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6-20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7(프랭클린 루스벨트_개혁리더십)

presentlee 2026. 5. 17. 02:43

https://youtu.be/1UuxCYdtlN0?si=_rRypCXAl8M5dQkK

 

[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7(26-스물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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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8. 프랭클린 루스벨트_개혁 리더십)


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취임 이 후 은행거래를 1주간 중지시키며 은행의 건전성을 분류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주기 위한 ‘루스벨트’ 정부의 계획과 관련하여 대통령은 다시 은행거래를 재개하기 전 대국민 담화를 실시하였음(p506). ‘프랭클린’은 “시간과 거리와 공간의 장벽을 거의 없애버린 20세기의 경의로운 발명품”인 라디오를 이용하였고, 대략 6천만명이 대통령의 라디오 담화를 청취했으며, 그의 목소리에는 상대에게 그의 말을 믿고 신뢰하게 만드는 따뜻함과 자신감이 있었는데, 하지만 백악관이 걱정했듯, 진정한 시험대는 은행이 영업을 다시 시작한 이후의 국민의 반응이었음(p506). ②초기에는 창구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는 보도가 이어졌는데, “그 줄은 돈을 인출하려는 줄이 아니라 돈을 다시 예치하려는 줄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머리기사는 똑같았으며, <시카고 트리뷴>은 “도시가 신뢰를 회복했다”고 선언했고, <뉴욕타임즈>는 “은행에 돈을 예치하려는 줄, 신뢰 회복의 증거”라고 보도했음(p506). 많은 예금자가 대통령의 라디오 담화를 통해 은행을 다시 신뢰하게 됐다고 증언했으며, 샌안토니오의 한 은행장은 “고객이 몇 주 전에 돈을 인출하려고 달려들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 듯했다.”며 “그들의 이름과 서명은 똑같았지만 그들의 마음 상태는 완전히 달랐다.”고 덧붙였음(p506). ③‘루스벨트’는 은유나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하고 평이한 언어로 설명과 설득이란 목표를 달성했는데, 미국을 두려움과 공포로 짓누르던 은행 위기가 진정됐으며, 수요일에 주식 거래가 다시 시작되자, 주가가 15퍼센트나 상승하고, 수년 만에 최고의 상승폭을 기록했음(p506). 한 역사학자가 말했듯, 연설이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기준으로 할 때 “제1회 노변담화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연설 중 하나”로 손꼽히며, 미국이란 환자는 비상한 난국을 이겨냈고, 그제야 ‘루스벨트’라는 의사는 그 질병의 근원을 치유하는 방법을 처방할 수 있었음(p507). ④[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라. 지속적인 개혁을 시행하라] 처음에 ‘루스벨트’는 긴급 은행 법안을 통과시킨 후에 의회를 휴회할 계획이었는데, 하지만 첫 승리에서 얻은 기세를 헛되이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고, 그래서 의회 지도자들에게 회기를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훗날 ‘100일’(The Hundred Days)로 알려지게 된 역사적인 희생을 낳은 요청이었음(p507). 처음부터 ‘루스벨트’는 “회복 과정에는 과거의 영향을 제거하고, 다시는 쉽게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오래된 폐단을 근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는데, ‘루스벨트’는 미국이 직면한 상황을 구조적인 질병, 즉 많은 분야에 팽배한 병폐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며, 그 오래된 폐단, 과거의 파괴적인 영향, 지속적인 치료 가능성을 방해하는 약점은 무엇이었을까?(p507) ⑤‘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생각에, 주된 장애물은 산업 자본주의였는데, 잠시나마 진보적인 입법 행위가 이어졌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우드로 윌슨’시대를 제외하면, 산업 자본주의는 규제 받은 적이 거의 없었고, 구조적인 문제가 한 세대 동안 곪아터진 끝에 대공황이라는 파국적인 결과로 드러난 것이었음(p508).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진단한 병리적 현상은 사회경제적인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데, “우리 농업, 우리 상업, 우리 공업의 뿌리”까지 병들었고, 따라서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재조직과 정교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확신했으며, 또 최상층에 특권이 집중된 피라미드형 질서를 “농민과 노동자와 기업인으로 이루어진 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새로운 질서”로 대체할 경우에만 그 목표는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했음(p508). ⑥‘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예측했듯이, 은행 위기가 해결되자마자 “회복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개혁을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소수가 등장했는데, 그 소수는 뉴딜이 추진하려는 광범위한 행동 계획을 저항하기도 했으며, 피라미드의 정점을 차지한 그들은 은행을 구하고 기업을 긴급 구제하는 것만으로도 전 국민이 낙수효과를 누릴 것이라 믿었음(p508). ‘루스벨트’의 지적에 따르면, “그들은 회복과 개혁이 항구적인 행복을 이루어내기 위한 쌍둥이 조건이라는 걸 몰랐다.” 은행의 회복이 전쟁의 개막을 알리는 결정적인 전투였다면, 개혁은 광범위한 전선에서 오랫동안 벌여야 하는 전쟁이었음(p508). ⑦ ‘루스벨트’는 1933년 5월 7일 제2차 노변담화를 통해 사회와 경제의 구조적인 개혁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밝히기로 결정했는데, ‘루스벨트’가 시도하려던 변화는 무척 포괄적이었기 때문에 연설문 작성자이던 ‘레이먼드 몰리’는 ‘루스벨트’가 자유방임 철학을 멀리한다는 사실에 역점을 두고 원고를 작성했고, 즉,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민간 기업을 보호하고 모든 규제를 나쁜 것이라 생각하는 자유방임주의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음(p509). ⑧ “취임식 전날 밤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루스벨트’는 진지해 보였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루스벨트’는 ‘자유방임 철학이 파산한 것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면 지금 ‘허버트 후버’가 여기 앉아 있겠군.‘이라고 말했으며, ‘루스벨트’는 8주 전에 다룬 은행 위기에 대한 노변담화의 연속편으로 두 번째 라디오 담화를 시작했는데, 그는 깊이 뿌리내린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전반적인 계획을 알렸고, 특정한 정책의 목표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했음(p509). 과거의 제도로 돌아갈 수는 없었는데, ‘루스벨트’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새로운 세계는 정부가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세계가 아니라, 정부와 농업, 공업과 교통이 동반자 관계에 있는 세계였고, 새로운 협력 관계의 중심에는 대통령과 국민 간의 혁명적인 결속이 있었는데, 달리 말하면, 일반 국민이 ‘루스벨트’에게는 통치의 동반자였음(p509). ⑨‘루스벨트’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로 국민을 위로하지 않았고, 오히려 “과장된 허풍으로 우리가 과거의 번영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경고했는데, 조직화된 행동만이 미국의 추락을 막을 수 있었으며, ‘루스벨트’는 경제를 규제하고 아래에서 위가지 미국인의 삶을 안정하게 보장하는 역할을 연방정부에 새롭게 부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승인해 달라고 의회에 요구했음(p509). “더 건전한 토대와 더 건전한 방향”에서 사회 시스템을 재건하려는 그의 목표는, ‘프랜시스 퍼킨스’가 “국민이 중요하다는 그의 일반적인 마음가짐”이라 칭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의회가 휴회한 100일째 되는 날까지 15개의 주요 법안이 통과되고 서명됐으며, 또 수십억 달러의 예산이 책정됐음(p510). ⑩연방정부가 대규모 공공사업을 시행하고, 직접 구제 활동에 나서고, 대출금의 압박감을 덜어주고, 투자자를 보호하고, 은행 예금을 보증하고,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고, 단체교섭권을 제공하고, 농산물 가격을 올리고, 공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는데, ‘구제’, ‘완화’, ‘보호’, ‘보증’, ‘보장’은 모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단어였고, 예방과 규제를 위한 거대한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정책이 시작됐다는 걸 뜻하는 단어였으며, 이 정책들이 결국에는 ‘뉴딜 정책’이 됐음(p510). 당시 사람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00일 동안과 그 이후에 보여준 ‘리더십’에 경의로워했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한 사람이 경제와 사회 전 영역을 아우르는 다각도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일관성있게 시행하는 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었음(p510). ⑪ [열린 자세로 실험하라. 새로운 문제를 다루는 융통성 있는 기관을 설계하라] 첫째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딜의 즉흥적이고 실험적인 면을 강조했고, 대공황에서 비롯된 고통의 바다에 내던져진 ‘루스벨트’에게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데 “본보기로 삼을 만한 전례가 거의 없었다.” 다수의 포괄적인 법을 제정해 집행하며, 과거의 행정적 관례에서 벗어나 실험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음(p510).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롭고 복잡한 문제이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과거 조직에 그 문제를 떠넘기지 않고 새로운 문제를 전담할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p51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은행을 일시 중지하고 개혁하는 법안을 의회를 통해 통과시킨 이후 100일간의 개혁을 잘 보여줌. ‘개혁 리더십’의 모습, 요인은?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9. 프랭클린 루스벨트_뉴딜정책의 시작)


①전통적인 조직은 익숙한 관례에 길들여져 기존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며, 새로운 기관은 혁신과 활력과 속도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자유롭게 구축할 것이라 생각해, ‘루스벨트’는 취임한 이후 18개월 동안 20개의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고, 훗날 머리글자로 알려지게 된 명칭을 부여했음(p511). ‘루스벨트’가 처음 설립한 기관, CCC로 알려진 ‘민간자원보존단’(Civilian Conservation Corps)은 그의 개인적인 작품에 가까웠는데, ‘프랜시스 퍼킨스’의 표현을 빌리면, “때때로 ‘루스벨트’는 거의 예지력에 가까운 지혜와 지식을 번뜩이기도 했다.” 온갖 종류의 이질적인 것들을 기발하고 낭만적이지만 실질적인 프로그램에 모았던 CCC는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구상에 불과했는데, CCC는 3월에 발족할 때 7월 중순까지 25만 명의 청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의욕을 되살려주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음(p511). ②대부분의 청년이 도시에 살았고,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지 않아 “각자의 방식대로 사회에 진출할 기회”를 찾고 있었지만,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낙담하고 우울감에 빠져들었으며, 그때 수십 곳의 국유림이 오랫동안 “애처로울 정도로 방치 상태”에 있어, 잡목으로 뒤덮여 숨조차 쉬기 힘든 지경이었음(p511). 죽은 나무와 떨기나무를 제거하고 새로운 나무를 심어야 했고, 또 방화벽을 세우고 숲길도 만들어야 했는데, CCC는 숲을 치유하며 청년도 치유하는 효과를 거두었고, 상당 부분의 임금이 집으로 보내지며 가족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고 청년들의 숙소 부근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역할도 해냈음(p512) ③CCC는 현재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과 미래를 위한 물질적 투자였는데, ‘루스벨트’가 처음에 머릿속에 그렸듯이, CCC는 나무를 심은 걸 넘어 방황하던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며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심어주는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해냈음(p512). ‘루스벨트’가 국무회의에서 그 계획을 처음 제시했을 때, ‘퍼킨스’는 ‘허황된 몽상’(pipedream)이라 생각했는데, 25만 명의 청년을 어떻게 모집할 것인가? 설령 모집하는데 성공하더라도 어떻게 그들을 국유림으로 이동시키고, 적정한 의식주를 제공할 것인가? 그 엄청난 프로젝트를 어떻게 석 달 만에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겠는가? 이런 모든 의문을 해결한 답은 ‘루스벨트’의 ‘리더십’ 방식-목표를 명확히 세워라. 팀이 세부 사항까지 놓치지 않도록 독려하라. 전통적인 부서 간 경계를 허물어라.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동시에 세워라. 성장과 추진력을 높이기 위해 유형의 구체적인 성공을 만들어가라.-에 있었음(p512). ④국무회의를 반복해 진행하는 동안, ‘루스벨트’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전반적인 방법론이 구체화됐는데, 네 부처가 그 프로젝트에 협력했고, 노동부는 생활보호 대상자 명부에서 적절한 청년을 선발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내무부와 농림부는 작업 장소를 선정하고, 해당 지역에 적합한 프로젝트를 설계했음(p512). 육군성은 청년들을 작업장에 수송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캠프를 건설해 청년들에게 적정한 의식주를 제공하고 임금까지 지불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예비역 장교들이 다시 복귀해 캠프를 관리했고, 내무부는 청년들의 작업을 감독할 민간 전문가를 선발했음(p513). ⑤‘루스벨트’는 CCC를 이끌고, 부처들의 협력을 끌어낼 전문가로 ‘로버트 페크너’(Robert Fechner)를 선택하는 수완을 발휘했으며, ‘페크너’는 기계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노동조합 지도자였음(p513). ‘루스벨트’가 첫 캠프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물었을 때, ‘페크너’는 “한 달”이라고 대답했으며, ‘루스벨트’가 “너무 길다!”라고 반발하자, ‘페크너’는 지체 없이 절반으로 줄였고, 그때서야 ‘루스벨트’는 “좋다!”라고 간단히 대답했음(p513). ⑥25만 명의 청년에게 7월 중순까지 국유림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독려함과 동시에 ‘루스벨트’는 국무위원들에게 일반적인 기대치를 넘어서는 목표를 설정하라며 도전의식을 자극했는데,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오. 어떤 변명도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훗날 ‘퍼킨스’는 “프로젝트를 대담하게 구상하고 신속히 추진하면서 세부 사항에 대한 구민을 남에게 떠넘기는 게 ‘루스벨트’의 특징”이었다며,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강력히 밀어붙이며, 그들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내게 만들었다.”라고 말했음(p513). 모든 국무위원이 ‘루스벨트’의 요구에 부응했으며, ‘루스벨트’는 7월 초에 이미 25만 명이 넘는 청년이 1,500곳의 캠프에 참여했다며 “우리 역사상 가장 신속히 이루어진 대규모 동원”이라고 선언했는데, 노동부는 매일 평균 1만 명가량의 청년에게 신청을 받았고, 결국에는 목표를 달성해냈음(p513). ⑦‘조지 마셜’(George Marshall) 대령을 비롯한 장교단은 미국-스페인 전쟁에 참전한 병사보다 더 많은 청년을 동시에 수용하는 캠프를 세우는 능력을 발휘했는데, 청년단원들은 다양한 국유림 관리 프로그램에 깊이 참여하며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을 찾아냈으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청년들은 미래 세대를 위해 삼림지를 개간하고, 홍수와 등불을 통제하며 숲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과제, 즉 공유지의 기반시설을 지속적으로 개량하는 작업에 열중했음(p514). CCC는 뜨거운 호응을 받은 뉴딜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프로그램이 중단되기 전까지, 25만 명이 넘는 청년이 캠프를 거쳐갔음(p514).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이 뉴딜정책의 시작으로 국유림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25만명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시작한 과정을 잘 묘사함. 행정리더십 특성은?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10. 프랭클린 루스벨트_뉴딜정책의 전개)


①많은 청년이 캠프에 참여하기 전에는 자연 환경에서 거주한 적은커녕 숲을 본 적도 없었고, 고된 육체노동을 경험한 청년도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그러나 ‘루스벨트’가 바랐듯이, 청년들은 광범위한 직무 능력을 개발하며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한 다양한 지역의 또래들과 함께 땀 흘려 일하는 방법을 배웠음(p514). 한 청년은 자존감을 되찾았다며 “거기에 갔을 때는 몸무게가 70킬로그램 남짓에 불과했지만, 떠날 때는 85킬로그램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CCC 덕분에 나는 남자다운 남자가 됐다.”라고 말했는데, CCC가 초기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루스벨트’는 CCC를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며, CCC가 2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그 수는 미국 전역에 산재한 1,500만 실업자 중 60분의 1에 불과했음(p514). ②‘루스벨트’는 이런 상황을 쉽게 설명하려고 스포츠에 비유했는데, ‘루스벨트’는 자신을 “게임을 전체적으로 계획하는” 풋볼팀의 쿼터백에 비유했으며, 그는 첫 플레이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았지만, 다음 플레이에 대해서는 미리 말할 수 없었고, “첫 플레이로 10야드를 전진하면 다음 플레이는 실패한 경우에 시도할 플레이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CCC가 크게 성공함으로써 ‘루스벨트’는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게임에서 거대한 실업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됐음(p515). [경쟁과 토론을 독려하라. 창의력을 자극하라] ‘새뮤얼 로젠먼’의 생각이 맞다면, “여러 아이디어와 주장이 찬반으로 갈려 그의 앞에서 제기되고 논쟁되고 토론될 때” ‘루스벨트’는 누구보다 뛰어난 생산적인 능력을 발휘했으며, 그의 주변 사람들은 한결 같이 자존심이 강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고 치열하게 다투었는데, 그래서 ‘루스벨트’는 의도적으로 그들이 각자의 의견을 방어하도록 독려하는 상황을 조성했으며, 물론 최종 단계에서는 그들을 타협하는 방향으로 이끌었음(p515). ③또 ‘루스벨트’는 관습적인 행정 관례에 구속받지 않고 같은 기관에 근무하는 여러 사람에게 똑같은 과제를 부여하거나 여러 기관에 똑같은 프로젝트를 할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루스벨트’의 철학에 따르면, “작은 갈등은 있는 게 낫다. 작은 경쟁은 자극이 된다. 경쟁이 있을 때 모두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쓸 것이기 때문이다.”(p515) ‘루스벨트’ 자신은 다양성과 혼란스러움이 위험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부하들은 ‘루스벨트’ 행정부의 “본질적으로 무질서한 면”에 불만을 품었고, 그들은 때때로 의욕을 잃었고, 감정에 상처를 입기도 했는데, ‘루스벨트’의 개인 비서, ‘그레이스 털리’(Grace Tully)가 증언했듯이 “‘루스벨트’는 내각과 수뇌진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팀원 중 한 명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낙담하거나 압박감에 시달리는 걸 알아채면 ‘루스벨트’는 지체 없이 행동에 돌입했음(p516). ④그 팀원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손을 쥐고 응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사무관이 말했듯이 “루스벨트는 자신의 무심한 언행에 상처를 입은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는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일상적인 문제가 반복되는 평온한 시대라면 행정부가 원칙을 지키며 오달지게 운영돼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에는 진취력과 혁신에 중점을 두고, 그런 자질에 자율권을 주고 보상하는 정부 조직을 장려해야 한다.”라고 말했음(p516). ‘루스벨트’는 명령 계통을 모호하게 유지함으로써 어떤 과제를 동시에 여러 방향에서 추진했고, 팀원들에게 힘차게 달리라고 독려했으며, 한마디로, 팀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또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위임하지 않았고,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문에서는 그 자신의 최종 결정을 내렸음(p516). ⑤공공사업을 통한 실업 구제에 할당된 수십억 달러의 관리권을 두고 ‘해럴드 이커스’와 ‘해리 홉킨스’(Harry Hopkins)가 치열하게 경쟁한 일만큼, ‘루스벨트’ 정부의 경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인데, 내무장관으로 공공사업 관리국(Public Works Administration, PWA)까지 감독한 ‘이커스’는 진보적인 기업가의 시각을 가진 정치인이었고, 그의 생각에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방법은 “펌프에 마중물을 붓는 것”이었음(p517). 다시 말하면, 완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완공된 후에는 오랫동안 유지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민간 기업들을 참여시키고, 그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는데, 보너빌 댐, 링컨 터널, 라과디아 공항, 그레이트스모키산맥 국립공원이 대표적인 예였음(p517). ⑥한편 ‘루스벨트’ 정부에 참여하기 전에 사회운동가로 활동한 ‘해리 홉킨스’는 토목사업국(Civil Works Administration, CWA)과 공공사업 진흥국(Works Pogress Administration, WPA)을 차례로 맡았는데, ‘홉킨스’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많은 사람이 생활보호 대상자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젝트를 선호했음(p517). 이런 프로젝트 덕분에 많은 공동체에 학교와 도서관, 소방서와 유원지, 스케이트장과 수영장이 지어졌으며, 또 연방 미술 프로젝트(Federal Art Project)는 공공건물에 그려지는 벽화 작업을 지원했고, 연방 연극 프로젝트(Federal Theatre Project)의 지원 덕분에 고전 작품이 외딴 지역에서도 공연될 수 있었음(p517). ⑦관리 방식에서 ‘이커스’와 ‘홉킨스’의 뚜렷한 차이는 그들의 철학과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정직한 해럴드’(Honest Harold)로 알려진 ‘이커스’는 노련한 행정가로, ‘하딩’ 정부에서 티포트 돔 스캔들로 크게 훼손된 내무부의 평판을 되찾겠다고 결심했고, 따라서 그는 꼼꼼하고 세심하게 계획을 수립했고, 모든 계약에서 사소한 것까지 관리하며 낭비와 부정행위를 끊임없이 경계했음(p517). 성실하고 엄격한 사람답게 일찍 출근해서 늦게까지 책상을 지켰는데, 나중에는 공식적으로 항의가 제기된 까닭에 중단했지만, 직원들의 지각을 예방하겠다며 아침 8시 35분에 내무부 정문을 잠갔고, 직원들이 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화장실 칸막이 문을 없애기도 했음(p518). ⑧ ‘홉킨스’는 “줄담배를 피우는 골초에 블랙커피를 좋아했다.” “워싱턴에서 가장 허름한 건물”을 차지한 ‘홉킨스’는 책상에서 항상 조는 듯한 모습이었고, 사나흘 동안 똑같은 셔츠를 입고 다녔으며, 관료체제를 답답하게 생각하고 조직적인 구조를 혐오한 ‘홉킨스’는 일자리 부족으로 야기된 “신체적이고 정신적이며 영적인 고통”에 강박적으로 초점을 맞추었음(p518). 실업 수당이란 형태의 직접 구제는 인격과 독립심을 약화시킨다는 게 그의 믿음이었는데, 또한 모든 남녀가 절실히 바라는 것과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노동이 근로자의 삶에 부여하는 존엄성과 절제력이라 믿었음(p518). ⑨그는 평론가들이 CWA가 제공하는 일자리는 단기적인 것에 불과해 장기적으로 경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을 때, “인간은 장기적으로 먹지 않는다. 매일 먹는다!”라고 반박했음(p518).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두 사람의 철학을 높이 평가했고, 적절히 활용하며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루스벨트’는 미국의 질병을 치유하는데 필요하면 단기적인 방법과 장기적인 방법, 즉 분권화된 단기적인 공공사업과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는 장기적인 공공사업을 가리지 않았음(p518). ⑩두 사람이 제출한 프로젝트를 심사하고 평가하는 위원회에 참석해 기금 분배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음(p519). 또한 ‘이커스’의 묵직한 프로젝트는 추진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자재비가 너무 많은 몫을 차지하는 까닭에 국민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홉킨스’의 주장에 공감했고, ‘홉킨스’가 추진한 수만 개의 작은 프로젝트가 치밀하게 감독되지 않아 비효율성과 부정행위 위험에 노출돼었으며 그 결과 의회의 지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이커스’의 우려도 무시하지 않았음(p519).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의기소침해 있는 직원을 발견하면 즉시 다가가 호의를 베푸는 ‘변혁적 리더십’의 개별적 돌봄(individual consideration)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또한 ‘루스벨트’와 가까이 있었던 ‘이커스’와 ‘흡킨스’의 갈등과 이에 대처하는 ‘루스벨트’의 리더십 모습이 잘 나타남.
● 토의
  구성원들의 개별적 필요를 살피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리더십’의 장점은?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6하우스(이현재)_프랭클린루스벨트_개혁리더십.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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