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6-28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45(시어도어루스벨트_리더십의 종결)

presentlee 2026. 7. 12. 10:00

https://youtu.be/ewbuR8F2qZI?si=GCVvZ3_LsUdsw8Is

 

House 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에필로그-죽음과 기억에 대하여 4. 시어도어 루스벨트_리더십의 종결)

①‘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전사라는 멋진 포상”을 무엇보다 가치있는 보상이라고 생각했으며, 전쟁의 승리는 평화의 승리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네 아들은 해외로 파병됐지만 그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낸다.”는 생각에, ‘윌슨’의 거절에 따른 실망은 심각한 우울증으로 발전했음(p613). 막내아들 ‘켄틴’이 전사했을 때 ‘루스벨트’는 세상이 무너진 듯한 깊은 슬픔에 사로잡혔는데, 결국에는 그 자신이 아들들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기 바랐다는 ‘역겨운 사실’을 인정해야 했고, ‘루스벨트’는 몸보다 불같은 의지력이 더 빨리 되살아났음(p614). ②연설과 기고문을 통해 전쟁터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라도 조국을 더 공정하고 공평한 곳으로 만들려고 함께 노력하고,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조건으로 정의를 도입하려는 포괄적인 개혁”을 시도하자고 미국인들에게 촉구했으며, 다시 그의 ‘영웅적인 리더십’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얼마 후에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됐음(p614). ‘루스벨트’는 1918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고, 여동생 ‘코린’에게 “나에게는 단 한번의 싸움이 남았다. 1920년을 대비해 힘을 비축해둘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루스벨트’는 브라질에서 걸린 말라리아 후유증으로 걸핏하면 열병과 감염증에 시달렸고, 간헐적으로 무력증에 빠지기도 했음(p614). ③1918년 말에는 극심한 류머티즘으로 6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는데, 증세가 악화되면 평생 휠체어를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는 주의를 듣고도 “괜찮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일할 수 있으니까!”라고 대꾸했다고 전해지는며, 그는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음(p614).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극심한 통증으로 두 달 동안 자주 외출할 수 없었는데, 집에서 기고문과 논설을 쓰고, 당 간부들을 불러들여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특히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계획을 짜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1919년 1월 5일 일요일, ‘루스벨트’는 편지를 받아쓰게 했고, <메트로폴리탄 메거진>에 기고할 글의 교정을 보았음(p614). ④훗날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시행한 뉴딜 정책과 기본 골격이 거의 똑같은 국내 정책을 개략적으로 서술한 글이었는데, 이 글에서 ‘루스벨트’는 노령 연금과 실업보험, 하루 8시간 노동, 단체 교섭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여성 투표권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정부는 퇴역군인들에게 땅과 일자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음(p615). 또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젊은 남녀에게 “공동선을 위해 형제애로 일하는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국민개병제(모든 국민이 병역의 의무를 지는 제도)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는데, 오래전부터 ‘루스벨트’는 “계급 차별이 공화국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크고 위험한 암초이며” “두 당파, 즉 두 계급이 완전히 단절되어 상대의 열정과 선입관, 한마디로 상대의 관점을 인정하지 않을 때 재앙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이라 예측했음(p615). ⑤그날 밤 10시, 사회와 산업을 개혁하기 위한 계획을 고심하며 바쁜 하루를 보낸 뒤, ‘루스벨트’는 ‘이디스’에게 심장이 곧 멈출 것처럼 “가슴 부근이 답답하다.”고 말하고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이디스’를 안심시켰으나, 하지만 “느낌이 무척 이상한 것은 사실이었다.”(p615) 주치의가 달려와 진단했지만 심장병과 관련된 징후는 없었으며, 그래서 ‘루스벨트’는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고, 그 때가 60세였으며, 혈전이 폐를 막고 심장을 멈춰 세운 것임(p615). ⑥침대 옆에서 공화당 전당대회 의장, ‘윌 헤이스’(Will Hays)와 만날 때 언급해야 할 사항들을 기록한 쪽지가 발견됐는데, ‘루스벨트’의 지시를 받아들여 ‘헤이스’는 공화당의 보수파와 진보파를 하나로 묶겠다는 사명을 띠고 워싱컨으로 향했고, 1912년 분당으로 양측의 불신과 반감은 여전했으며, 미국을 이끌어갈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루스벨트’는 공화당을 ‘에이브러햄 링컨’의 진보적인 정당으로 만들고,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 공동의 목적을 위해 협력할 때 자연스레 생겨나는 동료애와 상호존중, 공동의 이익을 위한 공통된 사명감”을 되살려낼 계획이었음(p616). 그는 1920년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며, 만화경이 돌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면 그가 사랑하던 ‘리더십’의 고삐를 다시 쥘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강력한 의지로 되살리고 있었음(p616). ⑦죽음이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말년에 쫓아다니며 괴롭힌 게 분명하지만, 당시에는 크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1944년 ‘루스벨트’는 62세의 또래보다 훨씬 늙어 보였으며, 안색은 창백했고,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도 있었음(p616). 그가 담뱃불을 붙이려 할 때 손이 떨리는 걸 지적하는 사람도 많았으며, ‘루스벨트’는 이런 증상과 잦은 기침을 그해 겨울에 걸린 감기와 기관지염 탓으로 돌렸지만, 딸 ‘애나’는 크게 걱정했는데, ‘애나’는 아버지의 놀라운 신체 회복력에 익숙한 터였지만, 봄이 된 후에도 ‘루스벨트’는 계속 피로감에 시달렸고 체력은 회복되지 않았고, ‘애나’는 아버지의 주치의, ‘로스 매킨타이어’(Ross Mclntire) 제독에게 베데스다 해군 병원에 종합검진을 예약해 달라고 부탁했음(p616). ⑧심장병 전문의, ‘하워드 브루엔’은 당시를 회상하며 “대통령의 얼굴을 보자마자 뭔가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무척 핼쑥했고, 피부와 입술과 손톱 바닥에도 핏기가 없었다.”라고 말했는데, ‘루스벨트’는 자리를 옮기려고 짧은 거리를 움직여도 숨을 헐떡였으며, 심장이 커졌고, 폐에는 체액이 있었음(p617). 혈압은 위험할 정도로 높았으며, ‘브루엔’의 진단에 따르면, ‘루스벨트’의 증상은 급성 울혈성심부전이었는데, 검사를 받는 동안, ‘루스벨트’는 다양한 주제로 의사들과 정겹게 대화하며 심각한 질문을 사전에 차단했고, 따라서 ‘브루엔’은 대통령에게 검진 결과를 자유롭게 털어놓지 못했는데, 사실 ‘매킨타이어’에게 검진 결과를 섣불리 발설하지 말라는 주의를 들은 터였음(p617). ⑨검사가 끝났을 때 ‘루스벨트’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브루엔’에게 감사했고, 환자들과 병원 직원들에게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 후 자동차로 향하였으며, 그날 오후 늦게 ‘루스벨트’는 945번째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에 ‘루스벨트’는 쿨럭쿨럭 기침을 하고는 기관지염으로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고 인정했음(p617). “놀라셨습니까?” “천만에요!” 또 의사가 기관지염이 폐렴으로 발전할 확률이 4만 8,5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니 그의 예후가 좋은 편이 아니겠느냐고도 덧붙였으며, 기자회견장이 웃음바다가 됐고, 기자들은 평소대로 정책 질문에 넘어갔는데, <뉴욕타임즈>는 “안색과 목소리가 더 나아졌을 뿐만 아니라 활력도 되찾은 것으로 보였다.”고 보도했음(p617). ⑩일주일 후 ‘매킨타이어’는 기자회견을 열어, ‘루스벨트’가 만성 기관지염을 앓고 있을 뿐이라며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햇볕과 운동”이라고 발표했고, ‘루스벨트’에게는 개인적인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병약한 아버지 앞에서 자신감에 넘치고 상대에게 힘을 북돋워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훈련된 때문이었음(p618). 소아마비로 병원에 입원해 6주 동안 고통과 싸우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이 낙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며 자신의 기분도 끌어올리는 비법을 터득한 것이었고, 사촌 ‘로라 델러노’의 기억에 따르면, ‘프랭클린’은 외가 식구들에게 아프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며, 1944년 봄에도 ‘루스벨트’는 건강 상태의 잠재적 위험을 항상 경계하되 자신의 병을 무시하는 쪽을 선택했고, 따라서 ‘브루엔’ 박사의 처방을 군말 없이 따랐음(p618).
● 비평
 필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말년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과 만나며 활력있게 생활하다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그가 평생 매우 적극적이며 ‘리더십’을 추구해 온 인물이라 평가하고 있음.
● 토의
 여러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살펴보며 어떤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이 고무적으로 생각되는지? 그렇다면 이런 느낌을 준 ‘리더십’ 측면이 있다면?  

□ 요약(에필로그-죽음과 기억에 대하여 5. 프랭클린 루스벨트_4번의 대통령)

①‘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매일 강심제를 복용했지만 혈압을 점검하는 데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또 저염․저지방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상당히 줄였던지 장난스레 배를 툭툭 치며 “다시 청년이 된 기분이다. 배에 지방이 싹 없어진 것 같아.”라고 농담하기도 했으며, ‘루스벨트’의 변함없이 쾌활한 태도는 전염성을 띠었고, 가까운 동료의 많은 증언에서 확인되듯, ‘루스벨트’는 항상 활기차고 당면한 과제에 집중했음(p618). 그 자신이 “지옥 같았다.”고 인정한 날에도 “활기차고” “온화한” 모습을 유지하며 아픈 티를 내지 않았는데, 그해 초봄, ‘프랜시스 퍼킨스’는 ‘루스벨트’의 안색을 보고 놀랐지만, 금융가 ‘버나드 바루크’(Bernard Baruch)의 사우스캐롤라이나 별장에서 보름 동안의 휴가를 끝내고 4월 말에 돌아왔을 때 활기를 되찾은 모습을 보고 안도하며 “그가 거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그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p619) ②하지만 ‘루스벨트’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무시하며, 겉으로는 밝게 보이려 애썼지만 순전히 의지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런 지경에도 네 번째 임기에 도전하겠다고 결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4년 전, 1940년 봄에는 ‘히틀러’가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벨기에와 프랑스를 침략하며 서구 문명을 위기에 몰아넣은 까닭에 두 번까지만 임기를 맡는다는 소중한 전통의 파기가 그런대로 정당화됐고 국민 여론도 인정하는 분위기였음(p619). 1944년 봄, ‘루스벨트’는 이미 12년 동안 백악관을 지킨 미국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이었으며, 그는 친구들에게 물었는데, 다시 전례를 깨고 네 번째로 대통령에 출마해야 하는가? 1944년 5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를 7주 앞둔 때까지도 ‘루스벨트’의 망설임은 계속 됐는데, 세계 전쟁을 마무리 짓고, 그 이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남아 있었음(p619). ③미국과 민주주의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100만 병력과 군비가 남잉글랜드의 선착장으로 옮겨진 후 노르망디 상륙을 시도하라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파리와 암스테르담, 바르샤바와 아테네 등 유럽의 거의 모든 수도가 여전히 독일군의 수중에 있었고, 일본은 필리핀을 점령했음(p619). ‘루스벨트’가 사촌 ‘마거릿 서클리’와의 사적인 대화에서 그 딜레마를 밝혔던지, ‘서클리’는 자신의 일기에 “중대한 결정이 필요했다.”라고 썼는데, 미래가 너무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힘이 남아있는 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깊은 의무감을 느꼈고, 대통령 역할을 4년 동안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면 출마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예의가 아니었으며, 출마 여부를 결정한 최종 변수는 그의 건강 상태였음(p620). ④‘루스벨트’는 늘 당면한 과제에 몰두했던 까닭에 국내외 사건들이 그의 건강 상태와 그가 신중하게 관리하며 아끼는 기력의 수준을 결정하는 듯했는데, 1944년 6월 6일, 이른바, 디데이에 연합군이 예상보다 적은 피해로 상륙 작전에 성공해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에 ‘루스벨트’는 기력을 되찾았고, 그날 오후 늦게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한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역사에서 위대한 순간이었다. 대통령은 커다란 초록색 의자에 차분히 기대어 앉아 미소를 짓고, 세상의 흐름이 만족스러울 때 항상 그랬듯 담배를 입꼬리에 물고 위로 젖히고 있었다.”(p620) 다른 기자는 “회견 내내 대통령은 행복하고 자신감에 넘쳐 보였지만” 지나치치 않으려고 경계했으며, “상륙에 성공했다고 바닷가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성공적으로 상륙했더라도 베를린까지 걸어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그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는 게 좋습니다.”(p620) ⑤그날 저녁 ‘루스벨트’의 모습에 대해 ‘앨리너’는 “무척 건강해 보였고,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미래의 계획으로 흥분돼 보였다.”고 말했는데, 보름 후, 다시 강장제 같은 사건이 일어났고, 제대 군인 원호법(G. I. Bill of Rights)를 서명하던 ‘루스벨트’는 홍조를 띠며 상당히 건강해 보였으며, 그 법은 제대 군인에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려는 포괄적인 계획을 뒷받침하는 것이었음(p621). 연설문 작성자 ‘새뮤얼 로젠먼’의 판단에 따르면, ‘루스벨트’가 그런 계획을 18개월 전에 구상했다는 사실,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행되기 훨씬 이전에 전후 계획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올바른 정치인의 비전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였으며, 이런 비전, 즉 엄청난 양의 행정 문제에 빈틈없이 관심을 두고 전체적인 그림을 보며 가장 중요한 목표를 지향하는 ‘루스벨트’의 신비한 능력 때문에라도, 크게 떨어진 기력이나 건강에 상관없이, 국무위원들과 백악관 보좌관들은 ‘루스벨트’만큼 뛰어난 ‘리더’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게 ‘퍼킨스’의 결론임(p621). ⑥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닷새 전, ‘루스벨트’는 마침내 네 번째로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그의 오랜 경험과 폭넓은 지식을 고려할 때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기초를 놓기에 그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란 신중한 확신에서 비롯된 결정이었음(p621). 그는 다시 당의 선택을 받으면 수락할 것이며, “미국의 자주적인 국민의 최고 사령관”으로서 명령하며 대통령의 임무를 다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일주일 후, 민주당 전당대회 대표단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만장일치로 미국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음(p621).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마지막 4번째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결정하게 된 배경을 그의 건강상태와 당시 2차 세계대전의 분위기와 비추어 잘 묘사하고 있음. 시대의 위대한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개개인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

□ 요약(에필로그-죽음과 기억에 대하여 6. 프랭클린 루스벨트_최종의 리더십)

①가을부터 ‘루스벨트’는 공화당 후보인 젊은 뉴욕 주지사, ‘토머스 E. 듀이’(Thomas Edmund Dewey)와 경쟁할 수 있는 체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는데, 경쟁 후보들이 ‘루스벨트’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쇠약하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기 때문이고, ‘루스벨트’의 표현을 빌리면 “내가 병들고 지쳤다는 중상모략이 팽배했다.”(p621) 그런 소문이 거짓이라는 걸 입증하는 확실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유권자들 앞에 서서, 유권자들이 그의 능력에 대해 직접 판단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었으며, 즉, “전통적인 방식대로 저돌적인 선거운동”을 벌여야 했고, 뉴욕시에서 하루 동안, ‘루스벨트’는 무개차를 타고 브루클린과 퀸스, 브롱크스를 지났고 할렘과 브로드웨이를 넘어 가먼트 지구까지 80킬로미터를 이동했음(p622). ②300만 명의 시민이 연도에 모여들었고, 허리케인의 꼬리가 뼛속까지 시려오는 비를 군중에 퍼부었는데, 빗물은 대통령의 옷도 흠뻑 적셨고, 뺨을 타고 흘러내렸으며,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루스벨트’는 미소를 잃지 않았고, 유세를 멈추지 않았음(p622). 그 때문에 군중은 그를 사랑했는데, 군중의 환호에 ‘루스벨트’는 “소속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나중에 ‘퍼킨스’에게 “군중의 따뜻한 환영에 온몸이 빗물에 젖었는지 몰랐다.”고 말할 정도였는데, 선거 운동이 끝날 때까지 ‘루스벨트’는 “투지만만하게” 버텼고, 시작할 때보다 더 건강하게 보였으며, 체중도 5킬로그램이 늘었고,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음(p622). ③1945년 1월 20일, 취임식을 치른 ‘루스벨트’는 82일 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뒤늦게야 평론가들은 루스벨트가 심신 약화로 마지막 3개월 동안 역할을 효과적으로 해내지 못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얄타에서 ‘이오시스 스탈린’과 ‘윈스턴 처칠’과 지루하게 회담을 하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내주고 너무 적게 받은 것이 아닌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 것임(p622). 얄타에서 ‘루스벨트’의 체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고, 건강도 악화됐는데, 하지만 결국 ‘루스벨트’는 두 가지 주된 목표를 이루어냈으며, 첫째, 일본을 공격하는 데 러시아도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단독으로 공격하면 100만 명의 미군 사상자를 각오해야 하던 전투였으며, 둘째,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의 잔해를 딛고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세계 기구를 창설하는 데 러시아의 지원을 확보했음(p623). ④‘루스벨트’는 “완결되지 않은 중요한 과제”를 위해 힘을 남겨두었는데, 예컨대 그는 4월 말에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할 예정이었고, 그곳에 50개 연합국들의 대표들이 모여 국제연합의 기본적인 골격을 구상할 계획이었으며, 그 후에 영국을 국빈 방문하려고 했음(p623). 그 방문은 몹시 설레었던지 비밀에 붙이지 못했는데, ‘루스벨트’는 캐나다 총리 ‘매켄지 킹’(William Lyon Mackenzie King)과 대화하던 중 그 계획을 누설했고, 그 뒤에는 ‘퍼킨스’에게도 알렸으며, 특히 ‘퍼킨스’에게 말할 때는 ‘엘리너’가 런던을 함께 방문한다는 기대감에 두 눈을 반짝였고, ‘엘리너’에게 “정말 아름답게 보이도록” 서너 벌의 멋진 옷을 주문하라고 독촉했다고 했음(p623). ⑤런던 방문은 모두에게 환영받는 즐거운 여정이 될 것 같았는데, ‘루스벨트’ 부부는 선박으로 사우샘프턴까지 이동하고, 그곳에서 런던까지 철도를 이용할 예정이었으며, 런던에서는 조지 6세 부부와 함께 버킹엄 궁전에 머물려 했고, 또 ‘루스벨트’는 왕과 함께 자동차에 나란히 앉아 런던 시내를 둘러보고, 의회에서 연설한 후에는 수상 전용 별장 체커스에서 ‘처칠’과 며칠을 함께 보낼 예정이기도 했음(p624). ‘처칠’은 ‘루스벨트’가 영국 국민으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환영을 받을 것이라며, “그 환영은 런던에 개선하던 ‘넬슨’ 경 이후로 인간에게 부여되는 최고의 환영”이 될 것이라 예견했음(p624). ⑥하지만 ‘퍼킨스’는 런던 방문을 반대했는데, “전쟁 중입니다. ‘런던’을 굳이 방문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루스벨트’는 손을 오므리고는 그녀의 귀에 대고 “전쟁은 5월 말이면 끝날거요.”라고 소곤거렸으며, 훗날 밝혔듯, ‘퍼킨스’는 “전쟁이 거의 끝났다는 ‘루스벨트’의 확신에 안심했다.” ‘루스벨트’가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이었음(p624). ‘루스벨트’는 이런 미래와 국빈 방문을 학수고대했지만, 피로에 짓눌린 체력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는 체력을 회복하고 국제연합 발족을 촉구하는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3월 말 백악관을 떠나 웜스프링스로 향했고, 거의 초자연적으로 신체 능력을 회복했던 그곳에서 보름 동안 휴가를 보내며 그 기적을 다시 누닐 수 있기를 바랐는데, 비밀 경호원 ‘마이크 라일리’는 “우리는 그 여행이 대장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 게 아니다. 당연히 도움이 될 거라고 의심치 않았다.”고 말했을 정도였음(p625). ⑦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12년 이상 동안 미국인에게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회복탄력성의 상징이었고, 그 자신은 국민에게 힘을 얻어 회복하고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으며, 백악관 연설문 보좌관이던 ‘로버트 셔우드’는 당시를 회상하며 “대통령이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회복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음(p625). 4월 12일 아침, 초상화를 위해 의자에 앉아 우편물을 훑어보던 ‘루스벨트’의 안색이 유난히 좋아 보였는데, 사촌 ‘마거릿 서클리’의 표현을 빌리면, “‘루스벨트’는 미소를 짓고 무척 행복해 보였다. 무엇이든 해낼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고개가 푹 떨어졌으며, 뇌출혈로 쓰러졌고, 다시는 의식을 되찾지 못했음(p625). ⑧‘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전투를 지휘하는 ‘리더’로 활약하다 순직하기를 바랐듯,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당면한 과제에 몰두하다 죽음을 맞았는데, ‘프랭클린’은 민주주의를 구하고, 세계 평화를 위한 기초를 놓기 위해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애썼으며, 이런 면에서 ‘프랭클린’은 전사자 목록에 올리더라도 잘못된 것은 아닌데, 중요한 것은 편력 기사의 장엄한 죽음이 아니라 견딜 수 있을때까지 견디겠다는 의지력, 즉 ‘루스벨트’의 조용한 용기였음(p625).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자신의 유산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지만,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겠다는 뜨거운 역사의식”이 있었고, 지독한 수집광이던 ‘루스벨트’는 백악관 보좌관들에게 모든 자료와 모든 편지, 심지어 대통령 집무실에 전달된 종이쪽지까지 빠짐없이 챙기라고 지시했는데, 죽음을 맞기 6년 전, ‘루스벨트’는 모든 서류를 정부에 전달하면서, 도서관 겸 박물관을 세울 부지로 하이드파크 사유지 일부를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음(p626). ⑨그때부터 대통령 도서관이란 전통이 시작됐는데, 자신감에 넘쳤던 ‘루스벨트’는 역사학자들에게 자신의 ‘리더십’을 정확히 평가할 기회를 주기 위해 그의 개인적이고 공적인 자료에 그들이 마음껏 접근할 수 있기 바랐으며, ‘루스벨트’가 도서관의 주춧돌을 놓을 때 분명히 밝혔듯, ‘리더십’의 열쇠는 ‘리더’가 국민과 맺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에서 찾아짐(p626). “대통령 집무실에 많은 문서가 전달되는데, 고위직이나 개인 사무실을 차지한 사람들이 제공하는 문서보다, 미국 각지에서 남녀노소가 나와 내 가족 및 친구에게 자발적으로 보내는 편지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문제를 하소연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결을 위한 개인적인 의견까지 제시하기 때문이다.”(p626) ⑩‘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드럽고 친밀한 ‘리더십’이 국민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던 까닭에, 그가 세상을 떠나고 며칠 후 <뉴욕타임즈>는 “미국의 모든 도시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서로 위로의 말을 주고 받았다. ‘친구를 잃었다’는 똑같은 한탄이 곳곳에서 들렸다.”라고 보도했음(p626). 트렌턴의 한 시민은 “한 사람이 죽었다고 1억 3,000만이 쓸쓸함을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향한 최고의 헌사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음(p626).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미 대통령 4선 이후 얄타회담을 거치고, 이후 런던 여행을 계획하면서 보내었던 말년의 시간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음. 또한, 그의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최선을 다한 모습과 이에 대해 미국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반응을 잘 다루며 ‘리더십’ 연구의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여 도서관을 만듦으로 대통령 리더십의 기초를 쌓았음을 기리고 있음
 ● 토론
 위대한 ‘리더십’에 대한 연구에 있어 개인적인 자료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6하우스(이현재)_대통령의리더십_에필로그2.hwp
0.06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