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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42(26-스물다섯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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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3-4부 리더와 시대 10. 린든 존슨_위대한 사회를 이루는 리더십)
①대통령에 취임하고 처음 10개월 동안, ‘린든 존슨’은 모든 의원을 적어도 한 번씩 백악관에 초대했으며, 30명씩 부부가 만찬에 초대를 받았고, 모든 비용을 ‘존슨’이 부담했는데, 만찬이 끝나면 남자들은 대통령과 함께 버번위스키를 마시며 시가를 피웠고, 여자들은 ‘레이디 버드’의 안내를 받아 백악관을 둘러보았음(p575). 이런 작은 만찬을 통해 ‘존슨’ 대통령과 의원들은 긴장을 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는데, 언젠가 ‘존슨’은 “대통령이 의회를 다루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 방법은 중단 없이, 끊임없이 계속되야 한다.”고 말했음(p575). ②한편 ‘존슨’은 의회를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 위험한 짐승”에 비유했는데, “당신이 적절히 자극하면 그 짐승은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지나치게 자극하면 요란하게 짖으며 오히려 공격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짐승이 어떤 평가를 받고, 기분 상태가 어떠한지 매일 점검해야 한다. 당신이 그 짐승을 견제하고 다독거리지 않으면, 그 짐승은 금세 야수로 돌변할 것이다.”(p575) [기다려야 할 때와 추진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1964년 시민권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오랜 투쟁이 있은 후, ‘존슨’은 시민권 연대의 의제에서 다음 과제, 즉 평등한 투표권을 요구하려면 먼지가 충분히 쌓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즉, 의회가 분열의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음(p576). ③실무적인 차원에서 연방 기관들이 식당과 목욕탕 및 극장을 통합하는 집행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고, 또 시민권 법안이 정치사회적으로 미친 방대한 영향을 미국인들이 소화하기 위해서는 더는 충돌이 없는 평온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평등한 투표권이란 목표를 향한 존슨의 열의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음(p576). 1965년 의회가 시작할 때, ‘존슨’은 ‘마틴 루서 킹’에게 “1964년 시민권법보다 강력한 투표권 법안이 통과되는 것이야말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가장 위대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흑인의 목소리가 투표로 표현되는 순간부터 많은 다른 돌파구가 뒤따를 것이다. 백인에게 받은 선물이 아니라, 흑인이 미국 시민으로서 자신의 합법적인 힘을 행사한 결과로 많은 돌파구가 뒤따를 것”이라고 주장했음(p576). ④ 하지만 당장에는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과 관련된 다른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데 힘을 더해 달라고 부탁했으며, 메디케어와 교육 지원이 매우 중대한 단계에 있었는데, 이는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었고, 두 법안 뒤에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공동체를 위한 공공사업 법안, 전국적인 직업 훈련 법안, 도심 지역의 재활성화를 위한 법안, 빈곤 구제를 확대하기 위한 법안 등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음(p577). ‘존슨’은 모든 미국인을 돕기 위해 이 모든 법안을 먼저 통과시키자고 제안했고, 1966년에 투표권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킹’에게 약속했는데, 하지만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일어난 사건들로 계획이 틀어졌으며, ‘린든 존슨’이 치밀하게 계획한 입법 순서 시간표에 톱니 하나가 불쑥 끼어든 것임(p577). ⑤1965년 3월 초, ‘킹’을 비롯한 시민운동가들은 투표권 법안에 대한 지지 세력을 규합하려고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며, 남부 관리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선거인 등록을 이유로 요구한 배타적 시험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는데, 그 터무니없는 시험에는 수정 헌법 제1조부터 제10조까지를 적절히 인용하고, 연방헌법의 일부 구절을 암송하고, 수정 헌법 제14조에 대해 설명하는 항목이 있었음(p577). 남부 관리들이 예상한 대로 이런 차별적인 제도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고, 셀마에서 투표 연령을 넘긴 1만 5,000명의 흑인 중 고작 335명만이 유권자로 등록할 수 있었는데, ‘피의 일요일’(Blood Sunday)로 알려지게 된 오명의 날, 1965년 3월 7일, 600명 이상의 시민운동가들이 주도인 몽고메리까지 85킬로미터를 행진하려고 셀마의 브라운 교회에 모였음(p577). ⑥그들은 좁은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Edmund Pettus Bridge)에 도착해서 나란히 걸으며, 시민권 운동을 상징하는 성가, ‘우리는 승리하리라’를 힘차게 불렀고, 다리 끝에서 권총과 야경봉, 가죽 채찍과 곤봉으로 무장한 보안관 ‘짐 클라크’의 기마경찰대와 주경찰대가 그들의 행진을 차단했는데, 텔레비전 카메라에 녹화된 현장에 따르면 “기병대가 공격했다. 금세 끝났고, 60명 이상이 부상해 쓰러졌다. 그들 중에는 노파와 어린아이도 있었다. 20명 이상이 병원으로 옮겨졌다.”(p578) 행진자들은 브라운 교회로 물러섰고, 기병대는 그들을 추적했으며, 수백만의 시청자가 그 학살을 목격했고, 국민의식이 일깨워졌는데, ‘존슨’은 당시를 회상하며 “순간적으로 변한 분위기에서 항구적인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려면 지체없이 행동하는 게 중요했다. 물론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고 말했음(p578). ⑦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규모와 강도도 점점 거세졌는데, 게다가 국방군을 동원해, 몽고메리까지 행진을 재개하려는 이들을 보호하라는 거센 압력이 ‘존슨’에게 가해졌고, 피켓 시위자들이 백악관을 에워쌌고, 대통령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크게 펼쳤음(p578). “LJB(린든 베인스 존슨), 눈을 크게 뜨고 남부의 아픔을 보라! 당신 고향의 만행을 보라!” 그런 엄청난 압력에서 ‘존슨’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며, 그는 “연방군을 성급히 동원하면 투표권 법안의 통과에 유리하게 존재하던 작은 가능성마저 사라질까 두려웠다.” 남부 출신이었던 까닭에 연방군 파견이 재건 시대의 씁쓰레한 기억을 남부인들에게 되살리고,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러스’(George Wallace)를 주권의 순교자로 둔갑시킬 위험이 있다는 알았기 때문에, 따라서 ‘존슨’은 “우리는 북부의 심리적 승리가 아니라 흑인의 진정한 승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원칙에서 물러나지 않았음(p578). ⑧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행진에 참여하려고 셀마로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존슨’은 ‘윌러스’ 주지사와 접촉했는데, ‘존슨’은 ‘윌러스’가 곤경에 처해 있다는 걸 알았으며, 주지사로서 ‘윌러스’는 법과 질서를 유지해야 했지만, 유혈극이 계속되면 그의 전국적인 평판과 더 높은 자리를 향한 꿈이 타격을 받을 터였음(p578). 그렇다고 흑인을 보호하겠다고 앨라배마주 주방위군을 배치하면, 백인 정치 세력이 그에게 등을 돌릴 것이 뻔했으며, ‘존슨’은 ‘윌러스’의 상황을 “그야말로 진퇴양난이군!”이라 생각했는데, 서둘러 마련한 백악관 회동에서 ‘존슨’은, 앨라배마주가 자체적으로는 행진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즉시 앨라배마 주방위군을 연방정부의 지휘하에 두겠다고 제안했고, 누구의 요청으로 연방군이 배치되는지가 무척 중요했음(p579). ⑨훗날 ‘존슨’은 “군대가 개입하더라도 그 군대는 해산을 강요하는 침략자가 아니었다. 이 점에서 완전히 달랐다.”고 설명했는데, 법과 질서가 일시적으로 안정되자, ‘존슨’은 근원적인 핵심 쟁점에 집중했고, 셀마의 잔혹행위와 그에 따른 국가적 수치를 활용해 ‘평등한 투표권’ 통과를 앞당기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피의 일요일에 이미 ‘존슨’은 법무장관 ‘니콜라스 캐천버그’(Nicholas Katzenbach)에게 투표권 법안의 초안을 가장 강력하게 작성하라고 지시한 터였음(p579). 나름 일요일 아침에 초안이 완성됐는데, 일곱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존슨’은 평론가들의 비난에 흔들리지 않고 때를 기다렸고, 때마침 셀마의 섬뜩한 사건들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음(p579).
● 비평
필자는 ‘린든 존슨’이 ‘마틴 루서 킹’과 ‘평등한 투표권’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과, 이것이 피의 일요일의 사건과 겹쳐지면서 미국 전역에 핵심적인 문제로 부상하였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존슨’이 투표권 법안의 조속 통과를 목표로 움직여 간 모든 과정을 세심하고 통찰력있게 그려가고 있음.
● 토의
위기의 상황 속에서 ‘리더십’이 가져야 할 태도나 발휘해야 할 ‘리더십’적 자질이 있다면? 또한 상황의 도래를 기다리며 변화를 준비하고 개혁의 기초를 미리 준비하는 모습은 어떤 ‘리더십’의 모습에 해당하는지? 이러한 ‘리더십’의 모습이 우리의 정치 현실 속에서 필요한 것인지? 이런 준비가 안 된 이유?
□ 요약(제3-4부 리더와 시대 11. 린든 존슨_투표권법안의 통과)
①셀마에서의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난 뒤, 마침내 투표권을 밀어붙일 때가 온 것인데, “투표권 법안과 교서를 의회에 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만이 남았으며, 대통령이 의회에 직접 출석해 입법교서를 전달한 사례는 거의 20년 전에 있었으나, 그렇다고 의회를 건너뛰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도 너무 위험했음(p580). 여하튼 ‘존슨’은 투표권 법안에 대해 국민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는데, 일요일 저녁, ‘존슨’은 의회 지도자들을 백악관에 초대해 월요일 저녁 9시에 양원 합동 회의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음(p580). ②‘존슨’은 극도로 신중한 어조로 연설을 시작했는데, “오늘 밤 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의 운명을 위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때때로 역사와 운명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 자유를 향한 인류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렉싱턴과 콩코드(1775년 4월 19일에 ‘미국 독립 전쟁’의 포문을 연, 영미간 전투가 일어난 곳)에서 그랬고, 한 세기 전에는 애퍼매턱스(남북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 ‘리’ 장군이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한 곳)에서 그랬으며, 지난주에는 앨러배마주 셀마에서 그런 기적이 있었습니다(p580). 흑인의 문제란 없습니다. 남부의 문제도 없습니다. 오로지 미국의 문제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민주당원이나 공화당원으로서가 아니라 미국 국민으로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각 주의 권리냐 국가의 권리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로지 인권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법안을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셀마에서 일어난 일은 모든 주로 확산되고 있는 훨씬 더 큰 움직임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는 미국의 흑인들이 미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마땅한 삶의 모든 축복을 스스로 획득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들의 명분이 우리의 명분이 되어야 합니다. 흑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편견과 불의의 유산을 극복해야 합니다(p581). ③‘존슨’은 여기에서 잠시 말을 멈추었고, 두 손을 불끈 쥐고, 침례교파의 옛 가사를 읊조렸는데,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승리할 것입니다!”(p581). 백악관의 한 직원이 회고했듯 “순간 정적이 흘렀고, 의원들이 대통령이 흑인 시위대의 성가를 자신의 슬로건으로 받아들이며 선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후에는 “의원과 방청객 모두가 기립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심지어 발을 구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 연설의 설득력은 우아한 수사적 표현에서는 물론이고, 중대한 시점에 완벽하게 보여 준 ‘리더십’에도 있었는데, 특히 ‘존슨’은 “이번 투쟁의 진정한 영웅은 미국 흑인”이라 선언하며, 그들의 행동이 “이 나라의 양심을 일깨웠다.”고 덧붙였음(p581). ④또 남부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미국의 어떤 지역도 흑인을 공평하게 대우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의견도 분명히 밝혔는데, “버밍햄만이 아니라 버펄로에서, 셀마만이 아니라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국민은 자유의 열매를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존슨’은 자신이 의회에 보내려는 법안이 미국 흑인을 위한 것이고, 시민권의 핵심이더라도 “모든 국민이 살 만한 집과 일자리를 구할 기회와 가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는 ‘위대한 사회’를 구축하려는 목표의 일부라는 것을 미국인에게 되새겨주었음(p582). 연설의 끝머리에서 ‘존슨’은 텍사스의 가난한 멕시코계 미국인 마을, 커툴라에서 교사로 일하며 직접 겪은 경험으로 되돌아갔는데, 커툴라는 그의 권력 야망이 깊은 목적의식과 처음으로 결합된 것이었음(p582). ⑤‘가난과 증오가 어린아이의 희망찬 얼굴에 남긴 상처를 보면, 가난과 증오의 힘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1928년 당시, 나는 1965년 지금 이곳에 서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학생들의 아들딸을 돕고, 이 나라 전역에 있는 그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도울 기회를 갖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비밀 하나를 말씀드리면, 나는 이 기회를 사용할 작정입니다. 여러분도 나와 함께 이 기회를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p582) ‘존슨’이 입버릇처럼 “상대를 설득하려면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제시하는 주장을 스스로 믿어야 한다.”고 말했듯이, 그 시대에 대한 감상적 확신으로 시작된 박수가 점점 커져갔음(p582). ⑥오랜 친구이자 멘토이던 ‘리처드 러셀’은 법안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그가 그때까지 들었던 여러 대통령 연설 중 최고”였다고 칭찬했으며, 그 칭찬에 ‘존슨’은 환한 미소를 지었고, ‘마틴 루서 킹’이 보낸 전보도 투표권 법안 통과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했는데, “양원 합동 회의에서 행한 대통령의 연설은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인권에 대한 감동적이고 웅변적이며 격정적인 탄원이었습니다.”(p583) [기념식으로 과거를 예우하고, 미래를 향한 추진력을 얻어라] ‘린든 존슨’은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이 하나씩 법제화될 때마다 서명식을 가졌는데, 법제화 과정에서 매 단계를 꼼꼼하고 정성껏 챙겼던 것만큼이나 서명식에도 신경을 기울였음(p583).
● 비평
필자는 ‘린든 존슨’이 셀마에서의 사건 이 후 투표권 법안을 통과시켜 나가는 과정 가운데 했던, 역사적 연설과 그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 토의
‘리더십’으로서 대중 연설에 대한 능력을 제고하는 방법 및 대중 연설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공감을 줄 수 있는 호소력있는 ‘리더십’적 태도?
□ 요약(제3-4부 리더와 시대 12. 린든 존슨_투표권법에 대한 서명식)
①‘린든 존슨’은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의 법제화 만큼이나 서명식에도 신경을 기울였으며, 예컨대 오랜 승강이 끝에 4월 초에 의회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Elementary and Secondary Education Act)에 서명할 때는 그가 4세에 처음 다녔던 교실이 하나뿐인 학교, 정크션 스쿨을 찾았는데, 그를 8년 동안 가르쳤던 교사 ‘케이티 디트릭’을 캘리포니아에서 모셔오기도 했음(p583). 그가 처음 교육을 받았던 곳으로 되돌아가 “배움의 세계가 어린아이 눈앞에 열어주는 마법의 시간”을 사람들에게 되살려주려 했던 것인데, ‘존슨’은 “소작농의 아들이었던 까닭에 교육이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을 잘 알았고, 정치에서 이룬 강렬한 업적을 제외하면 교사로 일했던 기억만이 ‘존슨’에게는 소중했으며, 따라서 과거의 그 소중한 시간에 감사하려고 ‘존슨’은 커툴라 초등학교와 샘 휴스턴 고등학교의 옛 제자들을 서명식에 초대했음(p583). ②“50년이 지난 뒤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라고 말한 것처럼, 대통령으로서 “의회에 제출된 가장 포괄적인 교육 법안”에 서명하는 특권은 그야말로 꿈의 실현이었음(p584). ‘존슨’이 메디케어 서명식 장소를 워싱턴에서 미주리의 인디펜던스로 황급히 변경한 것도 감상주의가 아니라 역사의식과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는데, ‘존슨’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전 대통령 ‘해리 트루먼’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 여겼고, 인디펜던스는 ‘트루먼’의 고향이었고, 건강관리를 위한 노력은 그곳 출신 대통령이 시작했다는 걸 국민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임(p584). ③의회 지도자들과 보건복지부 국장 ‘월버 코헨’(Wilbur Cohen)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서명식 장소를 워싱턴에서 미주리로 황급히 옮기면 많은 사람에게 불편을 준다며 반대했으며, 그런 불편을 인정하면서도 ‘존슨’은 단호했는데, “월버. 이해하지 못하겠나? ‘해리 트루먼’을 위해 옮기는 것이네. ‘트루먼’ 대통령은 늙고 지쳐 그곳에 계시네. 나는 국가가 그분을 잊지 않았다는 걸 그분에게 알려주고 싶은 걸세. 누군가 나를 위해 그렇게 해준다면 나는 정말 고마워할 거네.”(p584) ‘존슨’의 직감은 옳았고, ‘트루먼’은 크게 감동하여 “오늘 여기까지 찾아와 주다니,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이네. 내가 지금껏 누려보지 못한 영광이네.”라고 말했음(p584). ④8월 6일 투표권 법안을 서명하는 장소로는 상원 회의실에 좀 떨어진 대통령실을 택했는데, 그곳은 거의 한 세기 전 8월의 같은 날,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부 연합 군인으로 동원됐지만 도망한 노예들을 석방하는 법안을 서명하는 곳이었고, ‘존슨’은 그곳에 모인 시민권 운동 지도자들과 각료들, 백악관 보좌관들, 상원의원들과 하원의원들에게 “오늘은 여느 전쟁터에서 거둔 승리만큼이나 자유가 위대한 승리를 거둔 날”이라고 말했음(p585). 정확히 넉 달 만에 “이 훌륭한 의회가 합심해, 미국 자유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법을 통과시켰다.”라고 말했지만, 법안을 위한 마지막 장애가 곧 해결될 것이라 예고하면서도 ‘존슨’은 자유를 위한 싸움이 이제야 시작된 것이라 주장했고, 진정한 사회 경제적 기회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평등을 위한 투쟁이 다른 전쟁터로 확전되어, 모든 미국인에게 미국 주류의 삶으로 들어갈 자유가 허락되어야 했다.” 지금까지 언급한 세 법의 서명식은 자축연을 넘어섰는데, ‘존슨’의 주도로 기획된 서명식은 관련된 사람들에게 공로를 돌리고,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기대하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입법 과정이 언제 시작됐고 언제 끝났는지를 되짚어보는 시간이었음(p585). ⑤‘린든 존슨’이 투표권법에 서명한 때는 ‘케네디’가 암살되고 623일이 지난 때였는데, ‘케네디’가 암살된 날부터 ‘존슨’은 세 보좌관과 사흘 밤을 함께 보내며 대통령으로서의 비전을 고심했고, 그 비전의 폭과 일관성을 넘어, ‘존슨’은 놀랍게도 그날 밤부터 시작한 모든 것-감세, 시민권, 교육에 대한 연방 지원, 메디 케어, 투표권-을 1년과 세 분기 만에 이루어냈으며, 이 다섯 가지의 획기적인 법안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어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음(p585). 감세 덕분에 3년 동안 경제가 크게 성장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급투쟁”을 자극하지 않고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으며, 병원이 메디케어 기금을 받으려면 시민권법의 비차별조항을 준수해야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남부에서도 흑인을 차별하는 병원은 모두 사라졌고, 투표권법 통과로 흑인 유권자 등록이 획기적으로 증가했고, 그 결과 투표로 선출된 흑인 관리의 수가 10배까지 증가했음(p586). ⑥헤드 스타트 프로그램(Head Start Program)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아이에게 건강을 증진하고 고등학교까지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했으며, 더 나아가, 직업 시장에 들어가 생산적인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도 크게 확대했는데, 메디케어의 도움으로 기대 수명도 5년 이상 늘었음(p586). 제89차 의회는 마지막 3개월 동안 더욱 포괄적인 법안들을 다루었는데,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 제공, 학비 대출, 학교 공부와 현장 실습을 겸비한 직업 교육 등의 혜택을 주기 위한 고등교육법, 공공사업과 경제 발전에 관련된 법, 미술과 음악, 춤과 문화의 혜택을 지방에도 확산하는 법, 공공 방송국과 연방 주택 건설 지원을 확대하고 도심을 재활성하기 위한 주택 및 도시 개발법 등이 대표적인 예임(p586). ⑦심지어 서유럽과 북유럽 출신 백인을 우대한 차별적인 할당제를 철폐한 이민 법안도 법제화했으며, 새로운 이민법은 출신지와 상관없이 개인의 능력을 기준으로 이민자에게 미국의 문을 개방하고, 다섯 명이 이민한 가족에게는 재결합의 혜택을 부여해 이민의 흐름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로 이동했고, 그 결과 미국의 다양성은 크게 확대됐음(p586). 거의 2년 동안, ‘린든 존슨’의 ‘리더십’하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은 함께 노력하며 남북전쟁 이후 시민권에서 가장 획기적인 신장을 이루었고, 미국 사회에 항구적인 흔적을 남겨놓을 만한 포괄적이고 진보적인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놓았는데, 1965년 10월 말 의회가 휴회를 선언했을 때 <뉴욕 타임스>는 오랫동안 사라졌던 행정부와 입법부의 생산적인 관계가 복원됐다고 평가했음(p586). ⑧평론가들은 ‘케네디’의 죽음을 비롯해 흔치 않은 사건의 연속이 “입법부의 수확”으로 이어지며 경제 성장이 지속됐고, 그 결과 의회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요약했는데, 이 모든 요인에도 불구하고, 제89차 의회는 “무엇보다 갑자기 미국 대통령이 된 위대한 입법 리더의 작품”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음(p587). 적절한 곳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인물로 등장한 ‘린든 존슨’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자유로운 정부의 목표로 규정했던 것을 실질적으로 추구한 대통령-모든 시민에게 삶의 과정에서 각자의 근면성과 진취성과 지능에 따라 교육받고 사업하며 경쟁하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려는 대통령-에 가까웠음(p587). ⑨이렇게 찬란한 업적이 이어지고 있는데 ‘린든 존슨’의 완벽한 ‘리더십’이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상상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인데, 하지만 관심의 축이 국내 정치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옮겨지자, ‘존슨’의 ‘리더십’은 끔찍한 실패를 거듭하며 신뢰와 믿음을 상실했고, 그의 유산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겼으며, 게다가 국가를 갈가리 찢어놓았음(p587). [결말] ‘케네디’가 암살된 날부터 ‘린든 존슨’이 보여준 ‘비전의 리더십’(visionary leadership)이 국제 문제와 베트남을 다룰 때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에 취임한 첫날 ‘존슨’은 국내 문제와 시민권에 집중했고, 성취해내려는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있었으며, 또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의회와 국민을 어떻게 끌어가겠다는 명확한 전략도 있었는데, 그러나 미국인을 베트남 전쟁에 끌어들일 때는 그 자신부터 적극적인 목표보다, 피하고 싶은 것-굴욕적인 패배, 실패와 상실-에 끌려들어갔음(p588).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존슨’이 ‘케네디’의 서거 이후에 그의 정책을 이어받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미국을 한 방향(시민권, 투표권)으로 이끌었고, 실질적인 결과를 이루었으며, 그의 오랜 정치적 경험으로 ‘입법 리더십’을 발휘하여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미국 내의 국내 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음을 종합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이와 같이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의 특징이 있다면? 국내 정치에서 ‘비전’을 발견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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