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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36(26-열아홉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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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5. 프랭클린 루스벨트_집단적 리더십)
①‘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욕시장으로 있을 때 산업국장이었던 ‘퍼킨스’를 노동장관으로 임명하였으며, 그녀는 그 제안을 거절하였지만 ‘루스벨트’의 설득결과 그녀는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위원이 되었는데, 이때 의문이 생겼음(p491). 그녀를 어떻게 불러야 했을까? 미스터 세크러테리(Mr. Secretary, ‘세크러테리’는 흔히 비서의 뜻으로만 알려졌으나, 14세기말 비밀문서를 다루는 인력을 의미한 데서 시작해 권력을 위임받아 정부 업무를 처리하는 자, 즉 장관을 의미하게 됐음. 차관은 ‘undersecretary’임)에 대응하는 여성 직함이 있었을까? <로버트의 토의 절차 규칙>(Robert's Rules of Order)에서는 ‘마담 세크러테리’를 제안했는데, 기자들이 ‘더 마담’(The Madam)이라 칭할 때마다 ‘퍼킨스’는 움찔했지만, 그 명칭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음(p491). ②그녀는 내각에서 남성 우월적인 분위기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는데, 해군성 장관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다가 여성이 듣기에 적합한지 생각하며 흠칫하자 ‘루스벨트’가 “계속하십시오. ‘퍼킨슨’ 장관도 듣고 싶어 죽을 겁니다.”라고 독촉한 경우도 있었음(p492). [숨을 돌리며 쉬는 시간, 즉 시간의 창문을 제공하라] ‘퍼킨스’의 회고에 따르면, 토요일 오후에 열린 첫 공식 회의에서 “대통령은 이번 은행 위기가 어떤 것이고, 관련된 법률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어느 때보다 논리정연하게 설명했다.” 연방정부가 은행을 폐쇄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찾으며 밤을 하얗게 새운 법무장관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1917년의 전례를 근거로 대통령이 통화의 유통을 조사하고 규제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했으며, ‘루스벨트’는 그 보고를 듣고 무척 기뻐했음(p492). ③<뉴욕 타임즈>는 “그 모호한 전례를 근거로 평화시였지만 대통령의 권한이 가장 극단적으로 행사됐다.”라고 보도했으며, 반대 의견은 없었는데, 모든 국무위원이 찬성했고, 결국 일주일로 연장됐지만 은행에 나흘간의 휴업을 명령하는 대통령령이 곧이어 작성되었음(p492). 은행 휴업은 시간의 창문, 즉 “큰 수술 이전의 마취제”로 역할하며, 은행을 질서정연하게 재개하는 계획을 여유 있게 고민하는 시간을 제공했는데,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조율된 폐쇄로 오랫동안 지속되던 경제 침체가 바닥에 닿은 것처럼 급격히 완전히 멈추었고,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상승 기조로 변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음(p493). ④[모든 이해 당사자와 함께하라] 국무회의 도중에 ‘루스벨트’는 양당 의회 지도자들을 초빙했는데, 그들에게 제73차 임시회기를 소집해 긴급 은행법을 제정하여 그의 계획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취임식이 3월 4일에서 1월 20일로 옮겨지기 전의 시대여서,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의회는 12월까지 소집되지 않았을 것임(p493). 유일한 예외가 ‘링컨’이 남북전쟁 개전을 다루려고 임시 의회를 요구한 1861년 7월이었으며, ‘루스벨트’는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의원들을 고려해 의회 소집일을 3월 9일 목요일로 정했음(p493). ⑤그 일요일, ‘루스벨트’의 초대에 뉴욕과 필라델피아, 리치먼드와 시카고의 저명한 은행가들이 워싱턴에 들어왔고, ‘루스벨트’ 정부가 긴급 은행법(Emergency Banking Bill)을 작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데, 급진적 조치를 바랐던 진보주의자들은 “부도덕한 환전꾼”으로 비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으려는 ‘루스벨트’ 정부의 결정에 낙담했음(p493) 그러나 ‘루스벨트’는 금융에 대한 전문지식과 은행권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법안 작성 과정에 그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루스벨트’가 전임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재무부 관리들을 중용한 것도 전문지식을 중요시한 때문이었는데, 은행을 구하는 이런저런 계획을 구상하며 오랫동안 씨름한 그들을 중용한 것이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후버’의 무대책에 몇 번이고 실망했던 그들은 새 정부에 어떻게든 기여하려고 의욕을 불태웠음(p494). ⑥‘루스벨트’는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내려고, 다음날 아침 모든 주지사를 백악관에 초대해 국무위원들과 함께 그들을 만났는데, ‘루스벨트’는 주지사들에게 “은행 상황에 대한 완전한 그림”을 알리며 협조와 도움을 구했으며, 주지사들도 신속히 대응하며 일련의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음(p494). 그렇게 ‘루스벨트’는 차근차근 국무위원만이 아니라 의회 지도자와 중요한 은행가 및 주지사까지 긴급 대책을 구체화하는 데 끌어들이며,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에게 다양한 계층의 지도자들로부터 합의를 얻어냈고, 그 과정에서 ‘루스벨트’는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 즉 미국 국민에게 호소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혁신적인 방법을 끊임없이 구상해냈음(p494). ⑦ [마감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행동을 약속했는데, 3월 6일 월요일 아침, 전국에서 은행 휴업이 선포되었고, 3월 13일 월요일, 은행이 영업을 재개할 예정이었으며, 그 사이에는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었음(p494). 그 짧은 기간에 ‘루스벨트’ 내각은 실패한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을 준비하고 점검한 뒤 발표해야 했는데, 3월 13일, 그 대책이 발표될 때 전국이 초조하게 귀를 기울일 것이고, 그들의 반응에서 성패가 결정될 것이 분명했음(p495). ⑧비상 입법이 제때에 완성되고 제정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국민이 계획의 견실함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월요일 아침, 전국에서 예금자들이 은행으로 몰려가면 어떻게 될까? 은행 시스템과 갓 출범한 정부에게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엄청난 자료를 분석하고 분류해야 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신속한 결정을 내리고, 긴급 은행 법안을 작성해 의회에 보내야 했음(p495). ⑨은행은 상환 능력의 안정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영업을 재개해야 한다는 예비 결정이 내려졌는데, 하지만 누가 그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려야 하는가? 견실한 자산을 보유했지만, 상환 요구에 대응할 정도로 충분한 자금을 갖추지 못한 은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연방정부가 그 자산에 상당하는 통화를 추가로 공급해야 할까? 그래야 한다면, 지폐를 새로 발행할 것인가 아니면 지급 보증으로 대체할 것인가? 지폐를 새로 발행한다면 제때에 발행되고 분배할 수 있을까? 손실로 지급 불능에 빠진 은행이 폐쇄돼야 한다면, 예금자를 적정하게 대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루스벨트’ 보좌관 ‘레이먼드 몰리’는 “서두르면 중대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당연히 폐쇄됐어야 할 은행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얼마든지 고비를 넘겼을 수 있었지만 결국 폐쇄된 은행도 적지 않았다.”라고 인정했고, 따라서 새로운 법에서는 행정부에 강화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음(p495). 일주일은 정교하게 계획된 마감 시한의 연속으로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는데, 긴급 은행 법안은 의회가 소집되는 목요일 정오까지 준비돼야 했고, 매일 밤, ‘루스벨트’는 자정까지 집무실에 머물며 ‘레이먼드 몰리’, 재무장관 ‘윌리엄 우딘’과 ‘후버’ 정부에서 일한 관리들, 은행가들과 끝없이 토론했으며, 모두가 쉬지 일하며 샌드위치로 배를 채웠고, 소파에서 쪽잠을 자거나 샤워하려고 잠시 틈을 내는 걸로 만족했음(p496). ⑩처음에는 상대적으로 허약한 은행을 연방 자금으로 지원하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연방 인쇄국(Bureau of Engraving and Printing)에 새로운 지폐를 긴급히 인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그 지폐를 전국의 은행들로 운반할 항공기들이 징발됐음(p496). 수요일, 긴급 은행 법안의 초안이 백악관에 전해졌으며, 은행 감독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도움을 받아, 재무부 관리들은 건전성에 따라 은행 상황을 다양한 색의 핀으로 구분한 지도를 준비했음(p496). ‘루스벨트’는 문제를 시각적으로 명확히 드러내고 주변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지도를 유달리 좋아한 까닭에 그 지도를 보고 무척 좋아했음(p496).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서 취임한 직후 경제회복과 공황극복을 위해서 은행업무를 중지시키고 1주일 후 다시 여는 과정에서 쪽잠을 자면서 은행가들과 전 정부 관료들과 함께 계속 토론해 나간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음. 이처럼, ‘집단적 리더십’에 따른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집단적 토론의 중요성은?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6. 프랭클린 루스벨트_은행의 점진적 개선조치)
①은행이 멈춘 주간의 수요일, 긴급 법안의 초안이 백악관에 전해지고, 그날 저녁 늦게, 초안은 상원과 하원의 양당 지도자들에게 전해졌으며, 약간의 수정을 가한 후, 의회 지도자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음(p496). 새벽 3시, 법안은 인쇄소에 보내졌으며, 법안이 마무리됐느냐는 질문에 ‘윌리엄 우딘’은 장난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는데, “예, 마무리됐습니다. 내 이름이 ‘빌’입니다. 나도 끝났습니다.”(‘빌’은 ‘윌리엄’의 애칭이며, ‘법안’(bill)을 뜻하기도 함) 긴급 은행 법안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띠었고, 결함과 단점을 대충 보완하는 것으로 만족해 기존 구조를 확 바꾸는 게 아니라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뜻임(p497). ②‘루스벨트’는 금융계의 광범위한 구조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지만, 우선은 “경제의 금융 동맥을 맑게 하는 것”이 필요했고, 첫 시도가 성공해야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탄력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 위기가 해결되지 않으면 회복을 위한 반전은 있을 수 없었음(p497). ‘루스벨트’는 수요일 밤에 이런저런 회의로 바빴고, 자정을 넘겨서야 모든 일정이 끝났는데, 법안의 세부 사항은 대체로 합의됐지만, 중대한 과제가 하나 더 남아 있었으며, 법안을 상정하기 전에 대통령 교서를 먼저 보내야 했음(p497). ③따라서, ‘루스벨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교서를 손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한 페이지가 완성될 때마다 타이프로 정서된 후 곧바로 행정실에 보내져 등사됐다.”(p497). ‘루스벨트’의 교서는 “의회에 즉각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강력히 촉구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면한 첫 과제는 모든 건전한 은행의 업무 재개입니다. 이 법은 예금자의 돈을 이용한 투기와 그 밖의 위반을 예방하기 위한 향후의 입법에 반드시 필요한 예비 수단입니다.”라고 시작했으며,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란 뜻이었는데, “닷새라는 짧은 시간에, 과거의 잘못된 관례가 반복되는 걸 방지하는 완벽한 대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대책이 한꺼번에 시행되면, “은행과 국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동시에 국가 회복을 위한 통합 프로그램”을 제안하겠다고 약속했음(p498). ④개혁이 없는 회복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금융 붕괴의 근본 원인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는데, 30분의 여유를 두고, ‘루스벨트’ 정부는 첫 마감 시간을 지켰고, 의회가 개정하기로 예정된 1933년 3월 9일 목요일 정오 전에, 그들은 긴급 은행 법안(혹은 그 법안의 필사본)을 제출했으며, 하원 은행위원회 의장, ‘헨리 스티걸’(Henry Steagall)은 법안을 머리 위에서 흔들며 “여기에 법안이 있습니다. 통과시키지요.”라고 말했음(p498). 하원 지도자들은 어떤 수정도 허용되지 않고, 토론도 40분으로 제한한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소수당이던 공화당 지도자, ‘버트런드 스넬’(Bertrand Snell)도 대통령에게 전권을 위임하자고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며, “지금 하원이 불타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이 법안이 불을 끄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구두 투표가 실시됐고, “찬성합니다. 찬성합니다.”라는 말이 이어졌음(p498). ⑤단 한 표의 반대도 없었는데, 상원이 토론을 시작했을 즈음에는 새로 산뜻하게 인쇄된 법안이 상원들에게 배포됐으며, 은행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강화하려는 진보적인 의원들이 최소한의 수정을 요구했지만, 그 목소리는 즉시 사그라들었고, 최종 투표 결과 찬성이 73표, 반대가 7표였음(p498). 농촌 지역의 진보적인 의원들이 주로 반대표를 던졌는데, 22분 뒤, 법안은 백악관으로 옮겨져 ‘루스벨트’의 서명을 기다렸고, 서명식은 2층에 있던 오벌 룸(Oval Room)에서 열렸는데, 그 방은 나중에 대통령 집무실이 됐지만, 당시에는 반쯤 열린 상자들과 벽을 장식할 그림들로 가득한 상태였음(p498). ⑥‘루스벨트’가 서명하기 전, ‘엘리너’는 서둘러 남편의 머리칼을 가지런히 빗어주었고, 대통령 부부의 반려견 스코디시 테리어가 맹렬히 짖는 가운데서도 백악관 직원이 ‘루스벨트’에게 펜을 건네주었으며, ‘루스벨트’는 대통령으로서 첫 법안에 서명했는데, 훗날 ‘100일 의회’(Hundred Days Congress)로 유명해진 임시회기가 열리고 9시간이 지나지 않은 때였음(p499). 그처럼 의회가 법안을 신속히 처리한 적은 없었는데, ‘루스벨트’는 법안을 통과시킨 의회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특히 “초당적 협력의 승인”임을 강조했고, 당시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었지만, 공화당도 신속히 전개되는 과정에서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음(p499). ⑦하지만 ‘루스벨트’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는데, 은행이 다시 영업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 진정한 시험대였고, 그날 미국 국민에 의해 금융체제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었으며, 국민이 은행을 신뢰하며 예금을 인출하지 않을까?(p499). 그렇지 않다면, 즉 예금을 인출해 개인적으로 보관하려 한다면, 상황은 급속도로 대혼란에 빠져들 것이 분명했는데, ‘루스벨트’가 사흘 후에는 국민 앞에 나가 계획을 설명하고 방향을 확고히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며, 다양한 구성원으로 팀을 구성해 법안을 준비한 기획자가 마침내 막후에서 나와 법을 시행할 계획을 세우고, 국민을 설득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떠맡을 때가 됐다는 뜻임(p499)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이 공황극복을 통하여 법안을 만들고 의회를 소집하고 통과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음. 특히 공화당 역시도 동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통해 미국 경제상황을 잘 보여줌. 미국 민주주의를 리더십 측면에서 평가?
□ 요약(제3-3부 리더와 시대 7. 프랭클린 루스벨트_원칙주의적 리더십)
① [기본 원칙을 명확히 언론에 제시하고 철저하게 지켜라] 중대한 시기에 국민을 설득하는 첫 단계로, ‘루스벨트’는 두 번의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기자회견은 과거 정부 때와 달리 사전 각본 없이 자유롭게 진행되었으며, ‘루스벨트’는 집무실을 가득 채운 125명의 백악관 출입 기자에게 “내가 하려는 일이 불가능할 거라는 평가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시도해볼 겁니다.”라고 말했음(p500). 실험적 기자회견은 많은 관심을 끌었는데, ‘루스벨트’의 비서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루스벨트’는 무척 초조한 모습”을 보였고, “손이 떨렸고, 식은땀에 온몸이 흥건히 젖었다.” 하지만 기자회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리고 기자들이 집무실로 줄지어 들어오자, 조금 전까지 보였던 초조한 기색은 감쪽같이 사라졌으며, <뉴욕 타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놀랍게도 그는 “생기에 넘치고 건강하게 보였다.”(p500). ②전임 대통령들은 기자회견을 불규칙하게 가진 데다 미리 제출된 질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에도 회견은 거북한 만남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루스벨트’는 서면 질문 방식을 폐기하고, 대통령과 기자가 실제로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기를 바랐으며, 따라서 ‘루스벨트’의 기자회견장은 즉흥적이고 기발한 의견이 오갔지만, 신중하게 정해진 기본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무대였음(p500). 즉 직접 인용은 공보비서 ‘스티브 얼리’(Steve Early)의 확인을 거쳐야 했고, 배경 정보는 백악관이 제공한 것이 아니라 기자가 취재한 결과로 암묵적으로 인정됐으며, 특히 오프 더 레코드(off-the-record)가 요구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아야 했고, 심지어 편집자나 동료에게도 발설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음. “그런 규칙은 위반되지 않아야 하지만 간혹 몇몇 사람이 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p501). ③‘루스벨트’는 규칙적으로 격주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대통령과 기자가 입씨름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 상대에게 배우는 시간으로 삼기를 바랐으며, 학교 신문 <하버드 크림슨>의 편집장을 지낸 까닭에 ‘프랭클린’은 기자들을 존중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기자들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했고, ‘루스벨트’는 자신의 의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전달하려 했음(p501). 따라서 그의 기자회견 방식에서는 그의 됨됨이가 읽혔는데, 기자회견은 열띤 토론장이 아니었고, 공격을 주고받는 대립의 장도 아니었으며, 화기애애하고 기분 좋게, 또 예의 바르게 의견이 교환되는 곳이었음(p501). ④‘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사촌 ‘시어도어’가 언론을 어떻게 상대했고, 어떻게 즐겁게 해주었는지 잘 알고 있었는데, ‘시어도어’는 매일 오후 1시, 면도하던 ‘이발 시간’에 기자들을 초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으며, 더 정확히 말하면, 기자들의 말을 경청했음(p501). 이때 ‘시어도어’는 주제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고 이발사는 자신의 역할을 하며 진땀을 흘려야 했는데, 사반세기 후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새로운 형식의 기자회견을 통해 이런 식의 만남을 공식화하자고 제안했고, 그 결과 언론과 대통령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음(p501). ⑤기본 원칙이 존중되지 않으면, ‘루스벨트’는 ‘아나이아스 클럽’(Ananias Club)을 되살리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협박했으며, 이는 거짓말이나 조작된 가짜 뉴스를 보도한 기자를 회견장에서 추방하려고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설립한 것으로, 그 이름은 베드로 사도에게 거짓말한 뒤 죽은 예수의 제자(성경에서는 ‘아나니아’로 소개됨)를 추념하려고 선택한 것이었음(p502).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처음 두 번의 기자회견 후에 가진 약 1,000번의 기자회견에서 기본 원칙이 위반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한 기자는 “우리는 적대자였지만 서로 좋아했고 함께 웃었으며, 상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회고했음(p502). ⑥규칙을 제시한 뒤, ‘루스벨트’는 “물론 뉴스에 어떤 규칙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모두를 웃게 했다. 기자회견 내내 상냥한 말투를 유지하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옛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긋하고 편안하게” 질문에 대답했으며, 대답할 정도로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숨김없이 그렇다고 말했고, “요즘 은행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였음(p502). <볼티모어 선>은 그런 솔직담백한 기자회견을 “백악관에서 지금까지 보았던 가장 놀라운 장면”이라 보도했는데, ‘루스벨트’는 소란스럽던 첫 실험을 무척 즐겼으며, 기자회견이 끝났을 때 기자단은 감동한 청중으로 돌변해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냈음(p502). ⑦‘엘리너 루스벨트’도 그날 같은 시간에 독자적으로 첫 기자회견을 가져 새 정부의 혁신적인 면을 더해주었으며, ‘엘리너’는 여성 기자만이 참석할 수 있다는 규칙을 만들었는데, 즉 보수적인 신문도 여성 기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엘리너 루스벨트’의 주간 기자회견 때문에 여성 기자 세대가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은 사실임(p503). <뉴욕 타임즈>는 그 첫 주를 “몇몇 대통령의 경우에는 임기 전체에서 일어났을 법한 많은 중요한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된 중요한 한 주”로 규정했는데, 하지만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음(p503). ⑧ [이야기하듯이 단순하게 말하고, 국민에게 직접 말하라] 은행이 다시 문을 여는 3월 13일, 즉 운명의 월요일 아침을 앞둔 일요일 저녁, ‘루스벨트’는 첫 ‘노변담화’(fireside chat)를 가졌는데, 그는 전주(前週)에 틈틈이 은행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구성하고 몇 번이고 연습했으며, 내각의 첫 모임에서도 은행 문제를 간략하게 설명한 적이 있었음(p503). ‘프랜시스 퍼킨스’의 평가에 따르면, 명료하고 평이한 단어를 사용한 설명이었는데, 그 설명은 의원들과 기자들을 위해 다듬어지고 수정되며 간략히 정리됐고, 마침내 국민 앞에 선보일 차례가 되었으며, ‘루스벨트’는 재무부가 제공한 초안을 읽고, 법률계와 금융계의 언어를 쉽게 바꾸려고 애썼음(p503). ⑨즉 전문용어를 그 자신과 보통 시민-그의 표현을 빌리면 “신축 건물에서 일하는 석공, 카운터에서 일하는 계산원, 들판의 농부”-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단어로 바꾸려고 애썼고, 마침내 소수의 가족과 동료를 마주보며 6개의 마이크 앞에 앉은 ‘루스벨트’는 미국 국민이 거실이나 부엌에서 청취할 것이라 상상하며, “내 친구들!”이라고 시작했음(p504). 첫 단어부터 친밀감을 드러내 보인 것인데, ‘퍼킨스’의 회고에 따르면, 방송 내내 그는 환한 표정에 미소 띤 얼굴이었으며, 연설문 작성자 ‘새뮤얼 로젠먼’도 “그는 국민 전체에게 직접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 한 명 한 명에게 말하고 있었다.”라고 평가했음(p504). ⑩‘루스벨트’는 국민이 하루라도 빨리 답을 얻고 싶었던 의문을 정확히 짚었는데, “여러분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왜 모든 은행이 동시에 문을 다시 열지 않는가? 그 답은 간단합니다.” 어떤 은행은 즉각 문을 열 수 있지만, 어떤 은행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결정하는 과정에 시간이 걸렸으며, ‘루스벨트’는 국민에게 “향후에 문을 여는 은행도 내일 문을 여는 은행과 안전성에서 완전히 똑같은 지위”에 있다고 확약했음(p505).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않았지만, 국가가 표류하면 훨씬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취임 연설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루스벨트’는 국민에게 용기와 믿음을 요구하며 “하나가 되어 두려움을 떨쳐냅시다. 금융 시스템을 재건하기 위한 조직이 이제 마련됐습니다. 그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라고 말했음(p505). ⑪‘프랭클린 루스벨트’라는 사람과 시대적 상황이 맞아떨어진 면도 있으며, 요컨대 ‘루스벨트’는 라디오가 제공한 혁신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았는데, 라디오는 “시간과 거리와 공간의 장벽을 거의 없애버린 20세기의 경의로운 발명품”이었고, 대략 6,000만 명이 대통령의 라디오 담화를 청취했음(p506). 그의 부드럽고 여유로우며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는 라디오 시대에 걸맞게 대화하는 말투에 자연스레 맞추어졌는데, 그 노변담화는 일방적인 웅변이 아니라 생각을 주고받는 대화였으며, 게다가 그의 목소리에는 상대에게 그의 말을 믿고 신뢰하게 만드는 따뜻함과 자신감이 있었음(p506).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루스벨트’가 기자들을 대함에 있어서나, 새로 발명된 라디오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영향력을 끼쳤음을 잘 설명함. ‘오피니언 리더’의 중요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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