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역사를바꾸는리더십) 제2강

presentlee 2024. 1. 7. 10:24

https://youtu.be/qUAoju_ANsU?si=MNuFbvc2jANQdIyO

House Leadership School-역사를 바꾸는 리더십(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 요약(3-1장-체스게임과 권력투쟁:리더의 자질-엘리자베스 1세)
 ①체스게임을 한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고 급변하는 요인들, 대립과 협력의 대조적인 힘, 몹시 사나운 변수들의 바다와 같으며, 이러한 모든것들과 함께 ‘인간 체스’ 게임을 하는 것은 리더십의 세계(이론과 실천)에 들어가는 것임(p47). 대가들이 체스판 전체를 이해하는 것처럼 ‘리더십’을 연구하는 우리들도 판 전체를 이해해야 하며, 인류를 형성해 나가는 즉, 그들의 발전 가능성을 제한하고 확장하는 ‘상황과 구조’ 및 ‘인간의 능력’을 이해해야 함(p48). ②20세기 중반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시우아이’(Siuai)족의 정치는 지도자와 추종자들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리더십의 본질’을 보여주는데, 야심있는 ‘빅맨’(big man)은 돼지의 먹이인 ‘타로토란’을 재배하기 위해 여러 부인을 두고 부를 축척하며, 이렇게 길러진 ‘돼지’를 잡아 축제에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결국 최고의 축제를 제공하는 사람이 ‘리더’가 됨. 비슷한 예로 ‘반투’(Bantu)가문에서의 ‘추장’은 정력적이고 능숙한 사람이 되며 그가 부족민의 충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함(p50). 이 외에도 ‘바간다’(Baganda) 족은 죽은 왕의 아들만이 ‘카바카’(kabaka, 통치자)로서 왕위 계승이 가능했기 때문에 여러 부인의 아들 간의 살인이 일어나기고 다고(p51), 여성 혈통을 통해 왕위 계승이 되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이 대단히 복작해서 결국 무력을 사용하게 되는 ‘벰바’(Bemba)족속의 예도 있음(p51). ③‘인도’의 ‘마라타’(Maratha)족은 엄격한 계급과 카스트제도에 뿌리를 둔 왕위 계승이 이루어 졌으나, 이것을 놓고 벌어진 유혈사태가 왕실 권위의 붕괴를 가져 왔으며(p52), 고대 그리스의 아트레우스 저택과 오이디푸스 저택에서의 끔찍한 왕위계승(p53), 로마가 힘이 커지면서 왕위 계승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여 발생한 유혈이 낭자한 대혼란의 모습 등 왕위 계승과 관련된 통치권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소름끼치는 길을 가도록 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임(p54). 그러므로, 법과 제도로서 투쟁을 억제하는 것은 생존 뿐만 아니라, 역동적이고 참여적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도자와 추종자 간의 관계를 배태하고 있는 ‘진정한 리더십’의 등장을 위해 중요한 것임(p54). ④‘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Ⅰ, 재위기간 1558∼1603)는 ‘훌륭한 여왕 베스’(Good Queen Bess)로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제도와 신민들을 새롭게 만든 노련한 지도자로 기억됨(p54). 그녀와 관련된 핵심 질문은 ‘변혁적 지도자’에 가까웠는가? 아니면 ‘거래적 또는 전통적 통치자’에 가까웠는지?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었는지? 역사의 산물이었는지?와 같은 것이며, 어린 시절 엘리자베스는 그 어머니 ‘앤 황후’가 ‘헨리 8세’에 의해 ‘간통죄’로 고소되어 3주만에 타워 그린에서 참수되었으며, 엘리자베스는 사생아로 남아 ‘공주’ 칭호가 박탈되었고, ‘헨리 8세’가 잠재적 동맹자에 대한 신부감으로 엘리자베스의 상품가치를 높일 때 다시 ‘칭호’와 ‘왕위 계성 서열’ 지위가 회복되었으며, 왕위 계승권자인 이복동생 ‘에드워드 6세’가 결핵으로 죽고 ‘메리’(Mary)가 왕위를 계승한 후 스페인 왕위계승자 ‘펠리페 2세’와 결혼하고 수백명의 신교도들을 화형에 처할 때에 ‘저항세력의 지도자’로 목숨이 위태로와 졌고, 반역죄로 메리가 죽을 때(1558)까지 런던탑에 감금되는 등 거의 역사의 희생자였음(p56). ⑤‘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녀는 국내적으로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세력 사이의 갈등,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거대한 가톨릭 세력에 직면하였고, ‘엘리자베스’가 무자한 상태에서 가톨릭 교도이며 스코틀랜드 여왕 인 사촌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는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코틀랜드를 잉글랜드 국정에 간섭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었고 음모, 반란을 꾀하였으므로 ‘엘리자베스’는 신속하고 단오한 대응을 하여 ‘위협’을 무력하게 해야 했음(p56). 그 후 20년 동안 ‘엘리자베스’는 계속되는 사촌 ‘메리’의 음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무사하게 가두어두었으나, 자신에 대한 암살계획에 ‘메리’가 동참한 사실을 알고 결국 단두대에 세웠음(p56). 한편, 신교도 의원과 지도자들은 가톨릭교도에게 단호한 조치를 취하도록 ‘엘리자베스’에게 강한 압박을 가하였으며, 그녀는 ‘온건주의적 개혁가’였지만 국내외 종교분열이 역사가 존 가이(John Guy)가 ‘냉혹한 논리’(inexorable logic)으로 특징지은 그 무언가 즉, ‘신교도들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이고 가톨릭교도들은 배반자들’이란 것을 만들어 내었는데, 그녀는 불필요하다거나 지나치거나, 증오를 완화하기 보다는 오히려 깊게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방법은 반대함(p57). ⑥‘엘리자베스’가 맞닥드린 위기 속에 그녀의 ‘강인함’은 의심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가 ‘여자’라는 사실은 이를 더욱 증폭시켰고, ‘아일랜드’에서는 여왕이 대리하는 총독이 도리어 반기를 들고 “신이 나에게 주신 고통은, 사생아로서 그 태생이 천하고 교양 없는 여자를 위해 봉사하라는 것이다!”라고 외치기까지 함(p57). 이러한 위기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내가 약하고 무력한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왕의 마음과 용기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며, ‘성에 대한 나약함’(sexly weakness)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음(p57). ⑦오늘날에는 ‘질서’, ‘자유’, ‘평등’, ‘정의’라는 공적 가치들로 지도자들을 평가하지만,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신민들에게는 ‘질서’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여왕의 ‘생존’을 의미하며 ‘여왕’의 죽음이 ‘내전’을 초래할지도 몰랐기 때문임(p57). 그녀를 정점으로 한 ‘질서’는 ‘안정된 사회’에 대한 ‘비전’ 이상을 의미했는데, 그녀는 요즘 선거운동과 비슷한 ‘순행’과 같은 것을 하였어도 그녀의 신민들은 ‘시민’이 아닌 ‘피지배민’이었고, 그녀는 그들의 대리인이 아니라 ‘보호자’, ‘주권자’, ‘통치자’였음(p58). 그 결과 사람들의 종교적․정치적․경제적 차이들은 ‘여전히 모든 것의 중심이고, 모든 사회적․도덕적 질서의 안정을 보증하는 존재’인 ‘잉글랜드’와 그 군주에 대한 ‘충성’ 속에 묻히게 됨(p58). ‘안정’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신장된 ‘자유’, ‘정의’의 가치를 희생함으로 보호되었는데, 1579년 존 스터브(John Stubbs)가 여왕이 가톨릭교도인 프랑스 공작과 결혼하려고 한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비난하는 소책자를 출판한 사건과 관련하여, 나이 많고 후사가 없는 ‘엘리자베스’의 왕위계승에 대한 걱정에 불을 지피고, 종교적 갈등에 공포를 일으킬 문제를 건드림. 왜냐하면, 청교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존 스터브’가 “그녀는 그녀의 외국인 지배자에 의해 지배당할 것이고, 잉글랜드는 그녀의 통치자가 될 사람에 의해 통치될 것”이라고 썼기 때문임. 결국 여왕은 화가 폭발하여 그 책을 금서로 만들고 스터브스의 손을 잘라버림(p58). ⑧이러한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녀가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르네상스의 새로운 흐름에 민감한, 세상을 볼 줄 아는 여인었기 때문임(p58). 그녀는 통역 없이 외국 사절과 대화할 정도로 프랑스어와 이탈이아어에 능숙했으며,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를 이끄는 그 시대 학자들에게 귀 기울였으며, 역사가 ‘월리스 매카프리’의 말과 같이 그녀의 궁전을 “그 시대 최고의 문화가 꽃필 수 있는 지적 교양의 중심”으로 만들었기 때문(p59).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가진 기민한 판단, 즉 경쟁상태의 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동기와 권력수단을 예리하게 간파하는 능력이었음(p59). 또한 그녀는 인간의 야심과 경쟁에 관련된 움직임에 대해 직관적인 이해력도 겸비하였는데, ‘엘리자베스’가 40년 동안 ‘추밀원’(Privy Council)을 다루었던 것에서 잘 나타남. 추밀원 의원들은 1주일에 두 번 그리니치나 다른 궁전들에서 회합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거만하고 전제적인 사람들이었으나, ‘엘리자베스’는 거리낌없이 그들을 모욕하면서도 그들의 정치적․군사적 경험들을 충분히 흡수하였으며, 그들을 완전히 통제하지는 않았으나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 지를 알고 있었음(그녀는 의원들을 개별적, 소규모로 미리 만났음)(p59). 특히, ‘엘리자베스’는 군사적인 문제에서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추밀원 의원들은 그녀가 무엇을 행하도록 압박을 가해야만 했으며, 이와같이 전제적이지만 신중한 군주와 충성스럽지만 의심해보고 또 결정을 재촉하는 추밀원 사이의 균형이 계발되었음(이것이 집단적 리더십에 가까웠음)(p60). ⑨‘윌리엄 매카프리’는 “되돌아보면 현재 우리가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의 특징과 질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며 그녀가 강력하게 중앙집권화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군주제’를 상속받았다는데 그 해답이 있다고 함(p60). 한편, 그녀는 종교적 폭력과 잔인한 정치투쟁 속에 성장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전처와 수십명의 혈족들, 법률고문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까지 처형했고, ‘엘리자베스’는 그녀를 죽일 음모를 꾸미며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는 경쟁자와 스페인 등 대외적 위협에 직면해 있었음(p60). 그 결과 그녀는 ‘그녀가 물려받은 이러한 불안정을 극복하고, 국내 질서 유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으며, 당시 대부분의 통치자들이 질서 유지를 위하여 ‘철권통치’를 하였으나 ‘엘리자베스’ 그러한 방법을 쓰지 않았음(p60). 그녀는 그녀가 통치하는 사람들이 이미 자신들의 신체와 재산상에 있어서 전횡적인 권력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사실을 음미하고 있었으며, 그는 기질적인 전제 군주는 아니었으나, 그녀의 가장 강력한 힘은 ‘그녀의 불굴의 의지, 일심으로 다져진 의지’에 있었음(p60). 그 결과 그녀는 가톨릭교도들도, 프로테스탄트 광신자들도 만족하지 않았던 ‘종교법안’(settlement of religion)을 단호하게 추진하고 잉글랜드 국교회를 좀더 세속적인 기구(그녀 나름의 관용과 실용주의를 반영하고, 극단주의자들을 배제한 거대하고 폭넓은 안정화 센터)로 바꾸려 했음(p61). 그녀를 둘러싼 불안정한 세계로 인해 그녀는 안정을 가능하게 하고 좀더 거대한 변혁이 불필요하거나 적어도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을 이루기 위해 ‘실용적인 책략’을 사용함(즉 더 폭넓은 목표에 대한 욕망이 없었음)(p61). ‘엘리자베스’의 모토는 ‘항상 전과 다름없이(semper edem)’였음. 따라서 ‘윌리엄 매키프리;는 변화 속에서 그녀가 사회구조 내의 위협적인 불화, 즉 무질서와 최악의 경우 반역과 폭동을 우려했다는 결론을 내림(p61). ‘엘리지베스’는 생존자의 기질을 가지고 안정 속에서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 낮은 위험 수준에서 제한적이지만 명확한 목표를 추구하는 신중하고 거래적인 생존자들의 전략을 사용하였음(결국 그녀는 자신이 살아남음으로 그녀의 조국이 생존하도록 도운 것임)(p61).
● 비평                                                                
  필자는 ‘엘리자베스’의 리더십을 잉글랜드에서 그녀가 처한 내·외적인 상황 속에서 ‘신중하고 거래적인 생존자들의 전략’을 사용했다고 하며(p61), 그녀의 ‘거래적 리더십’의 이미지를 부곽시켰음.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성장환경과 그녀의 내·외적 환경에서 단지 ‘생존’을 위해 통치했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으로 생각됨. 도리어, 국가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한 ‘통합적 리더십’의 모습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여짐
● 토의
  필자는 16세기의 절대왕정 시대의 잉글랜드의 국왕인 ‘엘리자베스’의 예를 통하여, ‘권력’을 다루는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음. 그렇다면, 현대의 3권으로 분리된 민주주의·공화주의의 체제하에서 올바른 ‘권력’ 행사를 위한 보다 발전된 형태의 ‘리더십’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 요약(3-2장-체스게임과 권력투쟁:리더의 자질-세력균형)
 ①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던 1936년, 에티오피아 황제인 ‘하일레셀라시에’(Haile Selassie)는 ‘국제연맹’에 자기 국가를 도와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쇠퇴한 ‘국제연맹’이 파시스트를 막기란 역부족이었음(p62). 한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제국’이 붕괴한 뒤 승전국들이 맺은 ‘유럽협약’(Concert of Europe)을 그 기원으로 하는데 강대국들이 세계를 식민지로 만드는 동안 그들의 안전을 도모함(p63). 한편, 30년 전쟁이 진행되던 17세기 초 프랑스의 승려 ‘크루세’는 분쟁 중재를 위한 회의체를 한 도시에 설립하도록 권고하고, ‘윌리엄 펜’(William Penn)은 국가들 간 ‘정의의 규칙들을 확립하고’ 그 판단에 따르는 ‘군주들의 회의’(parliament of princes)를 제안했으며(p63),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국가들간의 계약을 제안하였고(p64),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은 세계법원의 출현을 예견했음(p64). ②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세력균형’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고, 1915년 6월 미 대통령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는 ‘평화를 강제하는 연맹’(the League to Enforce Peace)을 창립하는 회의의 사회를 맡았고,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1916년 3월 연맹의 첫 번째 국내회의에서 ‘전세계적인 국가연합’창립을 주도하겠다고 공약함(p64). 1차대전 후 ‘윌슨’은 유럽을 순방하였는데, 여기서 ‘윌슨’은 인도의 ‘연맹’가입을 지지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희생을 각오하였음(p65). ‘윌슨’은 연맹 규약을 위반하고 전쟁한 어떤 회원국도 다른 연맹국가들 모두에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는 ‘규약’을 들고 워시턴으로 돌아왔으며, 이 조약을 미 상원의 3분의 2이상의 지지를 받아 통과시키기 위해 1919년 9월 대통령 전용기차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며 “만일 단결된 국가들이 또 다른 대규모 전쟁을 막지 못한다면, 전쟁에서 죽어간 병사들, 그들의 미망인과 고아들 같은 약자들은 다시 한 번 역사라는 거대한 체스판 위의 폰이 될 것”이라고 연설하였고 그 결과 그의 몸은 탈진되었음(p68). ③한편,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헨리 캐봇 로지’(Henry Cabot Lodge)는 외교위원장으로 빈틈없는 ‘거래적 지도자’로 빛을 발하여 ‘윌슨’에 대해 빈틈없는 방어작전을 펼쳤는데, 심지어는 조약 비준을 늦추기 위해 268쪽이나 되는 베르사유 조약 본문 전체를 한글자씩 읽어 2주 동안 위원회를 묶어놓았음(p67). 그 결과 ‘로지’의 ‘거래적 리더십’이 ‘윌슨’의 ‘변혁적 리더십’을 이기고 미국은 ‘국제연맹’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 결과 ‘국제연맹’은 힘을 잃게 되었음(p69). 한편, ‘실용적 세력균형 전략’ 역시 무솔리니가 추축국에 합류하고 유럽이 전쟁상태에 돌입하면서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수백만명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2차대전으로 목숨을 잃음(p69). ④‘히틀러’는 독일의 질서를 유지하고, 안전을 보장하며, 국가의 생존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국민들과 하였지만 결국 죽음과 파멸로 이끌었음(p70). ‘엘리자베스 1세’ 사후 그녀의 통치기간에 은폐되었던 정치적․종교적 긴장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찰스 1세’(Chales Ⅰ)는 1640년대에 혁명으로 폭발하는 것을 보아야 했음(p70). ‘통치자’(ruler)가 질서 유지와 안전 보장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침식당하는 이유는, ‘지도자’(ruler)와는 달리 그들이 다스리는 신민으로부터 스스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임. 지도자와 추종자 사이에는 서로 힘을 실어주는 필수불가결한 ‘유대’가 지속되어야 하며, 이 ‘유대’는 추종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대해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반응하는 것에 기초함. 잉글랜드 내전은 국민과 고립되어 있고 국민들의 요구에 둔감한 왕에 대항하여 의회가 국민의 이름으로 최고 주권을 주장한 것임(p70). ‘지도자’가 아닌 ‘통치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공격받기 쉬운 체스판의 폰과 같으며, 멀리서 일어나는 권력투쟁의 결과 내전으로 인한 희생자가 되어버림. ‘리더십’이 아닌 통치의 정치체제 안에서의 국민은 권력을 빼앗긴 신민에 불과함(p71)
● 비평                                                                
  필자는 과거 왕정 시대는 군주라는 절대권을 가진 왕을 ‘통치자’로 간주하지만 ‘지도자’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여짐. 즉, 주권을 가진 ‘통치자’는 결국 신민과의 관계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고 상호간의 임파워먼트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음. 이와 같이 ‘개인’의 성향이나 자질이 아닌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통치권’의 한계를 잉글랜드의   왕위계승 과정과 명예혁명 과정을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 토의
  필자는 ‘국제연맹’과 관련된 미국 역사 가운데 상원위원 ‘로지’와 ‘윌슨’을 비교하면서, ‘로지’를 ‘거래적 리더십’으로 ‘윌슨’을 ‘변혁적 리더십’으로 보고 있으며, 결국 ‘변혁적 리더십’을 따르지 않고 ‘거래적 리더십’을 따라 ‘국제  연맹’ 참가를 거부한 일로 인해 2차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것으로 설명함.  그렇다면 ‘변혁적 리더십’이 ‘거래적 리더십’을 이기고 권력을 얻을 요인은?


□ 부록(DBR Interview-라스무스 후가드 포텐셜프로젝트 CEO-강지남)

 

ㅇ 원문출처 https://dbr.donga.com/article/view/1306/article_no/10372
 

①‘공감의 리더십’(Compassionate Leadership)이란 어려운 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내는 능력으로서, 조직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냉정한 피드백과 해고 등 여전히 리더십에 요구되는 어려운 일을 해내는 능력을  말함. 이러한 공감의 리더십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이입(empathy)이며, 직접 솔루션을 제시하려는 유혹을 견뎌내야 함. 한편, 규칙적인 마음챙김과 충분한 휴식으로 리더 자신을 먼저 돌보아야 함. ②글로벌 리더십 연구기업이며 최근 수년간 공감의 리더십(Compassionate Leadership) 연구를 진행하는 포텐셜프로젝트(Potential Project)회사의 CEO 라스무스 후가드(Rasmus Houggard)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는 지금, 리더는 어느 때보다 공감(compassion)이란 자질이 필요하다고 하며, 공감을 동정(pity-타인의 경험에 대해 유감을 느끼는 정도)이나 동조(sympathy-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의지), 감정이입(empathy-그 감정을 받아들여 자신의 감정화 함)와 구별해야 한다고 함. 공감은 타인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행동하려는 의지의 상태로, 당사자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문할 때 발생함. ③‘감정이입’의 경우 그 외 사람들을 위협적으로 여기게 되므로 실제적 도움을 주지 못함. 그러므로, 한 발짝 물러나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라고 되물어야 함. 직원의 처지에 감정을 이입해 그의 어려움을 자신이 떠안는 실책을 범하는 리더들이 있지만, 리더는 공감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함. 공감의 리더십에서는 어려운 일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내는 능력인데 인간적인 것과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은 배타적이지 않음. 포텐셜프로젝트는 1만5천명의 리더십 데이터를 수집하여 분석한 결과 공감(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지지)과 지혜(어렵더라도 해야 할 용기)를 겸비한 리더가 조직에 최고 성과를 가져옴을 확임함(직무만족도 86%, 업무성과 20%, 번아웃 64% 개선). ④공감의 리더십은 리더와 직원간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직원에게 회사의 상황을 공유함으로 더 강력한 헌신을 통해 업무 성과를 높이며, 사람들도 공감능력이 있는 리더를 더 유능하다고 생각함. 현재 미국에서 수백만명의 자발적 퇴사자가 발생하는데 그 원인은 무관심과 자원부족으로 ‘사람은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상하를 떠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임. 그런데 리더는 ‘공감’만으로는 부족하고 무엇이 직원들을 동기부여 하는지, 어떻게 인솔해야 할지 아는 ‘지혜’가 동반되어야 함. ⑤‘에어비앤비’의 경우 2020년 CEO 브라이언 체스키가 1900명 직원을 해고하기로 결정하면서 공개서한을 통해 그런 의사결정의 과정을 설명하고, 해고된 직원들에게 공감을 표현하며 상처준 것을 사과한 것과, 넉넉한 퇴직금 및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한 것과 같이, ‘솔직함’(candor)은 공감의 실천에 큰 부분을 차지하며, 직원들은 리더가 진짜 자신을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됨. ⑥포텐셜프로젝트의 최근 연구에서 리더 스스로가 공감능력을 높게 평가한 그룹은 스트레스 지수가 66%나 낮다는 결과가 나타 났으며 일을 그만두고자하는 생각은 200% 낮고 효율성은 14% 높았음. 공감과 지혜를 두 축으로 놓는다면, ㉠따뜻한 회피 ㉡비효과적 무관심 ㉢무정한 실행 ㉣지혜로운 공감으로 나눌 수 있음. ‘지혜로운 공감’을 위해서는 5가지 핵심전략으로 1)정신적, 감정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기, 2)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기, 3)행동하지 않음의 힘 기억하기, 4)스스로 해결책 찾도록 돕기, 5)자기 관리 실천하기가 있음. ⑦‘한 걸음 물러나기’란 사람에게서 멀어지라는 게 아니며, 문제로부터 한 것을 멀어지라는 것임. 감정의 산만함이 없어야 상황을 명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며,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요’하고 물을 수 있음. 또한, ‘리더’스스로의 솔루션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걸 유의하고 자신의 귀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구성원은 ‘인정’받았다고 느낄 것임. 한편, 리더가 인간성(humanity)을 겸비한 방식으로 구성원가의 대화에 참여하고, 한명의 ‘동료’로서 개인의 어려움과 감정을 털어놓은 다음 ‘보스’로서 생각을 말할 수 있으면 좋을 것임. 또한, ‘리더’ 스스로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돌아보아야 하며,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의 상황에서는 ‘리더’는 직원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주는데 시간을 할애해야 함

 

[DBR] “그 문제 내가 풀어줄게” 나서기보다, 느긋하게 들어주는 지혜가 진짜 공감

Article at a Glance공감의 리더십(Compassionate Leadership)이란 어려운 일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내는 능력이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냉정한 피드백과 해고 등 여전히 리더십에 요구되

dbr.donga.com

역사를바꾸는리더십(제임스맥그리거번스)_24하우스(이현재)_3장,부록(공감리더십).hwp
0.08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