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5-42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8(프랭클린루스벨트 해군성활동)

presentlee 2025. 10. 26. 09:53

  https://youtu.be/cYfS00uI3KQ?si=9pPvELSbVuYtFHd6

 

House Leadership School 


□ 요약(제1-3부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8. 프랭클린 루스벨트_정치활동)


①‘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면 1년 365일, 매일 24시간 동안 선거구민의 고민거리를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진정한 대표”가 되겠다고 말하며, “이것이 나의 약속입니다. 저에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호소했음(p114). 또 선거구를 주기적으로 찾아와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유권자의 고민거리를 듣겠다고도 약속했는데, 게다가 ‘프랭클린’은 독자성을 거듭 강조하며, 양당 실력자들에게 과감히 맞서겠다고도 맹세했으며, 특히 그는 “저는 웅변가가 아닙니다.”라고 즐겨 말했음(p114). ②그럼 군중석에서 누군가가 “당신은 웅변가일 필요가 없습니다, 루스벨트! 그렇게 정직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니까요.”라고 소리쳤으며, 마침내 선거일이 왔고, 계표가 끝났는데, ‘프랭클린’은 상대 후보에 완승을 거두었고, 뉴욕주에 출마한 어떤 민주당 후보보다 큰 표차로 승리를 거두었음(p114). ‘루스벨트’의 승리를 분석할 때 행운이 더해진 우연한 역사, 즉 공화당에서 진보파와 보수파가 분열한 덕분에 전국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역사학자도 있는데, 물론 현직 대통령이 전도유망한 주상원의원 후보에게 던진 후광과 가문의 막대한 재산에 힘입은 넉넉한 선거자금, 시골길을 달리며 유세한 붉은색 맥스웰을 언급할 학자도 있을 것임(p114). ③그러나 유쾌하고 사교적이며 매력에 넘치는 젊은이가 공화당 후보보다 더 나은 선거 전략을 구사했고, 더욱 열정적으로 선거구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유권자의 바람과 소망을 경청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결국 ‘프랭클린’은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었던 야망을 정확한 표적에 쏟아냄으로써 원하던 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음(p115). ‘프랭클린’은 주상원에 들어가자마자, 태머니파(뉴욕시 태머니 홀을 본거지로 하는 민주당 단체로, 종종 뉴욕 시정(市政) 상의 부패 정치, 보스 정치의 비유로 쓰임)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으며,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웨스트브룩 판사 사건을 계기로 부패와 싸우기 시작했듯이, ‘프랭클린’도 태머니파의 거두, ‘찰리 머피’(Charlie Murphy)가 ‘푸른 눈’의 ‘빌리 시핸’(Billy Sheehan)을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추천한 사건을 구실로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한 것임(p115). ④‘시핸’은 시내 전차산업체와 결탁해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부패한 정치인이었는데, ‘시핸’의 지명을 반대하는 ‘반란 세력’이 하원에서 조직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프랭클린’은 상원의원으로서 ‘머피’의 선택을 저지하기 위해 전당대회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반란 세력의 선언문에 가장 먼저 서명함(p115). ‘프랭클린’의 집은 의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반란 세력이 회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는데, 이런 행운에 개인적 매력과 명문가 출신이라는 배경이 더해지며 ‘프랭클린’은 초선이었지만 의원 20명으로 구성된 모임의 대변인이 되었으며, 그가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기자들에게 “내 삶에서 지금처럼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며, 이 모임의 단결심은 밤이면 더욱 뚜렷이 드러났는데, 의원 20명의 유대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한 모습”을 띠었음(p115). ⑤담배 연기가 공중에 맴돌았고, “야영지에서 모닥불을 중심으로 모여 앉은 군인들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부패와의 전쟁에서 기운을 얻고, 언론의 주목에 한층 대담해졌으며, ‘머피’가 ‘시핸’의 지명을 철회한 후에도 ‘루스벨트’는 타협을 거부했고, ‘머피’가 ‘시핸’의 후임으로 제안한 인물도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함(p116). 당시 올버니에서 노동조합을 대신해 로비스트로 활동하던 ‘프랜시스 퍼킨스’는 그때 젊은 ‘루스벨트’가 무척 무례하고 오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지금도 루스벨트가 난간 뒤에 서서 ‘자신이 옳다’며 두세 명의 상원의원과 언쟁하는 걸 보면, 그때의 ‘루스벨트’가 떠오른다. 오므린 채 살짝 벌린 작은 입, 넓어진 콧구멍, 꼿꼿하게 세운 머리, ‘안 들은 걸로 하겠소!’라는 냉담한 목소리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수년 뒤에 ‘루스벨트’는 자신이 ‘퍼킨스’에게 인정했듯이, 정계에 처음 입문했을 때 그는 “정말 끔찍하게 못된 놈”이었음(p116). ⑥젊은 시절의 ‘시어도어’처럼, ‘프랭클린’도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오만함이 지나쳤는데, 그 때문에 ‘시어도어’처럼 ‘프랭클린’도 몰락의 길로 치달았으며, 3월 말쯤, 즉 전쟁이 시작되고 3개월가량 지나자 반란 세력도 지쳤던지 분열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머피’가 ‘제임스 앨로이시어스 오고먼’(James Aloysius O’Gorman)판사를 후보로 제시했을 때, ‘오고먼’이 태머니파에 속했지만 독자적인 경향을 띠었기에 반란 세력 중 다수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전쟁을 끝내려 했음(p116). 일부가 “‘오거먼’도 ‘시핸’보다 나을게 없다.”라고 주장했지만, ‘루스벨트’는 “패배를 승리라 칭하며 패배를 승리로 둔갑시켰다.” 또 ‘머피’가 절제에 대해 배웠을 것이고, “당이 한 단계 발전했다.”라고 뻔뻔스럽게 주장했음(p117). ⑦이 일로 그의 정치력은 빛났지만 회의를 주도하던 실질적인 힘은 줄어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루스벨트’는 접근법을 완화하기 시작했는데,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그랬듯이, ‘프랭클린’도 다른 파벌과 함께 일하며 타협하는 법을 배워갔음(p117). ‘프랭클린’은 태머니파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했고, 과거처럼 그들 모두가 부패했다고 싸잡아 단정하지 않았는데, 실제 대다수 태머니파 의원이 선거구의 보통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일자리를 구해주거나 도움과 위안을 주며, 선거구민의 당면한 요구를 채워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음(p117). ⑧바우어리어파(派)의 실력자, ‘빅 팀’ ‘설리번’(Big Tim Sullivan)과 태머니파가 사회보험에 의한 노동자 보상금, 주 54시간 노동, 여성 참정권 등 다양한 진보적 입법 활동을 앞장서서 지원했기에, 이런 부문에서 ‘프랭클린’도 결국 그들과 손잡아야 했는데, ‘프랭클린’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타협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신속히 깨달음(p117). 돌이켜 보면, ‘시핸’ 사건이 남긴 가장 큰 영향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라는 젊은 십자군 기사가 태머니파에 맞서 싸운다는 소식이 언론에 폭넓게 다루어지며 민주당 출신 신임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의 눈에 ‘프랭클린’이 띄게 되었다는 것임(p117). ⑨‘윌슨’이 대통령 취임 후 보름이 지나지 않아, ‘프랭클린’에게 해군성 차관보라는 탐나는 직책을 제안했는데, ‘프랭클린’은 그 제안을 받고 “얼마나 바라던 자리였던가! 그 소식을 듣고 정말 좋았다. 그 소식보다 나를 즐겁게 해줄 것은 세상에 없었다. 항상 나는 배를 사랑했고 해군에 대해 공부했다. 해군 차관보는 내가 진정으로 차지하고 싶은 자리였다.”라는 반응을 보였음(p118). ‘세라’는 ‘프랭클린’이 바다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유전이라고 믿었는데, 그녀의 할아버지가 동양까지 항해한, 멋진 모습과 빠른 속도로 유명하던 미국 쾌속 범선의 선장을 지낸 적이 있고, 어렸을 때 ‘프랭클린’은 “유난히 바다 이야기를 좋아했다.”(p118). ⑩열세 살에 아버지에게 아나폴리스에 있는 해군 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해군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오랫동안 집을 떠나야 하기에 외아들을 둔 부모로서는 허락하기 무척 힘들다는 ‘제임스’의 솔직한 말에 ‘프랭클린’은 해군이 되는걸 단념했는데, 하버드에 진학한 후에도 ‘프랭클린’은 해군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중고서점들을 순례하며 해군사를 다룬 서적과 필사본을 수집했으며, 그렇게 수집한 책이 2,500권에 달했음(p118). 당연한 말이겠지만, ‘윌슨’이 제안한 해군 차관보라는 직책은 그가 무엇보다 바라던 직책이었는데, 해군성 차관보는 대통령직을 향한 사다리에서 ‘프랭클린’을 한 단계 더 올려놓았으며, 25세 법률 회사 동료들에게 야망을 털어놓았듯 대통령직은 그가 머릿속에 남몰래 그리던 목표였음(p118)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이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되게 된 배경 및 과정과 그가    ‘시핸’사건을 통해 ‘우드로 윌슨’의 눈에 띄게 된 것 및 그 결과 해군성 차관보로 임명되기까지를 자세히 다루어 대통령직으로 나아가는 길을 잘 묘사하고 있음.
● 토의


 어릴 때 희망이 좌절되었음에도 ‘리더십’으로 성장을 이끄는 마음자세는?    


□ 요약(제1-3부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9. 프랭클린 루스벨트_해군성 생활)
①‘프랭클린’이 해군성 차관보에 임명됐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그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지적하는 평론가가 적지 않았는데, 실제로 ‘시어도어’도 ‘프랭클린’에게 보낸 축하 편지에서 유사함을 인정했음. “내가 전에 근무했던 자리에 네가 있게 되다니 재미있구나. 너도 그 자리를 마음껏 즐길 것이라 확신한다.”(p118). 신문 발행인을 지냈고 민주당원으로 오랜 정치 경력을 지닌 ‘조지퍼스 대니얼스’(Josephus Daniels) 해군성 장관 아래에서 차관보로 7년 동인 일하며, ‘프랭클린’은 자신의 정치 이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급자로 처신하는 법을 배워야 했는데, 그런 상황은 ‘프랭클린’에게 무척 낯설고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며, ‘리더’로서는 능력을 발휘했지만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 중 하나인 겸손함이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임(p119). ②‘조지퍼스 대니얼스’는 ‘프랭클린’보다 스무 살이 많았지만 해군의 의례와 언어를 몰랐던 까닭에, 해군성 장관의 권한을 무척 조심스레 행사했으며, 동료들과 지루할 정도로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받으며 긴장관계를 풀었던 공손한 남부인답게 ‘대니얼스’는 신중히 행동하며 핵심적인 상․하원들과 돈독한 관계를 구축해 나갔음(p119). 한편 ‘프랭클린’은 천성적으로 행동가였고, 변덕스런 세상에서는 언제라도 행동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해군력을 확장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까닭에 ‘대니얼스’를 “시대에 뒤처진 잔소리꾼”으로 생각했고, ‘엘리너’에게는 “말조차 지극히 느리다.”라고 투덜댔음(p119). ③어느 날 저녁, 만찬장에서 ‘프랭클린’은 ‘대니얼스’를 경멸하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는데, 그때 내무부장관 ‘프랭클린 레인’(Franklin Lane)은 ‘프랭클린’에게 “부끄럽지 않나? ‘대이얼스’는 자네 상관이야. 그에게 충성하든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거야!”라고 따끔하게 꾸짖었음(p119). ‘프랭클린’은 ‘레인’의 충고를 받아들였으며, 그때부터 ‘프랭클린’은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을 삼갔고, ‘대니얼스’가 해군 예산을 결정하는 세출위원회 위원들과 차분하게 맺어간 친밀한 관계의 중대한 가치를 결국에는 인정하게 되었음(p120). ④해군성 장관으로서 ‘대니얼스’는 전반적인 해군 정책, 함대 배치, 의회와의 관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대니얼스’는 정책을 다루는 데 집중한 반면, 유일한 차관보이던 ‘프랭클린’은 해군성의 행정을 관리했는데, 해군성은 직원이 6만 5,000명이고, 예산이 연방 지출의 2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조직이었음(p120). 따라서 보급품과 설비를 조달하고, 군항과 해군 조선서 및 군무원을 감독하는 게 ‘프랭클린’의 책무였는데, ‘프랭클린’은 일상적인 관료적 업무를 감독하는 수준을 넘어, 타성에 젖은 관료 조직을 개편하는 동시에 더 크고 더 나은 장비를 갖춘 군함을 건조하기로 결정했고, 또한 필요하면 언제라도 전투에 참전할 수 있도록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군무원의 업무를 재편성했음(p120). ⑤조직을 관리한 경험이 실질적으로 전혀 없던 31세의 젊은 차관보가 해군성 행정을 관리하는 동시에 그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가는 변화를 주도하는 이중의 과제를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 물론 그가 지향하는 목표, 즉 조직의 미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첫 단계였겠지만, 어떻게 실현까지 성공했을까? 그와 ‘대니얼스’는 시작은 불미스러웠지만, 결국에는 둘 모두에게 유익했던 생산적인 업무 관계와 평생의 우정을 형성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p120). 이 질문들에 올바른 답을 구하려면, ‘프랭클린’의 유명한 “일류급 기질”에만 의존하지 말고, 빠른 판단력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은 그의 지력까지 다루어야 하며, 그는 복잡한 조직에서 처음 일하면서, 지력도 결코 “이류”가 아님을 증명해 보였는데, 그로턴 기숙학교와 하버드 대학, 컬럼비아 법학 대학원에서 사용된 잣대로는 그의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었고, 이질적인 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내는 능력과 정보를 남달리 신속히 흡수하는 능력에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음(p121). ⑥게다가 이러한 능력이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상냥하고 외향적인 태도에 의해 감추어진 까닭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벼운 사람이란 오해를 받았지만, 해군성에서 ‘루스벨트’를 상대하고 경험한 사람들은 똑똑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며, 한 해군 소장은 ‘루스벨트’를 “번뜩이는 두뇌의 소유자”로 묘사하며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는 속도에 숨이 멎을 정도였다. 지극히 복잡한 문제도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히 파악했다.”고 덧붙였음(p121). 함대 규모와 역량 및 6만 5,000명에 달하는 병사와 군무원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려고 ‘프랭클린’은 사무실 벽에 커다란 세계 지도를 붙여두었는데, 색핀들은 모든 군함의 위치를 가리켰고, 군함이 이동할 때마다 색핀도 움직였으며, 다른 핀들은 해군 조선소와 군항, 보급소 등에 고용된 군무원의 수를 가리켰음(p121). ⑦‘프랭클린’은 핀을 보고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는데, 처음부터 그는 해군을 “죽은 나뭇가지”로 채워진 빈사 상태의 관료 조직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로 생각함(p122). 또 모든 구성원이 제자리에서 각자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내는 거대한 조직을 머릿속에 그렸고, 그 결과 미 해군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최강의 해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p122).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의 해군성에서의 활동들을 기술하면서, 그의 ‘리더십’에서 보충되어야 할 ‘겸손’이라는 덕목을 배우는 기회였음과 그의 ‘지력’이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과정이었음을 잘 보여줌. ‘리더십’에 있어서 ‘겸손’의 자질이 필요한 이유?


□ 요약(제1-3부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10. 프랭클린 루스벨트_해군성 업적)


①벽에 걸린 세계 지도를 힐긋 봐도 ‘루스벨트’의 눈에는 불필요한 해군 조선소가 한두 곳이 아니었는데, 처음엔 범선 보수를 위해 마련된 곳이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정치적 압력 때문에 유지할 뿐이어서 운영 자체가 엄청난 손실이었음(p122). ‘프랭클린’은 그런 쓸모없는 조선소를 무작정 폐쇄하지 않고, 현대화된 해군에게 필요한 선박과 장비를 제작하는 특화된 공장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계획을 고안했는데, 예컨대 브루클린 해군 조선소는 함대에 사용되는 밧줄과 닻과 사슬은 보스턴 조선소에서 제작되었으며, 순양함은 필라델피아, 잠수함과 구축함은 노퍽에서 건조되었으며, 이는 잠재적인 전쟁을 대비해 평화기의 해군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는데, 이 덕분에 ‘루스벨트’는 “살림꾼”(economizer)이란 평판을 얻음(p122). ②‘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기존 관료 조직을 관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론을 도입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전속 부관을 모집했으며, 관리 업무의 기계적인 부분을 믿고 맡길 만한 보좌관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루스벨트’는 ‘찰스 매카시’(Chales McCarthy)를 보좌관 겸 개인 비서로 두었음(p122). ‘메카시’는 여러 행정부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데다 해군의 전통과 관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루스벨트’는 금세 ‘매카시’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데, ‘매카시’는 “차관보님처럼 노련한 경영자만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적절히 분배할 사소한 일거리와 직접 처리해야 할 상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프랭클린’을 평가했으며, ‘프랭클린’은 ‘매카시’는 노련한 관리에게 존경받은 덕분에 해군성 구조를 개혁하는 데 간부 관료들의 협력을 더 쉽게 얻을 수 있었음(p123). ③‘루스벨트’는 해군의 준비 태세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원만히 시행하려고 자신의 사람이던 49세의 ‘루이스 하우’(Louis Howe)를 영입했는데, ‘하우’는 <뉴욕헤럴드>의 뛰어난 기자였고, 특이한 외모에 항상 담뱃재로 뒤덮인 구겨진 양복을 입고 다녀 “땅의 요정”, 가느다란 머리카락과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검게 그을린 고양이”등 과장된 별명을 얻었음(p123). ‘하우’와 ‘루스벨트’는 ‘시핸’이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지명된 걸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다 처음 만났는데, 둘은 서로에게 곧바로 끌려 절친한 친구가 됐고,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됐으며, 그 이후로 ‘하우’는 ‘루스벨트’에게 일생을 바쳤고, 그때부터 사반세기 동안 그들은 이틀 이상 떨어졌던 적이 없었음(p123). ④싹싹하고 낙천적이던 ‘루스벨트’는 대립을 대체로 싫어했지만 ‘하우’는 천성적으로 냉정하고 냉소적이었는데, 게다가 상대와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걸 좋아했고, ‘하우’는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제시하며 ‘루스벨트’의 자존심을 꺾고, 태만함을 나무라기 일수였음(p123). ‘루스벨트’가 언제 어디에서 잘못했는지도 직설적으로 말했는데, 하지만 ‘하우’는 전면에 나서지 않아 일이 제대로 풀리면 ‘루스벨트’의 공으로 돌렸고, 일이 잘못되면 자신이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였음(p123). ⑤‘루스벨트’가 나태한 관료 조직을 더욱 확장하고 준비된 조직으로 바꿔가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그 후에도 제약을 해결하는 그만의 고유한 방법이 됐는데, 법규를 우회하든 형식적인 절차를 생략하든, 선례를 파괴하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고, ‘에모리 랜드’(Emory Land) 제독은 그 시기의 ‘루스벨트’를 회고하며 “그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했음(p124). ‘에모리 랜드’(Emory Land) 제독은 그 시기의 ‘루스벨트’를 회고하며 “그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예컨대 무엇인가가 벽에 달라붙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그것을 벽에 내던졌으며, 그것이 벽에 달라붙지 않으면 자신의 실수를 주저없이 인정했고, 다른 것을 시도했음(p124). ⑥실제로 법규 때문에 정부가 함포를 상선에 판매하지 못하자, ‘루스벨트’는 함포를 판매하지 않고 적당한 채권을 받고 빌려주는 책략을 고안했으며, 이 책략은 훗날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시행된 역사적인 무기대여법(Lend-Lease :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 3월, 미국이 연합맹방에 군사 원조를 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임. 미국은 연합국 측의 병기창이 되었으면서도 처음에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음. 다만 미국 방위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리에 무기를 대여할 것을 결정하고 이 법을 제정함. 무기 대여는 미국 참전 후 더 활발해졌고, 전쟁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는 평을 받음)으로 발전함(p124). ⑦‘루스벨트’에게는 기발한 상상력과 제약을 우회하는 유연한 기법 이외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심쩍은 방법도 과감히 시도하는 적극성이 있었는데, 예컨대 의회의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 그는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함포와 군수품과 장비를 공식적으로 주문했으며, 제조업자들은 그의 말만을 근거로 주문을 받아들였음(p124). 실제로 ‘루스벨트’는 자신의 대담한 책략이 불법으로 판명나면 “99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겠다!”라고 과장되게 선언하기도 했는데, 철저히 준비하면 궁극적으로 미국인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임(p125). ⑧‘프랭클린’의 준비성은 무척 중요했던 것으로 입증되었는데, ‘매킨리’ 대통령과 당시 해군성 장관, ‘존 데이비스 롱’(John Davis Long)의 정책에 반대하며 ‘시어도어’가 스페인과의 충돌에 대비했듯이, ‘프랭클린’은 훗날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할 수 있는 기초를 놓았는데, 1915년 여객선 루시타니아 호가 침몰하고, 2년 뒤에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자, ‘루스벨트’는 항명자라는 비난의 덫에서 벗어나 선견지명을 지닌 예지자라는 칭찬을 받았음(p125). 해군에 필요한 군수품을 착실히 비축해둔 ‘프랭클린’의 준비성에 감탄한 ‘윌슨’ 대통령은 육군 참모총장과 만나는 자리에 ‘프랭클린’을 초대했고,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유감스럽게도 자네가 군수품을 비축한다고 시장을 교란시켰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자네가 준비해둔 군수품을 육군과 나누도록 하게.”라고 말했고, ‘프랭클린’은 전쟁에 미리 대비한 혜안으로 ‘조지퍼스 대니얼스’ 해군성 장관만이 아니라 ‘윌슨’ 행정부 전체로부터 신뢰를 얻었음(p125). ⑨훗날 그가 해군성에서 쌓은 행정 경험은 관리 능력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상대하는 능력까지 향상시키는 소중한 자산이 됐는데, 차관보로 임명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프랭클린’은 워싱턴 해군 조선소에서 일하는 민간인 노동자들을 방문했고, 그들에게는 해군 고위층과 정부로부터 무시당한다는 불만이 팽배했음(p125). ‘프랭클린’은 그들에게 불만 사항이 있으면 언제라도 찾아오고, 순전히 대화를 위해 찾아와도 상관이 없다며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러분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싶다.”라고 말했고, 그는 조선소와 군항 등 방문하는 모든 곳의 노동자들에게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며, 미국 노동총연맹(American Federation of Labor, AFL)에 소속된 기계 기술자들에게 그의 사무실 문은 항상 열려있을 것이라고 말함(p126). ⑩그가 차관보로 일하는 동안, 해군성에서는 수천 명의 민간인 노동자가 일했는데, 단 한 건의 파업도 없었고, 결국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루스벨트’의 해군성 재임도 끝을 향해 다가갔으며, 그는 ‘대니얼스’에게 정치 교육에서 멘토 역할을 해준 것에 깊이 감사하며 “장관님은 저에게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덕분에 제가 천둥벌거숭이처럼 들뜨지 않고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냄(p126). 10년 전 주의원 후보로 낙점된 데 행운이 있었듯이, 1920년 38세에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받는 데도 행운이 크게 작용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주당 전국 전당대회가 열린 날 <뉴욕 헤럴드>에 소개된 39명의 잠재적 부통령 후보 명단에는 ‘루스벨트’가 없었음(p126). ⑪1920년 여름쯤 여론은 민주당에 등을 돌린 뒤였고, ‘우드로 윌슨’은 뇌졸중으로 고생하며 백악관에서 꼼짝하지 못했으며, 민주당이 집권한 8년 동안 전쟁과 진보적 개혁에 지친 미국인들은 공화당이 내건 ‘정상으로 돌아가자’(Return to Normalcy)라는 선거 구호처럼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음(p126).
● 비평 및 토론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전쟁을 겪으면서 해군성 차관보로 전략물자를 비축하는 등의 공적을 통해 결국 ‘우드로 윌슨’ 행정부에 신임을 얻게 되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개방적 태도를 보였음을 잘 보여줌. ‘리더십’에 있어서 장래에 대한 혜안과 준비성이 필요한 이유 및 효과는?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5하우스(이현재)_프랭클린루스벨트정치활동.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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