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6-2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19(시어도어 루스벨트_해군성 차관보 리더십)

presentlee 2026. 1. 11. 00:35

  https://youtu.be/iPZ4BRxRFDg?si=cEzPRjFcTFrjepF2

 

House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2-2부 역경과 성장 : 10. 시어도어 루스벨트_해군성 차관보 리더십)


①‘매킨리’정부 해군성의 ‘롱’ 장관은 부지런한 젊은 차관보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는 끊임없이 제안했는데, 대다수 제안은 나에게는 무척 소중한 것이었고, 그의 활달한 기백은 나처럼 보수적이고 세심한 성향의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워주는 좋은 강장제”라고 말했음(p260). ‘루스벨트’는 인사위원회에서 직접적인 시찰을 제도화하고, 경찰청장으로 재직할 때 뉴욕 곳곳을 야간에 직접 순찰했듯이, 해군성 차관보로 근무할 때도 책상에 머물지 않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해군의 여러 부문을 조사하고 점검하고 살펴보았는데, 예컨대 어뢰사고 조사에 참가했고, 중서부 지역의 해상 예비 민병대를 점검하며 닷새를 보냈으며, 또 제1대대 훈련에 동반했고, 해군의 최첨단 전함이던 아이오 호를 설계한 팀을 만나서는 “질문의 기록을 깨뜨렸고” 전문용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선박 건조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과시해 설계팀을 놀라게 했음(p260). ②또 담당 구역을 순찰하던 경찰을 만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듯, 제2대대가 연병장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한 후에는 대대원들을 아낌없이 칭찬했는데, 해군의 준비 상태를 점검하는 모습은 ‘롱’ 장관에게 충직하고 근면한 차관보로 보였지만, 정작 그는 전쟁을 대비해 해군력을 증강하기 위한 계획을 신중히 추진하고 있었음(p261). 다만 전쟁에 대해 유난히 함구하는 행정부 분위기를 고려해 전쟁에 대비하려는 자신의 계획을 감추었고, 해군참모대학교(Naval War College)에서 행한 유명한 연설에서 ‘루스벨트’는 초대 대통령의 명언을 인용했는데, “‘워싱턴’ 대통령이 ‘전쟁에 대비하는 자세가 평화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씀하신 이후로 한 세기가 지났다.”라고 시작하며 “우리 역사에서 전쟁 준비가 평화에 대한 위협이었던 때는 없었다.”라고 덧붙였으며, 그 연설은 폭넓은 찬사를 받았고, ‘루스벨트’는 전쟁 준비를 앞장서서 지지하는 정부 관리로 손꼽혔음(p261). ③연설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루스벨트’는 실천적인 행동을 원하며, “나는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말을 혐오한다.”고 자주 비판했고, 그해 여름, 피곤에 지친 ‘롱’ 장관이 매사추세츠주로 8주간의 휴가를 떠나며 ‘루스벨트’에게 행동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관들은 여름이면 워싱턴에서 벗어났음(p261). 뜨거운 날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루스벨트’는 새거모어힐에서 보내려던 가족휴가를 포기하고 상관의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롱’ 장관에게 약속했으며, ‘롱’의 오랜 공백에 ‘루스벨트’는 해군성 장관 대행이 됐는데, 그는 그 위치를 최대한 활용하였고, 8월에는 한 친구에게 “장관이 멀리 있어서 내가 해군성을 운영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라는 편지를 보냈음(p262). ④또 ‘바미’에게는 “혼자여서 자유롭습니다. 덕분에 많은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뜨거운 날씨에 ‘루스벨트’ 장관 대행의 지휘 아래 군항과 해안 요새가 보강됐고, 많은 시험 항해가 행해졌으며, 의회에 함대를 증가하기 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음(p262). 또 함대가 세계 전역에 배치된 현황을 알게 된 후에는, 쿠바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대부분 스페인 함대가 주둔한 태평양 영역이 중대한 격전지가 될 거라고 확신했고, 따라서 ‘루스벨트’는 자신이 원하는 ‘조지 듀이’(George Dewey) 제독을 아시아 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려고 전력을 다했는데, ‘루스벨트’는 ‘듀이’를 서너 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듀이’가 위기에 적합한 ‘리더’라는 걸 본능적으로 파악했음(p262). ⑤“전쟁이 발발하면 ‘듀이’는 늑대를 쫓는 사냥개처럼 가죽 끈을 끊고 뛰쳐나갈 거라고 확신했다. 또 작은 기회라도 주어지면 그는 지체없이 효과적으로 공격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에게 그 작은 기회를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해내기로 결심했다.”(p262) 동시에 그는 ‘롱’ 장관과 장문의 다정다감한 편지를 주고받았고, 모든 업무가 통제하에 원만하게 진행된다며 그를 인심시켰는데, 예컨대 8월 초에 보낸 편지에서는 “피로하실 테니 아무런 걱정도 마시고 푹 쉬십시오.”라고 말했고, 1주일 후에는 “모든 일이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장관님이 6주일 후에 굳이 돌아오셔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되풀이했음(p262). ⑥또 한 달 후에는 “이곳 날씨는 정말 덥습니다. 장관님이 이곳에 계시지 않아 정말 다행입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가 그때처럼 이중적인 모습을 밀어붙인 때가 없었을 것임(p263). ‘루스벨트’가 오래전부터 언론과 쌓아온 관계도 해군력을 강화하려는 그의 계획에 도움을 주었는데, 시험 항해에 초빙된 기자들은 해군의 현황을 칭찬하면서, 보완해야 할 부분도 지적했고, 때때로 언론과 ‘루스벨트’의 편안한 관계는 정부 계획을 공개적으로 논박하는 공격적인 보도로 이어졌음(p263). ⑦‘롱’ 장관은 그런 보도에 매번 분노했고, 그때마다 ‘루스벨트’는 ‘롱’ 장관에게 지체 없이 사과하며, 질책을 받아들였는데, 또 혈기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하며 신뢰를 회복하고는 예전과 똑같이 행동했음(p263). ‘루스벨트’는 오히려 둘의 관점이 다르다는 걸 “정직하게 밝히고 숨기지 않음으로써” ‘롱’의 신뢰를 계속 얻었으며, 요컨대 ‘롱’ 장관이 책임자라는 걸 인정한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음(p263). ⑧<보스턴 헤럴드>에 ‘루스벨트’가 장관의 기능과 책무를 월권하려 한다는 기사가 실렸을 때, ‘루스벨트’는 즉각 ‘롱’ 장관에게 그 기사에 대해 알리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며, ‘롱’ 장관은 “자내가 충성스런 부하가 아닐 거라는 기사는 나를 만나기 전 자네에 대한 경고에 불과한 것”이라 여겼음(p263). 가끔 지독한 비판이 있었지만, 그 경우를 제외하면 ‘루스벨트’가 자신을 실망시킬 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는 게 ‘롱’ 장관의 믿음이었는데, 하기야 ‘루스벨트’는 자신의 관점을 강력히 개진하면서도, “장관님이 어떤 정책이든 결정하시면, 저는 형식과 내용에서 명실공히 그 정책을 추진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음(p263). ⑨‘롱’ 장관과 ‘루스벨트’는 진정으로 서로를 좋아했기에 간혹 충돌하더라도 원만하게 해결했는데, 인터뷰에서 ‘롱’ 장관이 ‘루스벨트’를 칭찬하자, ‘루스벨트’는 ‘롱’ 장관에게 “후한” 칭찬에 감사한다며 “장관님 같은 분을 모시며 일하는 것이 저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의도하지 않게 실수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장관님이 저와 충돌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장관님 같은 상관을 모시면서도 내가 모든 면에서 장관님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제가 현재 직책을 유지할 자격이 없다는 뜻일 테니까요.”라는 편지를 보냈음(p264). 주전론을 펼치던 신문들이 노골적으로 과장한 면이 있었지만, 1898년 겨울 스페인이 쿠바 반군을 속였다는 보고서가 인도주의적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루스벨트’도 신속히 개입할 가능성을 엿보았음(p264). ⑩‘루스벨트’는 ‘롱’ 장관에게 “전쟁의 기운이 다가오면 우리가 먼저 선전포고를 해야 합니다.”라며 “우리가 전쟁을 미리 대비하지 않아 사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말려든다면 한두 번의 치욕적인 패배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초기 중요한 서너 주의 시간을 공격이 아니라 오래전에 준비했어야 할 것을 마련하는 데 보내야 할 것입니다.”라고 조언했음(p264). ‘루스벨트’의 경고는 선견지명이었던 것으로 입증됐는데, 2월 15일, 쿠바 국민을 위한 우방 정책의 일환으로 아바나 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전함 메인 호가 폭발하며 266명의 미군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폭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선전포고를 촉구하는 분노가 미국 전역을 뒤덮었고, 하지만 남북전쟁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전투, 앤티덤 전투(Battle of Antietam)에서 싸웠던 ‘매킨리’ 대통령은 “나는 끔찍한 전쟁을 겪어본 사람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를 보았다. 다시 그런 끔찍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며 선전포고를 망설였음(p265).
● 비평
 필자는 ‘롱’ 장관의 휴가기간 동안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롱’ 장관의 대행을 맡아 해군성을 지휘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리더십’이 매우 치밀하며, 향후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는 성실성이 있음을 잘 밝히고 있음. 
● 토의
 ‘리더십’이 미래에 일어날 위험이나 변화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 및 그 방법은?


□ 요약(제2-2부 역경과 성장 : 11. 시어도어 루스벨트_스페인과의 전쟁)


①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했던 미 전함 메인 호의 폭발로 선전포고에 대한 여론이 미국 전역을 뒤덮는 중 ‘매킨리’ 대통령은 선전포고를 망설였고, 대통령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자, ‘루스벨트’는 일연의 부적절한 조치를 취했는데, ‘존 데이비스 롱’이 상관이 아니었다면 불복종으로 당장 해고되고도 남을만한 조치였음(p265). 2월 25일 ‘롱’은 하루의 휴가를 예정으로 장관실을 떠나며 “대통령이나 나에게 의견을 구하지 않고는 정부 정책에 부담을 줄 만한 어떤 조취도 취하지 말라. 휴가라고는 하지만 도시를 떠나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하루를 조용히 지내는 동안 자네는 일상적인 업무만 처리하면 충분할 것이다.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생각나면 자네에게 편지로 연락하겠네.”라고 말했음(p265). ②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는 서너 달 동안 준비한 작업을 한꺼번에 체계적으로 실행에 옮기며 일련의 “독단적인 명령”을 내렸는데, 함선을 배치하고 탄약을 주문했으며, 석탄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해군 병력을 무제한으로 징집할 수 있는 법안을 즉각적으로 제정해 달라는 공문을 의회에 보낸 것이었음(p265). 게다가 ‘듀이 제독’에게는 “석탄 연료를 최대한 비축하고, 전쟁이 시작되면 스페인 함대가 해안을 떠나지 못하도록 공격할 준비”를 갖추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롱’은 이튿날 아침 출근해서야 명령이 내려진 것을 알았고, “자칫하면 ‘루스벨트’가 메인 호에 일어난 폭발 사고보다 큰 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너무도 성급한 행동이었다. 물론 ‘루스벨트’는 빈틈없이 충성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어제 오후에 그가 악마에게 홀렸던 모양이다.”라고 일기를 썼음(p265). ③‘롱’은 분노보다 동정심으로 대응하며, ‘루스벨트’가 집에 심각한 문제가 닥친 때문에 냉정히 판단하지 못한 것이라 합리화했는데, ‘루스벨트’의 부인, ‘이디스’가 허리뼈 부근 근육에 커다란 종양이 생겨 고통받고 있었는데, 그 종양을 제거하려면 장시간의 위험한 수술이 필요했음(p266). 또 ‘롱’은 그들의 장남이며 당시 열 살이던 ‘시어도어 주니어’가 “오랫동안 시달리던 위험한 질병에 갓 회복된 것”도 알고 있었는데, 이런 복합적인 이유에서 ‘루스벨트’가 과민하게 반응하며 “평소였다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조치를 성급히 취한 것”이라 믿었고, ‘롱’ 장관은 ‘루스벨트’가 천성적으로 예민한 성격이어서 가족 문제로 판단력이 흐려졌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2월 25일의 조치는 명령을 위반했더라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조치였음(p266). ④결국 ‘롱’도 ‘메킨리’도 ‘루스벨트’가 내린 명령들을 하나도 철회하지 않았고, 그래서 9주 후에 의회가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을 때, ‘듀이’ 사령관은 공격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점검한 상황이었으며, 마닐라만 전투(Battle of Manira Bay)가 시작되고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스페인 태평양 함대는 괴멸되었고, 그 결과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은 결정적으로 유리해졌음(p266). 상원 외교위원회 의장은 “‘루스벨트’가 없었다면 우리는 마닐라에서 성공적인 타격을 가할 수 없었을 것”이라 평가했으며, 육군 장교, ‘레너드 우드’(Leonard Wood)는 “그렇게 책임을 과감히 실행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고, 지체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책임감을 느꼈고, 실행에 옮겼다.”라고 극찬했고, ‘루스벨트’는 ‘종속’(subordinate)을 결코 ‘굴종’(subservient)이라 생각하지 않았음(p266). ⑤1898년 4월 25일 마침내 의회가 스페인과의 전쟁을 선포하자마자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해군성 차관보를 사임하고 육군에 자원입대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모든 친구가 충동적인 결정이라 생각하며, 단 한 명도 ‘루스벨트’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특히 한 친구는 “그가 정말 미친 게 아닐까? 대통령이 ‘시어도어’에게 개인적인 호의로 두 번이나 해군성에 머물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싸우고 찌르고 싶어 미친 것 같다. 안타깝지만 이것으로 그의 정치적 이력은 완전히 끝난 듯하다.”라고 말했음(p267). 그의 친근한 정치적 친구이던 ‘헨리 케벗 로지’와 오랜 멘토, ‘윌리엄 수얼’도 해군성에서 그가 해야 할 훨씬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며, ‘롱’ 장관은 “루스벨트가 분별력을 상실한 까닭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책을 버리고, 플로리다 모래사장에서 목에 달라붙는 모기를 뜯어내며 말을 타고 달리는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닐까 걱정하며 “그가 올바른 정신으로 선의로 내린 결정이더라도 그 결정은 일탈과 이탈이었고, 무모한 허영심의 발로였다.”고 덧붙였음(p267). ⑥하지만 ‘루스벨트’의 결정은 결코 경솔한 게 아니었으며, 그는 전시에는 해군성에서 자신의 유용성이 크게 줄어든다고 판단했는데, 전시에는 군사 보좌관들이 중심에 있어야 하고, ‘롱’ 장관은 계속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루스벨트’의 생각이었음(p267). 게다가 전쟁이 시작되면 장관 대행으로 활동하는 게 불가능했는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었으며, 그는 ‘수얼’에게 “이곳에서 내 역할은 전쟁 도구를 준비해두는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는 그 도구를 사용할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나는 전쟁 도구를 사용할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음(p268).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시어도어’가 해군성전쟁을 준비했기 때문에, 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음을 부각시키며, 또한 전쟁의 시작과 함께 ‘루스벨트’가 육군에 자원입대 한 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통해 그의 ‘리더십’의 현장중심성을 나타내었음. 현실에 기반하는 ‘리더십’ 특질이 가지는 유용성과 효과는?


□ 요약(제2-2부 역경과 성장 12. 시어도어 루스벨트_육군에서의 리더십)


①아버지의 반대로 ‘시어도어’는 남북전쟁에 참전할 수 없었는데, 남부 출신인 부인의 상심을 예방하려고 아버지가 그런 결정을 내렸지만, ‘시어도어’는 그 결정을 가문의 흠결로 여겼고, 따라서 자원해서라도 전쟁에 참전하고 싶었던 것이었음(p268). 1898년 봄, ‘이디스’가 수술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어린 ‘시어도어’도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상황이었지만,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쿠바에서 복무하기를 바랐는데, 훗날 ‘루스벨트’는 자신의 군사 고문이던 ‘아치볼드 버트’(Archibald Butt)에게 “내 아내와 아이들이 나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무서워 내 길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조국과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행운이었고, 모든 집에서 막대자로 사용하는 지팡이에 내가 작은 흔적을 남길 기회를 얻은 것도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임종할 때 그런 부름이 있어도 응답하겠다고 결심한 듯하다.”고 말했음(p268). ②우리가 여기에서 다루는 ‘리더’ 중 ‘시어도어 루스벨트’만이 전쟁에 참전해 군 지휘관으로 활약했으며, 또 ‘루스벨트’만이 앞날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걸고 적들고 맞섰는데, 쿠바에서 병사들을 지휘할 때 ‘루스벨트’는 그들의 생사고락을 직접적으로 책임져야 했으며, 그때의 경험으로 그는 ‘리더’로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굳힐 수 있었음(p269). 정규군을 보완하기 위해 세 자원 연대를 징집한다는 최초 발표가 있었을 때 “말과 총을 다루는 데 능숙한 변경의 개척민”에게만 그 자격이 주어졌는데, 우연히도 지원에 필요한 자격이 ‘루스벨트’가 배드랜드에서 지내면서 갈고닦는 능력이었음(p269). ③배드랜드에서 지낼 때 ‘루스벨트’는 극단적인 기후에 단련되고 예기치 못한 온갖 역경을 견뎌내며 포기할 줄 모르는 사냥꾼과 합리적 명사수, 12시간을 연속해 안장에 앉아 버틸 수 있는 카우보이가 되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하지만 전쟁성 장관 ‘러셀 A. 앨저’(Russell Alexander Alger)가 최고 지휘관직-세 자원 연대 중 하나를 지휘하는 연대장-을 제안했을 때, ‘루스벨트’는 정중히 거절했음(p269). 연대원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영웅적인 군인, 즉 말을 탄 기사라는 평생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고도 그 기회를 포기하고, 손아래 친구인 ‘래너드 우드’의 휘하에 들어간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선택에서 ‘루스벨트’의 대단히 중요한 ‘리더십’ 자질-자신의 감정을 냉정히 분석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자각 능력-이 확인됨(p269). ④‘루스벨트’는 자신이 연대에 장비와 식량을 신속히 제공하는 경험과 전문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기에 ‘앨저’ 장관의 제안을 거절하며 ‘우드’를 대안으로 추천했는데, ‘우드’는 정규군에 복무하며 명예 훈장을 받은 이력이 있었고, “내가 단 6주라도 야전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었다면 연대를 그럭저럭 지휘할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어 연대에 장비를 갖추는 방법이나 전투를 지휘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앨저’에게 말했다.”(p270). 그러면서 ‘우드’가 연대장이 되면 중령 계급, 즉 대대장직을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는데, 훗날 ‘루스벨트’는 “앨저는 내가 부질없이 희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했으며, ‘루스벨트’의 이런 선택에서 그가 직책보다, 함께 지휘하는 연대의 궁극적인 성공을 더 중요시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음(p270). ⑤‘우드’ 대령과 ‘루스벨트’ 중령은 효과적이고 상호보완적인 팀을 구성했는데, ‘우드’가 말과 안장, 천막과 담요, 장화 등을 징발했다면, ‘루스벨트’는 연대를 기념화해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데 주력했고, 결국 그들 연대는 ‘거친 기병대’(러프 라이더스)로 알려졌고, 800곳도 안 되는 곳에서 닷세 만에 2만 명의 지원을 받았음(p270). 미국을 압축적으로 대변하는 전투 부대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루스벨트’는 서부의 카우보이와 원주민, 사냥꾼과 광부 못지 않게 “불굴의 정신과 모험심”을 지닌 동부인으로 구성된 병력을 받아들여 연대의 규모를 확대하고자 군사 당국을 설득했음(p270). ⑥‘루스벨트’는 아이비리그의 풋볼 선수, 폴로 선수와 조정 선수, 스포츠를 즐기는 니커보커 클럽(Knickerbocker Club)과 서미싯 클럽(Somerset Club)의 회원들, 뉴욕시의 순찰 경찰에서 그런 자질을 이미 확인한 터였는데, 미국이란 국가의 다양성을 반영해 모자이크 같은 연대가 구성되면, 언론인이면 누구난 꿈꾸던 ‘용광로’(melting pot)가 완성되는 셈이었음(p270). ‘루스벨트’는 그런 이질적인 요소들을 녹여 하나의 부대가 되기에 충분한 열을 제공한 인물이었는데, 연대원으로 충원한 사람들에게서 그가 그때까지 살았던 폭넓고 다양한 삶-스포츠에 대한 사랑과 체력 단련, 하버드에서 받은 교육, 메인주에서 사냥꾼과 벌목꾼과 맺은 관계, 서쪽 경계지에서 목장을 경영하며 말을 타던 삶, 뉴욕 경찰청장-이 고스란히 읽히는 듯했음(p271). ⑦출신 지역과 사회적 신분이 달랐던 사람들-서부인과 동부인, 카우보이와 멋쟁이, 교육받은 사람과 무학자-이 어떻게 하나로 뭉칠 수 있었을까? ‘루스벨트’는 ‘동료의식’(fellow feeling)을 자극하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 생각했고, 샌안토니오의 훈련장에서 카우보이가 금융업자의 아들과 나란히 잠을 자도록 천막을 배치했음(p271). 또 니커보커 클럽 회원에게는 뉴멕시코 출신과 함께 설거지하는 임무를 맡겼고, 동부인과 서부인에게는 세탁하고, 임시 변소를 파고 메우는 잡일을 맡겼으며, 마침내 연대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분모가 찾아졌고, 모두 재력과 사회적 지위와 교육의 차이보다 팀워크를 더욱 중요시했음(p271). ⑧애초부터 ‘루스벨트’는 ‘리더십’은 계급이나 지위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연대원의 대다수를 차지한 개척자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계급과 지위를 무시하는 면이 있었음(p271). ‘루스벨트’는 다코타에서 소몰이 하는 법을 배울 때 임금을 주고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진짜 대장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터득했는데,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에게 명령하기 전 무엇이든 솔선수범하며, 그들에게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고통을 떠안으며 그들을 이끌어야 했음(p271). ⑨훗날 ‘루스벨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장교와 사병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먹고, 똑같은 환경에서 잠을 잤다. 또 야영지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찬이슬을 맞으며 잠을 잤기에 불만은 사라졌다.”라고 말했음(p272). 단기 집중훈련 과정에서 ‘루스벨트’와 연대원들은 많은 것을 학습하고 경험했는데, ‘루스벨트’의 실수가 없지는 않았으며, ‘루스벨트’는 자신에 대한 연대원들의 존중심을 유지하면서,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연대원과 하나가 되는 방법을 배워야 했음(p272). ⑩샌안토이오의 뜨거운 열기 아래 모의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친 어느 날, ‘루스벨트’는 연대원들에게 “가서 맥주를 마음껏 마셔라. 돈은 내가 내겠다!”라고 말했는데, 그날 저녁 늦게, ‘우드’ 대령이 ‘루스벨트’를 자신의 천막으로 호출했으며, ‘우드’는 지휘관이 신병들을 느슨하게 풀어주면 훈련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닥치는 곤혹스런 문제들을 나열했음(p272). ‘우드’의 훈계를 마음에 새기며 ‘루스벨트’는 “연대장님, 사방 10킬로미터 내에서 제가 가장 미련한 멍청이일 겁니다.”라고 말했는데, 그런 훈련을 받고서야 ‘루스벨트’는 자신과 부하들 사이에 적절한 간격을 두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음(p272). ⑪훗날 ‘루스벨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연대원들과 가까워진 후에는 좀 떨어진 곳에 천막을 치고 생활했다. 약점을 보이거나 부하들의 응석을 받아주며 인기를 얻으려는 시도는 많은 리더가 흔히 저지르는 크나큰 실수이다. 부하들은 훈련을 강제하지 않는 지휘관을 결코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경험을 통해 ‘루스벨트’는 애정과 존중 사이의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는 법을 터득했음(p272). 플로리다 템파 항을 거쳐 쿠바로 훈련장을 이동하는 무질서한 과정에서, ‘루스벨트’는 혼란을 가라앉히고 질서를 유지하며 규정을 너그럽게 적용해 부대원들을 보호하는 임기응변 능력을 보여주었음(p273).
● 비평
  필자는 ‘루스벨트’가 육군 시절 부하들을 풀어준 것과 관련하여, 상관인 ‘우드’를 통해 지적받으며 ‘리더십’을 배운 사례를 잘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여짐.
● 토의
  이론이 아닌 실제적인 ‘리더십’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방법 및 중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