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6-21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8(위기극복의 리더십)

presentlee 2026. 5. 24. 01:19

https://youtu.be/l-AynLwblCQ?si=do60Cmhb31R7YEdV

 

[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8(26-스물한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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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11. 프랭클린 루스벨트_통합적 리더십)


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이 하염없이 계속되자 거대한 사업을 구상하기 좋아하는 ‘이커스’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작은 사업을 추진하기 좋아하는 ‘홉킨스’ 중 ‘홉킨스’와 함께하는 경우가 더욱 빈번해졌으며, ‘루스벨트’는 통계적 수치로 가득한 대규모 프로젝트 보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는데, ‘홉킨스’는 ‘루스벨트’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정부가 제공한 일자리가 한 가족의 사회 복귀를 도운 이야기, 공공사업 진흥국이 진행한 프로젝트로 공동체에 운동장이나 공원 혹은 수영장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이 감사해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알았음(p519). 따라서 기금 책정이 ‘홉킨스’의 작은 프로젝트를 선호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루스벨트’는 ‘이커스’를 달래야 했는데, ‘이커스’의 일기를 보면, 사임하기로 결심했다가도 “그 사람의 개인적인 매력과 꾸밈없는 순박함”에 이끌려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푸념이 많았음(p519). ②‘루스벨트’는 보좌관의 도움을 받아 옷을 입으면서도 ‘이커스’의 불만을 경청하며 공감하는 반응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었고, 훗날 ‘이커스’가 말했듯, “그런 대통령에게 어떻게 사표를 내밀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여가던 적대감은 결국 공개적으로 폭발하고 말았는데, ‘이커스’가 WPA 프로젝트(공공사업 진흥국, Works Pogress Administration)를 “불요불급한 작업”이고 “쓸데없는 작업”이라고 비판한 것임(p519). ‘홉킨스’는 즉각 반격하며, 내무부의 건설 프로젝트가 하염없이 연기된다고 비판했고, ‘루스벨트’는 수뇌부 사이의 그런 논쟁을 높이 평가했고 심지어 권장했지만, 그런 반목이 언론에 거론되자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루스벨트’는 지체 없이 ‘이커스’와 ‘홉킨스’를 불러들여 전국 순회 연설과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유람선 항해에 동행하도록 했음(p520). ③두 사람은 대통령과 함께 며칠을 보내며 멕시코 연안에서 낚시를 했고, 카드놀이를 하고 마티니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는데, ‘이커스’와 ‘홉킨스’는 한 달간 계속된 여행으로 상대를 더욱 깊이 알게 되었으며, 깊은 정이 들었음(p520). ‘이커스’는 “‘루스벨트’는 낚시하러 갈 때 천방지축인 아이처럼 들썩였다.”며 그의 한없이 밝은 모습에 감탄했고, ‘홉킨스’는 동생에게 “더할나위 없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푹 쉬었다”고 말했는데, 유람선이 매일 발행한 신문 <더 블루 보닛>에 ‘바다에 수장되다’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단신이 눈에 띄었음(p520). ④활달한 문체로 보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쓴 것이 분명했는데, ‘‘홉킨스’와 ‘이커스’ 사이의 불화는 오늘 장엄하게 수장되었다. 국기는 반기로 게양되고, ……대통령은 장엄한 의식을 집행했다. 이제부터 두 사람은 앞으로 영원히 신문 1면에서 사라지리라 굳게 믿는다. ‘홉킨스’와 ‘이커스’가 과거에 그에게 쏟아낸 박정한 평가에 유감을 표명했고, ‘이커스’는 자신의 말을 고스란히 받아쓸 수 있는 속기사를 구하는 즉시 더 호된 평가를 해주겠다고 반격했다. 대통령은 그들의 등을 정겹게 철썩 때리고 그들을 바다에 밀어 넣으며 명령했다. “전속력으로 전진!”(p521). [공식적인 소식통에 만족하지 말고, 정보를 여과 없이 전해들을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라] 워싱턴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국민이 실제로 체감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되는데, ‘루스벨트’는 보좌관들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충고하며, “직접 가서 어떤 일이 있는지 확인하라. 우리가 진행하는 일의 최종적인 결과는 물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직접 확인하라.”고 말했음(p521). ⑤전례가 없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면, ‘루스벨트’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그런 프로그램 중 어떤 것이 효과가 있었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지 알아내야 했는데, ‘루스벨트’는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얻는 정보에 갇혀 있지 않으려고 전국의 정보망을 가동했으며,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온갖 형태의 정보원과 접촉하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기준 프로그램을 포기하거나 수정했음(p521). ‘루스벨트’는 “곡물을 삼키는 콤바인”처럼 6개의 광역권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개인 보좌관 ‘루이스 하우’가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에서 추려낸 기사와 사설도 꼼꼼히 읽었으며, ‘그날의 나팔’이란 뜻으로 데일리 뷰글(Daily Bugle)이라 일컬어진 스크랩을 통해 ‘루스벨트’는 사람들이 뉴딜에 대해 개인적으로 느끼는 평가를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였음(p522). ⑥백악관에 쏟아지는 편지에서도 정보를 얻었는데, 편지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매일 6,000~8,000단어 사이의 편지를 읽었고, ‘앨리너’는 “공인은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삶의 흐름으로부터 떼어지는 위협”이 있다며 자신에게도 편지를 보내달라고 부탁했음(p522). ‘앨리너’의 일간 칼럼은 국민에게 조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의견과 제안을 받았는데, 남편이 그랬듯 ‘앨리너’도 쌍방향 소통에 충실했던 셈이었고, ‘루스벨트’는 “덧칠되지 않은 진실”을 제공하는 정보원으로 누구보다 ‘앨리너’를 신뢰했으며, 그는 ‘앨리너’를 “도깨비불”같은 아내라고 불렀음(p522). ⑦그녀는 한 번에 몇 주, 몇 달씩 전국 방방곡곡 수십만 킬로미터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의 불만을 들으며 뉴딜 정책의 효과를 점검하며 이런저런 사례를 수집했는데, 그런 긴 여정에서 돌아오면, 남편과 “끝없는 식사”를 함께하며 “신선하고 따분하지 않은 일화”들을 전해주었음(p522). ‘루스벨트’는 ‘앨리너’의 정확하고 확실한 관찰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는데, ‘프랜시스 퍼킨스’의 말을 빌리면 “그녀는 대통령이 보지 못한 많은 것을 보았다. 그녀가 국민의 삶에 대해 알게 된 많은 것이 대통령에게 전해지며 영향을 미쳤다.” 그 때문에 국무위원들은 ‘루스벨트’에게 “마누라가 온 군대를 돌아다니는 것 같아. 지난주에 방문한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NRA(National Recovery Administration, 전국부흥청)가 정한 최저임금 이하의 돈을 받고 일한다고 하더군.”이라는 식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음(p523). ⑧‘엘리너’의 보고를 근거로 ‘루스벨트’는 프로그램을 간소화하며 효율성을 높였고, 때로는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기도 했는데, 농업조정청(Agricultural Adjustment Administration, AAA)은 곡물을 뒤엎고 가축을 도살하며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농민들에게 보상하는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농촌 지역을 깊은 고통에 빠뜨린, 하락한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리려 했음(p523). ‘엘리너’는 “왜 그 불쌍한 돼지들을 미시시피강에 던져버리는 겁니까? 전국에 굶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라고 한 사무관에게 날카롭게 지적했고, AAA 프로그램에 낭비적인 면이 많다는 ‘엘리너’의 매서운 질책에 새로운 기관, 연방 잉여농산물공사(Federal Surplus Commodities Corporation)가 설립됐는데, 그 공사는 밀과 옥수수, 쇠고기와 목화 등 잉여 농산물을 구입한 뒤 실업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하는 구제 기관들에 분배하는 역할을 맡았음(p523). ⑨‘프랭클린 루스벨트’ 외부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획득함과 동시에 내부에서도 정상적으로 정보를 얻었는데, 또 어떤 부처에 흥미로운 직원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직원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고, 명령계통을 파괴하는 이런 행위에 짜증내는 부서장도 적지 않았음(p523). ‘루스벨트’는 책을 읽는 것보다 사람과 접촉하는 데 열중하는 경향을 띠었고, 대화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확신하는 기회를 얻었는데, 따라서 “나는 일반적으로 매일 연방 구제기관 절반가량의 대표들과 전화로 혹은 편지로 접촉했다. 우리가 시행하는 모든 작업을 인간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끊임없이 점검하려고 애썼다.”라고 말했으며, 쇄도하는 엄청난 양의 자료는 매 시간 보고서로 정리됐음(p524).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이커스’와 ‘홉킨스’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그들과 함께 여행하는 등 ‘통합적 리더십’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음.
● 토의
 ‘루스벨트’가 아내인 ‘엘리너’를 통해 정책의 실질적 효과 등에 대한 전국의 정보를 수집하였듯, 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12. 프랭클린 루스벨트_입법 리더십)


①‘프랜시스 퍼킨스’는 ‘루스벨트’의 엄청난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방법과 관련하여 “그의 기억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각인되도록 자료를 준비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말했을 정도였는데, 행동에 대한 권고는 짧아야 했고, “한 페이지가 적합했다.” 각 문장은 한 줄을 넘지 않으면서도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적혀야 했으며, 그러나 ‘퍼킨스’가 알기에 ‘루스벨트’는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가장 듣고 싶어했고, 그 이야기들은 그의 기억에 깊이 새겨졌음(p524). [적응하라. 필요하면 신속히 방향을 전환하라] “우리가 절차에서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누구도 타석에서 매번 안타를 칠 수 없습니다. 물론 저도 제 자신만이 아니라 정부를 위해서도 최고의 타율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루스벨트’는 제2차 노변담화에서 구조적 변화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을 처음 밝힐 때 이렇게 말했고, 또 보좌관들에게 각자에게 맡겨진 과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며, 그들이 제한된 시간에 최선을 다해 모든 관점을 고려했다면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도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새뮤얼 로젠먼’에게는 “자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는지 쓸데없이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 결정할 때는 최선을 다하게. 그리고 결정이 내려지면 뒤돌아보지 말고 전진하게!”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음(p524). ②상황 변화에 따라 의견을 바꾸고 수정하는 융통성과 적응성은 처음 100일과 그 이후 제시된 많은 프로그램을 관통한 원칙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 그런 프로그램 중 일부는 연방정부의 항구적인 부처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Tennessee Valley Authority, TVA), 연방 주택관리청(Federal Housing Administration, FHA), 연방 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 FCC)가 대표적인 예이며, 반면 토목사업국, 공공사업 관리국, 공공사업 진흥국, 청소년 관리국처럼 필요성이 사라진 프로그램도 적지 않았음(p525). ‘루스벨트’가 은행 위기가 한창일 때 내세운 약속-규제받지 않는 주식시장과 금융 시스템에서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오래된 폐단을 근절하고, 개혁을 통한 경제 회복을 추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데는 적응성이 주된 역할을 했는데, ‘루스벨트’는 증권 진실법(Truth in Securities Act)으로 주식시장을 규제하는 첫 조치를 취했음(p525). ③그의 표현을 빌리면, “증권 거래에서 거짓 정보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할 목적”에서 제정된 법이었는데, “투자라는 이름으로 가장된 투기성 증권에 투자하라는 감언이설에 넘어갔다가 결국 엄청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싼값에 이를 팔아버린 가정에 닥친 참혹한 고통”을 직접 목격한 후 “국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었고, 그 법안에 따르면, 신규 증권 발행자는 연방 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에 유가증권 신고서를 제출해야 했으며, 의도적으로 허위 신고하면 최고 5년 실형을 받을 수 있었음(p525). 그러나 그 법안은 모두에게 거센 비난을 받았는데, 기업계는 연방 거래위원회의 아마추어들이 결정한 가혹한 형벌로 증권 중개인들이 위축되고, 그 결과 주식시장도 침체에 빠져 경기 회복조차 늦어질 것이라 경고했으며, 한편 개혁가들은 이미 발행된 주식과 채권에는 어떤 규제도 두지 않아 크게 실망했음(p526). ④6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 법이 “쓸모없다”는 것을 깨달은 ‘루스벨트’는 지체 없이 “긴축을 풀고”, 신규로 발행되는 주식과 채권만이 아니라 모든 유가증권에 연방 규제를 확대하는 새로운 법안을 추진했고, 그 결과로 모든 형태의 조작을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5년 임기의 위원 다섯 명으로 구성되는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SEC)라는 새로운 규제 기관의 설립을 요구하는 법안이 완성됐음(p526). 기업계는 연방정부를 “길모퉁이 경찰”에 비유하며 격분했고, 뉴욕 증권거래소를 몬트리올로 옮기겠다고 협박까지 하고 나섰는데, ‘루스벨트’는 뉴딜과 관련된 어떤 법률보다 그 법안에 대한 조직적 반발이 거세다며 이에 강력히 항의하는 특별 교서를 의회에 보냈음(p526). ⑤그 법안을 약화시키거나 무산시키려는 시도가 행해진다면, “규제받지 않는 투기”가 “이해되지 않은 호황”과 주식시장 붕괴 이후의 “끔찍한 시간”을 촉발했다는 것을 이제 국민 모두가 아는 만큼 의원들이 직접 법안을 무산시킨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결국 1934년 증권거래소법(Securities Exchange Act)은 쉽게 통과됐고, 증권거래위원회는 뉴딜로 설립된 정부기관 중 가장 칭찬받는 기관이 됐음(p526). 한편 금융계를 규제하는 법안은 99일째 되는 날에 서명되어 법이 됐는데, 흔히 글래스-스티걸법(Grass-Steagall Act)으로 알려진 은행법은 은행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은행이 예금자의 돈을 과열된 증권시장에 투기하는 바람에 정작 예금자의 인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은행 위기가 닥쳤다는게 ‘루스벨트’의 생각이었음(p527). ⑥새로이 제정된 은행법은 은행에게 선택을 요구했는데, 즉, 은행은 상행위에 주력하는 상업은행이 되거나 투자 업무에 집중하는 투자 은행이 돼야 했고, 그때부터 두 업무를 동시에 행하는 것은 금지됐음(p527). 이 법안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상원은 보험과 관련된 조항과 더불어, 연방정부에 저축을 어느 수준까지 보장하도록 요구하는 수정안을 덧붙였음(p527).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미국 은행이 일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으로 분리되게 된 계기가 ‘루스벨트’의 생각에서 시작되었음을 잘 보여줌. 거대한 변화를 이루는 ‘리더십’의 특징?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13. 프랭클린 루스벨트_위기극복의 리더십)


①‘루스벨트’는 미국 은행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으로 나누는 과정 가운데서 정부가 저축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그 보장액을 점차 증액할 것을 요구하는 상원의 의견에 대하여 강력히 반대하며, 상하원 협의회 위원들에게 수정안을 거부해 달라고 문서로 요청했음(p527). ‘루스벨트’는 “허약한 은행이 견실한 은행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 확신했고, “그런 보장을 효과가 없을 것”이라 주장했는데, 저축을 일정 수준까지 보장하는 수정안이 폐기되지 않으면 법안 전체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으며, 하지만 격렬한 토론이 있은 후, 법안은 수정안을 포함한 채 최종적으로 통과했음(p527). ②‘루스벨트’는 즉시 ‘글래스’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건넸고, 서명식에는 그 법안이 고양이보다 목숨이 더 많은듯하다고 농담을 했는데, ‘레이먼드 몰리’의 평가에 따르면, “그의 패배를 정중히 인정한 것”이었음(p527). 수개월이 지나지 않아 ‘루스벨트’는 예금 보장에 대한 자신의 완강한 반대가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았는데, 연방 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FDIC)의 설립으로, 예금자는 자신의 돈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게 됐으며, 1934년까지 90퍼센트 이상의 은행이 예금 보험에 가입했고, 5년이 지나지 않아 예금자는 50퍼센트가량 증가했으며, 통화 역사학자의 평가에 따르면, “은행 예금에 대한 연방정부의 보장은 1933년의 공포에서 비롯된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변화였고, 통화의 안전성을 증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조치였다.”(p528). ③1933년의 증권 진실법을 보완한 증권거래소법과 은행법 모두에서, ‘루스벨트’는 원래의 법안을 수정하며 타협하는 적극성을 보여주었는데, 예컨대 증권거래소법은 엄격한 형벌을 완화했지만 위반에 해당하는 범위를 확대했으며, 또 처음에는 예금보험공사 설립을 반대했지만 결국에는 정중히 인정하며 성공한 적자로 받아들였음(p528). 어떤 것도 확정되지 않았고, 어떤 것도 최종적인 것이 아니었는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의사결정과 관리를 살아 있는 과정의 부분이라 생각하며,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아는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의 방법이 효과가 없으면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퍼킨스’에게 말하기도 했음(p528). ④즉흥적이지만 변경과 수정을 두려워하지 않은 성향과 유연한 ‘리더십’의 창의적이고 확산적인 특징을 고려하면, ‘루스벨트’가 창의적인 예술가에 흔히 비유된 것은 당연한 듯한데, 예컨대 극작가 ‘로버트 셔우드’는 ‘루스벨트’를 “정부 내의 진정한 예술가”로 칭했으며, 회생의 예술가(artist of turnaround), ‘루스벨트’ 앞에는 확대하거나 다른 곳에 적용할 만한 완성된 본보기와 모델이 없었음(p528). ‘퍼킨스’의 표현을 빌리면 “‘루스벨트’는 당면한 문제를 주어진 재료로 해결해야 할 처지였다. 한 단계와 씨름하는 동안 다음 단계가 변해가는 상황이었다.” 프로젝트가 하나씩 구체화됨에 따라, 그의 숙련성과 능력도 꾸준히 향상됐으며, 그의 직관력은 더욱 세련되고 자신감에 넘쳤고, 그에 대한 미국인의 확신과 신뢰도 굳건해졌음(p529). ⑤100일이 지나고, 제73차 임시의회가 마침내 6월 16일 휴회됐을 때 ‘루스벨트’는 의회에 공개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으며, ‘루스벨트’는 “정당의 기본 방향을 초월한 팀워크 정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또 “입법부와 행정부가 전폭적으로 협력하여 새로운 문제와 해묵은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였고, 우리 권력 구조가 위기에 대처하며 긴급 프로그램을 신속히 수행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해 보였다.”고 경의를 표했음(p529). 전쟁(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루스벨트’는 “닥터 뉴딜이 닥터 승전으로 변신했다.”고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루스벨트’는 전혀 다른 상황에 대처해야 했지만, 과제를 처리하는 방식과 ‘리더십’-덧없이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 성격, 휴식하고 대화하며 문제를 숙고하는 습관,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기질-에서는 똑같았고,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가 되면 ‘루스벨트’은 주저없이 싸움판에 뛰어들었음(p529). ⑥3개월 만에 25만 명의 청년을 CCC에 참여시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던 ‘루스벨트’는 정확히 7년 후에는 1년 안에 독일을 앞서기 위해 5만대의 항공기를 생산하는 어마어마한 역량을 확보하겠다고 단언했는데, 처음에는 터무니없게 여겨졌던 그 목표는 나중에 밝혀졌듯이 “시야를 넓히고, 팀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국민에 활력을 불어넣어 불가능한 것도 이루어내려는 심리적 목표”였음(p530). 첫 노변담화에서 미로처럼 복잡한 은행 위기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며 교사 역할을 했던 ‘루스벨트’가 이번에는 “전반적인 전쟁 전략은 무엇이며, 각 전투가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지리적 상황에 대해 자유롭게 언급할 수 있도록” 국민에게 탁자 위에 세계 지도를 펴놓아달라고 요구했음(p530). ⑦‘루스벨트’의 타고난 소통능력은 공통된 사명을 개발하고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며, 행동을 촉구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 주된 수단이었는데, “국민이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진실하고 완전한 보고를 받는다면 대체로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것”이란 그의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루스벨트’에게 국민은 섬김의 대상이었으며, 따라서 국민과의 이러한 상호관계는 그의 ‘리더십’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음(p530). 격동의 시대 ‘루스벨트’의 품성과 지능이 중요했음(p53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예금보험공사를 설립하는 것을 처음 반대했지만 결국 수긍한 예를 통해 겸손의 리더십을 잘 보여줌. ‘리더십’의 겸손함이란?


□ 요약(제3-4부 리더와 시대 1. 린든 존슨_비전의 리더십)


①“모든 것이 혼돈 상태였다.” ‘린든 존슨’은 ‘케네디’ 암살 직후의 며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는데, 미국인들은 연이은 충격적인 사건들-‘케네디’의 자동차에 가해진 총격, 대통령의 사망 확인,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의 체포와 살해, ‘오스월드’의 살해자로 밝혀진 댈러스의 나이트클럽 주인 ‘잭 루비’(Jack Ruby), 두 살인자가 러시아와 쿠바 혹은 마피아와 관련되었다는 추측-에 경악하며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했으며, 암살부터 장례식까지 미국인들은 나흘 동안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했고, 3곳의 텔레비전 방송국은 모든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케네디’와 관련된 소식을 전했음(p532). 이 비극에 ‘린든 존슨’은 극단적인 위기에 빠졌지만, 전례 없이 신속하고 대담하게 행동하고 판단할 기회를 얻기도 했는데, 전환기를 성공적으로 넘기려면 신속한 명령체계의 확립과 연속성의 상징적인 확약이 필요했고, 훗날 ‘존슨’이 말했듯이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국가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국민이 망연자실하더라도 정부는 마비 상태에 있지 않다는 확신을 주어야 했다.”(p532) ②어떤 의미에서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걱정스레 좇으며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권력의 고삐를 꽉 쥐어야 했다. 그것도 지체 없이 그렇게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또 실수하거나 회의적인 기색을 드러내면 파국적인 재앙이 닥칠 수 있었다.”(p532) “우리 모두가 우왕좌왕하면서도 눈앞에 닥친 일을 직시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애쓸수록 더 깊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소 떼와 같았다.” 이런 모습에 ‘존슨’은 텍사스 힐카운티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떠올렸는데, “소 떼를 늪에서 끌어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말에 탄 사람이 선두에서 지휘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암살 이후에 닥친 혼돈의 시기에 내가 그 사람이었다.”(p533). ③‘존슨’은 ‘케네디가’ 사람들에게 한 명씩 다가갔으며, “당신이 그분에게 얼마나 필요했던 존재인지 잘 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또 조국에게도 그러하다.”라며, 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당시에는 자신의 백악관이란 기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고, 훗날 ‘존슨’은 “나는 그들의 기분을 알았다. 그들은 갑자기 국외자가 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거의 3년 전부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라고 회고했음(p533).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린든 존슨’이 ‘케네디’의 죽음 이후 흔들리는 미국 상황을 붙들기 위해 ‘리더십’의 마음을 다잡았음을 잘 보여 주었음. 위기 속 ‘리더십’의 태도는?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6하우스(이현재)_프랭클린루스벨트_위기극복의리더십.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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