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b5yLWlsh_s?si=fxhNoQcY29le6cXP
House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2-2부 역경과 성장 : 3. 시어도어 루스벨트_회복되는 리더십)
①‘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주 의회 의원으로 있을 때 어머니와 아내를 동시에 잃고 극도의 상실감으로 결국 배드랜드로 가서 카우보이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심지가 잘린 초도 아니었고, 정치를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았으며, 서부로 멀찌감치 물러나 자연 세계에서 부드러운 향유를 탐닉한 것이 아니라, 불굴의 도전을 감행하며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음(p234). 그런 시험을 통해 그는 상심한 마음과 두려움을 마주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을 되찾고, 진정한 빛과 인도자와 ‘리더’가 되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어떻게든 되살려낼 수 있었음(p235). ②계절이 몇 번 바뀌자 그도 우울증에서 서서히 회복되었는데, 2년의 공백이 끝나갈 즈음, ‘루스벨트’는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 과거의 강인한 정신력을 되찾았고 신체적으로도 더 강해졌는데, 평생 틈틈이 천식으로 고통받았는데 신선한 공기로 폐 기능이 향상됐고, 가슴 근육도 발달했음(p235). ‘수얼’은 배드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돌이켜보며 “‘루스벨트’는 잦은 천식 발작과 만성적인 복통에 시달리는 유약한 청년”이었는데, “세상에 다시 나갈 때는 내가 알기에 생계를 위해 완력에 의존하지 않는 어떤 사람보다 건강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했다.”라고 말함(p235). ③체중이 13.5킬로그램이나 늘었고, 뼈와 근육이 아니라 투지도 강해졌는데, 약간 높은 음색이어서 의사당에서는 거의 울려 퍼지지도 않던 목소리가 “황소를 부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굵고 쟁쟁하게 변했다.”(p235). 몸의 변화는 ‘시어도어’가 “소심하고 안달복달하는” 자신의 성격을 극복하려는 심리적 투쟁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에 불과했는데, 그도 인정했듯이, “서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회색곰부터 사나운 말과 총잡이까지 모든 것이 두렵게 느껴졌지만, 무서워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다 보니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물론 천성적으로 두려움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신체만이 아니라 영혼과 정신까지 단련해야 했는데, 어렵고 위험한 일을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행하여 결국 “의지력을 끌어올려 발휘하는 연습을 반복함으로써” 담력을 “일종의 습관”으로 키워낼 수 있었음(p236). ④그는 말을 다루는 솜씨가 평범한 수준이었음에도 반항적이고 사나운 말을 일부러 골라 탔으며, 목장 주인으로서 ‘실천적 리더십’의 본보기를 보여주려고 애썼고, 몇몇 위험한 경우에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비용을 치러야 했는데, 또 시력이 좋지 않아 사격 솜씨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지만 전문 사냥꾼들과 함께 곰과 가지뿔영양과 들소를 추적하는 위험한 사냥 여행에 참여하기도 했음(p236). 그가 사냥꾼과 카우보이로서 성공한 주된 요인은 “인내”였는데, 끝없는 연습 끝에 움직이는 표적을 고정된 표적만큼이나 정확히 맞추는 법을 터득했으며, 또 짐승의 습성을 학습하고 연구한 끝에 사냥감의 행동 패턴을 알아내고 추적하고 예측하는 경지에 이르렀음(p236). ⑤‘루스벨트’는 훈련을 통해 얻은 자신의 대담함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한 교훈이 되기를 바랐고, 위험을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연습을 통해 두려움을 모르고 용감해진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했는데, ‘루스벨트’는 두려움을 거의 완벽하게 극복했고, 그 이후 무수히 많은 사람이 그의 몸에 깊이 밴 “불굴의 용기”(indomitable courage)에 대해 언급했음(p236). 그 2년간의 공백기에 ‘루스벨트’는 자신을 새로운 유형의 미국인, 즉 교양 있는 동부인과 불굴의 서부인이 결합된 존재로 재정립했는데, 여동생 ‘코린’이 말했듯, ‘시어도어’가 배드랜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서부의 정신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p237) ⑥그 이후로 평생 동안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많은 미국인에게 서부의 남자, 상류계급이란 배경을 버린 낭만적인 인물로 여겨졌으며, 그는 정적들이 더는 자신을 멋쟁이, 맵시꾼이라 부르지 못할 거라 생각하자 무척 기뻤고, 그를 향한 개인숭배도 굳게 뿌리내렸는데, 훗날 ‘루스벨트’는 “노스다코타에서 지낸 시기가 없었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 말했음(p237). ‘에이브러햄 링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정치인으로서 초기에 맞이한 중대한 재앙에는 상당한 유사점이 있는데, 첫째, 개인적 위기와 공적 배척이 결합되며 혹독한 시련이 촉발됐고, 그 결과 그들의 핵심적인 야망이 짓밟힌 듯 했으며, 둘째, ‘링컨’과 ‘루스벨트’는 정계를 떠나겠다고 맹세했고, 적어도 입으로는 정계를 영원히 떠나겠다고 말했고, 셋째, 그들은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음(p237). ⑦그들이 역사의 만화경이 회전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치유를 위한 변화는 내면에서 시작돼야 했는데, 하지만 두 위인이 우울증을 극복한 방법은 대조적이었으며, 그들의 성향이 완전히 달랐다는 걸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었음(p237). ‘링컨’은 슬픔과 우울감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이웃과 동료 및 친구들과 그런 감정을 공유했는데, 그러나 ‘루스벨트’는 서글픈 감정을 철저히 감추었으며, 그는 감정을 억눌렀고, 딸을 버리고 떠났음(p237). ⑧심지어 딸과 사망한 부인의 이름이 ‘앨리스’로 같아 딸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는데, ‘루스벨트’는 “나에게 또 다른 ‘앨리스’는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딸을 “베이비 리”(Baby Lee)라고 칭했으며, 그는 연애 기간과 짧은 결혼 생활에 대한 추억에 잠기는 걸 못 견뎌했으며, 그는 거의 모든 사진과 편지를 찢어버렸고, 그들이 과거를 기념하던 징표를 없애 버렸음(p238). 그의 표현을 빌리면, “아내를 잃었다는 사실을 곱씹는 것조차 힘들고 괴로웠다.” 활력을 되찾자 그의 생각도 고향과 친구가 있는 동쪽으로 향했는데, 1885년 가을, 잠깐 뉴욕을 방문했을 때 ‘루스벨트’는 ‘이디스 카로’(Edith Carow)와 우연히 마주쳤고, ‘이디스’는 ‘시어도어’의 어린 시절 친구로 무척 지적인 여성이었음(p238). ⑨‘루스벨트’의 남매들은 20번가 집에서 주로 홈스쿨로 교육을 받았는데, ‘이디스’는 5세였을 때 그 홈스쿨에서 ‘시어도어’와 ‘코린’과 함께 공부했고, 여름에도 ‘이디스’는 ‘루스벨트’ 가문의 롱아일랜드 사유지에 자주 초대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녀와 ‘시어도어’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문학을 사랑하게 됐고, 함께 자연을 탐험하며 말을 타고 숲길을 달렸으며, 해안에서 뱃놀이를 했음(p238). 청소년기에는 무도회와 사교 행사에 함께 참석했는데, 그러다가 ‘시어도어’가 ‘앨리스’를 만나기 전의 여름, ‘시어도어’와 ‘이디스’는 불가사의한 이유로 헤어졌고, ‘시어도어’가 “무척 친밀한 관계”로 칭했던 것이 느닷없이 끝난 것임(p238). ⑩훗날 ‘이디스’는 “전에 사랑해본 적이 없는 소녀의 마음으로” ‘시어도어’를 사랑했다고, 그래서 그가 ‘앨리스’와 결혼했을 때 자신은 결코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는데, 1885년 우연한 만남으로 ‘시어도어’의 마음에도 오랫동안 감추었던 감정이 되살아났음(p238). 그 후로 수개월 동안 ‘시어도어’가 뉴욕에 올 때마다 그들은 만났고, 떨어져 있을 때는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이디스 카로’에 대한 ‘시어도어’의 헌신에는 ‘앨리스’를 향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열정은 없었지만, ‘이디스’와의 결혼은 그의 격정적인 성향이 활력을 유지하면서도 안정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음(p239). ⑪서부로 피신하고 2년이 지난 1886년 여름, ‘루스벨트’는 다시 정계로 복귀할 준비를 끝냈는데, 카우보이로 지낸 삶은 더 크게 성숙하는 유예기간이었지만, 그의 원대한 야망을 채워주지는 못했으며, 친구이던 매사추세츠주 주의원, ‘헨리 캐벗 로지’에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에서 기회를 얻고 싶다.”고 말했듯이, ‘루스벨트’는 공적 영역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을 시험할 각오였는데, 그 자신이 그 세계를 위해 태어나고 자랐다고 생각한 때문이었음(p239). 한날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것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삶에서 개인적인 재앙 그 이상이었는데, 운명의 잔혹한 비틀림에 그의 ‘리더십’ 철학도 바뀌었음(p239).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어머니와 아내를 한날 잃어버린 상실의 과정을 배드랜드에서 카우보이로 생활하면서 대 자연과 함께 극복하면서, 다시금 ‘리더십’을 회복한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특히, 이 과정에서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위험을 극복하는 변화된 모습으로 성장한 것이 대통령으로 커 갈 수 있는 기반이었음을 밝힘. ‘링컨’과 ‘시어도어’의 위기극복을 비교해본다면?
□ 요약(제2-2부 역경과 성장 : 4. 시어도어 루스벨트_정치적 리더십의 발현)
①‘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어머니와 아내를 한 날에 잃어버리고 주의회 의원으로서도 대통령 후보 지지와 관련하여 개혁적 성향을 바꾸는 등, 잔혹한 운명으로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모든 시도의 취약함과 유약함 및 변덕스러움이 뚜렷이 드러났고, 정치적 이력은 산산히 흩어지며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뒤집힌 것 같았음(p239). 섬뜩했던 2월의 그날 이후 행운이든 불운이든 간에 그에게는 우연이 최고의 무기로 여겨졌으며, 그 이후 10년 동안 찾아온 기회들은 무계획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이런 운명론으로 설명됨(p239). ②고향에 돌아온 직후, ‘루스벨트’는 뉴욕 시장 선거에 뛰어들었으나 패했으며, 귀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뉴욕은 워낙 민주당 강세 지역이어서 애초부터 “승리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쟁”이었는데, 1888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밴저민 해리슨’(Benjamin Harrison)의 당선을 위해 활발히 선거운동을 했고, 그 공로로 ‘루스벨트’는 국무부 차관보로 임명되기를 바랐지만 상대적으로 가벼운 연방직, 중앙 인사위원회 위원을 제안받음(p240). 친구들은 ‘루스벨트’에게 그 제안을 거절하라고 충고했는데, 그 모오한 직책은 ‘루스벨트’의 지위와 명성에 비해 너무도 낮은 데다 “자칫하면 ‘루스벨트’가 그대로 잊히고 말까” 걱정한 때문이었지만, ‘루스벨트’는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친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놀랍게도 그 직책을 6년 동안 유지했음(p240). ③뉴욕 경찰위원회 위원직을 제안받아 고향에 돌아올 기회가 주어졌을 때 ‘루스벨트’는 연방 인사위원회를 사직했으며, 뉴욕 경찰위원회는 네 명의 위원회로 구성됐고, 정치적 위험으로 가득한 데다 힘들기만 하고 보상은 거의 없는 자리였음(p240). 3년 뒤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윌리엄 매킨’(William McKinley)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그 공로로 1896년 가을에 해군성 차관보직을 제안받았는데, 이번에도 친구들은 그의 명성에 미치치 못하는 직책이라며 불만을 터트렸지만, ‘루스벨트’는 이번에도 제안을 받아들여 미국-스페인 전쟁(1898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서 미국과 스페인 군대가 벌인 전쟁인데, 쿠바에서 식민지 통치에 항거하는 세력과 스페인의 탄압세력이 맞붙어 수많은 시민이 생명을 잃자, 미국이 인도주의를 표방하고 나서며 식민지 쿠바의 내정에 간섭해 전쟁에 뛰어들었고, 이 전정으로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미국의 입지가 강화됨)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재직함(p240). ④전쟁이 발발하자, 친구들의 조언을 뒤로 한 채 ‘루스벨트’는 차관보직을 사임하고 육군에 자원입대 했는데, 초기에 ‘루스벨트’를 몰아치던 성공을 향한 야망이 사라진 것일까? 신뢰하던 친구들의 조언을 무시한 채 뚜렷한 흔적을 남길 수도 없고 승진이 보장된 것도 아닌 직책, 겉보기에는 하찮은 직책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루스벨트’가 시련의 시기에 얻은 교훈을 조사하면 답이 얻어지는데, 개인적인 삶과 정치 모두에서 위로 순조롭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믿음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임(p241). ‘루스벨트’는 번지르르한 직책을 연이어 맡아야 ‘리더’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의문을 품었는데, 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말과 행동이 다시 조심스럽고 소심하며 계산적으로 변할 것”이라 염려했음(p241). ⑤그 이후로 ‘루스벨트’는 장기적인 계산을 버리고, 어떤 직책이든 기회가 주어지면 그 직책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혼신을 다해 일했으며, ‘루스벨트’는 “지금 있는 곳에서, 당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라.”고 즐겨 말했음(p241). 그는 정치적 삶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견디고 일어서야 할 호된 시련의 연석으로 보았고, 어떤 직책이든 성격과 노력, 인내와 의지의 시험대로 여겼으며, ‘루스벨트’는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떤 것도 예비로 남겨두지 않았으며, 어떤 직책이든 자신의 ‘리더십’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로 삼았음(p241). ⑥‘루스벨트’는 어머니와 아내를 동시에 잃는 호된 시련을 겪으며 죽음에 대해 의식하게 됐고,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해 남은 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느꼈으며, 덧없이 흐르는 시간에 대한 의식과 삶은 언제라도 급변할 수 있다는 자각으로 인해 무엇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초조함에 시달렸고, 때로는 견디지 못하기도 했음(p242). 예컨대 ‘앨리스’를 잃은 뒤 주의회에서 수십 건의 법안을 제출하던 광적인 일 처리 속도는 평생의 패턴이 됐는데, 즉, 관료화된 조직의 느릿한 운영과 세습화된 절차에 반발하고 충돌하는 ‘리더십’이 그의 상징이 됐음(p242). ⑦연방 인사위원회와 뉴욕 경찰청, 해군성처럼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부서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루스벨트’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행정의 달인이 되거나 특출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상식과 정직함, 활력과 결단력, 배우려는 적극성만 있으면 충분했다.”고 대답했고, 이런 분석이 진부하고 대단찮게 보일 수 있지만, ‘루스벨트’의 ‘리더십’은 실제로 일련의 단순한 격언과 금언으로 요약할 수 있음(p242). ‘기회를 놓치지 마라. 통제력을 강화하라. 어디에 있더라도 모두에게 물어라. 직접 돌아다니며 관리하라. 각 조직의 기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그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라. 공격하면 반격하라. 자신의 주장을 고수하라. 일이 중단되면 해결책을 찾으라(p242).
● 비평
필자는 ‘시어도어’의 ‘리더십’의 변화를 그가 수락한 인사위원회, 경찰위원회 등 한직에 근무한 것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음. 변화를 이루는 ‘리더십’의 특징은?
□ 요약(제2-2부 역경과 성장 : 5. 시어도어 루스벨트_인사위원회에서의 행보)
①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직책이라며 ‘루스벨트’에게 인사위원직을 거절하라고 충고한 친구들은 ‘루스벨트’가 본능적으로 무엇을 파악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당시 논란이 많던 신공무원법을 집행하는 투쟁은 부패와의 전쟁을 상징하는 전투였던 까닭에, 개혁적 성향을 지닌 자선가의 아들이고 그 자신도 개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전투였음(p243). ‘제임스 가필드’(James Garfield)대통령의 살해(원하는 공직을 얻지 못해 실망한 사람에 의한 암살)로 통과된 팬들턴 공무원개혁법(Pendleton Civil Service Reform Act)은 당시 지배적이던 엽관제(spoil system-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행을 말함)를 시험에 근거한 실력본위제도(merit system)로 교체할 목적으로 제정됨(p243). ②‘루스벨트’의 생각에, 엽관제는 누구나 자신의 실력을 근거로 평가돼야 한다는 민주적 사상을 부정하는 제도였는데, “엽관제에서 모든 공직은 정치적 권력을 약탈하려는 야비한 투쟁에서 승리한 인간들이 앞 다투어 차지하려는 상급이며, 당 수뇌부의 능동적이고 영향력 있는 심복들에게 나누어지는 뇌물이었다.”(p243). ‘루스벨트’는 인사위원회를 “살아있는 기관”으로 만들겠다고 맹세했고, 또 공화당 지도자를 비롯해 개혁의 진전을 가로막고 법의 집행을 방해하려고 온갖 짓을 다하는 사람들과 치열하게 싸우며, 신법을 철저히 시행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루스벨트’는 “지루하고 고된 일”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며, 당시 엽관제는 조직 정치의 핵심이었기 때문임(p243). ③‘루스벨트’는 인사위원회에 입성하자마자, 엽관제가 더는 예전처럼 적용되지 않을 것이란 신호를 곳곳에 보냈는데, ‘루스벨트’는 신법의 시행을 방해하려는 시도를 저지하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려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뉴욕 세관을 급습했음(p244). 뉴욕 세관은 신법 위반이 만연한 곳이란 소문이 자자했는데, ‘루스벨트’는 직원들과 대화하며, 정부 관리들이 우호적인 당의 응시자에게 시험 문제를 50∼100달러에 팔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고, 증언을 듣고 진술서를 받은 뒤 문서까지 점검한 ‘루스벨트’는 범죄가 확인된 3명의 관리를 즉각 해고하라고 요구하며, “신법은 주저 없이 공정하게 집행될 것”이라고 언론과 국민에게 알림(p244). ④게다가 그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당 지도자들이 일자리를 유지하게 해주는 대가로 뉴욕 세관 직원들로부터 “이른바 자발적 성금”을 갈취하고 있다는 사실도 폭로했는데,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사무실에 머물지 않고 하급 공무원-서기, 등사 담당자, 우체부 등-을 직접 만나 그들의 하소연을 들었으며, 그들은 봉급의 2%를 요구하는 당 지도자들의 고집에 대응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폭로했음(p244). ‘루스벨트’는 조사 결과를 신랄하고 비판적으로 요약한 보고서에서, 겨울에 시행되는 평가가 “자기 겨울 외투와 아내의 따뜻한 원피스를 갖느냐 못하느냐를 판가름”한다고 밝혔는데, 겨울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언급하며 문제를 지적한 까닭에, 대중은 공직사회 개혁이 필요한 이유를 쉽게 납득했음(p244). ⑤또 ‘루스벨트’는 인사위원으로 임명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몇몇 도시에 우체국장이 우호적인 당원을 임명하려고 시험 성적을 조작하고 있다는 정보를 취득하고는 곧바로 우체국들을 순회하며 감사를 벌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음(p244). 인사위원회는 3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는데, 세 위원 간의 언쟁으로 변화의 시도가 쉽지 않았지만, ‘루스벨트’는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나섰으며, 그는 ‘리더십’을 장악하고 모든 책임을 떠안으며 권력자에게 환영받지 못할 개혁을 시도했고, 하지만 그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음(p245). ⑥<필라델피아 레코드>는 그의 동료 인사위원들과 관련해 “그의 동료들은 조용한 사람들”이었다고 보도했는데, 신문과 의회 등 어디에서나 싸우는 사람은 ‘루스벨트’였으며, 따라서 공격을 받는 사람도 ‘루스벨트’였으며, ‘루스벨트’는 곧 인사위원회의 공식적인 얼굴이 됐고, 누이 ‘바미’에게 의기양양해서 “두 동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사위원회의 모든 일을 내가 처리합니다. 그런 게 더 좋습니다. 책임을 나누는 것보다 더 만족스럽습니다. 그래야 내가 더 단호히 조치를 취할 수 있느니까요.”라고 자랑했음(p245). ‘루스벨트’가 인사위원회를 장악하자 공화당 실력자들은 분노했는데, 동료들과의 마찰이 뒤따랐고, 언론도 간헐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음(p245). ⑦<워싱턴 포스트>는 “그는 북소리와 나팔소리를 등에 업고 공직에 들어왔는데, 이제 혼자 북을 치고 나팔을 분다. 게다가 그는 공직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나랏일을 혼자서도 훌륭히 떠맡을 수 있는 사람이라 자처하고 나섰다.”고 보도했고, 어떤 평론가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통제하기 힘든 그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라.”고 빈정거렸음(p245). 그러나 ‘루스벨트’는 입을 닫지 않았고, <보스턴 이브닝 타임스>는 “루스벨트는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잃을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사람보다 공직 개혁을 우선시한다. 이런 경우에 흔히 그렇듯, 그의 공격적 태도는 대의를 완성하기 위한 훌륭한 요인이다.”라고 긍정적으로 보도했음(p246). ⑧‘루스벨트’가 인사위원회를 떠날 때까지 그의 ‘리더십’은 공무원법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어냈고, 공무원법의 노골적인 위반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으며, 진정한 실력본위제도가 바야흐로 잉태되는 과정에 들어섰는데, ‘제이컵 리스’가 요약했듯 “아무런 배경이 없는 사람도 든든한 배경을 지닌 사람과 똑같이 반반의 가능성을 가져야 마땅했다. 후원자가 전혀 없는 농부의 아들과 상인의 아들이 부유하고 사회적 명성을 지닌 사람의 아들과 똑같은 출발선에서 공직을 두고 경쟁할 수 있어야 했다.”(p246). ‘루스벨트’는 “성공한 사람은 행운이 제공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1894년 가을, 일련의 충격적인 폭로가 이어졌으며, 대부분이 태머니파와 뉴욕시 경창철 간의 부도덕한 관계와 관련된 것이어서 전통적으로 뉴욕에서 강세이던 민주당이 큰 위기에 빠졌음(p246). ⑨개혁에 저항하는 분위기도 팽배했지만, 추문이 있은 뒤, 개혁적 성향을 띤 공화당 기업인 ‘윌리엄 스트롱’(William Strong)이 시장에 당선되었고, 시장에 취임하고 오래지 않아, ‘스트롱’은 ‘루스벨트’에게 그의 정부에서 가장 까다로운 직책, 즉 네 명으로 이루어지는 경찰위원회 위원장이 자동적으로 맡는 경찰청장을 제안했음(p246). ‘루스벨트’는 주저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뉴욕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부패한 부서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며 앞날의 어려움을 걱정했는데, 흥분감을 명확히 드러낸 발언이기도 했음(p247). ⑩그는 인사위원으로 6년간 전쟁을 치르면서, 자신이 고안하고 활용한 ‘리더십’ 기법의 대부분을 사용하며,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잠시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았는데, ‘루스벨트’는 새롭게 맡은 직분에서도 전력을 다했으며, 멀베리가 경찰청 계단을 뛰어오르며, 신속한 행동이 앞으로 경찰위원회의 상징이 될 거라는 걸 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주었음(p247). 한 기자는 당시를 회고하며 “모든 것이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고 말했는데, ‘루스벨트’는 뛰다시피 걸으며 기자들에게 끊임없이 물었음(p247). ⑪“어떤 고위 관리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는가? 어떤 고위 관리를 무시해도 되는가? 어떤 관리를 처벌해야 하는가? 경찰위원회의 관습과 규칙은 무엇인가?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실은 ‘루스벨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은 필요 없었으며, 경찰위원회는 두 명의 민주당원과 두 명의 공화당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루스벨트’는 자신이 위원장으로 선출된다는 조건으로 ‘스트롱’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임(p247). 그의 생각에 4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구조는 “완전한 실패”의 징후였기에 그가 위원장으로 내정되는 것은 선결 과제였으며, 그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권력은 한 사람의 손에 집중돼야 한다.”고 믿었음(p247).
● 비평 및 토론
필자는 ‘루스벨트’가 인사위원회와 경찰위원회를 재직하면서 보여준 ‘리더십’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인사위원회에서 자신이 책임을 다 맡고 대외적 공격을 방어하였고, 경찰위원회에서도 위원장으로 일한 예시들을 잘 제시하고 있음. 이와같이 1명에 의한 ‘리더십’의 행사가 현대 정치현실에도 적합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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