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25-40강 혼돈의 시대의 리더의 탄생-6(프랭클린루스벨트 유년시절)

presentlee 2025. 10. 12. 08:32

https://youtu.be/F1MhgbexWEQ?si=gZ7BZP1XLWVXa38c

House 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1-4부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2. 프랭클린 루스벨트_유년시절)


①10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정식으로 주의원 후보로 지명될 것이란 확언을 받고, ‘프랭클린’은 9월 10일 연례 경찰 해산물 파티에서 첫 정치 연설을 가졌는데, 훗날 ‘프랭클린’은 그날을 회상하며 “나는 해산물과 맥주로 흥겨운 파티에서 첫 정치연설을 시도했는데, 이후 연설에 대해 끝없이 변명해야 했다.”라고 말함(p88). ‘존 맥’의 소개를 받은 뒤, ‘프랭클린’은 자신의 유명한 친척, ‘시어도어 루스벨트’처럼 “여러분을 만나 정말 기~쁩니다.”라고 연설을 시작했고, ‘시어도어’가 즐겨 사용하던 구절과 몸짓 및 코안경까지 들먹이며 “내년에는 모든 친척과 함께 다시 찾겠다.”고 약속함(p88). ②‘프랭클린’의 당시 연설에 대한 더 이상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후로 몇 주 동안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프랭클린’은 대화체로 편하게 연설한 듯 하며, ‘프랭클린’은 군중들과 쉽게 어울렸고 격정적으로 악수를 나누었으며, 어디서나 친구를 만들었음(p88).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28세의 특권계급 청년이 물속에 처음 뛰어들고도 물개처럼 여유 있게 헤엄치는 걸 보면서 ‘존 맥’을 비롯한 민주당 다선 의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변신이 가능했을까?(p88). ③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타트’(Richard Neustadt)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고전에서 “기질이 ‘리더’를 구분짓는 중대한 기준”이라고 주장했는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3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흘 뒤, 92세 생일을 맞은 전 연방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l Holmes)를 방문함(p88). ‘루스벨트’가 떠는 후, ‘홈즈’는 “지력은 이류이지만 기질은 일류군.”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역사학자들도 ‘훔스’의 평가에 동의하며, ‘루스벨트’의 자신감 넘치고 사교적이며 낙천적인 기질을 ‘리더’로서 성공한 요인으로 꼽았음(p89).  ④기질이 성공의 핵심이라면, 앞에서 제기한 질문의 답은 하이드파크의 사유지, 즉 스프링우드에서 찾아야 하는데,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기본적인 기질은 그곳에서 형성됬으니 말임(p89). ‘루스벨트’는 “내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허드슨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라고 즐겨 말했는데, 잔잔한 강과 큰 저택만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이 기질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며, 요컨대 ‘프랭클린’의 성격은 따뜻한 환경에서 형성되었으며, ‘프랭클린’의 어린 시절을 알았던 사람들은 그를 묘사할 때 거의 똑같은 수식어-“무척 얌전한 아이”, “밝고 행복한 아이”, 또 “상냥하고 예쁘고 무척 침착하다”-를 사용함(p89). ⑤‘프랭클린’은 여덟 살까지 안정되고 균형적인 시간을 보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제임스’와 ‘세라 루스벨트’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서로 진실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며, 고등 교육을 받아 정중하고 점잖았던 ‘제임스’는 52세에 ‘프랭클린’을 얻었는데, 의지가 강하고 자신감에 넘치던 아름다운 부인, ‘세라’의 나이는 그 절반에 불과했음(p89). ‘루스벨트’ 가문은 부동산과 설탕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으며, 덕분에 ‘제임스’는 지방의 대지주로 살아가며, 영국의 상류 지주처럼 옷을 입고 그들과 유사한 취미활동을 즐겼으며, 활당한 성격이던 ‘제임스’는 ‘프랭클린’에게 남성적인 세계를 가르쳤고, 그는 독서와 취미를 통해 ‘프랭클린’의 내면을 다스렸음(p89). ⑥‘세라’의 회상에 따르면, ‘프랭클린’ 앞에서 부부는 한 번도 다투지 않았으며, ‘프랭클린’의 올바른 훈육을 위해 항상 “통일 전선”(united front)"를 펼쳤는데, 또 자식이 하나였기에 “형제간의 다툼이라는 문제도 실질적으로 없었다.” 부부의 삶은 전적으로 ‘프랭클린’에게만 맞추어졌으며, ‘프랭클린’은 부모의 재산만이 아니라 불화와 갈등이 없는 정신까지 물려받았음(p90). 훗날 ‘세라’의 증손자, ‘존 보티어 주니어’(John Boettier Jr)가 말했듯이, ‘프랭클린’에게 좋은 면만 보여주려 했던 ‘세라’의 양육 과정을 돌이켜 볼 때 그녀는 “아픔을 모르게 하는 양육은 그 자체로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듯 함(p90). ⑦아이들은 형제자매와 부대끼는 과정을 통해 강해지는데, 함께 놀다가 다투지만 다시 어울려 놀고, 비판을 받아들이며 상처를 극복하고, 비밀을 주고받으며 친밀해지는 법을 배우는데, ‘보티저 주니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감정을 노골적이고 명확히 표현하는 걸 거북하고 불편하게 생각했다. 이런 성향은 추잡하고 질투하는 이익 충돌로부터 철저히 보호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라고 덧붙임(p90).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어린 ‘루스벨트’에게 안정감과 특권 의식을 심어주었던 것은 분명한데, 그 후로도 평생 동안 ‘루스벨트’는 평화롭고 안정되게 보낸 어린 시절을 정겹게 기억했으며, ‘프랭클린’은 계절마다 그에 적합한 야외 활동을 즐겼는데, 겨울에는 아버지와 구불구불 내려간 가파른 언덕에서 크고 작은 썰매를 탔음(p90). ⑧‘프랭클린’은 “아빠랑 썰매를 타고 신나게 내려갔어요. 위험한 건 없었어요. 내일 또 탈거예요!”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애간장을 태웠으며, 또 얼어붙은 허드슨강에서 아버지에게 스케이트와 빙상 요트 타는 법을 배웠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매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말을 타고 사유지를 돌아다니며 사유지에 건축 중이던 건물들을 둘러보았음(‘프랭클린’은 두 살에 당나귀를 졸업했고, 여섯 살에는 조랑말, 여덟 살에는 말을 타기 시작했음)(p91). 여섯 살에는 어머니에게 “어제 오후에 아빠와 낚시를 갔어요. 피라미를 열두 마리나 잡았어요!”라는 열띤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제임스’는 아들에게 낚시하는 법만이 아니라 숲에서 조류를 관찰하고 수목(壽木)을 구분하는 법을 가르치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워주었고, 여름에는 가족 모두가 메인주 동부 해안의 다운이스트(Down East Maine)에서 멀리 떨어진 캄포벨로 섬에서 휴가를 보냄(p91). ⑨이곳에서 ‘프랭클린’은 패서머콰디만(灣)을 출발해 펀디먼까지 항해하는 법을 배웠는데, 가을이 오면 두 부자는 함께 사냥을 다녔으며, 또래의 놀이 친구가 거의 없었던 까닭에 ‘프랭클린’은 너그럽게 감싸주는 아버지를 동반자이자 친구로 여겼음(p91). ‘제임스’가 야외활동을 통해 ‘프랭클린’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쳐주었다면, ‘세라’는 규칙적인 식사 및 학습과 취미 활동을 위한 시간을 치밀하게 조절하여 아들의 내적 능력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했으며, ‘프랭클린’이 다섯 살이었던 어느날, 평소답지 않게 우울한 모습을 보이자, 세라는 아들에게 슬퍼하는 이유를 물었음(p91). ⑩“그때서야 ‘프랭클린’은 초조하면서도 애원하는 표정으로 두 손을 깍지 끼며 ‘자유를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세라’는 자신의 규칙과 단호함이 아들의 자유로운 정신을 억누루고 있음을 걱정하며, ‘프랭클린’에게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는 하루를 허락했음(p92). 그날 ‘프랭클린’은 사유지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하지만 금세 ‘프랭클린’은 어떤 불평도 없이 자진해서 원래의 생활방식으로 돌아왔다.” ‘세라’는 “우리 부부는 ‘프랭클린’에게 ‘하지 말라’고 쓸데없이 제약하지 않았는데, 금지를 위한 금지, 엄격함을 위한 엄격함에 몰두하지 않았고, ‘프랭클린’에게 뭔가를 금지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오히려 은근히 자랑스러웠다.”라고 말함(p92). ⑪부모의 보호와 배려가 ‘프랭클린’의 독립심을 헤쳤더라도, 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어린 시절을 더 신나게 해주었던 자발적인 탐구 같은 것이 없었더라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성향과 기질은 낙천적인 정신-모든 결국에는 좋게 끝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으로 발전했을 것인데, 이는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던 삶의 시대에 엄청난 자신감을 키웠다는 증거임(p92).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이 처음 정치에 입문하고도 ‘물개처럼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을 ‘존 맥’등이 놀랍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주지하며, 이러할 ‘리더십’은 ‘기질’과 관련성이 깊으며, ‘프랭클린’의 기질을 그의 안정적 유년시절과 잘 연결하였음.
● 토론
 ‘프랭클린’의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자유로움과 능숙함이 그의 어린시절 아버지 어머니와의 정서적 교류 및 환경을 통한 ‘기질’로부터 왔다고 하였는 바, ‘리더십’의 훈련이 유년시절부터 필요한지? 그렇다면 유년 ‘리더십’적 기질 개발방법은?


□ 요약(제1-5부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2. 프랭클린 루스벨트_소년시절)


①훗날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보여주었듯이,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상황에 적합하도록 행동과 태도를 바꾸는 능력은 ‘리더’로 성공하는데 중요한 요인인데, 여덟 살에 ‘프랭클린’은 어쩔 수 없이 적응력을 키워야 했으며, 평온하던 스프링우드가 뿌리채 흔들렸음(p92). 1890년 11월 ‘제임스’가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그 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 동안 병자로 지내어 평온하던 가족의 삶이 붕괴되고 말았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던 야외 활동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고, ‘프랭클린’은 아버지의 걱정과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어머니와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음(p93). ②그 이후 “무척 얌전한 아이”로 행동하여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는 ‘프랭클린’의 선천적 욕망이 더욱 심화되었는데, 자신이 슬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버지의 심장에 부담을 주게 될까 두려워했던 것임(p93). 예컨대 떨어지는 철제 커튼 봉에 맞아 두피에 깊은 상처가 났을 때도 그 일에 대해 아버지에게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프랭클린’은 며칠 동안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다니며 상처를 감추었으며, 확연히 달라진 스프링우드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비밀 유지와 조작이 필요했던 것인데, 나중에는 번거로운 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기 위해 생각해낸 최상의 온유한 조치였음(p93). ③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주변에 놀이 친구도 없었던 까닭에 ‘프랭클린’은 더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고, 우표와 지도, 모형 배와 새 둥지, 동전과 군함 판화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우표 수집은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취미가 되었음(p93). ‘세라’는 자신이 어렸을 때 수집한 것으로 ‘프랭클린’이 수집을 시작하게 했고, 나중에 외삼촌 ‘프레더릭 델러노도 프랭클린’에게 자신의 수집품을 선물로 주었는데,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진정한 수집가를 다룬 수필에서, 수집을 무질서한 세계의 질서화라고 정의했으며, ‘벤야민’은 수집이 어린아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함(p93). ④수집은 어린아이가 책임지고 결정하는 작은 세계이고, 무엇인가를 획득하는 ‘짜릿한 황홀감’과 뒤죽박죽된 품목들을 통합하고 정리한다는 자부심을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인데, ‘프랭클린’이 우표 도감을 뜯어보고, 우표를 선별해 앨범에 정리하며 보낸 평온한 시간은 일종의 안식처, 즉 남편의 보호막이 줄어든 여파로 아들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짙어진 어머니로부터 해방되어 혼자 있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기도 했음(p94). 과거에 ‘제임스’는 ‘프랭클린’만이 아니라 ‘세라’의 보호자이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세라’와 ‘프랭클린’이 ‘제임스’를 보호하는 역할을 떠맡아야 했으니 말임(p94). ⑤어린 시절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나중에 ‘리더십’을 함양하는 데 무척 중요한 도구가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며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방법을 어린 시절에 터득했던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루스벨트’를 방문한 ‘윈스턴 처칠’(Winstern Churchill)은 저녁을 함께 보낸 때를 회상하며, ‘루스벨트’가 “국가의 안위”를 잊은 채 우표를 정돈하고 분류하며 하나하나를 본래의 자리에 놓더라고 말함(p94). ‘루스벨트’의 개인 비서, ‘그레이스 털리’(Grace Tully)는 “한 손에 쥔 돋보기, 스콧 우표 도감, 가위와 스티커 뭉치”를 옆에 둔 ‘루스벨트’를 만날 때마다 자신도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무척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이나마 ‘루스벨트’는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었음(p94). ⑥‘링컨’의 철학적이고 시적인 깊이와 ‘시어도어’의 번뜩이는 폭넓은 지능에 비교할 때, ‘올리버 웬들 홈스’의 표현을 빌리면 ‘플랭클린’의 지적 능력은 “이류”인 듯 했지만, 이런 추정은 크게 잘못된 것임(p95). ‘프랭클린’은 어렸을 때 남다른 직관적 능력과 대인관계지능(interpersonal intelligence), 즉 상대의 의도와 동기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부모의 의도와 바람을 읽어냈고, 급격히 변한 가족 분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으며, 이 능력은 그가 그 후로도 꾸준히 개발하고 함향한 재능이었는데, 그는 학자가 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광범위한 독서와 남다른 분석으로 복잡한 문제도 기민하게 해결하는 지능만이 아니라 유연하고 탄력적인 언어 구사력도 자랑했음(p95). ⑦평생 ‘프랭클린’은 독서보다 경청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걸 조용히 들으며 많은 정보를 흡수했으며,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틈나는 대로 그에게 책을 읽어 주었는데, ‘세라’의 회고에 따르면, 어느 날 저녁 그녀가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안 “그는 배를 깔고 엎드려 우표를 분류하고 정리했다.” 아들이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책을 내려놓고 나무랐다(p95). “이제 엄마가 책을 읽어주려고 수고할 필요가 없겠구나. 네가 전혀 듣지 않으니까.” 그러자 ‘프랭클린’이 고개를 들고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조금 전에 읽은 구절을 한 단어도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러고는 “짖궂게 눈을 반짝이며, 엄마, 내가 동시에 두가지 일을 할 수 없다면 그게 부끄럽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음(p95).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루스벨트’의 성장배경 속에서 아버지 ‘제임스’의 병과 그로 인한 환경의 변화, 그리고 ‘우표 수집’을 통해 기분을 조절한 모습을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의 여러 증언들을 통해서 잘 기술하고 보여주고 있음. 이러한, ‘리더십’의 자기 관리의 기술들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는지? 있다면 적정한 자기관리기법은?


□ 요약(제1-5부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2. 프랭클린 루스벨트_청년시절)


①오랜 시간이 지난 후, ‘루스벨트’가 노동부 장관 ‘프랜시스 퍼킨스’(Frances Perkins)에게 지적했듯이, 그 자신도 나이가 들어서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는 걸 좋아했는데, 그녀는 “거부하기 힘든 사교적인 면이 있었다. 지적인 면에서나 장난스런 면에서나 사교적이었다.”라고 그를 평가함(p96). 또 백악관 보좌관으로 연설문 작성자였던 ‘새뮤얼 로젠먼’(Samuel Resenman)도 “대체로 ‘루스벨트’는 자료와 보고서를 읽는 것보다 구두로 정보를 얻는 걸 더 좋아했다. ‘루스벨트’는 시시때때로 보고를 끊고 질문을 퍼부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핵심을 파악했다.”라고 회상함(p96). ②‘시어도어’는 달리, ‘프랭클린’은 일정한 원칙 없이 무계획적으로 교육을 받았는데, 어린 시절에는 여자 가정교사들에게 배웠지만, 이런 부정기적인 교육도 세 번의 오랜 유럽 체류로 중단됐으며, ‘제임스’와 ‘세라’가 온천의 치유력을 믿어 독일 바트 나우하임을 주로 찾은 때문이었음(p96). 게다가 ‘디’는 자녀들에게 역사와 문학에 대한 관심을 붇돋어주려고 유명한 전쟁터와 문학 소설의 배경지에 ‘시어도어’를 데리고 다녔지만, ‘제임스’는 자신의 건강을 되찾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으며, 그래서 ‘프랭클린’은 잠깐 동안 지역 독일 학교를 다녔는데, 뛰어난 청해력(廳解力) 덕분에 독일어를 상당히 쉽게 습득함(p96). ③‘프랭클린’이 열두 살이 되자, ‘제임스’는 그로턴 기숙학교의 교장, ‘엔디콧 피보디’(Endicott Peabody)에게 편지를 써서, “내 아들의 친구”도 될 수 있는 점잖은 가정교사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고, ‘제임스’는 생폴 예비 학교에서 라틴어와 수학을 가르치던 ‘아서 덤퍼’가 최적이란 결론을 내렸음(p96). 훗날 ‘아서 덤퍼’가 말했듯이, ‘프랭클린’은 흥미롭게도 “비정통적 방법”으로 노는 걸 좋아했는데, 가정교사를 대화에 끌어들여 그가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책보다 우표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었는데, 하지만 우표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을 통해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단편적 지식을 짜맞추어 관심사에 대한 커다란 그림을 머릿속에서 그려냈음(p97). ④어떤 우표에나 고유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따라서 ‘제임스 페니모어’의 ‘쿠퍼’의 모험 이야기가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이솝 우화’가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그랬듯이, 하나하나의 우표가 발행된 장소와 날짜, 전면에 표시된 형상, 여행을 시작한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는 소인 등이 ‘프랭클린’의 상상 세계에서 생생한 이야깃거리가 됐음(p97). ‘세라’가 준 우표는 그녀의 가족이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체류할 때에 모은 것이었는데, 여기에 유럽에서 건너온 우표들, 남아메리카에서 날아온 우표들이 더해졌으며, 훗날 ‘프랭클린’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까지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우표에 관심을 갖게 되자 그 우표를 발행한 국가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으며, 백과사전을 뒤적이며 ‘프랭클린’은 그 국가와 국민 및 역사까지 공부했는데, 백과사전을 읽는 동안 이해되지 않는 단어가 눈에 띄면 웹스터 사전을 머리맡에 가져와 읽었고, 한때 어머니에게 “거의 절반”을 읽었다고 자랑하기도 했음(p97). ⑤‘프랭클린’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공부한 덕분에 자연스레 학문 경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지식과 지능,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 세세한 부분도 간과하지 않는 치밀함을 보여주었고, 그런 능력은 평생 동안 유지되었는데, 특히 지리적 내용을 좋아하는 까닭에 평생 동안 유지됐음(p97). 예컨대 강과 산과 호수와 계곡, 자연자원 등을 기억했는데, 훗날 입증됐듯이, 이런 지리적 정보는 두 번의 전쟁에 어떻게 어디에서 전 세계가 휘말려들 수밖에 없었는지 미국인에게 설명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가 되었음(p98). ⑥14세에 그로턴 기숙학교에 보내졌을 때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프랭클린’의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는데, 대부분의 학생은 12세에 시작했지만, ‘세라’가 아들을 떼어놓지 못해 2년을 늦게 보낸 때문이었으며, 훗날 ‘프랭클린’이 ‘엘리너’에게 말했듯이 “다른 아이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우정을 맺은 뒤였다.”(p98). 또 ‘프랭클린’이 모르는 걸 다른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어 ‘프랭클린’은 내버려진 기분이었을 것인데, 급우들은 서로 주고받는 게 당연했지만 ‘프랭클린’은 이런 관습에도 익숙하지 않았는데, 세심하게 꾸민 듯한 고상하고 예의 바른 태도는 어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지만, 급우들에게는 부자연스럽게 격식을 차리고 가식적이며 진실되지 않게 보였음(p98). ⑦게다가 ‘프랭클린’에게는 팀 스포츠에 참가해 부각될 만한 운동 능력도 없었는데, 훗날 ‘프랭클린’도 인정했지만, “많은 부문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급우들과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사소한 것도 잘못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존경받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급우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방법을 전혀 몰랐음(p98). ‘프랭클린’은 외로움과 싸우면서도 그런 낌새를 어머니에게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오히려 어머니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멋지게 적응하고 있으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좋은 성적을 받았다.”며 항상 밝은 편지를 보냈음(p99). ⑧따라서 그런 편지를 받을 때마다 ‘세라’는 안도하며 즐거워했는데, ‘프랭클린’이 뒤늦게 입학해서 급우들에게 “불법 침입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했지만, “거의 하루밤 사이에 ‘프랭클린’은 급우들과 친하게 어울리며, 온갖 학교 활동에 즐겁게 참가했다.”며 자랑스러워 했음(p99). ‘프랭클린’은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그렇게 편지를 썼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실과 자신의 바람을 뒤섞으며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서이기도 했음(p99). ⑨모든 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거라는 낙천적인 기질 덕분에 ‘프랭클린’은 꾸준히 전진할 수 있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내하며 적응할 수 있었고, 결국에는 토론토팀의 일원으로 자리매김 했는데, 국가를 위해 일하도록 청년을 키운다는 그로턴 학교의 사명에 따라, 모든 학생이 청중 앞에서 진행되는 토론에 참여해야 했음(p99). ‘프랭클린’은 항상 토론을 앞두고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고, 아버지에게 조언과 충고를 얻었는데, 그는 탁월한 기억력을 적절히 활용해 아무런 쪽지 없이 청중을 똑바로 바라보며 발언할 수 있었음(p99). ⑩‘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청년들이 자신의 믿음이나 느낌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는 훈련을 받아, 결국에는 위선을 배우게 된다고 생각하며 토론하는 모임을 멀리했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하나의 쟁점을 다양한 관점에서 고려하는 걸 좋아했고, 자신의 의견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추론능력을 입증해 보였음(p99). ‘프랭클린’은 대중과 감정적으로 교감하며 토론에서 승리의 즐거움을 만끽했는데, 실제로 부모에게 “우리는 30표를 받았지만 반대쪽은 3표밖에 받지 못했어요! 아마 올해의 토론에서 가장 큰 승리일 거예요!”라고 자랑한 적도 있었고, 어느덧 ‘프랭클린’은 급우들과 한결 편하게 지내기 시작했고, 마지막 해에는 적잖은 급우와 좋은 친구가 되었으며, 학업 성적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하버드 입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부모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음(p100). ⑪그러나 이런 성취에도 ‘프랭클린’은 급우들 사이에서 ‘리더’로 부각되지는 않았는데, 그로턴에서 첫해를 보낸 뒤에야 ‘프랭클린’은 반듯하고 예절 바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으며, 그래서 부모에게 “오늘 학교에서 처음으로 감점을 받았어요. 그래서 정말 기뻐요. 그전에는 나는 애교심이 없는 녀석이란 오해를 받았거든요.”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음(p100). 그로부터 30년 후 ‘루스벨트’가 1932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자, 그로턴의 교장, ‘엔디콧 피보디’는 이렇게 말했는데,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그로턴에 재학했을 때 그에 대해 쓰인 글이, 그가 학교에 남긴 인상에 합당하다고 생각할 만한 수준보다 더 많았다. 그는 조용한 학생이었고, 지능은 평균을 약간 상회했다. 또 능력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특별히 총명하지는 않았다. 운동 능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p100).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유년시절과 소년시절로 넘어오는 과정을 다루면서, 그의 유화적 성격과 소질에 대한 면들을 잘 다루고 있음. 특히 그로턴 교장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음을 잘 보여줌.
● 토론
  국가공동체 등에 대하여 ‘정치적 리더십’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5하우스(이현재)_프랭클린루스벨트정치리더십.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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