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LZFBAe2Nb4?si=-vtIA4nalOBzG044
House 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1-4부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5. 프랭클린 루스벨트_대학시절)
①‘프랭클린’이 다닌 그로턴의 교장 ‘엔디콧 피보디’는 ‘프랭클린’이 조용하고 지능은 평균을 약간 상회했으며, 능력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특별히 총명하지는 않았고, 운동능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는 평가는 외견상 정확해 보이지만, ‘플랭클린’이 그로턴에 입학할 때까지 부모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받았을 뿐 또래 학생들과 번잡스런 경쟁을 벌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간과되었음(p100). 그로턴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라는 이유만으로 어디서나 관심을 독차지했고 이제까지 또래의 ‘리더’가 아니었고, 심지어 또래의 일원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프랭클린’은 즐거운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좌절을 감추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갔는데,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였음(p101). ②‘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하버드에 입학했을 때도 ‘에이브러햄 링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강력한 기폭제 역할을 했던 야심적 노력은 보이지 않았는데, 훗날 아들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상상한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세라’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 ‘프랭클린’이 대통령이 될 거라고, 아니 어떤 직책이든 공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라고 대답할 정도였음(p101). ‘세라’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와 아들에게는 지극히 소박한 꿈이 있었을 뿐인데, “그다지 야심적이라 할 수 없지만, 나는 물론 ‘프랭클린’도 아버지처럼 올곧고 반듯하며, 정의롭고 친절하며 정직한 미국인이 되는 게 최고의 이상이었다.”(p101). ③‘세라’는 열여덟이 된 아들이 자기만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 꿈은 널찍한 사유지를 관리하며 계절에 따라 다른 형식의 삶을 살아가고, 캄포벨로 섬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지역 대소사에 개입하는 시골 대지주의 삶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음(p101).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10년 동안 항상 중심을 차지하던 어린아이 ‘프랭클린’의 무사태평한 겉모습 뒤에는 그런 삶을 더 큰 세계에서도 향유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관심받을 만한 일을 해내고 싶다는 욕망이 감추어져있었음(p102). ④하버드 첫 학기에 아버지가 치명적인 심장발작을 일으켰고, 그 일로 말미암아 ‘프랭클린’의 삶을 안정되게 지탱해주던 것들이 흔들렸으며, ‘프랭클린’은 자신의 위치와 꿈과 야망을 치밀하게 점검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학 신입생에게 가장이란 짐이 떠맡겨졌으며, 다행히 ‘프랭클린’은 어머니와 서로 깊이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한 뒤였음(p102).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보호막과 완충장치가 없었던 까닭에 모자는 더욱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하이드파크에 혼자 살아야 한다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생각을 견디지 못한 ‘세라’는 아들 가까이에서 지내려고 보스턴에 주택 하나를 빌렸는데, 한 친구가 말했듯이 “‘세라’는 관대한 어머니였지만 아들이 자기 뜻대로 사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프랭클린’이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율권을 얻으려면 새로운 차원의 교묘한 조작과 속임수, 지략과 인내,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는데, ‘프랭클린’이 자기보존을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저런 능력을 키워가며 더불어 개발해야 했던 자질이었음(p102). ⑤처음으로 ‘프랭클린’은 향후 진로를 모색하며, 부모의 그늘과 기대에서 벗어나 혼자 힘으로 반짝일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찾아낸 것이 학교 신문 <하버드 크림슨 Harvard Crimson>이었음(p102). 그는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시작했으며, 한 자리를 두고 70명의 신입생이 경쟁해야 했고, 한 급우의 회고대로 “경쟁이 무척 치열했다. 지원자들은 생각과 시간을 완전히 투입했다.” ‘프랭클린’도 완전히 집중해야 했기에, 저녁 식사나 연극 관람을 함께하자는 어머니의 끊임없는 초대를 적절히 거절했고, ‘프랭클린’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했고, 괜찮은 성적을 받은 과목들을 공부할 때보다 전력을 쏟았는데, “사랑하는 어머니께, 저는 <크림슨>에서만 하루에 여섯 시간씩 일하고 있습니다. 중압감을 견디기 힘듭니다.”라고 썼을 정도였고, 2월에 일차로 선발된 5명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프랭클린’은 포기하지 않았음(p103). ⑥ 2개월 후 다시 그 문이 열렸는데, 행운과 진취성, 대담함과 특혜가 복합된 결과였으며, 당시 부통령이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보스턴을 방문할 거라는 소식을 지역 신문에서 읽고, ‘프랭클린’은 그 유명한 친척에게 접촉을 시도하며 만날 수 있을 지 물었음(p103). 그전에도 ‘오이스터 베이’에서 가족 휴가를 보낼 때 ‘프랭클린’은 ‘시어도어’를 수차례 만난 적이 있었는데, ‘시어도어’가 그로턴 기숙학교의 특별 강연에서 경찰국장으로 일하던 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기억도 있었고, “강연장 전체를 한 시간 동안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강연”이었으며, ‘시어도어’는 ‘프랭클린’을 특별히 좋아한 까닭에 이튿날 아침 ‘로런스 로웰’(Lawrence Lowell) 교수의 강의를 대신하는 초청 강연을 끝낸 직후에 그를 만나기로 약속했으며, 그 강연은 ‘로웰’ 교수의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예정된 것이라 전혀 공개되지 않은 일이었는데, ‘프랭클린’은 그 소식을 급히 알리려고 <하버드 크림슨>으로 달려갔음(p103). ⑦편집국장이 ‘프랭클린’에게 말했는데, “내일 아침 1면은 자네가 차지했군.” 그 기사를 보고 강의실에 2,000명의 학생이 모여들자 ‘로웰’ 교수는 격노했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언론의 작은 관심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던 까닭에 그런 환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음(p103). 몇 주가 지난 뒤, ‘프랭클린’은 <하버드 크림슨>의 일원으로 선발되었는데, 처음으로 선택을 받아 한층 자신감을 얻은 ‘프랭클린’은 여름이 다가오자 어머니에게 “이번에는 캄포벨로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도 가지 마세요.”라는 편지를 보냈고, 해외여행을 제안했는데, “새로운 곳을 방문해서 새로운 것을 보면 근심을 잊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해외에서 여름을 보내고 9월 뉴욕에 돌아온 모자는 그때서야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되고, 그들의 사촌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미국 대통령직을 승계했다는 걸 알게 되었음(p104). ⑧하버드로 돌아온 ‘프랭클린’은 <크림슨>의 사다리를 한 단계씩 천천히 올라갔으며, 2학년 때는 총무로 선발됐고, 그 뒤에는 부편집국장을 거쳐 편집국장이 됐고, 마침내 편집장에 올라섰는데, 승진은 ‘프랭클린’이 자신을 ‘리더’로 의식하게 된 획기적인 사건이었음(p104). 결국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신문에서의 지배력을 이어나갔는데, 그는 많은 사설에서 점점 위축되는 애교심과 운동 능력에 대한 염려, 즉 대학의 일반적인 문젯거리를 다루었지만, 한 사설에서는 정치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통치에 대한 추상적인 강의를 듣기보다 보스턴에 들어가 선거구 정치-“입법부 구성을 위한 선거가 이루어진 정당의 일차적인 조직”-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하는 게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고, 또 ‘프랭클린’은 “칸트와 루소를 읽었지만” 두 철학자의 글에서 강력한 ‘리더’의 모습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는데, 오히려 그는 경험을 최고의 스승이라고 믿었음(p104). ⑨ ‘에이브러햄 링컨’이 블랙 호크 전쟁에서 중대장으로 선출됐을 때 훗날의 어떤 성공보다 더 기뻤다고 말했듯이, 훗날 ‘루스벨트’도 처음 ‘리더’의 위치에 올랐던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는데, 대학 신문의 몇몇 동료는 ‘프랭클린’을 “우쭐대고 오만한 녀석”, 글 솜씨에 걸맞지 않게 자만심이 넘치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두뇌 회전이 빠른 유능한 편집자, 함께 지내기에 괜찮은 동료, 낙천적이고 재미있는 유머 감각을 지닌 친구”로 기억하는 동료가 다수였음(p105). 특히 한 동료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중요한 자질이 있었다. 성품이 남달랐다.……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고, 사람들이 그를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만들었다. 또 그의 싹싹한 행동에는 거부감 같은 것이 없었다.”라고 회상했는데, 그로턴 기숙학교에서는 겨우 살아남았지만, 하버드에서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음(p105).
● 비평 및 토론
필자는 ‘프랭클린’이 ‘리더십’을 배우게 된 계기를 그의 하버드에서의 <하버드 크림슨> 신문사에서 편집장을 맡게 된 것에서 찾아냄으로, 그의 리더십적 근원을 잘 밝혀내고 있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자신만의 위치는?
□ 요약(제1-3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6. 프랭클린 루스벨트_엘리너와 만남)
①‘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핵심적인 특징-주저하거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능력과 결정 과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성향-은 ‘엘리너 루스벨트’와 은밀히 연애하는 동안에 처음 드러났는데, ‘프랭클린’은 다른 여성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어머니의 사랑이 자칫 경쟁 관계로 보일 수 있다고 직감하고는 무척 조심했으며, 편지와 대화를 통해 ‘프랭클린’은 자신의 일상을 세세한 부분까지 어머니와 공유했지만,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았음(p106). 어머니 역시 모자 관계의 중대한 침범이라 여길 수 있는 교제에 대해서는 함구했는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런 관계를 감추어야 할 이유가 더욱 커졌음(p106). ②‘프랭클린’은 졸업을 앞둔 추수감사절에 충격적인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했는데, ‘엘리너’에게 청혼했고, ‘엘리너’가 그 청혼을 수락했다고! 하버드에 돌아간 뒤 ‘프랭클린’은 ‘세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었는데, “어머니에게 큰 아픔을 안겨주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제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어머니도 아실 겁니다.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달리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결과로 저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 가장 행운아이기도 합니다. 어머니, 어머니와 저의 관계는 앞으로도 옛날과 똑같을 겁니다. 어떤 변화도 없을 겁니다. 이제 어머니는 두 자식을 두게 된 겁니다. 또 어머니를 사랑하는 두 자식이 생긴 것이고요.”(p106). ‘프랭클린’은 달리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결심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는데, 그의 결정이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었음(p106). ③‘세라’는 그 편지에서 ‘프랭클린’의 단호한 결심을 읽어 냈으며, 그 이후에도 항상 그랬듯이, ‘프랭클린’은 일단 결심하면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따지고 보면, 자식의 도리와 ‘엘리너’를 향한 사랑 간의 내적 갈등이 해결될 때까지 혼자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음(p107).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프랭클린’은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 고민하고 재검토하며 에너지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는데, 결국 그는 ‘엘리너’와 결혼했고, 그것이 전부였으며, 물론 어머니를 변함없이 사랑했으나,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그의 독자성과 미래였음(p107). ④‘엘리너’는 ‘프랭클린’이 예전에 만난 여성과 달랐는데, ‘엘리너’는 무척 지적이었고 꾸밈이 없었으며, 사회적 대의에 몰두하며 특권 계급 세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음(p107). ‘프랭클린’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어린 시절을 보낸 반면, ‘엘리너’는 슬픔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녀가 여덟 살이었을 때 어머니 ‘애니’가 급성전염병인 디프테리아로 사망했고, 열 살에는 아버지이자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동생이던 ‘엘리엇’이 알코올 중독으로 끔찍한 죽음을 맞았음(p107). ⑤하지만 ‘프랭클린’이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녀가 잉글랜드의 여성 기숙학교에서 3년간의 생활을 의기양양하게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고, 앨런스우드 기숙학교에서 그녀는 사회 계급이라는 관습과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데, ‘엘리너’는 전설적인 페미니스트 여교장, ‘마리 수브스트르’(Marie Souvestre)의 사랑을 받았고, 그 학교의 “모든 것”, 즉 교수진과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존중받는 학생이 됐음(p107). 실제로 ‘수브스트르’ 교장은 ‘엘리너’의 할머니에게 “손녀는 함께 살아가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접촉하는 모든 것에 흥미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음(p108). ⑥‘엘리너’는 학교에서 발표한 한 수필에서 “행복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타인을 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썼는데, 뉴욕으로 돌아온 뒤, ‘엘리너’는 ‘수브스트르’ 교장의 부탁을 받아들여 사회사업에 관여했고,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리빙턴 스트리트 정착촌에서 이탈이아계 이민자들을 가르쳤으며, 또 여성운동가 모임에 가담해 공장과 백화점의 노동 환경을 조사하기도 했는데, “나는 사람들의 삶을 알고 싶었고,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p108). 은밀한 연애 기간에도 ‘프랭클린’과 ‘엘리너’는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겠다는 꿈을 함께 나누었는데, 사회의식과 사회적 정의감, 즉 타인을 배려하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각성에서 ‘엘리너’는 ‘프랭클린’을 훨씬 앞섰으며, ‘프랭클린’은 ‘엘리너’가 가진 사교계에 대한 혐오와 의미있는 일을 하려는 전투적인 욕망을 높이 샀음(p108). ⑦‘엘리너’는 진지한 여성이었고, ‘프랭클린’도 간혹 “먼지떨이”라는 가벼운 인상을 남겼지만 역시 진지한 청년이었는데, ‘프랭클린’도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으며, ‘엘리너’는 그가 온갖 계층의 사람들을 폭넓게 만나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오후 그가 사회복지관으로 그녀를 데리러갔을 때, 그녀는 병에 걸린 어린 소녀를 집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며 그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소녀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허름한 공동 주택에 도착했을 때 ‘프랭클린’은 ‘엘리너’에게 “맙소사,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라고 말함(p108).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공동 주택에서 담배를 제조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열악한 환경을 목격하고 놀라고 실색했던 것처럼 ‘프랭클린’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음(p109).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아내이며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청년시절과 ‘프랭클린’과의 만남을 통해 ‘엘리너’가 ‘프랭클린’에게 준 ‘리더십’의 영향과 ‘엘리너’ 자신의 ‘리더십’적 기질을 잘 설명하는 것으로 보여짐. ‘엘리너’가 ‘프랭클린’에게 실제를 알려준 통로가 된 것 같이, 현실기반 ‘리더십’ 경험 및 개발 방법은?
□ 요약(제1-5부 야망과 리더십의 자각 : 7. 프랭클린 루스벨트_정계입문)
①‘엘리너’를 옆에 두자 ‘프랭클린’은 “자신이 언젠가 대단한 존재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는데, 뉴욕에서 주말을 함께 보낸 뒤 ‘엘리너’는 ‘프랭클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난 이틀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명확히 말할 수 없지만, 당신에게도 똑같은 의미였을 거라는 건 알아요. 내가 당신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걸 당신이 알고, 나도 당신에게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걸 항상 증명하고 싶으니까요. 완전한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 전에는 몰랐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음(p109). 훗날 말했듯이, ‘프랭클린’이 주상원의원에 출마하기 훨씬 전부터 정치에 입문하고 싶어 한다는 걸 ‘엘리너’는 알고 있었는데, ‘엘리너’의 생각에 ‘프랭클린’의 그런 바람은, 행동 하나하나에 주목받던 삼촌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향한 동경심에서 자극받은 충동이었음(p109). ②‘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들의 약혼 소식을 듣고 “좋은 소식을 들어 정말 기쁘구나. 나는 ‘엘리너’를 친딸처럼 좋아한단다. 물론 너도 좋아하고, 너를 신뢰한다.……너와 ‘엘리너’는 진실하고 용기가 있으니, 서로 사심없이 사랑할 거라고 믿는다. 너희 앞에 황금시대가 열릴 것이다.”라는 편지를 ‘프랭클린’에게 보냈음(p109). ‘프랭클린’과 ‘엘리너’는 1905년 3월 4일 함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취임식에 참석했고,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과 뒤섞여 점심 식사를 했으며, 사열대 가족들과 함께 앉아 열병식을 보았고, 나중에는 취임 축하 무도회에 참석했는데, 그로부터 열하루 뒤, ‘루스벨트’ 대통령은 고인이 된 동생을 대신해 신부를 ‘프랭클린’에 넘겨주며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프랭클린, 가문의 이름을 지키는 것에 필적할 것은 없다네.”라고 말하였음(p110). ③‘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고 인정했는데, ‘프랭클린’도 ‘카터 레드야드 앤드 법률 회사’에서 하급 변호사로 2년차를 맞이했을 때, 도약을 시도하기에 적합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가한 시간에 그는 동료 직원들과 장래 희망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음(p110). 그 때 ‘프랭클린’은 “죽을 때까지 변호사로 일하고 싶지는 않다. 기회가 오면 공직에 출마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프랭클린’은 자신이 취하게 될 단계를 이미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으며, 주의회 의원에 출마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음에는 해군성 차관보로 임명되고, 뉴욕주 주지사에 출마해 당선되고, 여기에 행운이 더해지면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음(p110). ④당시 25세이던 ‘프랭클린’이 조심스레 밝힌 이런 바람을 누구도 빈정대거나 조롱하지 않았는데, 한 동료 직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프랭클린’은 심각하고 진지해 보였다. 게다가 그의 표현대로 상당히 합리적이기도 했다.”라고 말했는데, ‘프랭클린’이 꿈꾼 성공의 단계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백악관에 입성할 때까지 밟았던 길과 똑같았음(p110). ‘프랭클린’이 제시한 성공의 단계는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었는데, 여기에서 ‘존 맥’이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하이드파크와 포킵시 선거구에 출마하라고 권했을 때 ‘프랭클린’이 그 제안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설명됨(p111). 게다가 선거를 5주 앞두고 그가 더는 당의 유일한 선택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보인 반응은 더욱 흥미로운데, 현직 의원이던 ‘루이스 챈러’가 생각을 바꿔 민주당 실력자들에게 현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린 것임(p111). ⑤그 소식을 듣고 ‘프랭클린’은 ‘존 맥’과 ‘에드워드 퍼킨스’에게 “독사에게 물린 기분”이지만, 멈추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며 독자적으로 출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맥’과 ‘퍼킨스’는 ‘챈러’의 변심에 대한 대응책을 고심했고, 당시 뉴욕주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때였음(p111). 주상원의원이라면 훨씬 더 권위있는 직책인 게 분명했는데, 하지만 그들도 인정했듯이, 농촌 지역이 대부분인 더 넓은 선거구에서 ‘프랭클린’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고, 게다가 단 한 번을 제외하면 거의 반세기 동안 뉴욕주 상원은 공화당 차지였고, 현직 공화당 상원의원, ‘존 슐로서’(John Schlosser)는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거의 두 배의 표차로 승리를 거둔 실력자였음(p111). ⑥‘존 맥’은 승리할 확률이 20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추측했지만, ‘루스벨트’가 지명을 원하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프랭클린’은 지명을 받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고, ‘존 맥’은 “세 명의 위원이 결정한다. 내가 그중 한 명이고, 다른 한 사람은 확실하고, 나머지 한 사람도 거의 확실하다.”라고 대답함(p111). ‘프랭클린’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럼 상원에 출마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는데, ‘프랭클린’의 이러한 대답에도 그의 본성, 즉 단호함과 확고한 자신감이 드러났으며, 그가 상원의원 후보로 지명을 받은 후에 가진 수락 연설은 33개 단어로 이루어진 ‘시어도어’의 성명보다 길었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고, ‘링컨’이 자신을 소개한 전단처럼 충실하거나 통절하지도 않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겠다.라고 발표함으로써 선거 운동에 전력을 다할 것이란 의지를 명확히 밝힘(p112). ⑦‘프랭클린’은 “승리하려면 모든 유권자와 직접 접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하원의원 선거 운동에서는 초여름에 빌린 말과 마차로 충분했지만, 3곳의 카운티로 이루어진 상원의원 선거구는 폭이 50킬로미터, 길이가 145킬로미터에 달했음(p112). 더구나 선거일까지는 5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프랭클린’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적인 전략을 고안했는데, 그는 말과 마차 대신 자동차로 선거구를 종횡으로 헤집고 다닌 최초의 후보자가 되었으며, 선거 전문가들은 ‘프랭클린’에게 자동차 유세를 보류하라고 조언하였는데, 특히 ‘존 맥’의 회고에 따르면, “자동차가 막 사용되기 시작한 때였다.” 자동차는 번질나게 고장 났고, 지나가던 자동차가 고장나면 농부들은 “말을 타!”라고 조롱했으며, 게다가 “말은 그 새로운 기계 장치를 무서워했다. 간선도로에서 자동차를 마주치면 말이 깜짝 놀라 날뛰었고, 그 때문에 마차가 뒤집히기 일쑤였다. 마차에 타고 있던 농부가 다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p112) ⑧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은 선례를 깬다는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데, 선례를 파괴하는 선거 전략은 그 이후의 선거에도 반복되었으며, 운전기사와 눈에 확 띄는 붉은색 맥스웰 관광 자동차를 임대한 ‘프랭클린’은 다른 공직에 출마한 두 명의 민주당 후보와 함께 선거 운동에 나섬(p113). 그들의 선거 운동은 서커스단과 비슷했는데, 깃발과 현수막으로 장식하고, 시속 33킬로미터라는 놀라운 속도로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가로지르는 신기한 기계 장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음(p113). ⑨‘프랭클린’은 잠재적 골칫거리도 이점으로 바꿔갔는데, 운전기사에게 말이나 마차를 마주치면 즉시 자동차를 멈추라고 지시한 덕분이었고, 그런 배려는 농부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프랭클린’에게는 자신을 소개하며 유권자와 악수하는 기회까지 제공했음(p113). 유세 과정의 모든 면을 ‘프랭클린’은 신나게 받아들였는데, 선거용 포스터와 배지를 직접 디자인했고, 지역 신문에 광고도 실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교차로, 기차역과 잡화점, 술집과 작은 광장에서 ‘프랭클린’은 짤막하게 연설했고, 하루 열 번의 연설을 시행한 적도 적지 않았음(p113). ⑩‘엘리너’의 회상에 따르면, “‘프랭클린’은 느긋하게 말했고, 연설이 한참 동안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프랭클린’이 연설을 그만두지 않을까 두렵고 걱정스러웠지만”, 그는 어김없이 연설을 이어갔으며, 한편 민주당 정치 지도자, ‘톰 레너드’는 “연설을 끝내면 ‘프랭클린’은 자연스럽고 편하게 군중들 사이에 돌아다녔고, 환한 미소를 띤 얼굴로 자신을 ‘프랭크’라고 소개하며 누구에게나 친구 대하듯 다가갔다.‘라고 회고함(p113). 그 때가 그에게는 첫 번째 선거 유세였는데, 그러나 한 지역 정치인이 회고하듯이 “그 이후의 어떤 선거에서도 1910년 주상원 의원 선거만큼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p114).
● 비평 및 토론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 동안에 기존의 선거방식을 탈피하고 당시 막 개발된 자동차를 통한 유세를 통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창조적 리더십’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음. ‘리더십’에 있어서 ‘창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렇다면 ‘창조성’이 ‘리더십’에 미치는 영향,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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