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26-5강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22(프랭클린 루스벨트_뉴욕주지사로서 리더십)

presentlee 2026. 2. 1. 09:42

https://youtu.be/WCBwEi-1OG4?si=SAG4zGs5pNEuDHad

 

[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22(26-다섯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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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2-3부 역경과 성장 4. 프랭클린 루스벨트_정치적 리더십의 회복)


①‘링컨’에게 그랬듯이, 이야기를 꾸미는 재미와 즐거움은 ‘루스벨트’의 행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미시 르핸느’의 역할의 중요성은 ‘프랭클린’이 좋은 기분을 유지하도록 도와준 것보다 그가 암울한 두려움도 그녀에게는 숨김없이 드러냈다는 데서 드러남(p299). 훗날 ‘미시’는 노동부 장관 ‘프랜시스 퍼킨스’에게 “라쿠코 호에서 ‘루스벨트’가 오후에는 우울함을 떨쳐내고 밝은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지만, 오전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나 음울한 날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음(p299). ②훗날 ‘루스벨트’는 주지사와 대통령으로서 실무팀을 확대할 때 이 핵심 조직의 강점을 그대로 되살려냈는데, 이 최초의 삼인방 중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들은 ‘루스벨트’에게 다양한 의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함(p300). 관계를 맺은 초기부터, ‘루이스 하우’는 ‘루스벨트’와 논쟁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는데, ‘로젠먼’의 회고에 따르면, “‘하우’는 누구보다 자주 큰 소리로 ‘루스벨트’에게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입장을 오랬동안 고집했다.” ‘미시’는 한결 온화한 방식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효과는 ‘하우’의 방식에 못지 않았음(p300). ③타이피스트, 말동무, 여주인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며 ‘루스벨트’의 기분과 욕구를 신속히 읽어낸 ‘미시’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그의 행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말하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예컨대 ‘루스벨트’가 피츠버그 포브스 필드 야구장에서 예정된 금융 관련 연설문을 소리 내어 읽으며 연습할 때 ‘미시’가 때마침 옆방에 있었는데, ‘루스벨트’가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 하자 ‘미시’가 큰 소리로 말했음(p300). “그때쯤이면 외야석은 텅 비고, 관중이 모두 경기장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할 겁니다.” 그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연설문 작성자들은 처음부터 원고를 다시 작성해야 했음(p300). ④‘프랭클린 루스벨트 리더십’의 진보적 특성과 도덕적 무게에 가장 중요한 생채를 더한 주역은 ‘엘리너’였는데, ‘엘리너’는 회고록에서 “조금도 비판적이지 않은 부인을 두었더라면 그가 더 행복했을 것”이라며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고 덧붙였음(p300). 그녀는 쉽게 타협하지 않았고 솔직했으며,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하는 사상을 가진 사회운동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는데, 정치적 시기를 판단하고 여론을 읽어내는 전반적인 능력은 ‘루스벨트’가 그녀보다 훨씬 예민하고 뛰어났지만, ‘루스벨트’가 그녀의 바람대로 행동하는 걸 망설이면, 그녀는 집요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음(p.301). ⑤예컨대 그녀 생각에 ‘루스벨트’가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그녀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훗날 그녀는 “때때로 나는 자극제 역할을 맡았지만, 그 역할이 항상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음(p301). ‘앨리너’의 끊임없는 압력에 ‘루스벨트’는 긴장을 풀기 힘들 지경이었으며, 따라서 ‘루스벨트’는 “지금 당장 그 일을 하려는 건 아니오. 더는 그에 대한 말을 듣고 싶지 않소.”라며 ‘엘리너’의 말을 끊어도, ‘엘리너’는 변함없이 쓴소리를 해댔고, ‘루스벨트’는 ‘엘리너’의 집요한 잔소리가 옳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p301). ⑥그 핵심 팀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며 ‘루스벨트’의 사기를 진작하고 그의 이름이 정계에서 잊히지 않도록 하는 데 성공했는데, 소아마비가 발병하고 3년이 지난 1924년, 뉴욕 주지사 ‘앨 스미스’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 전의 선거 운동에서 뉴욕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음(p301). ‘루스벨트’는 대중 앞에 나서기에는 아직 취약하다고 생각해 망설였지만, 선거 운동에는 그의 몸이 아니라 그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명목상 위원장을 맡는 데 동의했고, 다시 2개월 후, ‘스미스 주지사’는 ‘루스벨트’에게 훨씬 더 고민스럽고 까다로운 제안을 내놓았는데, 6월 말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에서 열릴 예정인 민주당 전국 전당대회에서 ‘앨 스미스’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해 달라는 것이었음(p301). ⑦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엄청난 위험을 무릎쓰고 정치적 용기를 발휘한 예가 있다면, ‘앨 스미스’의 제안을 ‘루스벨트’가 받아들인 것이었는데, 1만 2,000명의 대표단 앞에서 굴욕적인 실수를 범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대단한 용기였음(p302). ‘프랭클린’이 보조장치와 목발을 이용해 걷는 법을 완전히 습득하지 못했다는 것도 수개월 전에도 분명히 확인된 사실이었는데, 소아마비가 발병한 이후로 처음 월스트리트에서 기업체 동료들과 사적인 오찬 약속을 한 때였으며, 약속된 위층으로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음(p302). ⑧엘리베이터 앞까지 가려면 미끄러운 대리석이 깔린 로비를 가로질러야 했는데,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아 중간쯤 왔을 때 목발이 겨드랑이에서 빠져나갔고, ‘루스벨트’는 엉덩방아를 찧었으며, 모자도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는데,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모여들었고, ‘루스벨트’는 앉은 자세에서 몸을 똑바로 하려 애썼음(p302). ‘프랭클린’은 “걱정할 것 없습니다.”라고 사람들을 안심시켰고,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며 “이런 문제야 금방 해결되는 겁니다.”라고 말했으며, 그러고는 두 젊은이에게 도움을 구해 일어선 뒤 운전기사에게 말했는데, “갑시다.” 누군가 모자를 그의 머리에 씌워주었고, ‘루스벨트’는 환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다가갔음(p302). ⑨전당대회는 3년 만에 처음 대중 앞에 서는 자리였는데,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전당대회에서 넘어지는 굴욕을 당한다면 정치적 야망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었고, 호텔 로비에서 쓰러진 것과는 차원이 달랐으며, ‘루스벨트’는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음(p303). ⑩‘앨리너’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함께하던 동료, ‘매리언 디커먼’(Marion Dickerman)은 “그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65번가의 서재에서 그들은 그가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측정했다. 그는 쓰러지고 나뒹굴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라고 회상했음(p303). 16세이던 아들, ‘제임스’의 부축을 받아 ‘프랭클린’은 아들의 왼팔에서 자기 오른팔 아래의 목발로 체중을 옮겨가며 걸었고, ‘프랭클린’이 무거운 철제 보조장치를 장착하고 상상의 연단을 향해 두 발을 힘겹게 들어 올려 끌고 갈 때, ‘제임스’는 이버지의 손가락이 “집게처럼” 그의 팔을 아프게 파고들던 걸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 회고했음(p303). ⑪마침내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던 날, ‘프랭클린’은 한 친구에게 연단을 흔들어 보라고 부탁하며, 연단이 자신의 체중을 견딜 수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고, 그의 이름이 불렸을 때 ‘루스벨트’는 아들의 팔을 또 하나의 목발로 대체해 강단을 향해 다가갔는데, ‘프랜시스 퍼킨스’는 “대회장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졌고 모두가 숨을 죽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음(p303).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 뒤에야 ‘루스벨트’는 강단에 도착해 목발을 내려놓고, 강단 가장자리를 꽉 쥐고는 고개를 약간 뒤로 젖혔는데, “그의 얼굴에 온 세상을 감싸는 듯한 너른 미소가 흘렀다.” ‘루스벨트’가 연설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1만 2,000명의 대표단은 그가 전형적으로 보여준 용기에 탄성을 터트렸음(p303). ⑫고개를 뒤로 젖히는 “유감스런 습관”은 ‘퍼킨스’에게 건방지게 보이는 행동이었고, 그가 주의회에서 활동할 때만 해도 그런 습관은 잘난 부잣집 청년의 무의식적인 버릇으로 여겨졌지만, 뻣뻣하게 굳은 다리와 긴장한 어깨 위에서 뒤로 젖혀진 고개는 힘들게 얻은 자존심과 자신감의 과장된 표현으로 보였으며, 자만이 아니라, 엉덩방아를 찧는 굴욕의 두려움을 극복한 자신감, 비지땀을 흘리며 위험을 무릎 쓴 노력에서 비롯된 자신감이었음(p304).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정계로 돌아오는 과정을 당시 상황을 묘사하며 잘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뉴욕 주지사 ‘앨 스미스’가 자신을 전당대회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연설할 당시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보여줌.
● 토의
 ‘루스벨트’의 장애에 대한 그의 극복하려는 노력과 태도가 대중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 것과 같이, ‘리더십’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필요한 태도 등은?


□ 요약(제2-3부 역경과 성장 5. 프랭클린 루스벨트_공감의 리더십)


①‘루스벨트’는 노래하듯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동부의 대도시와 서부의 평원과 언덕, 태평양의 경사지와 남부의 들판”을 대표한 사람들에게 도시와 지방, 젖은 땅과 마른 땅, 가톨릭교도와 프로테스탄트를 더는 구분하지 말고 “정치라는 전쟁터의 행복한 전사”, ‘앨 스미스’ 주지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자고 촉구했음(p304). ‘행복한 전사’라는 표현은 인간이 삶의 고난을 어떻게 맞서느냐에 대해 노래한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시에서 인용한 것이었으며, “고난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까닭에 불가피한 곤경을 영광스런 승리로 바꿔가는 사람”이란 뜻의 ‘행복한 전사’는 그 이후 ‘앨 스미스’에 덧붙여지는 별명이 되기도 했는데, 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자신을 압축적으로 표한한 것이기도 했음(p304). ②당시 앞줄에 앉았던 ‘퍼킨스’의 회고에 따르면, “‘루스벨트’는 연설하는 동안 견뎌야 했던 극심한 통증과 긴장 때문에 몸이 떨리고 흔들렸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강렬하고 기운에 넘쳤는데, ‘루스벨트’는 자신의 고통과 곤경을 영광스런 승리로 바꿔놓은 사람의 살아있는 상징이었음(p304). ‘엘리너’의 친구, ‘매리언 디커먼’에 따르면, ‘루스벨트’가 연설을 끝내자 군중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고, 거의 한 시간 동안 환호가 이어졌으며, 메릴랜드 해거스타운의 <모닝 헤럴드>는 “전당대회장을 꽉 메운 군중들이 울부짖고 고함쳤으며, 괴성을 지르고 노래를 불렀다.”고 보도했음(p305). ③한편 <시큐러스 헤럴드>의 한 기자는 “나는 지금까지 많은 영웅적 행위를 보았지만, 정신의 용기를 그처럼 훌륭하게 드러내 보인 현장에 함께한 적은 없었다.”고 섰으며, 당시 뉴욕에서 발행되던 일간지 <월드>는 사설에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역경을 딛고 언쟁, 개개인의 상충된 야망, 하찮은 당파적 편견을 이겨냈다.”고 썼음(p305). 또 전당대회의 진정한 주인공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이며 ‘스미스’ 주지사가 지명을 받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는데(스미스는 103번째 투표에서 패했음),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지독히 냉정하던 캔자스시티의 실력자, ‘톰 팬더가스트’(Tom Pendergast)조차 “‘루스벨트’가 육체적으로 선거운동을 견뎌낼 수 있다면 그가 투표없이 만장일치로 지명됐을 것이다. ……그는 내가 지금껏 만난 누구보다 매력적인 사람”이란 의견을 피력했을 정도임(p305). ④그날 저녁 늦게 ‘엘리너’가 뉴욕 집에서 축하연을 열었는데, 기분은 좋았지만 피로에 녹초가 된 까닭에 ‘프랭클린’은 자기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으며, ‘매리언 디커먼’이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두 팔을 높이 치켜들며 ‘매리언, 내가 해냈어!’라고 말했다.”(p305).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에야 ‘루스벨트’는 본격적으로 정계에 복귀했지만 그날의 연설이 중대한 중간 기착지였음은 분명했는데, 조지아 윔스프링스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신체 기능이 크게 향상된 것은 물론, ‘리더’로서 더 크게 성장했으며, ‘루스벨트’가 다 쓰러져가던 리조트를 선구적인 재활 센터로 개조한 ‘윔스프링스’ 이야기는, 그가 걷는 법을 배우기에 적합한 듯한 “장소를 발견한 것”에서 시작됨(p305). ⑤그는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그 과정에서 겸손함을 배웠고, 비슷한 처지의 소아마비 환자들과 맺은 공동체에 용기를 북돋우며 그 자신도 용기를 얻었는데, 조지아의 한 휴양 시설에서 한 젊은이가 산비탈이 섭씨 30도로 쏟아내는 뜨끈뜨끈한 광천수로 채워진 거대한 수영장에서 수영하며 다리 힘을 회복했다는 소문을 듣고, ‘루스벨트’는 직접 알아보기 위해 문제의 휴양 시설, 메리웨더 인(Meriwether Inn)으로 향하였음(p306). 하지만 한때 유명했던 그 리조트의 첫인상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았으며, ‘루스벨트’의 기억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낡고 허물어진 상태였다.” 작은 탑이 있던 목조 호텔은 무너져 내렸고, 주변에 늘어선 별채 지붕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음(p306). ⑥그러나 T자 모양의 수영장을 채운 따뜻한 물은 여전해 피로감에 시달리지 않고 상당한 시간 동안 근육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스벨트’는 “매일 아침, 세계에서 가장 멋진 수영장에서 2시간 동안 수영한다.”며 “세상의 모든 운동을 합한 것보다 이곳이 더 좋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임(p306). “직감적”으로 ‘루스벨트’는 “소아마비나 그와 비슷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이곳이 최적”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그는 호텔 객실을 햇살이 잘 들게 개조하고, 별채도 보기 좋게 단장한 리조트를 머릿속에 그려보았고, 또 의사와 간호사만이 아니라 물리치료사까지 갖추고, 다수의 오락 활동과 사교 활동을 더해 “환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사는 동시에 당시 의학계에 알려진 최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휴양 시설”을 꿈꾸었음(p307). ⑦게다가 그가 상상한 휴양 시설은 유럽의 온천 휴양지처럼 돈에 구애받지 않고 치료 가능성을 제공하는 곳-호화롭지 않아 누구나 적정한 비용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나중에 ‘루스벨트’의 ‘리더십’을 연구한 ‘프랜시스 퍼킨스’는 “그는 어떤 결정이나 어떤 프로젝트가 다른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본능적으로 파악하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때가 있다.”고 경탄했고, 웜스프링스에 대한 결정도 그 중 하나였음(p307).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앨 스미스’ 주지사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전당대회의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며 이 대회가 ‘루스벨트’가 정계의 ‘리더십’으로 다시 일어나는 계기였음을 설명함. ‘리더’의 연설에 있어서 중요한 점이 있다면?


□ 요약(제2-3부 역경과 성장 3. 프랭클린 루스벨트_공직에의 복귀)


①폐허로 변한 리조트를 보고 휴양과 치료를 겸비한 시설, 즉 수백 명의 환자와 그들의 가족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개조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은 ‘루스벨트’의 놀라운 사업적 감각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한데, 아내와 어머니 및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는 호텔과 별채와 온천 및 1,200에이커(약 4.8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주변 땅을 구입하는 데 20만 달러(총 재산의 약 3분의 2)를 투자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사업은 그가 혼자 힘으로 관리하고 추진한 최초의 중요한 프로젝트였음(p307). ‘루스벨트’는 직접 실천하는 완강한 ‘리더십’을 보이며 어디에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을 짓기 위해 건축가들과 머리를 맞댔고, 호텔과 주변 별채 개조에 필요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음(p307). ②또 “고문 건축가”로 역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경 기사”로도 일하며 잔디를 깔끔하게 손질하고, 나무를 심고 화단을 배치하는 데도 의견을 제시했는데, 골프 코스와 승마 연습장, 무도장과 극장도 설계했으며, 아버지가 스프링우드에서 여러 건설현장을 감독할 때 따라다녔듯, 건축 단계에 들어선 뒤에도 ‘루스벨트’는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일꾼들을 격려하는 열의를 보여주었음(p308). 완공된 후에는 시설마다 용의주도하게 직원을 배치했으며, 또 의료기관의 지원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미국 정형외과협회(American Orthopedic Association)를 설득해 “연구 규약”을 마련한 뒤 치료의 결과를 측정하고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치료 결과가 긍정적으로 밝혀지자 사업 전체를 비영리재단으로 전환했음(p308). ③그 결과 ‘루스벨트’는 시설 개선을 위한 자금을 추가로 모금하고, 치료에 필요한 전액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감액 혜택을 부여하며 애초에 꿈꾼 대로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민주적인 시설을 실현할 수 있었음(p308).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닥터 ‘루스벨트’, 수석 고문, 영적인 지도자, “피크닉 담당 부통령”,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한” 치료법의 선구자로 알려지게 됐는데, ‘루스벨트’의 처방에 따라, 환자들은 먼저 치료용 수영장에서 아침 운동을 했고, 그 후에는 별도의 수영장에서 술래잡기와 수구 등 다양한 수영 놀이를 즐기며 웃고 떠들었으며, 오후와 저녁에는 “카드놀이와 포커 게임, 다양한 강의, 영화와 야외 활동, 연극 연습 등을 했다.”(p308). ④축제일에는 칵테일파티와 만찬회도 열렸는데, ‘루스벨트’의 목표는 환자의 신체 능력을 회복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즐거움과 환희까지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었으며, 그는 “우리 프로그램에서 재미가 빠져서는 안된다. 환자들에게 살아 있다는 걸 하루 하루 더 실감나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음(p309). 한 기자에게 말했듯이, ‘루스벨트’는 “회복의 속도를 앞당기려고 환자들에게 협동심과 경쟁심을 불어넣어준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장소의 기운이 환자들의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의식을 회복했다.”고 말했음(p309). ⑤‘루스벨트’는 거의 4년 동안 이 원대한 계획을 소소한 것까지 챙기며, ‘퍼킨스’가 “영적인 변화”라 칭한 것을 겪었는데, 한 노목사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퍼킨스’는 “겸손은 가장 중요한 최고의 미덕이다. 우리가 스스로 그 진리를 깨우치지 못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굴욕감을 주더라도 그 진리를 가르칠 것”이라 생각했음(p309). ‘루스벨트’가 윔스프링스에서 터득한 겸손은 단순히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게 아니었는데, 비슷한 처지의 소아마비 환자들과 똑같이 한계를 인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로부터 배우며 한때 온몸에서 흐르던 엘리트 의식을 지워냈으며, ‘퍼킨스’의 표현을 빌리면, ‘루스벨트’는 “겸손한 자세와 한층 깊어진 철학으로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됐다.”(p309). ⑥공감 능력이 눈에 띄게 커진 덕분에 ‘루스벨트’는 잔혹한 충격을 운명적으로 이겨내야 하는 온갖 유형의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는데, 그는 윔스프링스 공동체에 자신의 낙관적인 정신을 불어넣었고, 소아마비 환자들에게 불굴의 용기를 주입했으며, 한 환자는 “이곳에서 지내며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덤으로 이곳을 만든 사람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고 회고했음(p310). 한편 ‘루스벨트’는 자신의 야망과 타인의 향상을 연결하는 강력한 성취감을 만끽했는데 즉, 오랫동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본보기가 될 제도적 기관을 설립하는 성취를 이루어냈음(p310). ⑦웜스프링스에서 ‘루스벨트’가 찾아낸 치료법은 처음에 추구하던 것과는 달랐는데, 그는 공직에 출마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여긴 ‘걷는 능력’을 다른 식으로 회복했음(p310). 그가 알기에 하반신에 마비된 사람이 정계에서 활동하며 성공한 적은 없었는데, 하지만 부축을 받아야 하고 휠체어를 탄 ‘리더’는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지도자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목발은 미국의 명령에 어긋나는 것일까? ‘루스벨트’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으며, 그는 이미 다른 개념의 ‘리더십’을 개발한 뒤였음(p310). ⑧윔스프링스 공동체가 그에게 보여준 깊은 애정과 존경에서, 걷는 데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소아마비 환자도 가장 높은 수준의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게 명확히 증명됐는데, 그는 완전한 회복과 타협하고, 마음속으로 공적인 삶을 다시 시작할 각오를 다졌으며, 1928년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음(p310).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앨 스미스’가 ‘루스벨트’에게 그와 당을 위해 뉴욕 주지사로 출마하라고 압력을 가한 것이었는데, ‘스미스’는 승리가 절실히 필요한 주에서 투표율을 높이려면 ‘루스벨트’라는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스미스’가 ‘루스벨트’에게 확약한 바에 따르면, 민주당이 ‘루스벨트’에게 기대한 것은 한 달간 계속되는 선거 운동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네다섯 번 라디오 연설을 하는 게 전부였고, 선거 운동이 끝나자마자, ‘루스벨트’는 힘든 일을 부지사에게 맡기고, 윔스프링스로 돌아가 체력을 회복하는 데 힘썼음(p311). ⑨‘앨 스미스’는 ‘루스벨트’라는 이름이 뉴욕에 미치는 영향력을 정확히 계산했지만, 인간 ‘루스벨트’는 완전히 잘못 판단했는데, ‘루스벨트’는 주지사에 출마하는 책임을 떠맡는 데 동의했고, 그 약속을 철저히 지켰으며, 실제로 ‘루스벨트’는 한 친구에게 “정치를 한다면 게임의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음(p311). 그는 일반적인 선거 운동의 강도를 넘어서는 수준을 너끈히 해낼 수 있다는 체력과 능력이 있다는 걸 자신과 국민에게 증명하겠다고 다짐했으며, 그는 간혹 하루에 14번 연설하며 30곳에서 33번의 중요한 연설을 행했고, 그 밖에도 수많은 비공식적인 대담과 모임을 가졌음(p311). ⑩‘퍼킨스’가 말했듯이 “이번 선거 운동은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루스벨트’도 정말 조금은 겁먹었다.” 그가 3층 연설장에 들어가려고 화재 대피용 비상계단으로 들어 올려지는 걸 지켜보던 ‘퍼킨스’는 혼잣말로 “정말 대담한 담력이야!”라고 중얼거렸는데, 시련이라지만 너무 위험하고 불편하게 보였으며, 게다가 그는 굴욕적인 입장까지 선선히 점잖게 받아들였음(p311). 그는 누구나 온유하게 대했고, 사소한 것에도 불평하지 않았고, 하찮은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체력을 비축했는데, “당신이 다리를 사용할 수 없다면,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을 때 우유를 가져오더라도 ‘괜찮다’라고 말하며 우유를 마시는 법을 배워야 한다.” ⑪‘루스벨트’는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박빙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스미스’는 대통령 선거에서 크게 패했으며, 공화당 바람이 전국을 휩쓸며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가 백악관을 차지했음(p312). 엄청난 패배에 충격을 받았지만, 올버니로 귀환한 스미스는 주지사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실력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그의 입김으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루스벨트’가 주지사 후보로 지명된 것이라 여긴 때문이었음(p312).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메리웨더인 온천 리조트를 자신의 재산의 2/3를 들여 구매하고, 이곳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공감하며 치료받고 도움을 주며,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한 사례를 잘 제시하며, ‘루스벨트’의 ‘리더십’의 특성인 ‘친절함’, ‘온유함’을 잘 보여주었음. 
● 비평
  온유, 친절한 ‘리더십’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그 의미는?

혼돈의시대리더십(도리스컨스굿윈)_26하우스(이현재)_프랭클린루스벨트_정치적리더십의회복.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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