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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44(26-스물일곱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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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Leadership School
□ 요약(에필로그-죽음과 기억에 대하여 2. 린든 존슨_회고록의 작성)
①저자는 ‘린든 존슨’이 퇴임 이 후 텍사스에서 ‘린든’의 회고록 작성에 참여하였는데, 그 때 ‘린든’은 아침에 목장을 돌면서 인부에게 업무를 지시하곤 하였으나, 그가 대통령일 때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리더십’의 규모 면에 있어서 축소된 모습이 마치 희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였는데, “모든 황소가 건강하다고 확신할 때까지 여러분 모두가 오늘밤 잠자리에 들지 않겠다고 엄숙히 맹세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하면, 미국에서 가장 좋은 쇠고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p601) ‘고급육’(high quality)을 뜻하는 HP라는 표식을 얻으려면 사소한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존슨’의 철학이었는데, “제1목초지에 있는 밤색 황소의 짓무른 눈에 연고를 발라줘라. 제3목초지에는 살수기를 가동하기 시작하라.” 백악관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습관적으로 읽던 법인에 대한 현황 보고서가 텍사스에서는 그날 산란된 달걀 수에 대한 보고서로 대체됐는데, “월요일 162개, 화요일 144개.……목요일 158개, ……토요일 104개? 암탉이 200마리인데? 자네는 암탉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p601) ②회고록이 마무리된 날, 모든 일을 끝내고 늦은 오후에 ‘존슨’과 함께한 산책이 생생히 기억났는데, 우리는 목장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존슨’이 어린 시절에 산책할 때 멈추었던 곳을 하나씩 지났으며, 큰길에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는 그가 태어난 생가로, 공들여 복원한 공립 박물관들이 있었음(p602). ‘존슨’은 주차장에 주차된 자동차 번호판들을 살펴보고, 그 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문했는지 확인하며 방명록을 훑어보는 걸 좋아했는데, 그리고 방명록 내용을 역사적 판단의 풍향이 어떻게 불고 있는지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음(p602). ③들판 너머 생가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그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오두막 터가 있었는데, 그곳은 그가 할아버지의 카우보이 이야기와 구비 설화에 흠뻑 빠졌던 곳이었고, 그 때문인지 그는 그곳에서 위안을 얻었으며, 큰길을 따라 조금 내려간 오르막에는 그가 정식 교육을 받기 시작한 정크셔 스쿨이 있었음(p602). 그 길을 따라서는 그의 삶에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들-목장과 생가, 할아버지의 오두막, 학교-이 늘어서 있었고, 길 너머에는 구불대는 페더네일스강을 굽어보는 웅장한 너도밤나무 아래 ‘존슨’ 가족의 묘지가 있었는데, ‘존슨’은 작은 무덤을 가리키며 “여기가 어머니가 누워 계시네.”라고 말했으며, “여기에 아버지도 묻혔고, 나도 여기에 묻힐 거네.”(p602) ④산책하는 동안 말이 끊어진 때는 거의 없었는데, 그렇다고 ‘존슨’의 목소리로만 채워진 시간은 아니었으며, ‘존슨’은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혼란스럽던 대통령 재임기부터 사회에 처음 진출한 시기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고, 그는 커툴라라는 가난한 마을에서 교사로 일하며, 멕시코계 미국 학생들에게 온갖 운동과 활동을 가르치며 이루어낸 성과를 자랑스레 말했음(p603). 또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대에 청소년 관리국에서 일할 때 수천 명의 가난한 청년들에게 도로변의 공원, 학교 체육관, 수영장 등을 짓게 하며 일거리를 주었던 기억도 즐겁게 되살렸는데, 자신이 힐 카운티에 전기를 어떻게 끌어왔는지, 전기의 도입으로 전등과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편의시설을 사용할 수 있어 수천 농가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반복했음(p603). ⑤물론 1957년 시민권법이 통과됐을 때의 즐거움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 시민권법이 엄격히 집행되지는 않았지만, 그 법이 통과되어 제89차 의회에서, 정확히 말해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첫 18개월 동안 크나큰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음(p603). “우리가 실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낸 시대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보다 더 많은 사람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내 꿈이 가능해진 듯한 시대였다. 사태가 다른 식으로 진행됐더라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지 생각해보라.” ‘존슨’은 이렇게 말하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고개를 저으며 숨을 내쉬었는데, 그의 표정에는 깊은 슬픔과 불안이 읽혔음(p603). ⑥그날 밤 목장의 저자의 방으로 돌아와 ‘존슨’의 말을 정리하며 저자는 “왜 그가 이런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한 것일까? 왜 그는 저자에게 자신의 취약함과 슬픔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그 의문을 풀려고 애썼는데, 저자가 젊은 여자로 역사학자가 되려고 염원한 때문이었을까? 하기야 젊음과 역사는 ‘존슨’이 다가가서 설득하기를 간절히 바라던 두 가지였으니까. 어쩌면 그가 경멸하면서도 탐내던 아이비 학위를 저자가 지녔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면 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의미와 타협하려고 분투하는 걸 내가 밤잠을 설치며 열심히 들어준 때문이었을까?(p604) ‘존슨’과 대화하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그가 자신의 삶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는 대통령에 재임할 때 심장마비가 가족력인 경우 64세에 사망할 확률을 통계적으로 예측한 생명표를 주문한 적도 있었음(p604). ⑦대통령직에서 물러나 1년이 조금 더 지난 1970년 봄, ‘존슨’은 지독한 흉통으로 샌안토니오의 브룩 군병원(Brooke Army Medical Center)에 입원했고, 협심 통증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존슨’은 엄격한 식이요법과 운동을 시작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기름진 음식을 먹었고, ‘커티 사크’(Cutty Sark) 스카치위스키를 마셨으며,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음(p604). “이 늙은 나이에 식이요법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아이젠하워처럼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갈 때가 되면 빨리 가고 싶다.” 1972년 4월, ‘존슨’은 딸 ‘린다’의 버지니아 집에 머무는 동안 극심한 심장마비를 일으켰는데, 의사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존슨’은 텍사스에 돌아가 요양하겠다고 고집했으며,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그랬듯이, ‘존슨’도 “자신이 아프면 모두가 알고, 자신이 죽으면 모두가 돌봐주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바랬음(p604). ⑧‘존슨’은 두 번째 심장마비를 그럭저럭 견뎌냈지만, 한 친구에게 “정말 지독히 아프다.”라고 말했듯 결국 죽음을 맞을 때까지 고통과 싸워야 했는데, 아침은 변변하게 시작하더라도 오후가 되면 “가슴을 연속해 찌르고 때리는 듯한 통증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의 침대 옆에 설치된 이동식 산소 탱크가 그에게 일시적으로나마 위안을 주었음(p605). 9개월 후인 1972년 12월 11일, ‘존슨’은 LBJ 도서관의 시민권 심포지엄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는데, ‘로이 윌킨스’, ‘클래런스 미첼’, ‘휴버트 험프리’, ‘줄리언 본드’, ‘바버라 조던’, ‘버넌 조던’, 전 연방대법원장 ‘월 위런’ 등 시민권 운동 단체의 모든 지도자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하지만 심포지엄을 하루 앞둔 일요일 밤, 매서운 눈보라가 오스틴을 덮쳤음(p605). ⑨행사가 순조롭게 진행될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는데, 도서관장, ‘해리 미들턴’의 기억에 따르면 “지독히 춥고 온 세상이 얼어붙어, 워싱턴에서 많은 참석차를 싣고 오는 비행기가 오스틴 공항에 착륙할 수 없을 것이란 통지가 있었다. 결국 그들이 버스로 여기까지 와야 한다는 뜻이었다.”(p605). ‘레이디 버드’는 “전날 밤 ‘린든’이 상당히 아팠다. 그래서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했다. 주치의는 ‘린든’에게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며 심포지엄에 참석하지 말라고 말렸다.”라고 기억했는데, 하지만 ‘존슨’은 “검푸른 정장”에 “눈부시게 반질거리는 신사화”를 신고, 110킬로미터쯤 떨어진 오스틴으로 향했다. ‘존슨’은 오래전에 운전을 중단했지만, 운전기사가 빙판으로 변한 길에서 지나치게 조심하며 느릿하게 운전하자 짜증을 내고는 직접 운전대를 잡았음(p605).
● 비평
필자는 ‘린든 존슨’이 필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개인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내용들을 잘 설명하며, ‘린든’의 말년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음. 아울러, ‘린든’의 건강 상태까지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어 관계가 각별하였음을 보여줌.
● 토의
적극적이며 매우 사교적이고 협상의 대가였던 ‘린든 존슨’의 말년의 모습을 통해 ‘리더십’의 측면에서 배우고 깨달아야 할 점이 있다면?
□ 요약(에필로그-죽음과 기억에 대하여 3. 린든 존슨_리더십의 마지막)
①연단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전 대통령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이 ‘존슨’의 결의를 엿볼 수 있었는데, ‘존슨’은 힘겹게 연단을 향했고, 극심한 흉통이 밀려오자, ‘존슨’은 걸음을 멈추고 니트로글리세린 알약을 삼켰으며, 목숨을 잃더라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혀졌고, ‘존슨’은 더듬거리며 더는 대중 앞에서 “무척 자주”, “꽤 오래” 연설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 이번 기회에 꼭 말하고 싶은 게 있다고 힘주어 말했음(p606). “40년 이상 공인으로 살았던 삶과 관련된 3,100만 장 이상의 자료가 이 도서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시민권과 관련된 기록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하고,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시민권이 그에게 늘 우선순위는 아니란 걸 인정했지만, ‘정부의 본질’은 “피부색과 신념, 조상,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개개인에게 품위 있고 온전한 삶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믿게 됐습니다.”(p606) ②이어서 그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논의하며 이틀이란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데, 그다지 즐겁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가 보잘것없고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6년이나 대통령을 하면서 더 많은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한 것이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라고 덧붙였음(p606). 그의 주장에 따르면, 백인 사회에서 흑인으로 사는 역경은 미국 사회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주된 문제였는데, “우리가 불평등한 역사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불평등한 기회의 문제도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흑인이 평평하고 평등한 운동장에 서게 될 때까지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멈추면 안된다면서 “모든 미국인에게 똑같은 규칙이 적용되고 똑같은 가능성이 부여되는 세상을 보증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고 강조했음(p606). ③“우리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 의지가 굳건하다면, 또 올바른 마음과 진실한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우리 미국인은 어떤 장애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라며 연설을 끝맺었음(p607). 이 연설이 ‘린든 존슨’의 마지막 대중 연설이었는데, ‘레이디 버드’가 말했듯이, “심포지엄에 가기 전부터 그는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는 전적으로 그에게 있었다.” 그날 ‘존슨’이 내린 결정에는, 시민권법을 위해 기꺼이 모든 위험을 무릅쓰며 대통령의 모든 자산을 쏟아 부었던 때를 역사가 기억해 줄 것이란 바람이 담겨 있었는데, 실제로 ‘존슨’은 나에게 “내가 훗날 기억된다면 시민권법으로 기억될 것”이라 말한 적이 있었음(p607). ④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5주 후, ‘존슨’은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일으켰는데, 항상 주변에 사람이 있었는데 하필 그때는 혼자였고, 오후 3시 50분, ‘존슨’은 목장 전화로 황급히 경호대를 불렀으나, 하지만 그들이 그의 침실에 도착했을 때 ‘린든 존슨’은 숨이 끊어진 뒤였으며, 그가 오래전에 예언했듯이 그의 나이는 64세였고, 사흘 뒤, 그는 가족 묘지에 묻혔음. 장엄한 너도밤나무의 아늑한 그늘 아래에(p607).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리더십’과 죽음과 기억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숫돌에 칼날을 세우는 사람처럼 사방으로 불꽃을 튀겼는데, 때때로 사후의 명성을 헛된 것이라 경멸하는 모습도 보였고, “위인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는 것인 시간문제일 뿐이다.”(p608) ⑤100년이나 1,000년, 심지어 1만 년이 걸릴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망각이 시간의 모래를 뒤덮고, 우리가 역사라 칭하는 모래 위에 남긴 흔적을 지워버린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입장을 버리고, 명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가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냈다.”고 생각하며 죽어가는 낭만적인 삶을 높이 평가했고, “죽기 전에 우리가 남자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해냈고, 쓸모없는 존재로 내던져지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면 정말 즐거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음(p608). ‘루스벨트’처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에게 조용한 은퇴는 불가능한 개념이었는데, ‘루스벨트’는 퇴임한 이후에도 의미와 봉사, 의무와 모험을 꾸준히 추구했으며, 가장 어린 나이에 대통령에 올랐던 까닭에 7년 반이란 재임을 끝냈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50세였고, 그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었음(p608). ⑥그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삶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이었는데, 그의 딸, ‘앨리스’는 ‘시어도어’가 항상 세상의 중심에 있기를 바란 까닭에 세례 받은 아기, 결혼식의 신부, 장례식의 시신이기를 바랐다고 비유하기도 했음(p608). ‘루스벨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직책”, 대통령이던 매 순간을 즐겼는데, 그는 트러스트를 분쇄하고 용을 죽이는 ‘위기관리 리더십’이 국민의 호응을 얻는 시대에 국가를 이끌어갈 기회를 얻은 것이 다행이라는 걸 알았으며, 그는 시대정신(zeitgeist)을 자주 언급하며, 시대정신은 만화경처럼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능력을 요구하거나 배척하는 것이라 말했음(p608).
● 비평
필자는 ‘린든 존슨’이 말년에 한 마지막 연설과 관련하여 그의 연설의 취지를 통해 ‘린든’이 추구했던 ‘리더십’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음. 또한 ‘린든’에게 있어서 ‘시민권법’이 가지는 중요성과 그의 대통령직으로 있을 때의 아쉬웠던 마음 등을 ‘린든’의 대화 등을 통해 잘 이야기해 줌.
● 토의
‘린든 존슨’이 추구했던 평등한 국가와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국가의 대통령 ‘리더십’에 있어서 중요한지? 그렇다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 효과는? ‘대통령 리더십’의 마지막을 보며 ‘리더십’에 대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 요약(에필로그-죽음과 기억에 대하여 4. 시어도어 루스벨트_말년의 리더십)
①시대와 ‘루스벨트’의 조화는 1904년에 정점에 이르렀는데,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잔여 임기, 3년 반을 끝낸 뒤 그는 “대통령 후보로는 미국 역사상 국민과 선거인단 모두에게 최대의 표”를 얻어 자력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하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직후, 그는 “대통령을 연임에 한정하는 현명한 전통”을 언급하며 다시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해 모두를 놀라게 했음(p609). 1908년이면 그가 실질적으로 8년을 재임하게 되는데, 이 기간은 “‘조지 워싱턴’이 현명한 기간이라 판단한 재직기간보다 더 길어” 부적절한 야망으로 열렬한 지지자까지 실망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며, 현직 대통령으로는 드물게 ‘루스벨트’는 후계자로 친구이자 국무위원이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를 선택하고 훈련시켰음(p609). ②‘태프트’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도록 부지런히 뛰어다니기도 했는데, 하지만 공화당 전당대회가 개막되자마자 ‘루스벨트’는 크게 후회했고, 자신의 팔목을 가리키며 한 친구에게 “내가 그런 성명을 발표한 걸 생각하면 이 팔목을 당장 부러뜨리고 싶네.”라고 말했을 정도였으며, ‘루스벨트’가 생각을 바꿨다는 언질을 조금이라도 대표단에게 주었더라면 그가 후보로 지명됐을 것임(p609). ③하지만 ‘루스벨트’는 약속을 명예롭게 지켜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빌 수얼’에게 “사람들은 내 말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그들에게 불신을 준다면 정말 미안할 것”이라 말했으며, ‘루스벨트’는 ‘태프트’를 무조건 지지하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하며, 미국에 그보다 “대통령이 되기에 적합한 인물은 없다고 주장함(p609). ‘태프트’가 취임한 직후, ‘루스벨트’는 1년 예정으로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을 떠났는데, “큰 충격 없이 사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평범한 시민으로 추락하는 삶을 막을 방법”이라 생각한 것이었음(p610). 하지만 귀국하자마자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 부지런함은 되살아났으며, 게다가 진보적인 단체들이 새거모이힐을 연이어 방문하여 19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고 독촉하자, 그의 부산스런 성격은 다시 타올랐고, 진보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태프트’ 정권에서 따분한 보수주의자들이 다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과거의 성과를 위협하고 있었음(p610). ④“전투를 무수히 경험한 군마처럼” ‘루스벨트’는 마침내 출마를 선언하며, 한때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도록 키워낸 현직 대통령에게 도전했고, 하지만 전당대회에서 ‘태프트’에게 패했고, 결국 ‘루스벨트’는 진보 세력을 대표한 제3당 후보로 나서기로 결정함(p610). 상원의원 ‘촌시 드퓨’ (Chauncey Depew)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공화당이 둘로 분열된 까닭에 “어느 시체가 더 많은 꽃을 얻느냐 하는 의문밖에 남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전은 처음부터 민주당 후보, ‘우드로 윌슨’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으며, 하지만 10월 중순, 우연한 사건으로 경쟁 구도가 뒤집힐 조짐이 보였고, ‘루스벨트’가 연설장에 가려고 밀워키의 한 호텔 앞에 주차된 무개차에 오르는 순간, 암살범이 권총을 꺼내 들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루스벨트’의 가슴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는데, 탄환이 ‘루스벨트’ 호주머니에 있던 금속 안경집 때문에 굴절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다.”(p610). ⑤‘루스벨트’는 당장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연설장으로 향했는데, 하지만 얼굴의 혈색이 옅어지며 창백하게 변했고, 그래도 ‘루스벨트’는 연설을 완전히 끝낸 뒤에야 병원에 입원했으며, ‘루스벨트’가 생명을 노린 시도에도 의연하게 대응하자, 그에 대한 지지도가 급증했음(p611). 한 민주당 연설가는 “‘루스벨트’의 가슴에 남은 탄환이 ‘윌슨’의 대통령 당선을 죽였다.”고 염려하기도 했는데, 투표일을 일주일 앞두고, ‘루스벨트’는 카네기홀에서 마지막 유세 연설을 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으며, 그때까지 선거 운동에서는 신랄한 어조로 상대들을 비판했지만, 마지막 연설에서는 진보당이 주장하는 원칙들을 설명하는 데 주력했음(p611). ⑥‘루스벨트’는 “한 세대 내에 사회정의를 쟁취하려는 투쟁이 시작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는다며 청중의 마음을 빼앗았는데,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지속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이 유산자와 무산자를 구분짓는 끔찍한 분할선으로 갈가리 찢어질 것이라 경고했으며, 그러고는 “이기든 패하든 간에 나는 이번 싸움에서 혼신을 다했던 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던 것만으로 한없이 기쁩니다.”라며 연설을 끝냈음(p611). ‘루스벨트’가 그때까지 어떤 제3당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얻었지만, 결국 ‘우드로 윌슨’이 승리를 거두었는데, 무엇보다 분당으로 ‘루스벨트’가 내세운 진보적 대의명분이 상처를 입은 것이 더 큰 타격이었고, 더구나 2년 전의 승리를 거두었던 공화당의 진보적 의원들도 많은 주에서 패배했음(p611). ⑦정신적으로 곤경을 겪거나 개인적으로 슬픔과 우울감에 빠질 때마다 ‘루스벨트’는 육체적 도전과 모험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잊으려 했는데, 대통령직을 떠난 후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으로 충격을 완화했듯이, 당시 55세이던 ‘루스벨트’는 “소년으로서의 마지막 기회”라며 남아메리카로 향했고, 브라질 열대우림의 심장부를 흐르는, 지도에도 없는 ‘의혹의 강’(The River of Doubt)을 탐사하는 것이 목적이었음(p612). 이번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에다 말라리아까지 걸려 거의 죽을 뻔했고, 그 결과로 심신이 크게 약화됐는데, ‘루스벨트’가 한 친구에게 남긴 표현을 빌자면, “브라질 황무지에서 10년의 수명을 빼앗겼다.”(p612) ⑧하지만 열렬한 지지자들은 ‘루스벨트’라는 별이 저물었다는 걸 믿지 않았고, ‘루스벨트’에게 191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라고 압력을 가했는데, ‘루스벨트’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며, 현실적인 눈으로 시대의 흐름을 직시했음(p612). “12년 동안 나는 국민들로부터 크게 신뢰받고 사랑받았다. 그 덕분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굳게 믿은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석탄 파업을 해결했고, 미래 세대를 위해 국립공원을 지정하고 자연자원을 보존하며, 경제적으로 공정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 트러스트를 혁파하는 규제 법안을 제정하는 데는 그가 유용했던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결코 변하지 않았지만, 무력증과 위험한 보수주의로 추락한 공화당원들이 나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할 것이라 상상하는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사상의 흐름에 큰 변화가 있었다.”라고 생각했음(p612). ⑨“독립 혁명이나 남북전쟁을 할 때처럼 미국에 영웅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나를 후보로 지명하는 것은 전혀 현명하지 않은 짓이다!” ‘루스벨트’는 불필요한 존재라는 좌절감과 우울감에 빠져 자신을 원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마침내 1917년 4월 제1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개입하여 영웅적인 행동이 필요할 때가 도래했으며, 오래전 ‘멕시코’와의 국경 분쟁이 끓어오르기 시작했을 때, 친구 ‘헨리 캐벗 로지’에게 “여기에서 일하고 거칠고 용맹무쌍한 카우보이들 중에는 훌륭한 싸움꾼이 많다.”고 말했듯, 배드랜드에 있던 청년 ‘루스벨트’는 기병 중대를 모집하겠다고 제안했었음(p613). 또 미국-스페인 전쟁에서는 유명한 ‘거친 기병대’(러프 라이더스)를 성공적으로 모집하고 지휘하는 능력을 발휘했는데, 이번에도 ‘루스벨트’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에게 지원병 사단을 모집할 권한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수천 명이 그의 사단에 입대하겠다고 몰려들었지만, ‘윌슨’은 ‘루스벨트’의 요청을 거부했음(p613). ⑩‘루스벨트’는 전쟁에 대한 불안할 정도로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과장하는 경향이 짙었는데, 그는 “전사라는 멋진 포상”을 무엇보다 가치있는 보상이라 생각했음(p613). 아내 ‘이디스’가 중병에 걸렸을 때도 전쟁에 참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내의 간호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고, 언젠가는 “전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늑대의 심성이 꿈틀대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또 어떤 때는 전쟁의 승리는 평화의 승리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했음(p613).
● 비평
필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태프트’에 대항하여 제3의 진보당으로 대통령에 출마한 경과 및 그가 ‘전쟁’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바 등을 그의 대화와 모습을 통해 잘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 토론
전쟁 중에 필요한 ‘리더십’의 모습이 있다면? 전쟁에 대한 ‘리더십’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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