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01KrnON40ZE?si=YM8GD9SoSjHqJMAR
House Leadership School
리더십 강의(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제2부 리더십의 기원
□ 요약(제5-1장 정치적 리더십의 형성과정 : 야심의 배태_간디)
①‘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일곱 살 때일 즈음 “예절 바른 규칙을 무시하고 부모님의 침실에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소변을 보았던 적이 있다. 아버지는 꾸짖으면서 ‘이놈은 실패하고 말 거야’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분명히 나의 이상에 무서운 타격(모욕)이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나의 꿈속에서 이 장면과 관련된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이 장면들은 나의 성취 및 성공들과 언제나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하고 있음. 정치지도자들이 ‘프로이트’처럼 야심의 근원을 정연하고 뛰어나게 탐색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일 것임(p195). ②‘정치 리더십’의 근원은 어린이와 젊은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체적‧심리적‧사회적 동인들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데, 처음에 ‘리더십’ 역할을 추구하게 하는 요인은 부모의 태도와 행태, 학교교육 및 ‘리더’의 지위에 대한 젊은이의 정향에 긴밀하게 영향받음. 이처럼 ‘리더십’의 길에 들어서도록 이끄는 많은 요인들은 그것 자체로만은 불충분하며, 그 요인들은 정치적 행동가들이나 충실한 시민, 이데올로기 광신자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름(p196). ③초기의 개인적‧사회적 성향은 정치적 이익 및 활동과 연계되어 있음에 분명한데, ‘리더십’을 얻는다면 이것들은 정치적 성공과 연관데는 것이 분명하며, 그 연관들은 하나의 정치적 기회구조와 맞닿아 있는 일련의 정치적 동기들로 구성되어 있음. 개방 및 폐쇄구조가 없는 동기는 목적이 없는 행위를 야기시킬 것이며, 때때로 왕위계승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 중의 하나인 동기가 없는 기회는 생기없는 정치질서를 만들어냄(p196). 심리학자들은 ‘정치적 동기’에 관해 많은 사실을 발견할 뿐만 아니며,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동기화에 관해 방대한 문헌들도 내놓았는데, ‘야심’에 대한 연구는 대개 픽션작가의 몫으로 돌려졌으며, ‘호라티오 알저 2세’(Horatio Alger, Jr.)의 책에 나오는 경제적 영웅들은 광산에서 나와 사회적‧정치적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청년 웰시맨’(Welshmen)에 관한 소설들, 정상에 오른 노동자들 등에 관한 소설들 속에서 재등장함(p197). ④‘정치적 야심’의 본성에 관한 연구는 고결한 전통 때문에 제약을 받아왔는데 이 전통은 단지 모든 동기들을 배제한 ‘권력충동’으로만 보게 하였으나, 좀더 포괄적으로 분석해 보면, ‘정치적 리더십’은 보다 광범위한 일련의 동기들로부터 떠오르는 것이며, ‘버논’(Philip E. Vernon)이 제시했듯이, 지배와 ‘리더십’은 어느 정도 구분되어야 함. 왜냐하면, 책임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려 하지 않고 지배하기만을 원하는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 많은 유형의 ‘리더십’에 있어서 설득력, 집단의 태도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집단의 요망에 따르려는 책임감의 감내가 지배하려는 욕구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임(p197). ⑤‘리더십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구분은 사회적‧정치적 결과와 무관하게 개인적 인정 및 자아향상을 위한 추구, 개인의 욕구나 야심을 초월하여 집단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는 지위와 권력의 추구를 분별하는 것임. ‘아들러’(Alfred Adler)는 다른 인간과 동일시할 수 있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을 강조하는 ‘성격이론’을 발전시켰으며, 이러한 ‘감정이입’의 발전은 공동선의 추구에 개인적 에너지를 편입시킴으로써, 개인의 향상충동을 공동체의 진보를 향한 충동과 동일시 하도록 해주며, ‘아들러’의 제자로 이 이론을 확대시킨 ‘매슬로’(A. H. Maslow)는 개인의 ‘권력동기’를 구성하는 일련의 필요들을 ‘업적’과 ‘명성’이라는 2개의 하위세트로 나눔(p197). ⑥‘간디’가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왜 영국에 오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야심’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함. 그러나 뒷날 그는 대중연설가로서 자질이 없다고 느꼈으며, 그는 외알 안경과 실크모자를 쓰고 짧은 각반을 차고 다녔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고등법원에 등록한 다음 인도로 떠났으나 고객이 없어 남아프리카로 여행. 그 곳에서 20년 이상 머물렀고, 거기서 인종적 차별과 미움에 직면하여 시민불복종에 있어서 ‘리더십’의 역할을 훈련받았음(p198). 그의 ‘야심’은 불의를 부수기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판사가 터번을 벗으라고 했을 때 그는 걸어서 나와버렸고, 프라토리아행 기타의 일등석에서 쫓겨나 기차 밖으로 쫓겨났으며, 승합 마차에서 마부석에 앉는 것에 대한 항의로 인해 귓방망이를 후려맞는 등 영국의 ‘이너 템플’(Inner Temple) 법학원의 젊은 졸업생은 결국 ‘쿨리(품팔이 인부) 같은 변호사’가 되었음(p199). ⑦그를 쫓아낸 프리토리아행 기차가 떠난 날 밤, ‘간디’는 대기실에서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인도로 돌아갈 것인가? 돌아가는 것은 비겁한 것이다’고 결정하고 “내가 당했던 역경은 껍떼기일 뿐이다. 이것은 단지 인종적 편견이라는 깊은 질병 중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라고 하며 프리토리아로 돌아감. ‘에릭스’(Erik Erikson)이 말하듯이, “...그 역사적 시간과 장소에서...깨달음의 핵심은...묵과할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운명이 선택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이었음(p199). 남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은 백인과 인도인들 모두에게 예속되어 있었으며, 회교도 인도 상인들은 최상부였고, 그들은 백인들에게 순종함으로써 ‘아랍인들’과 같은 사회적 혜택을 얻었으며, 힌두교도와 조로아스터교 서기들이 회교도보다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최하층에는 ‘쿨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반노예상태로 광산과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인도에서 유입된 ‘계약 노동자’들이었음(p200). ⑧인도인들은 태생이나 종교에 따라 ‘힌두교도’, ‘회교도’, ‘구라자트인’(Gujaratis), ‘마드라스’(Madrasis), ‘기독교도’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었는데 이들을 어떻게 단결시킬 것인지가 관건이었음. ‘간디’는 심지어 개인적인 전략까지도 서서히 발전시켰으며, 때로는 당국에 양보하였고, 때로는 용감히 맞섰으며, 때로는 작은 충돌을 일으켰는데, 그는 반은 변호사였고, 반은 반란자였음(p200). 영국인에게 그는 단지 또 한명의 ‘쿨리’일 뿐이였는데, 그는 자신의 모욕감과 매일 그의 법률사무실에 찾아오는 인도인들의 곤경 속에서, ‘러스킨’(John Ruskin)과 소로, 톨스토이 등을 읽으면서 서서히 하나의 정치전략을 형성함. 인도인들은 정치적으로 단결하고 조직되어야 했으며, 그들은 시위와 대결, 불복종, 수동적 저항을 통해서 자신의 곤경을 극적으로 드러내어야 했음. ⑨‘간디’와 협력자들은 기금을 모으고 선전하고, 줄다리기나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 정부에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을 배웠으며, ‘간디’를 포함한 항의자들은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그는 인도에서 전술의 전조를 이루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으며, 세차례나 투옥되었고, 매번 보석금을 내고 다시 자신의 길을 갔는데 이와 같은 모습이 ‘간디’의 청년기었음(p200). 그는 자기표현, 관용, 전투성, 자율성, 평등이라는 막대한 잠재력을 가진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즉, ‘진리의 장악’ 운동에 헌신했으며, 그는 자신의 이념 뿐만 아니라, 그의 거대한 잠재력을 시작함(p200). 그는 겁많고 위험에 빠진 변호사로부터 점점 더 유능함과 효능성에 관한 감각이 있고 포괄적이며 강력한 일련의 가치들을 소유한 단호하고 민활하며 유능한 정치활동 전략가로 변모했으며, 간디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리더’가 됨(p201)
● 비평
필자는 ‘정치적 리더십’의 형성과 관련하여 그 근원이 생체적‧심리적‧사회적 동인들의 깊은 곳에 존재하며, ‘정치적 동기’와 관련하여 ‘야심’이란 측면을 심리학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야심’을 단순한 ‘권력충동’으로만 보는 관점을 배제하고 보다 광범위한 일련의 동기들이 있으며, 단순히 ‘지배’하기 원하는 욕구보다, ‘설득력’, ‘민감성’, ‘집단의 요망에 따르려는 책임감의 감내’와 같은 더 중요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야심’의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곽시키고 있음. 또한, 이러한 ‘야심’과 관련하여 개인적 인정 및 자아향상의 추구, 집단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는 지위와 권력의 추구를 구별하여 설명하며 다른 인간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이 공동선의 추구에 개인적 에너지를 편입시켜서 개인의 향상충동과 공동체의 진보를 위한 충동을 동일시하는 탁월한 작업을 보여주고 있음.
● 토의
‘간디’의 예에서와 같이 개인적 ‘야심’이 공공의 목적으로 변화되는 원인은?
□ 요약(제5-2장 정치적 리더십의 형성과정 : 야심의 배태_히틀러, 레닌)
①‘야심’은 ‘히틀러’의 본질적인 목표였는데, 그가 조국의 구원과 노르딕(Nordic) 종족의 정화를 위해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기 기만이었고, 그는 그 목표를 자신의 지배와 전적으로 동일시하고, 권력을 위해 국민을 기꺼이 파괴하고자 함. ‘히틀러’의 야심은 ‘포메라니아’(Pomerania)의 병원에서 형성되었는데, 1차대전 말 그는 부상당해 그곳에 누워있었고, 낙담하고 위축된 상태에서 발작적으로 흐느끼면서 이 시기를 보냈음(p201). 승리에 대한 희망과 자신의 권력추구욕이 융합되었듯이, 멸망당한 독일의 운명과의 패배감이 융합된 듯 한데, ‘랑거’가 말했듯이, 독일의 패배에 대해 ‘히틀러’는 마치 자신의 실제의 어머니와 상상의 어머니는 물론이고 그 자신이 유린당한 것처럼 반응하였음(p201). ②‘히틀러’가 병원에 누워있을 때, ‘키엘’(Kiel)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몇몇이 적기를 가지고 그 병원에 와서 혁명에 가담할 것을 요청하였고, 며칠 뒤 황제가 독일을 떠나 망명했다고 한 목사가 환자들에게 말했으며, ‘히틀러’는 패배의 모든 상황을 깨달았던 듯하고, 그는 뒤에 이 같은 고통의 밤들을 지내는 동안 독일의 배신자들에 대한 증오가 싹텄다고 함(p202). ‘11월의 범죄자들’이 뒤집어질 때까지, 그는 어떠한 휴식이나 평화도 포기하기로 맹세하고, 고국에 머물러 조국을 등 뒤에서 찌른 반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정치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함(p202). ③이 시기가 그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채 30세도 안되어 뮌헨을 떠돌아 다니며 부랑생활을 한 후 4년간 의무적인 군복무를 하고, 아무런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어떠한 정치적 연줄도 없고, 복귀해야 할 직업도 없고, 실제적으로 아무런 현실경험도 없고, 단지 모호한 정치 도그마들의 혼성품을 가진 자였음. 이것만으로는 20년 동안 독일에 대한 절대적 통치권을 그에게 가져다주고, 짧은 시간 동안 세계의 절반을 지배토록 한, 하나의 정치 전략과 이념적 프로그램, 그리고 대중 통제스타일을 5년 안에 형성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으며, 그처럼 신속하고 확고하게 자신의 지배스타일을 확립한 사람은 아무도 없음(p202). ④‘히틀러’는 뮌헨으로 돌아가 전쟁 전부터 알고지냈던 ‘극우주의자’들과 ‘인종주의적 선동가’를 다시 만났고, 그는 곧 ‘리스트 연대’(List Regiment)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함. 정치집회를 감시하고, ‘리스트 연대’에 의해 수행된 일련의 임무를 통해 정치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으면서 그의 현실적 정치교육이 시작함(p202). 1919년 그는 독일 노동자당을 조사했는데, 이 정당은 뮌헨이라는 뜨거운 정치적 인큐베이터에서 부화된 많은 소규모 집단 둥 하나이며, 그 프로그램에 인상을 받고 그 조직과 전술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 그는 여기에 가입하여 집행위원회의 일곱 번째 멤버가 되었고 그는 곧 그 정당을 장악함(p203). ⑤1933년 이전의 ‘히틀러’는 당조직, 선전기술, 그리고 정치적 신조와 창조자라기 보다는 노련한 배합자였고, 뮌헨의 극심한 정치적 경쟁 속에 그는 자신이 점점 더 많은 군중을 끌어당겨 그들을 매혹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또 반대파를 논파하는 데 실패할 경우에는 군사적 추종자들을 시켜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고, 청중을 흥분시키는 깃발, 포스터, 기장, 화려한 행사 그리고 다른 장치들이나 상징들의 역할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아차림(p203). 자신이 홀로 당을 지배하는 것이 집행위원회의 집단적인 지도보다 우월하다는 사실도 알았고, ‘정치’는 그의 천직이자 취미가 되었는데, 그는 그것을 잘 했으며, 그 밖의 어떤 것은 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임(p203). ⑥그는 독트린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1920년대 초의 연설내용은 그 후 25년에 걸쳐 동일하게 반복되었고, 베르사유체제에 대한 분노, 증권거래소의 자본주의의 악, 러시아 볼셰비즘의 위협, 강력한 중앙정부의 필요성, 권력의 원리, 더 완벽한 사회복지수단의 강구, 그리고 시종일관 외쳤던 유대인들의 교활함과 위협, 강력한 중앙정부의 필요성 등임(p203). ‘히틀러’를 기만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그의 계획과 목표는 그의 연설정강, 그리고 ‘나의 투쟁’ 속에 나열되어 있어서 전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기 때문임(p203). ⑦‘히틀러’는 빠르게 부상했으며, 미수에 그친 1923년 11월의 뮌헨 폭동에서 그는 이 가르침을 깨달았는데, ‘란트베르그 요새’ 감옥에 편안하게 갇혀있을 때 그는 ‘나의 투쟁’을 집필하면서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뀔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함(p204). 1930년 초의 경제적 고통과 정치적 격동은 그의 야수적 권력을 공고히 하기에 필요한 상황임(p204). ⑧‘레닌’의 야심 또한 이른 시기에 형성되었으며, 그는 ‘전략’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집요함을 가지고, 그후의 세월 동안 그것을 고수함. 그는 순수한 권력자였는가 아니면 리더였는가? 1893년 가을. 그가 페테스부르크에서 혁명적인 학습과 활동에 투신하였는데, ‘볼펜슈타인’(Victor Wolfenstein)은 이후 20년 동안 그는 계속해서 정체성과 자아확인의 위기를 겪었으며,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및 형의 죽음에 대한 거의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결합된 것이었음(p204). 젊은 시절 ‘마르크스’에 받은 세례가 그의 지적인 인식과 판단을 형성함. 그러나 ‘레닌’이 ‘혁명적 리더십’의 소명에 확고부동하게 추구한 이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소명’ 그 자체이며, 그 ‘소명’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임(p204). ⑨‘레닌’은 페테스부르크 노동자들의 생활조건, 공장동료들,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체계적으로 탐구했고, 러시아 자본주의의 발전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계를 수집함. 그는 혁명세포이기도 했던 일련의 스터디그룹을 구성해 그들을 의식화시키고, 마침내 경찰에 꼬리를 잡혀 시베리아로 유형당하자, 그는 집중적인 독서와 통신을 통해 자신의 혁명사업을 계속했음. 석방된 그는 널리 유럽을 여행하면서, 혁명적 선도와 음모의 폐쇄적인 세계에서 혁명활동을 재개하였고, 파리에서 그는 활동가를 위한 학교를 운영하면서, 혁명을 위한 교사와 설교자가 됨. ‘레닌’은 자신이 연설보다 팸플릿을 쓰는 데 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 단순하고 솔직하며 충격적인 웅변이 이따금씩 궤변적인 주장의 안개를 뚫고 나아가 노동자계급 청중들을 분기시킬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는데, 그는 정서적인고 지성적인 극도의 자기규율을 보여줌(p205). ⑩‘레닌’은 혁명적 의무는 사적인 우정과 감정, 사랑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의를 설교하고 실천했으며, 무엇보다 결혼과 사랑을 대의에 종속시켰고, 채 30세도 안된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그의 혁명이론을 전개하였는데, ‘볼프’(Betram Wolfe)는 실제로 이 책에서 나중에 ‘레닌주의’로 알려진 정치와 정당에 관한 모든 생각을 수미일관하여 담고 있다고 함. 이 두꺼운 팸플릿은 ‘점진주의자’와 ‘테러리스트’를 모두 공격하고 있으며, 그는 혁명은 오직 훈련되고 전투적인 전위의 ‘리더십’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함. 대중은 자신들의 노력과 자발성만으로는 단지 ‘조합주의적 의식’에 도달할 뿐이었음(p205). ⑪섬광 같은 통찰이나 오랜 허황된 주장 속에서, ‘레닌’의 전력을 아우르고 러시아와 세계의 역사를 형성시킬 수 있는 하나의 중심개념이 형성되었는데, ‘당에 의한 대중의 지도, 일인에 대한 당의 지도’라는 그의 ‘리더십’ 개념이었음. ‘울람’(Adam Ulam)은 “하나의 결정이 토론없이 내려질 수 있고, 인민은 단지 이러저러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명령받으며, 당세포는 중앙에 보고해야 한다는 이런 모든 주장들은 거대하고 새로운 발전의 선조를 이루었다.”라고 함(p205). ‘레닌’과 당에 있어 ‘리더십 전략’은 혁명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 되었고, ‘레닌’은 야수적인 권력행사에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수단을 사용할 기회를 가졌는데 ‘리더십’의 본질인 ‘갈등’은 억제되었고, 공산주의 혁명이론에서 정식화된 리더와 추종자의 융합은 추종자들에 대한 리더의 지배로 전환됨. 복종과 일인 지배에 대한 ‘레닌’의 요구는 필연적인 결과를 초래하였고 봉건적 리더들은 교체됨(p206).⑫‘헤밀턴’(Alexander Hamilton)은 “명예에 대한 사랑은 고귀한 정신을 지닌 사람들을 지배하는 정열”이라고 말했는데, ‘야심’이 그칠 줄 모르는 박차와 같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도 보다 더 잘 알아야 함.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정치적 리더십’의 기본적인 욕구인 ‘야심’에 대하여 ‘간디’, ‘히틀러’ 및 ‘레닌’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음. ‘야심’을 올바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 요약(제5-3장 정치적 리더십의 형성과정 : 만족에 대한 욕구)
①‘매슬로’는 권력이 요구하는 두 종류의 욕구군을 제시하는데, 1)기술에 대한 욕구의 힘, 업적, 적절함, 능란함과 능력, 자율성과 자유에 대한 욕구와, 2)명성에 대한 욕구로 평판 또는 명예, 지위, 지배, 인정, 주목과 평가에 대한 욕구임(‘매슬로’는 이러한 욕구들이 상대적으로 ‘아들러’에 의해 강조된 반면, ‘프로이트’에 의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시되었다는 점에 주목함). 정치권력에 대한 야심은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광범위한 동기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대체로 덜 중요한 동기일 뿐임(p207). ②‘넛슨’이 지적한 바는 권력의 획득은 ‘매슬로’의 가치들 중 유일하게 ‘지배’와만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지배’와 무관한 많은 유형의 정치적 활동들은 지위와 주목, 중요성 등에서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을 것이지만, 이러한 정치적 활동들은 그 역할과 결부된 완전한 권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는 한편, 그 활동들은 사람들에게 만족을 줌. 정치가들 역시 권력에 대한 야심을 과대평가하고, 지위와 인정에 대한 욕구를 과소평가할 것임. ‘오코너’(Edwin O’Connor)의 ‘최후의 승리’에서, ‘가비’는 스케핑톤에 대항하는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해네시’를 방문했고, 그는 수다스러운 ‘해네시’가 권력 그 자체에, 또는 최소한 뇌물을 뜯을 수 있는 권력에 관심이 있으리라 짐작했음(p207). ③“우리와 함께 합시다”라고 ‘가비’는 ‘헤네시’에게 간청했으나, ‘헤네시’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고, “오 이 양반아, 이기는 것이 전부가 아닐세”라고 그는 소리쳤으며, “...선한 싸움을 하게 하고, 진실을 말하게 하는 것이야!...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해. 이들은 해가 갈수록 더욱 그것을 두려워할 거야.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한 사람을! 시한폭탄이거든!” ‘가비’는 그가 미쳐 날뛴다고 생각했지만, ‘헤네시’는 미친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동기에 의해 행동하고 있었을 뿐이었음. 무엇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성찰이나 픽션의 영역에 남겨둘 필요는 없으며, ‘브라우닝’과 ‘제이콥’은 루이지애나주 동쪽에 있는 한 중소 도시와 2개의 카운티에서 활동하는 정치치인을 연구했는데, 이들은 공직을 추구함에 있어 권력에 대한 야심이 지닌 중요성을 검토해보려고 했음(p208). ④이들의 2개의 질문은 1)정치가들은 비정치가들에 비해 얼마나 강하게 권력의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가? 2)정치체계의 특징은 그들의 동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였고, 그들은 “공직에 충원되고 여타의 자질들(대담함, 계급적 배경, 종속성, 일관성, 타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회들에 대한 민감성)글 갖기 위해 필요한 광범위한 변수들과 동기의 강약이 연관되어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했는데, 연구결과 그들은 “단순히 정치가가 된다는 것이 “권력이나 업적 또는 귀속감에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보았음(p208). ⑤동부 도시 루이지애나 카운티의 자료는 “경제영역에서 권력과 성취에 대한 기회가 상대적으로 풍부하면 사람들은 정치적 활동보다는 경제적 활동에 더 강력한 동기를 가지게 된다...정치적 상향이동을 제공하는 정치체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강한 성취동기와 권력동기를 가지도록 이끈다...정당이나 파당 조직 또는 권력문제만 집중될 경우, 사람들은 정치 외에 다른 영역에 속하려는 강한 욕구를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라는 결론을 보여주었으며, 이런 모든 사실은 정치적 야심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다 넓은 맥락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고, 이는 정치적 야심의 중요성을 끌어올리는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야심을 보다 넓은 의미에서 즉, 수많은 동기들을 분출시키는 것으로서 인식하기 때문임(p209). ⑥다음과 같은 일반화는 체계적이고 인과적인 관찰 모두에 근거하여 확실해 보이는데, 정치적 동기의 가장 잠재적인 원천 즉, 정치적 야심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충족되지 않은 존경의 욕구로서, 자존심과 타인에 대한 존경을 모두 포함하며, 권력자와 리더는 모두 이러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임. ‘넛슨’은 “존경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들은 자아실현을 향한 욕구의 위계구조에서 상당 정도 위로 이동해 왔기 때문에, 그들은 특히 자신들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환경에서 활동적이며, 늘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함(p209). ⑦‘바버’(James David Barber)에 따르면, “이 조치(공직 입후보)는 대개 두 종류의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첫째는 이러한 변화에 따른 위협과 긴장, 고뇌를 상대적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높은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둘째, 낮은 자존심을 높이기 위해 이러한 특별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낮은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다.”라고 하였음(p210). 그러나 자존심은 문화에 따라 구성요소가 대단히 다르게 나타나는데 존경, 위신, 평판, 그리고 숭배에 대한 이와 같은 잠재적 욕구는 그것이 권력에 대한 욕구를 만들어 낼 때 위축되며, 그러나 야수적인 권력자나 리더 같은 ‘위인’들의 경력에서 이 욕구는 명백하게 나타나는데, ‘W. 윌슨’의 경우 아버지의 사랑에 불안해 하였고, ‘슈마허’(Karl Schumacher)는 신체장애와 강박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탁월함을 입증하고 싶어했으며, ‘스티븐슨’(Taddeus Stevens)은 출신과 아버지의 부재, 신체적 기형에 민감했으며, ‘디즈레일리’와 ‘간디’는 적대적인 차별을 받았고, ‘비스마르크’는 이중적 감정과 우울증에 영향을 받았음(p21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권력에 대한 동기로 권력에 대한 야심은 존경에 대한 욕구을 근원으로 하고 있음을 다양한 예로 탁월히 보여줌. 이 욕구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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