사를 보냅니다.”라는 편지를 ‘모건’에게 보냈고, 파업이 끝나고 쓴 일련의 편지에서 ‘루스벨트’는 위기관리팀원들-‘루트’와 ‘녹스’, ‘퀘이’와 ‘사전트’, ‘라이트’와 ‘크레인’과 ‘페인’-에게도 각자 기꺼이 맡아준 중대한 역할에 대해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음(p471). ⑦“패배가 고아라면 승리에는 천 명의 아버지가 있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 사건에서 ‘루스벨트’는 그 아버지들이 맡은 각각의 역할을 세상에 알렸음(p471).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탄광 경영자들에 대한 울분을 토했으며, 특히 ‘바미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님, 그 꽉막힌 우둔한 인간들과 다시 협상해야 한다면 저를 지켜주소서!”라고 분통을 터트렸음(p471).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시어도어’가 미탄광파업의 최종적 협상을 이루는 과정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음. 이처럼 협상을 이끌 수 있는 ‘정치적 리더’의 중요성은? 


□ 요약(제3-2부 리더와 시대 11. 시어도어 루스벨트_함께하는 리더십 원리)


①‘루스벨트’가 공적을 문자 그대로 남들에게 돌렸다면, 전국과 세계 곳곳의 신문들은 ‘루스벨트’에게 칭찬을 쏟아냈는데, 예컨대 <노스아메리칸 리뷰>는 “그의 부상과 대담성 그리고 파업 해결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삭막한 분쟁 이야기에 낭만적이고 기사도적인 색을 더해주었고, ‘루스벨트’라는 인물의 매력까지 드높여주었다.”라고 썼으며, 노사분규가 그렇게 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 의회는 환호했고, 런던 <타임즈>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야단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은 완전히 새롭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라고 보도했음(p471). 탄광 노동자들은 곧바로 일터로 복귀했지만, ‘루스벨트’가 주변 사람들에게 쏟아낸 찬사와 그 자신이 받은 갈채 덕분에 구속력을 지닌 중재 위원회의 조사와 그 결과는 계속 주목을 받았음(p471). ②위원회의 조사는 3달 이상 이어졌고, 양측은 자신에게 유리한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마침내 위원회는 광부들에게 10퍼센트 인상된 임금을 소급해 지급하고, 일일 노동량을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줄이며, 향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노사 조정국을 설립할 것을 만장일치로 합의했는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동조합을 정식으로 인정받으려던 노동자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음(p472). 전면적인 해결은 없었고, 노동과 자본 중 한쪽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중재의 결과는 구속력을 지닌 까닭에 자본과 노동과 연방정부 간의 역학 관계는 꾸준히 조정되었는데, 런던 <타임즈>는 “우리는 석탄 파업의 종언만이 아니라, 강력한 정부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다.”라고 보도했음(p472). ③ [미래를 위해 기록을 남겨라] 이 선구적인 사건의 여파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미래를 위해 위기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고, 그 기록을 후세에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랐는데, ‘루스벨트’는 노동과 경영 간의 사적인 분쟁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오랜 전례를 깨뜨렸음(p472). 그의 그런 행동은 반발과 찬성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는데, 위기가 해결된 후, ‘루스벨트’는 그 이례적인 사건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파업이 자체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다리며 정부의 개입을 자제했지만 대통령이 개입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이 변해간 과정을 밝혀두고 싶었으며, 훗날 행정력의 전격적이고 일방적인 확대를 위한 전권 위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이 무척 중요했음(p472). ④ 파업이 끝난 다음날, ‘루스벨트’는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크레인’에게 분쟁이 시작된 5월부터 자신의 행동을 3,000단어로 빠짐없이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에서 ‘루스벨트’는 “사건의 전 과정을 기록해두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때마다 그렇게 한 이유-위험에 대한 평가,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한 조사, ‘라이트’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은 최초의 결정, 결국 ‘라이트’ 보고서의 공개로 이어진 상황의 변화, 노사 양측 대표의 대면 회의를 주선한 전대미문의 행위, 그 만남이 실패로 끝난 뒤에도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던 다짐”, 심각한 반발이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과감히 선택한 행동, 연방군의 개입을 막은 J. P. 모건의 개입, 명칭을 바꿔 궁극적으로 해결된 분쟁의 부조리함-를 설명했음(p473). 또 뒤이어 보낸 편지에서 석탄 파업의 위기는 전례가 없는 것이어서 “엄격히 말하면 합법적이지 않은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는데, 예컨대 저명한 역사학자 ‘윌리엄 로스코 세이어’(William Roscoe Thayer)에게 말했듯이, “제철소 파업이었다면 개입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탄 파업은 국민의 삶과 건강에 필요한 상품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서 “미국 대통령이 개입해 재앙의 확산을 예방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겠는가?”라고 덧붙였음(p473). ⑤그 후로 수년 동안, ‘루스벨트’는 “무연탄 파업 위원회의 명확하고 권위 있는 보고서가 소책자로 만들어져, 위원회가 다루었던 사건과 유사한 혼란이 존재하거나 존재할 조짐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널리 유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위원회 위원들은 “누구도 자본가나 노동자로서 말하지 않았다. 또 판사나 군 장교로서도 말하지 않았다. 종교인의 자격으로도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정의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미국 시민으로서 그 보고서에 서명했다.”(p474). 석탄 파업을 통해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국제 정책의 방향-산업혁명 이후 부를 급속도로 축적하던 기업 견제-을 명확히 드러내 보였으며, 특히 기업 합동의 속도와 규모를 보며 “그런 기업은 감독하고 규제하는 힘을 지는 정부의 필요성”을 절감했는데, ‘루스벨트’는 석탄 파업으로 위기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무연탄을 필두로 급진적인 실험을 시도하고 싶었다.”라는 걸 인정했음(p474). ⑥석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시도하는 동안,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리더십’은 새로운 시대의 새벽빛이라는 게 입증됐으며, ‘공평 정책’이란 깃발 아래에서 진보적인 개혁 분위기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고, 노동과 자본의 관계만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했는데, ‘루스벨트’는 메인주의 숲을 탐험할 때 처음 만난 친구, ‘빌 수얼’에게 이렇게 말했음(p474). “이제 나는 부자도 공명정대하게 행동하고, 노동조합도 지혜롭고 정의롭게 관리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고용인과, 노동자와 자본가, 어느 쪽이든 잘못하면 나는 그쪽과 맞붙어 싸울 거다. 그렇게 하면 된다!”(p474)
● 비평 및 토론
  필자는 ‘시어도어’가 미탄광파업 중 있었던 스토리들을 잘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는 ‘리더십’ 스타일임을 잘 보여줌. 다음 세대를 위한 ‘리더십’의 책무는?


□ 요약(제3-3부 회생의 리더십 1. 프랭클린 루스벨트_취임 후 100일)


①“당시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모르겠다.” 노동부 장관 ‘프랜시스 퍼킨스’는 점점 심화되던 대공황기에 이렇게 말하며 “지금 1933년의 분위기를 되살리고, 회복되지 않은 가난과 끝없는 실직에서 야기되던 두려움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음(p476). 미국 경제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산업은 마비된 상태였으며, 노동인구의 4분의 1이 실업자였고, 일하는 사람의 노동 시간도 급격히 줄었는데, 많은 사람이 농지를 잃고 집을 잃었음(p476). ②수세대 동안 가족이 운영하던 소기업이 줄지어 파산했고, 수천 곳의 은행이 붕괴되었고, 수백만 명의 예금도 사라졌으며, 시정부와 주정부의 구제 기금도 고갈되었는데, 굶주린 사람들이 길거리를 배회했고, 마침내 식량 폭동이 일어났으며, 자본주의의 미래, 민주주의의 미래가 암울하게 보였는데,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이제 모든 수단을 다 썼다.”며 절망했음(p476). “우주의 어떤 극작가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등장보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독재자 혹은 새로운 메시아의 등장을 드럴듯하게 고안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백악관 보좌관 ‘로브트 셔우드’(Robert Sherwood)는 이렇게 말하며, ‘리더’는 시대의 요구에 부름을 받아 등장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했는데, “미국인들은 스스로 올바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백악관을 차지한 사람의 성품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워런 하딩’(Warren Harding)대통령처럼 사진 액자의 주인공이 되기에 적합한 대통령을 가진 것으로 만족한다/ 하지만 힘든 시기가 시작되고,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미국인들은 방향을 인도해 줄 사람을 간절히 찾는다. 사진 액자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 주장하는 ‘리더’를 원한다.”(p477). ③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기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데,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맞닥드린 암울한 상황은 위대한 성공만큼이나 참혹한 실패의 전조였으며, ‘리더’라면 시대가 제기하는 시련에 대응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닥터 프랭클린’만큼 국가의 질병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 자처할 준비가 된 ‘리더’는 없었음(p477). ‘루스벨트’는 웜스프링스에서 건축가, 부동산 개발자, 프로그램 관리자, 수석 고문, 영적인 지도자, “피크닉 담당 부통령”,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한” 치료법의 선구자로서 소아마비 환자들과 직접 교류하며 ‘닥터 프랭클린’이라 불리는 걸 좋아했음(p477).
● 비평 및 토론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맞닥드린 미국의 암울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함. 시대적 위기를 헤처나갈 ‘리더십’의 스타일은?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6하우스(이현재)_시어도어루스벨트_미탄광파업해결.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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