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CijSQRcQAE?si=kOHy3nWdwXsKuq3_
House Leadership School
리더십 강의(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제2부 리더십의 기원
□ 요약(제4-2장 리더십의 사회적 원천 : 정치적학교교육_대통령 이미지)
①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최근 몇십 년간 공식적인 학교교육은 정치적 태도와 행동을 형성하는데 중심이 된다는 것을 보여왔는데, 50년 전 ‘메리엄’ (Charles Merriam)은 8개국가에 대한 조사에서 ‘학교’를 시민교육을 형성하는 주요 도구라고 부르며, “공립학교는 미국에서 정치적 사회화의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도구이다.”라고 함(p141). ‘알몬드’와 ‘버바’는 다섯 국가에 대한 연구에서 정치적 태도에 영향을 주는 데 교육에 견줄 만한 변수가 없음을 재확인하였음(p162). 많은 것들이 아이, 학교 그리고 학교 및 문화와 관련된 제측면에 의존하는데, 학생들의 계급과 카스트의 이질성, 교과과정과 학교의 질, 공동체의 관습과 종교적 교리의 권위 등에 의존함(p163). ②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학생들이 수강한 많은 시민윤리과목들은 그들의 정치적 관심이나 지식, 효능감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 같은데, 교사의 영향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제한되어 있으며, 아이들은 어릴 수록 민감한 영향을 받지만 그들의 정치적 태도는 더욱 분산되어 있으며, 나이가 많을수록 저항하는 경향이 높지만, 일단 고정되면 더욱 정치적으로 집중되고 효과적임. 일본제국에서의 학생들은 천황의 교육헌장을 읽었으며, 천황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국기가 계양되어 있으며 전체 과업이 엄숙하게 완수되는 의식에 참여하게 되는데 마치 성지순례에 참석하는 것 같음(p163). ③권위주의적 사회에 있어서도 저항은 나타나는데, 러시아 교수법의 원리는 교육이라는 그 상태를 유지하는 도구이고 교과서와 노래책, 그리고 기술적인 매뉴얼은 규정된 대로 따른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러시아 학생들은 “교실이든, 공산주의 청년동맹(Komsomol)이든 대중매체든 상관없이 정권에 의해서 후원되는 모든 정치적인 의사소통의 독단주의와 반복주의에 의해 매우 압도적인 단조로움 때문에” 정치적으로 무관심함(p163). 또한 어린아이들은 심리학적 영향과 혼합된 문화적 영향을 흡수하는 스펀지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며, 그들은 학습하는 동안 선택능력, 그리고 지식을 통합하여 그것을 사회적․정치적 상황에 적용하는 방식을 상당부분 형성함(p164). ④사회적 태도를 형성하는데 동료집단의 강력한 영향은 수많은 연구결과 처럼 일반 관찰자들에게도 명백한데, 도시의 고등학교이든 소련이든 엘리트 대학이든 상관없이 집단 멤버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배적인 규범에 동조해야 하며, 한 연구는 명성있는 동료집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적 규범을 충성스럽게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고 함(p164). 많은 것들이 학교에서의 이질성의 정도와 학생들이 계급, 성, 그리고 인종집단으로 나뉘어 있는 정도에 따라 다른데, 동료들과의 관계는 아이들이 제한된 가족환경에서 계속 확대되고 변화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이동함으로써 아이가 부모의 통제로부터 더 자율적인 가치와 선택으로 이동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며, ‘과정’(process)은 정치참여와 ‘리더십’, 충성, 반대 또는 반항, 무관심이나 참여에 대한 견해의 내용(content)에 영향을 줌(p164). ⑤부모나 학교의 권위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항의 특성이 무엇이든 최초의 외적인 정치적 반응은 동조이며, 무엇보다도 먼저 아이들은 애국자가 되도록 장려되는데, 미국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최고 즉, 다른 모든 나라보다 우수한 국가로 봄(p164). ‘헤스’(Robert Hess)와 ‘토니’(Judith Torney)는 이러한 애정이 안정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 아이들은 압력을 받으면 자신들의 국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수 없으며, ‘단지 국가를 사랑할 뿐’임(p164). 미국 아이들 표본 중 95%가 미국 국기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국기라는데 동의하였으며, 아이들은 자신의 국기를 사랑할 뿐 아니라 국가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찬양함(p165). 초등학교 4학년생부터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한 ‘뉴헤븐’(New Haven) 조사에서 거의 모든 학생이 정치적 리더에 대해 ‘도움이 되고 인자하며 훌륭하다고 묘사’하였음. “정치적인 권위에 대한 이러한 신뢰는 이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일반적인 것 같다”라고 ‘헤스’와 ‘토니’는 말함. 초기 학습은 나중의 학습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러한 권위의 수용은 추종자가 어른이 된 후 리더를 수용하도록 하는 장기적인 잠재적 영향력을 가짐(p165). ⑥미국 어린 학생은 정부에 대해 ‘계층구조적 견해’(hierarchical view)를 가지며, 대통령은 국회의원, 판사 또는 시장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됨. 이러한 계층구조적 감각은 어른들도 공유하며, 이 외에도 어떤 아이들은 부통령, 주지사, 그리고 시장에 대해 근본적으로 대통령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봄(p165). 아이들은 정부를 수직적인 구조로 이해하고 있으며, 정부권한의 수평적․대항적 또는 평행적 구조를 보지 못함. 그런데 마술은 ‘대통령’의 이미지에 있는데 미국 젋은이들에게 이상적인 정치적 권위는 분명 ‘대통령의 권위’임. 하나님의 이미지가 아이들마다 다른 것처럼 대통령직에 대한 이미지도 개인마다 다르며, 역할의 집합체로서의 대통령직에 대한 개념은 나중에 발전함(p166). 미국에서 정치적 리더에 대한 아이들의 극적인 표현은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반응인데 ‘케네디’의 암살사건과 관련해 부모님을 잃었을 때와 같이 느꼈다고 함(p167).
● 비평 및 토론
필자는 미국 내에서 아이들이 인식하는 ‘리더십’에 대한 이미지를 ‘대통령’을 통하여 잘 설명하고 있음. 아이들에게 한국 ‘대통령’ 이미지는 어떠한지?
□ 요약(제4-3장 리더십의 사회적 원천 : 정치적학교교육_정치적 효능감)
①이상화된 아버지로서의 대통령이 과대평가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 이미지의 본질적인 내용은 과소평가 되었는데, ‘권위’의 상징에 대한 개념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으며, 아버지와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해 겹쳐지는 많은 부분은 어린 학생들이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줄어들기 시작한다고 ‘시카고학파’는 결론지음. ‘헤스’(Robert Hess)와 ‘이스톤’(David Easton)은 실제로 아이들이 “역할정의의 측면뿐만 아니라 역할성과라는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말하는데, 간단히 말해 젊은이들은 ‘리더’를 인식하고 측정하는 데 어느정도 정교성을 더해간다는 것임(p167). ②다른 리더들에 대한 지식은 아이들이 인식하고 있던 ‘리더’의 순서를 바꾸는데, 학생들은 다른 행정장관들을 알기 전에 대통령을 먼저 알면서, 입법자들을 알기 전에 행정장관들을 먼저 알면서, 주정부를 알기 전에 중앙정부를 먼저 알면서 성장하지만, ‘정당’과 그것들의 차이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되며, ‘정당’들은 ‘이슈’의 측면보다 ‘인성’의 측면으로 이해하고, 아이들은 재미로 정당의 홍보버튼을 사용하며, 아이들에게 후보자들간의 경합은 축구시합과 비슷하고, 어린 학생들은 ‘정당’을 경쟁적인 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파트너로 봄(p168) ③상급생이 될수록 정당에 대한 이미지가 명확히 구별되고 ‘정당’에 대한 동일시가 견고해지며 ‘경쟁’에 대한 이해는 증가하지만, 이런 현상은 미국 내에서 ‘정당’에 대한 동일시의 감소로 인해 줄어들 수 있음. 1976년에는 선거운동 표장(標章)이 드물었는데, 단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었으며, ‘이슈’들에 대한 이해가 ‘리더’나 ‘정당’에 대한 이해보다 더 나중에 생기고, 이것들은 주로 ‘리더십’의 상황이나 ‘정치적 제도’에서 인식됨. 사회․경제적 지위는 인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데,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학생들은 지위가 높은 아이들에 비해 ‘정치화’되는 일이 적으며, 그들은 지위가 높은 동료들보다 ‘정치적 리더’에 더 공손함. 따라서, 권위적인 인물들을 신뢰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인물들의 ‘동기’에 거의 의문을 갖지 않으며 정치제도를 ‘묵인’하는 경향이 강함(p168). ④남녀를 비교하면, 미국의 ‘소년’들은 적어도 초등학생 수준에서는 개인 인물지향적인 ‘소녀’들에 비해 정치적 관심이 더 많고 ‘정치’와 관련된 정보도 더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차이는 연구가들의 편견이 반영된 것일 수 있지만, 문화적 영향력을 훨씬 더 많이 보여주는 것으로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미래의 추종자 또는 ‘리더’가 될 젊은이들에 대한 초기의 사회적 영향에 관한 미국의 경험, 그리고 아마도 남자의 경험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결과들임(p169). ⑤자연스럽게 ‘리더’로 활동하게 되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그들의 출현은 길고 복잡한 심리적․사회적․정치적 과정의 산물이 될 것인데, 어린 시절에도 ‘리더십’ 역할을 향한 길에는 어떠한 형태와 방향이 있으며, 이러한 길을 가기 위해 그들에게 ‘정치’에 참가할 능력이 있고, ‘정치적 리더’들이 자신들의 말을 경청하고 반응하리라고 믿는 자신감으로 정의되는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이 필요한데, 이러한 감정은 일반적 정치의식과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발달함. 3학년 때부터 ‘정치적 효능감’의 의미를 발전시키기 시작하고 이 감정은 미국전체를 놓고 봐도 적어도 약 8학년 때까지 증가하는 경향이 있음(p169). ⑥어린 시절에는 ‘정치적 효능감’이 자아의 정도, 가족과 학교,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 등과 관련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감’이 증가되는 어린 시절이 지나면 어린 학생들은 다른 집단으로의 이동이나 경험을 통해 분리될 수 있는데, ‘이스톤’과 ‘데니스’는 아이가 정치세계의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아이는 스스로 정치적 권위를, 자기가 의식하는 수준에서 부분적으로 깨닫기 시작한다”라고 언급함(p169). ⑦그러나 아이들이 정치적 과정 속에서 정상적으로 가지려는 ‘실제적인 역할’과는 거리가 있으며, 그는 ‘정치 시스템’의 성인회원으로서 자신이 미래에 하게 될 역할과 주변의 정치적 권위에 대한 수준 높은 프로젝트와 연관될 때 자신의 정치적 힘을 느끼기 시작함. ‘정치적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느끼는 학생들은 훌륭한 ‘리더추종자’가 될 것이며, 이러한 집단에서 미래의 ‘정치적 리더십’이 배출되는 것임(p169). ‘정치적 효능감’과 자아 존중에 대한 느낌의 증가는 그것이 어떤 목적의식과 결부되기만 하면 곧바로 ‘리더십’의 원천이 되는데, ‘에릭슨’은 ‘젊은이들의 경우, 동료들 사이에서 ‘팔로어십’을 떠맡고 ‘리더십’을 배우고 그렇게 떠맡은 기능으로 놀라운 '선경지명' 개발까지 배우는 것은 부모의 역할과 어른의 책임을 익히고 체득해가는 중요한 단계이며, ‘지배 이데올로기’가 ‘리더십’ 지향점을 정확하게 제공해주기 때문에 이러한 선견지명은 개인의 전반적인 성숙에 앞설 수 있으며, 같은 이유로 공통 ‘원인’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따르고 복종하게 하고, 따라서 유아기의 초자아 속에 형성되는 부모의 이미지를 ‘계층구조적 리더’ 이미지로 대체시키는데, 이는 범죄집단 뿐만 아니라 동기부여 된 모든 집단에 부여되는 전형적인 과정이다’라고 보았음. 젊은이들은 자신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리더’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목적의식’을 점차적으로 개발함(p17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한 개인이 성장하면서 ‘정치적 효능감’을 가지고 ‘정치적 힘’을 느끼며 ‘리더’로서 동기부여 받고 ‘목적의식’ 하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는 생애의 과정을 잘 그리고 있음. ‘정치적 효능감’ 을 느낄 수 있는 기회 제공의 방법은?
□ 요약(제4-4장 리더십의 사회적원천:정치적학교교육_간디,히틀러,레닌)
①간디의 유년시절에 얽힌 이야기는 자아와 목적의식이 발달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간디의 유년기가 지난 후 그의 가족은 아버지가 국무총리로 일하던 라즈카트(Rajkat)로 이사하였고, 간디는 청소년기 동안 가장 중요한 학교생활을 서양에서 시작하였는데, 유년기에 간디는 세 번이나 약혼을 하기도 함. 그러나 처음 두 약혼녀는 결혼도 하기 전에 죽었고 세 번째 약혼녀와 열 세살에 결혼하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몇 시간 동안은 성욕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보내었음. 간디의 ‘리더십’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버지와의 관계였는데, 그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보통 부자지간 에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랐고 아버지가 간디의 결혼식에 오는 도중에 마차사고로 크게 다쳐서 ‘모한디스’는 아버지를 간호하였는데 그는 10대 소년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면서 아버지를 간호해야 했던 세 사람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임(p170). ②학교는 가정, 동료관계, 유혹으로부터 멀리하는 시간을 의미했는데, 그 때 이슬람교도 ‧ 육식주의자 ‧ 타고난 운동선수 ‧ 흡연가이면서 ‘모한다스’의 모든 것이기도 했던 ‘메타브’(Sheik Methab)는 ‘모한다스’에게 육식을 권하였는데, 그 이유는 인도인들이 영국인 지배자와 같은 튼튼한 체격을 갖추지 못하면 영국 지배자들을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음. 그 두 사람은 강으로 내려가 아무도 모르게 ‘염소 고기’를 먹기도 하였음. 또 ‘메타브’는 인생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모한다스’를 사창가로 데려갔는데, 그 때의 일에 대하여 몇 년 후 ‘간디’는 “나는 침대 위에 있는 창녀 옆아 앉았다. 그러나 나는 수줍어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창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에게 모욕과 욕설을 퍼부으며 나가라고 하였다”고 기술하기도 함(p171). ③‘간디’는 동료학생들이 자기를 놀릴까 봐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 하였는데,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상을 받았을 때에도 당황하였으며, 그는 비판에 매우 민감하였으며, 그는 양심의 가책과 도덕적 나약함을 체험하면서 끊임없이 내면적 갈등을 느꼈는데, 고기를 먹고 흡연을 하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였어도 자신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가족에게 배운 성실성을 고수하였음(p171). ‘아버지’는 그에게 양심의 화신이었는데, ‘모한다스’는 자신이 보석을 훔친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자신의 고백을 종이에 썼으며, “진주 같은 눈물만 볼 위로 흐를 뿐” 그의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p172). ④‘모한다스’가 병들고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위해 안마를 해 주고 있었는데, 숙부가 위로차 아버지를 방문한 일이 있었은데, ‘모한다스’ 이 때라고 생각하고 병든 아버지를 숙부에게 맡기고 자기는 곧장 아내와 잠자리를 하기 위해 자기 방으로 갔는데, 마침 그 때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으며, ‘간디’는 자신의 지나친 성욕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려 그의 자서전에서 그는 “그것은 바로 내가 결코 지우거나 잊을 수 없는 오점이다”라고 서술하기도 하였음. ‘에릭슨’은 “간디의 진실”(Gandhi’s Truth)이라는 책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간디의 생애 속에 키에르케고르가 이야기한 조숙하고 완고한 양심을 가진 영적 지도자의 생애 속에 있는 ‘저주’와 같은 의미이다. 그것은 결코 청산할 수 없는 평생의 빚으로 설명되는 유아기나 청소년기의 체험이었다...간디의 경우 아버지에 대한 여성적 서비스는 젊은 어머니를 소유하는 데 있어 (나이 많은) 아버지를 대신하려는 소년 같은 소망과 나중에 리더로서 아버지를 능가하려는 청년 같은 의도를 부정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패턴은 오직 비폭력적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억압했던 사람들을 구하려는 마음으로 우세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리더십 스타일로 형성되었다...”라고 기술함(p172). ⑤‘간디’의 미래 ‘리더십’에 대한 이와같은 심리학적 영향들은 ‘사회적 영향력’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데, ‘모한다스’는 ‘바아슈바나’(Vaishnava) 신앙 속에서 태어났고, 유년시절 병사와 왕, 영웅적 행동과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라마야나’(Ramayana)를 탐독하면서공포를 극복하는 법을 배웠고,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및 파르시(Parsi)교도와 대화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힌두교계통의 타종교에 대한 관용을 배웠는데 오직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혐오감을 가졌음. 그는 19세기 말 아내 없이 떠난 긴 런던여행에서 성인과 리더십에 대한 역할에 대한 훈련을 준비했고, 자아와 목적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음(p173). ⑥젊은 ‘히틀러’에게 있어서 목적은, 그가 정권을 잡은 뒤 ‘변혁적 리더십’이 될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의 포기와 권력의 파괴적 사용으로 왜곡된 자아에 대한 잔인한 몰입을 의미하였는데, 그의 초기 학생시절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였지만, 공부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친구를 사귈 때 ‘히틀러’는 본인처럼 공무원이 되기를 원했던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더 심한 갈등을 겪었으며, 아버지는 ‘아돌프’를 9년제 인문계 고등학교인 김나지움(Gymnasium) 보다는 기술고등학교에 진학시킬 생각이었으나, 그는 ‘아돌프’가 화가가 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아돌프’는 이런 모든 점에서 아버지에게 반발하였음. ‘히틀러’는 후에 자신은 이 기간 동안 “역사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을 배웠던” 범게르만 민족주의자와 노동조합주의자 그리고 정치적‧예술적 혁명가가 되었다고 주장함(p173) ⑦‘히틀러’의 아버지는 그와 갈등이 심해질 무렵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객사하게 되었는데, ‘랑거’는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아돌프’가 형제자매의 죽음, 특히 형제의 죽음에서 느꼈던 죄의식이 더욱 깊어졌다고 생각함(p174). 그 후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죽었는데, ‘히틀러’는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이야기 하였음. 그는 재차 예술학교에 입합하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고, 건축대학 시험에도 떨어지고, 결국 1908년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제도시, 자유분방한 도시로 알려진 ‘빈’에 가기로 결정함. ‘빈’은 고대 군주도시로 ‘사회주의자’가 많고 노동조합 운동이 활발하였으며, 많은 유대인들, 내륙 남동쪽에서 온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의 은신처였으며, 많은 학파‧동인‧음모들-급진주의자, 반동주의자, 군국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 교역론자들과 자유사상가들, 자유주의자들과 반유대주의자들-이 언론토론과 의회투쟁으로 서로 경쟁하는 곳이었음. ⑧5년 동안 ‘히틀러’는 독신용 작은 셋방이나 싸구려 하숙집에서 살았고, 때때로 날품팔이나 그림물감을 팔아 돈을 조금 벌고, 주로 자선에 의존한 떠돌이 방랑생활을 하면서 직업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었는데 그는 이 때를 자기 인생의 가장 불행한 시기로 기억함. 한편, ‘빈’은 그의 정치적 배움터가 되었는데, 그에게 안전과 편안함을 주지는 못했지만 ‘목적’을 주었음. 그는 소책자나 신문을 읽으면서 충분한 시간을 가졌고 일이 없는 시간에는 뜨거운 정치적 논쟁에 참여하였는데,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이 기간에 나는 그곳에서 세계적인 구상과 내 모든 행동의 굳건한 초석이 되었던 철학을 얻었다”라고 쓰고 있음. 그는 오스트리아인, 노동조합원들, 군국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유대인들을 미워하게 됨(p175). ⑨기름때 묻은 옷을 입고 지냈던 ‘히틀러’의 부랑생활은 유대인을 자신의 좌절을 해소시킬 대상으로 만들었는데, 그에게 있어서 유대인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깨끗하지 못하고, 지구의 쓰레기이며 백인 노예상들이었으나, 언론‧재무‧교육의 많은 부분을 장악한 사람들이었고, 유대인들은 떠돌이에 불과한 ‘히틀러’의 지위를 향상시켜던 하층계급이었음. ‘히틀러’의 신조는 독일 사람과 관련된 것 이외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으며, 이 거대한 증오 속에서 그의 후기 이데올로기의 기초가 발전함. 그는 의회를 방문하여 듣는 사람도 없는데 연설하는 국회의원을 비웃었으며, 자신이 최고로 알고 있던 민중에 의한 통치를 두려워하여, “의회의 다수결이라는 원칙이 리더십의 파괴를 초래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질문함. 그에게 있어 ‘진정한 리더’는 다수당과 타협하거나 의원들과 논쟁하지 않고 창조적인 업적달성을 위해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이며 국민 다수는 결코 지배자를 교체할 수 없었음(p175). ⑩‘레닌’ 역시 비극과 훈련 속에서 목적을 발견하였는데, ‘히틀러’와 ‘간디’처럼 그도 어릴 때 아버지가 죽었고, 청년 초기의 인생은 보통 사람처럼 행복하고 평탄하였는데, 형 ‘알렉산더’(Alexander)가 공부하기 위해 페테스부르크 대학으로 떠나자, ‘레닌’은 가족 부양의 막중한 책임을 맡았으며 청소년기의 반항시기를 조용히 보냄. 그가 열여섯살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레닌’은 꿋꿋한 어머니의 도움으로 슬픔을 억제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그가 고백한 바로는 이 때에 그는 신앙을 버렸다고 함(p175). ‘레닌’의 형은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 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장례식날에도 오지 않았는데, ‘볼펜슈타인’은 형 알렉산더는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죄를 보상하기 위하여 죽기를 원했으며”, ‘레닌’의 경우 슬픔을 억누르며 아버지에 대항하는 공격적인 감정에 의해 형성된 죄책감을 강화시켰다고 결론지음(p176). ⑪이런 논리에 따라 ‘알렉산더’의 죄책감은 모든 러시아인의 아버지인 황제를 죽이려는 심리에 이르렀고, 어쨌든 그는 ‘알렉산더 3세’(Czar Alexander Ⅲ)를 암살하려는 어설픈 계획에 연루되어, 그는 즉각 체포되었고 구차하게 자비를 바라는 핑계나 후회 없이 자백하고, 목숨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절박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처형당함. 반면, ‘레닌’은 놀라운 자아통제를 보여주어 학교에 남아 품행과 능력을 인정받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아버지의 많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카잔(Kazan) 대학에 법대생으로 입학하였는데 그러나 무엇인가가 ‘레닌’의 정신을 변화시킴(p176). ⑫그 당시 대학생들의 동요의 장(場)이었던 대학이 촉매역할을 하여, ‘레닌’은 데모하는 학생으로 붙잡혀 대학에서 추방당했고, 그가 집에서 ‘마르크스’(Marx)에 관한 많은 책과 ‘체르니셰프스키’ (Chernyshevsky)의 ‘무엇을 해야 하는다’(What Is to Be Done?)라는 호소문을 읽고 있던 중 그의 어머니가 그를 페테스부르크 법대에 입학시험을 치게 해 주었으며, 그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법률과목들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사마라’(Samara)에서 변호사로 정착함. 그러나 그 일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1893년 혁명활동의 중심지로 떠올랐던 페테스부르그로 다시 떠났으며 그의 목적의식은 굳건해짐(p176).
● 비평
필자는 한 개인이 가족관계 속에서 혹은 학교 등 환경에 의하여 ‘리더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간디, 히틀러, 레닌의 생애를 비교하면서 서술하고 있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저자가 제시한 중요한 개념으로 ‘목적의식’을 들 수 있으며, ‘목적의식’으로 성장한 사람이 정치적 파워를 가지게 되는데 ‘목적의식’ 자체가 선한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필자는 다루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여짐.
● 토론
필자는 3명의 아버지가 일찍 죽은 것과 그 죄책감에서 형성된 ‘목적의식’이 정치적 힘을 가지게 하였다고 보는데 이러한 견해에 대한 의견 혹은 생각은?
'리더십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5강 리더십학교-10(정치적리더십) (0) | 2024.06.16 |
---|---|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4강 리더십강의-9(자아존중,사회적역할,감정이입) (0) | 2024.06.09 |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2강 리더십강의-7(국가로서의가족) (0) | 2024.05.26 |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1강 리더십강의-6(욕망의 샘) (0) | 2024.05.18 |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0강 리더십강의-5(성격의고치) (2) | 2024.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