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6-22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9(린든존슨_리더십의 계승)

presentlee 2026. 5. 31. 01:18

https://youtu.be/P--brk9bw8g?si=H32cbcjE9eX38QJv

 

[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9(26-스물둘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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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3-4부 리더와 시대 2. 린든 존슨_케네디의 서거 이후)


①‘린든 존슨’은 ‘케네디’ 대통령의 서거 이후 ‘케네디’가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갔으며, 그는 거만함을 억누르고, 목소리까지 낮추며 겸양의 미덕을 보였는데, 또한 암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끈기 있게 그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끊임없이 요청했음(p534).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케네디’ 내각과 백악관 참모 중 대다수가 과도기에 직책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사실이, 그 혼돈의 시기에 그가 흠잡을 데 없이 처신했다는 증거인데, ‘존슨’은 권력을 잡을 기회가 오면 어떻게 행동하겠다고 오래전부터 연습한 듯했고, 그런데 느닷없이 기회가 찾아왔으며, 그는 우연히 권력을 잡았고, 그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고 싶었음(p534). ②‘린든 존슨’이 입법 절차의 달인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했는데, 그는 대통령직에 오른 첫날부터 정부가 국민의 삶을 위해 행사해야 하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대통령 권력을 사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으며, 그는 국내 문제에서 미국을 어디로 끌어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음(p534). 암살이 있었던 날 오후 6시,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존슨’은 전임 대통령이던 ‘해리 트루먼’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전화로 연락을 취했고, 행정부 청사의 부통령실에서 의회 대표단을 만났는데, 오후 10시에는 워싱턴의 스프링밸리 구역에 있던 3층 개인 주택, ‘더 엘름스’(The Elms)로 귀가해 소수의 보좌관과 친구를 만났음(p534). ③ 그는 3명의 측근 보좌관, ‘잭 발렌티’(Jack Valenti), ‘클리프 카터’(Cliff Carter), ‘빌모이어스’(Billy Moyers)에게 “나와 함께 밤을 보내주게.”라고 부탁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 ‘존슨’은 혼자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고, 그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의 입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가까운 조언자들이 절실히 필요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고 ‘레이디 버드’가 침실로 돌아가자, ‘존슨’도 잠옷으로 갈아입었음(p535). 그리고 큼직한 침대에 누워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을 쉬지 않고 보도하는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며 세 측근에게 무엇인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는데, ‘발렌티’의 회고에 따르면, “다음날 아침, 동이 트기 전부터 선임 대통령은 자신의 계획과 목표, 또 그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하는 더 큰 목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p535) ④‘케네디’가 제출한 모든 진보적인 법안이 의회에서 계류 중이었는데, 결국에는 법제화되는 미래를 눈으로 보았던 게 분명했으며, “나는 ‘케네디’의 감세안을 상원재정위원회(Senate Finance Commitee)로부터 받아낼 것이고, 그럼 우리 경제는 다시 콧노래를 부르게 될 것인데, 다음에는 의회에 오래전부터 표류되고 있는 ‘케네디’의 민권법안(공공장소는 물론 취업이나 교육, 법률상으로 인종과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가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함. 당시 미국은 흑백분리문제가 심각했고, 1955년 12월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감된 ‘로자 파크스’ 사건을 계기로 흑인 사회에 반발이 심화되었음)을 통과시킬 것이다. 쉼표 하나, 단어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킬 것이다. 그 다음에는 전국 어디에서나 누구나 투표할 수 있도록 모든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빈부의 차이, 피부색의 차이, 출신 지역의 차이에 상관없이 전국의 모든 남녀가 연방정부로부터 장학금이나 보조금 혹은 융자를 받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도 제정할 것이다. 또 전에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해리 트루먼’의 의료보험 법안도 통과시키고 싶다.”(p536) ⑥졸린 듯했던 부통령은 훗날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로 일컬어진 정책을 개략적으로 밝혔을 때,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듯했는데, 새벽 3시까지 세 보좌관과 함께하며, ‘케네디’가 제안한 법안들을 교착 상태에서 끌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과 ‘존 F. 케네디’의 뉴프런트어 정책(New Frontier, 건국 초의 개척정신으로 모든 문제를 타개해 나가자는 뜻으로 내세운 슬로건임. 국내 문제의 개선(특히, 빈곤 문제 해결)과 해외 개발도상국에 대한 민주주의 추진을 목표로 했음)을 훌쩍 뛰어넘어 인종과 경제 정의에 기반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결의를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존슨’의 그런 비전은 근거 없는 허황된 이야기로 여겨졌을 것임(p536). ‘존슨’이 제시한 비전은 오래전부터 그가 머릿속으로 궁리하던 것이었는데, 그는 대중에 영합하던 아버지에게 정부의 역할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란 믿음을 물려받았으며,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라고 아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되풀이하던 아버지였고,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에 참여해 일하는 동안, 정부는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믿음은 더욱 굳어졌음(p536). ⑦거의 치명적인 심장마비가 있은 뒤에 “특별한 조치”를 요구한 연설에서도 언급된 그 비전은, 1957년 시민권 법안을 통과시키려던 노력에도 영향을 미쳤고, ‘모이어스’는 ‘존슨’이 더 엘름스에서 혼잣말처럼 비전을 중얼대던 때를 회상하며 “그날 그는 밤새 몇 개의 머리를 동시에 굴린 듯했다. 무서우면서도 경이로웠다!”라고 말했는데, 어떻게 ‘존슨’은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었을까?(p537). [극적으로 시작하라] ‘린든 존슨’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 즉 다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필요조건은, 급작스레 발생한 ‘리더십’의 공백을 자신이 메울 수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입증해 보이는 것이었는데, ‘존슨’ 자신이 의혹을 일소하고, 의심을 지워주고,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것이었고, 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존슨’ 신임 대통령은 본래의 기질에 걸맞게 기민하게 행동했음(p537). ⑧정치인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존슨’은 새로운 직책을 맡을 때마다 신속하고 확실한 시작으로 주변의 관심을 끌어모았는데, 이번에도 ‘케네디’의 장례를 끝내고, 바로 다음날 국민을 상대로 연설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결정에는 위험이 없지 않았음(p537). 예외적인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존슨’은 공식적인 환경에서 대규모 관중을 상대로는 설득력 있게 연설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데, 소규모 모임에서는 여유만만하게 좌중을 사로잡는 사람이 이상하게도 연단에 서면 뻣뻣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그 연설은 ‘존슨’의 정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연설이 되기에 충분했음(p537). ⑨‘모이어스’가 말했듯이 “텔레비전 중계를 보던 국민이 ‘저 사람은 누구야?’라고 강한 의문을 품을 것”이고, 그가 연설을 끝내고 연단에서 물러설 즘에는 “국민이 그를 신뢰하거나 그렇지 않을 것이었다.”(p537) [자신의 강점으로 인도하라] ‘존슨’은 연설을 앞두고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첫째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방송 카메라를 앞에 두고 연설하는 것이 아니라, 양원합동회의장에서 의원들을 앞에 두고 연설하기로 한 것이었으며, 의회는 거의 30년 전부터 그의 본거지였고, 그가 권력을 행사하며 많은 업적을 남긴 곳이고, 그런 만큼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음(p538). ⑩또 청중석을 차지할 대다수는 오랜 친구였고 동료였는데, 연방대법원 판사들과 국무위원들도 참석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합법적인 권력 승계를 보여줄 수 있었으며, 둘째는 ‘존슨’은 이 기회를 활용해 ‘케네디’의 국내 정책이 법제화되지 못한 채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옛 동료들에게 호소하기로 했고, 암살이 발생하기 한 달 전, 칼럼리스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현재의 의회 시스템이 미국에 중대한 위험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이유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음(p538). 또 잡지 <라이프>는 사설에서, “현재의 의회는 과거의 어떤 의회보다 오랫동안 회의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다.”고 비판했는데, 의회가 입법행위에 소극적인 까닭에 국가의 위기가 확대되고, 미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국내외에서 광범위한 비난에 직면하게 됐다는 데에 ‘존슨’도 동의했음(p538).
● 비평
 필자는 ‘린든 존슨’이 ‘케네디’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 자신의 강점을 통해 국정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 행한 조치들을 ‘리더십’의 관점에서 잘 분석하고 있음.
● 토의
 자신만의 ‘리더십’ 스타일을 찾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 요약(제3-4부 리더와 시대 3. 린든 존슨_‘케네디 리더십’의 계승)


①‘케네디’의 국내 정책을 계승하기로 결정하면서 ‘존슨’은 그때까지 가장 깊숙이 관여하던 분야에서 가장 확실하게 아는 분야, 또 세세한 정책까지 편하게 다룰 수 있는 분야를 선택했는데, ‘케네디’ 정부가 특별히 집중하던 외교 문제와 군사 문제는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고, 국제 문제가 표면적으로 조용하던 시기에 대통령이 된 것도 그에게는 행운이었으며, “나를 대통령직에 올린 무의미한 사건들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입법자로서의 내 경험을 활용해 입법 절차를 제대로 기능하게 만들라는게 아닌가 싶었다.”(p539) 그래서 ‘케네디’의 죽음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뉴프론티어 정책과 관련된 법안 통과에 “동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여긴 ‘존슨’은 “망자의 프로그램을 순교자의 대의”로 바꿔치기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기회의 창은 무척 좁았기에 성공할 기회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우호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기 전에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야 했음(p539). ② [의제를 단순화하라] 처음부터 ‘존슨’은 ‘케네디’의 국내 정책을 두 가지 의제로 압축하기로 결정했는데, 하나는 남부에서 인종차별을 종식하기 위한 시민권 법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감세였으며, 더 엘름스에서 ‘존슨’의 보좌관들은 그런 선택의 타당성을 두고 오랫동안 논의하고 토론했음(p539). 법률 보좌관이던 ‘에이브 포터’(Abe Fortas)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는데, “한번은 누군가 시민권 통과를 위한 국회 활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의 최우선 과제로 두는 걸 반대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많은 동전이 있지 않다면, 시민권에 그 동전을 쓰면 동전이 부족하게 될 거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존슨’은 “그런가? 그럼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지?”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뜻을 명확히 드러냈음(p540). ③1963년 11월 27일 정오, ‘존슨’은 하원 본회의실에 입장했는데, 회의실에는 깊은 침묵이 감돌았고, ‘존슨’은 “오늘 이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있었다면 나는 모든 것을 흔쾌히 포기했을 것입니다.”라며 연설을 시작했으며, 슬픔과 겸손이 복합된 감동적인 어조였고, 추모 연설이자 행동을 촉구하는 취임 연설이었음(p540). ‘1961년 1월 20일 ‘존 F. 케네디’는 우리의 국가적 과업이 “이 행정부의 1,000일 만이라도, 행정부의 임기 동안에도, 어쩌면 이 행성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시작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새롭게 결의를 다지며 저는 모든 미국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계속합시다!’(p540) ④국내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세계인에게 미국의 부활을 알렸던 ‘케네디’의 취임 연설과 달리, ‘존슨’은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국내 정책에 대한 바람을 개략적으로 제시했는데, ‘첫째, ‘케네디’ 대통령이 추진하려고 그토록 오래 싸웠던 시민권 법안을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통과시키는 것보다 그를 기리는 더 나은 추도사는 없을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 우리는 평등한 권리에 대해 충분히 오랫동안 논의해왔습니다. 100년, 아니 그전부터 말해왔습니다. 이제 다음 장을 쓰고, 법전에 포함시켜야 할 때입니다. 둘째, ‘케네디’ 대통령이 올해 내내 애썼던 감세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만큼 그의 과업을 계승하기에 적합한 행위도 없을 것입니다.’(p541) ‘존슨’은 “의회는 의견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필요할 때는 현명하고 용기 있고 신속하게 행동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그런 능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는데, 한 기자가 지적했듯이, ‘존슨’은 ‘리더십’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행동을 촉구할 때 “그가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가장 존경했던 사람, 즉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본보기로 삼은 듯 했으며, ‘루스벨트’가 국민이 어둠의 시간을 뚫고 나갈 수 있도록 “행동, 그것도 지금 당장의 행동”을 촉구했듯이, ‘존슨’도 “우리가 행동할 수 있고, 그것도 지금 당장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자고 촉구했음(p541). ⑤‘루스벨트’와 ‘존슨’은 우울감과 두려움에 빠져 불안에 떨던 국민을 일으켜 세웠고, 그들은 낙담과 혼란을 떨쳐내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희망과 자신감을 주려고 애썼는데, ‘루스벨트’와 ‘존슨’은 실의에 빠진 국민을 보살폈고 국가의 사기를 높여주었음(p542). ‘존슨’이 연설을 끝내자, 모두가 기립박수로 화답했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글썽였는데, “기막힌 공연이었다. 지극히 어려운 환경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연설,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연설”이었다는데 모든 평론가가 동의했으며, 연설에 담긴 단어만큼이나, 그의 정중한 태도와 절제된 말투, 진지하면서도 단호한 표정에서도 권력과 목적의식이 ‘린든 존슨’이란 후임자에게 완전히 이양됐다는 게 읽혔음(p542). ⑥신문 기사들도 그런 사실을 확인해 주었는데, ‘안심해도 좋은 리더십, 진중하면서 강한 모습을 보인 ‘존슨’, 새 지도자, 시험을 통과하다’ 국민 모두가 애도의 분위기에 사로잡힌 상황에서 행해진 이 한 번의 연설로, ‘린든 존슨’은 불가능하게 보이던 간격을 뛰어넘었는데, ‘존슨’은 권력의 고삐를 쥐었고, 갑작스레 그 자리에 오른 대통령으로서 지향할 방향과 목적의식을 국민에게 전달했음(p542).
● 비평
 필자는 ‘존슨’의 ‘케네디’의 정책에 대한 계승과 이를 통한 ‘리더십’의 이양이 함께 이루어짐을 간파하고, 이에 적합한 연설을 통해 미국 국민의 마음을 위로할 뿐안 아니라, 미완성된 입법과 정책을 완성하는 기회로 삼은 탁월함을 잘 표현함
● 토론
 ‘리더십’의 이양, 혹은 권력의 계승을 위해 ‘리더십’ 갖추어야 할 자질과 태도는?


□ 요약(제3-4부 리더와 시대 4. 린든 존슨_‘대통령 행정 리더십’)


① [최대 효과를 얻는 방향으로 전투 순서를 결정하라] ‘린든 존슨’은 두 목표 중 시민권 법안 통화를 우선시했지만,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입법화 과정이 가짜 통로와 함정 및 막다른 길로 가득한 미로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고, ‘존슨’은 의사당에서 하원의원들이나 상원의원들과 의견을 교환한 뒤, 시민권 법안에서 의견이 크게 갈리는 쟁점을 두고 다투기 전에 감세 문제를 먼저 밀어붙이기로 결론내렸음(p543). 하지만 ‘케네디’의 보좌관이던 ‘시어도어 소런슨’(Theodore Sorensen)은 전투 순서의 변경에 반했는데, ‘소런슨’은 ‘존슨’에게 그가 부통령이었을 때 참석하지 못한 의회 지도자 조찬에서 시민권 법안을 먼저 다루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고, ‘존슨’은 ‘소런슨’의 조언을 귀담아들었지만, 그런 절차 문제에서는 ‘케네디’ 팀보다 자신의 직감과 경험을 더 신뢰했으며, 시민권 법안의 통과를 무작정 밀어붙이면 시민권 법안만이 아니라 감세 법안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음(p543). ② 시민권 법안은 하원에서 남부가 지배하는 위원회를 통과하더라도 상원에서 차단될 가능성이 컸는데, 상원에서 남부 지도자들이 필리버스터를 조직적으로 시행하여 법안이 철회되거나, 법안 지지자들이 3분의 2의 동의를 확보하여 토론을 종결할 수밖에 없을 때까지 다른 모든 사안에 대한 논의는 중단될 터였고, 필리버스트가 지속되는 한 다른 법안은 상정될 수 없었음(p543). 교착 상태가 길어지면 국가 위기가 심화되고, 새 정부의 전망도 크게 상처를 입기 마련이었는데, 반면 감세 법안이 먼저 통과되면 탄력을 얻을 가능성이 컸고, 게다가 경기가 회복되는 뚜렷한 증거까지 보이면, 정부는 시민권 문제 해결에 매진할 수 있었음(p543). ③하지만 감세 법안의 확실한 법제화도 결코 장담할 수 없었고, 그 법안은 의회에서 13개월 동안 계류된 후에야 상원을 통과했는데, 상원재정위원회에서 꼼짝달싹하지 못했으며, 재정위원회 의장이던 버지니아 출신의 보수적인 상원의원 ‘해리 버드’(Harry Byrd)가 감세 법안을 완강히 반대한 때문이었음(p544). 전형적인 남부인이었던 ‘버드’에게는 법안을 위원회에 묻어둘 권한만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토론에 부칠 권한도 있었는데, ‘케네디’의 사망 이후에는 진보 진영이 기업과 개인에 대한 감세를 찬성하고, 보수 진영이 반대하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으며, ‘케네디’의 젊은 경제 보좌관들은 감세가 경제를 활성화하고, 세수를 증대하여 광범위한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음(p544). ④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균형 예산을 복음처럼 고수하고 적자 재정을 반대했으며,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보수적인 이념을 ‘해리 버드’보다 명확히 대표하는 의원도 없었는데, ‘존슨’은 감세 법안을 ‘버드’의 손아귀에서 떼어놓을 만한 방법을 모색함과 동시에, 재정위원회에 소속된 의원들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법안 통과를 하소연했고, 그러다 플로리다의 ‘조지 스매서스’(George Smathers)로부터 ‘버드’가 예산을 심사할 수 있는 마감 시한인 1월 9일까지 법안을 공청회에 묶어두기로 결정했다는 정보를 얻었음(p544). 요컨대 1,000억 달러가 ‘버드’에게는 ‘마법’의 선이었던 것인데, ‘존슨’은 희미한 희망의 빛을 보았고, 예산을 심리적 경계인 1,000억 달러 이하로 낮출 수 있다면, ‘버드’가 궁극적으로 반대하더라도 법안을 상원의 토론과 투표에 부치는 타협은 가능했던 것임(p544). ⑤‘린든 존슨’은 ‘버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케네디’가 암살되고 보름이 지나지 않은 12월 4일, ‘존슨’은 ‘버드’를 백악관에 초대했으며, “‘해리’ 의원, 내일 백악관을 방문해 나를 만나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지혜를 빌리고 싶습니다.” 대통령의 리무진이 상원의원 회관으로 ‘해리’를 모시러 갔으며, ‘해리’가 백악관에 도착하자, ‘존슨’은 직접 그를 맞이했고, 안내자 역할을 자임하며 웨스트윙을 함께 걸었음(p545). 그러고는 실내 수영장과 마사지실을 지나 집무실 옆의 작은 방에 마주 보고 앉아, ‘버드’가 좋아하는 감자 수프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했는데, 상원에서 함께했던 시절에 대해 담소를 나눈 후, 예절을 갖춘 흥정을 시작했음(p545). ⑥“‘해리’ 의원, 감세는 중요합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자 ‘버드’가 즉각 반격했는데, “감세하면 예산을 크게 줄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존슨은 “맞습니다.”라고 동의하고는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말 운이 좋게도 예산을 1,050억 달러나 1,070억 달러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음(p545). 물론 시골 장터의 흥정처럼 ‘존슨’이 높게 시작했다는 걸 둘 모두 알고 있었는데(‘케네디’의 실행 예산은 1,030억 달러였고, 10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음), ‘버드’가 “너무 많습니다. 대통령님, 너무 많습니다.”라고 말하자, ‘존슨’은 “추정치를 말한 겁니다. ‘해리’ 의원. 나도 그대로 인정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적절히 조절하면 1,000억 달러 이하로 낮출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는데, “그렇다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음(p546). ⑦‘버드’가 약속을 비키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던 까닭에 ‘존슨’은 곧바로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말했는데, “‘해리’ 의원, 당신이 이겼습니다. 당신을 만나 정말 반가웠습니다.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버드’를 정중히 출입문으로 안내했음(p546). [약속을 지키고 의무를 다하라] 예산 편성이라는 힘든 일이 시작됐으며, ‘케네디’ 팀원들은 최대한 깎고 깎은 예산이라며 더 이상 깎으면 뼈만 남을 거라고 ‘존슨’에게 항의했고, 하지만 ‘존슨’은 요지부동이었고, “1,000억 달러에 이르지 못하면 화장실에 갈 생각도 마시오!”라고 모두에게 경고했는데, ‘존슨’은 그때를 회상하며 “나는 항상 그랬지만 그 예산에도 정말 공을 들였다. 거의 모든 항목을 빠짐없이 연구한 까닭에 꿈에도 예산이 나타날 정도였다.”고 말했음(p546). ⑧연방 예산은 보통 시민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통계자료집으로 “시어스 로벅 백화점 카탈로그보다 두꺼웠고, 전화번호부보다 재미없었지만”, 책임지고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대통령에게는 “모든 미국인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인간적인 자료”였으며,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그랬듯이, ‘린든 존슨’도 국민은 숫자에 둘러싸여 살며 정부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생각했음(p546). ‘존슨’은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에 힘을 기울였으며, 연방 건물들을 정부 소유의 토지에 모았고, 기관들에게는 물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외에도 백악관의 전등까지 끄고 다닌 까닭에 ‘전구 린든’(Lightbulb Lyndon’이란 별명을 얻었음(p547). ⑨특히 ‘존슨’은 국방부를 비롯해 모든 부처에 메모를 보내 예산을 삭감할 항목들의 목록을 요구했으며, ‘존슨’이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인 까닭에 10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삭감이 국방부 예산에서 이뤄졌고, 당시 국방부 장관은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였음(p547). ‘버드’는 감세 법안의 심의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예산안을 문서로 받아 자신의 참모들이 분석할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는데, 속임수를 쓰면 ‘버드’의 팀이 어렵지 않게 찾아낼 것이라는 걸 알았던 까닭에 ‘존슨’은 예산을 970.5억 달러까지 삭감하고 논쟁의 여지를 넉넉하게 남겼으며, “당신은 대통령에게 예산을 삭감하게 만든 상원위원이었다고 손자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존슨’은 이렇게 말하며 이번 성과에 대한 판단은 미래의 몫이라는 걸 ‘버드’가 깨닫기 바랐음(p547). ⑩‘존슨’은 상호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약속을 지키면 ‘버드’도 약속을 지킬 것이라 확신했으며, 2월 초, ‘해리 버드’ 재정위원회 의장은 마침내 감세 법안을 토론과 표결에 부쳤고, 하지만 시간이 여전히 절대적으로 중요했음(p547). 상원에서 토론을 거친 뒤 하원과의 양원 합동위원회까지 올라가는 일반적인 입법 과정에서 몇 주, 심지어 몇 달이 걸릴 수 있었으며, 그 지루한 과정에서 승리하더라도 의원들이 빈둥대고 시간을 끈다면, “순교한 대통령을 향한 민심을 이용하려던 기회의 창은 완전히 닫힐 것”이란 걱정을 ‘존슨’은 떨치지 못했음(p547).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린든 존슨’이 ‘케네디’의 정책을 이어받아 시민권 법을 다루기에 앞서, 감세법안을 다루기로 결정하고, 재정위원회 ‘해리 버드’ 상원위원과의 예산액에 대해 협상한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였음. ‘거래적 리더십’의 핵심요소는?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6하우스(이현재)_린든존슨_비전의리더십.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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