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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리더십학교]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23(26-여섯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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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Leadership School
Leadership : in Tubulent Times(도리스 컨스 굿윈)
□ 요약(제2-3부 역경과 성장 4. 프랭클린 루스벨트_뉴욕주지사로서의 리더십)
①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올버니로 귀환한 ‘앨 스미스’는 뉴욕 주지사로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배후 세력이 되고자 하였으나, ‘루스벨트’는 형식적으로 선거 운동을 하지 않았듯, 권력을 이양하는 과도기에 그가 허수아비 주지사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었음(p312). ‘루스벨트’의 회고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직전, ‘앨’이 나를 만나러 와서는 ‘모스코위츠’ 부인(‘스미스’의 수석 보좌관이던 ‘벨 모스코위츠’)이 내 취임 연설문과 주의회에 보내는 연차 교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순전히 선의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지사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내가 취임사를 준비했고, 연차 교서도 거의 마무리됐다고 대답하자, 그는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p312) ②‘스미스’는 ‘루스벨트’에게 ‘벨 모스코위츠’(Belle Moskowitz)를 수석 비서관으로 임명하라고 거센 압력을 가했으며, ‘루스벨트’는 자신의 독립성에 또 다시 도전을 받은 셈이었는데, 영리하고 역동적이며 위압적이던 ‘모스코위츠’는 스미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고, 즉, ‘루스벨트’에게는 ‘루이스 하우’에 비견되는 보좌관이었음(p312). ‘루스벨트’는 그녀의 임명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오랫동안 미적대고 모호한 태도를 보인 끝에 결국 거절하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올버니에서는 내각의 일원으로, 워싱턴에서는 노동장관으로 재직한 ‘프랜시스 퍼킨스’에게 그가 설명했듯 “내가 주지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 자신이 돼야 했다.”(p313). ③그는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기로 동의했을 때도 힘든 선거 운동을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는데, “그러나 끝까지 해냈다!”며 자랑스러워했고, 또 뉴욕 주지사 책무를 수행할 만큼 충분히 회복됐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회복된 게 분명했다.”(p313) ‘루스벨트’의 거절에 ‘스미스’는 격하게 반응했는데, “내가 당신을 만들어주었는데 나에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엘리너’의 회고에 따르면, “주지사 임기를 시작했을 때 막을 올린 이런 무자비한 개인적 다툼은 결국 내 남편과 ‘스미스’ 주지사의 결별로 끝났다.”(p313). ④자기 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성하는 것은 ‘루스벨트’에게 무척 중요했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팀은 그의 제한된 이동성을 보완해야 했고, 달리 말하면, 그가 쉽게 갈 수 없는 현장과 지역을 다니며 그의 눈과 귀가 되는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고, 쟁점과 문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화와 이야기의 형태로 정보를 수집해야 했음(p313).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 노인과 정신질환자를 위한 국영 시설의 복도와 계단이 무척 좁아 그 자신도 돌아다니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자, ‘루스벨트’는 ‘앨리너’에게 자신의 대리인이 되어 그런 시설들이 대외적으로 천명한 소명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 정보를 수집하고 정확히 보고해 달라고 부탁했음(p313). ⑤‘앨리너’도 인정했듯이 “처음에 내 보고서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예컨대 내가 하루 식단 내용을 보고하면, ‘프랭클린’은 ‘실제 식단대로 식사가 이뤄지는지 확인했어요?’라고 물었다.” ‘앨리너’는 화로 위 솥에서 끓는 음식을 맛보고, 잠자리 공간이 과밀하다는 걸 감추려고 침대들을 접어 문 뒤에 놓아두는지를 알아내고, 재소자들이 직원들과 교류하는 걸 관찰하는 법을 배워갔음(p314). ‘루스벨트’는 그녀에게 세부적인 사항을 포착하기를 바랐고, 그 방법을 가르쳤는데, ‘루스벨트’의 가르침 덕분에 ‘앨리너’는 오래지 않아 일급 조사원이 됐고, ‘루스벨트’가 직접 자료를 입수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능숙한 경지에 올라섰음(p314). ⑥‘루스벨트’는 팀원의 경험과 특별한 지식으로 자신의 폭넓은 호기심을 더욱 확대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당시 산업국장이던 ‘프랜시스 퍼킨스’의 표현을 빌리면, ‘루스벨트’는 끝없는 “학습자”였으며, 주지사 공관에는 모든 계층의 방문자가 끊이지 않았고, 그들은 점심과 저녁을 ‘루스벨트’와 함께했고, 때로는 하룻밤을 묵기도 했음(p314). 그가 세상에 나갈 수 없었던 까닭에 세상을 자기에게 끌어들였던 것인데, 또 거의 15년 동안 정계를 멀리했던 그는 당시 3선 의원이던 젊은 변호사, ‘새뮤얼 로젠먼’에게 고문역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음(p314). ⑦‘로젠먼’이 ‘루스벨트’의 제안을 두고 고민하는 동안, 그의 임용 소직은 올버니의 한 신문에 크게 실렸고, ‘루스벨트’는 그에게 “내가 자네 대신 결심했네.”라고 유쾌한 목소리로 알려주었는데, ‘로젠먼’은 화내지 않았음(p314). 그처럼 사근사근한 태도에 누가 저항할 수 있겠는가? 곧 그는 ‘루스벨트’의 최측근 조언자 중 하나가 됐고, ‘프랭클린’과 ‘엘리너’가 주지사 관사로 이주하라고 요청할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로젠먼’은 거의 알지 못했던 젊은이를 “믿고 맡겨야 하는 가까운 관계”에 둔 이유를 ‘루스벨트’에게 물었으며, ‘루스벨트’는 “나는 사람을 신속히 판단하고, 사람을 읽어내는 데 상당히 괜찮은 직감이 있네.”라며 “때로는 직감이 신중하고 오랜 조사보다 나을 때가 있다.”고 대답했음(p315). ⑧‘루스벨트’의 장래 계획에 영향을 미칠 다양한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을 보강해주려고, ‘로젠먼’은 세 명의 컬럼비아 대학 교수-‘레이먼드 몰리’(Raymond Moley), ‘렉스퍼드 터그웰’(Guy Tugwell), ‘아돌프 벌리’(Adolf Berle)-를 초빙해 훗날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로 알려진 핵심 고문단을 구성했으며, 다시 그들은 기업계와 농업계와 노동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접촉했음(p315). 따라서 주지사 관사는 흥미롭고 유익한 손님들로 늘 북적였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작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듯, 곧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지사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레이먼드 몰리’가 회고하듯이 “일상은 무척 단순했다.” 저녁 식탁 분위기는 거의 언제나 즐겁고 격의가 없었고, ‘루스벨트’는 손님들에게 각자의 일과 가족 및 자신에 대해 허물없이 말하도록 유도하며, “그날 그에게는 이 시간만큼 중요한 것이 없고, 이 시간을 위해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느끼게 해주었음(p315). ⑨디저트를 끝내고 그들이 주지사의 작은 서재로 이동하면 “무작위적인 자유로운 대화는 끝을 맺었다.” 서재에 들어서면 ‘루스벨트’는 전문가들에게 피곤할 정도로 질문을 쏟아냈고, 밤이 깊어가면 질문은 “더욱 알차고 세밀하게 변해갔고, 그 정도는 그가 저녁 내내 받아들인 정보량에 정확히 비례했다.”(p316). ‘몰리’는 ‘루스벨트’가 하루저녁에 받아들이는 지식의 양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몰리’에게 “‘루스벨트’는 학생인 동시에 추궁하는 질문자였고 판사였던 것”이 분명함(p316). ⑩대공황(Depression)은 달이 없는 밤처럼 세상을 덮친 게 아니었는데, 증권시장이 활황이던 순간에도 어둠이 짙게 깔릴 듯한 황혼의 조짐이 있었고, 주지사에 부임한 초기부터 시작한 운영 방식-팀원을 현장에 보내 조사하고 정보를 수집한 동시에 정선된 전문가를 영업하는 방식-을 통해 ‘루스벨트’는 뭔가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사실을 초기에 인식했음(p316). 또 ‘퍼킨스’를 통해서는 노동시장에 이해되지 않는 이상 현상이 있다는 걸 알아냈는데, “많은 사람이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실직상태”에 있었던 것이며, 뉴욕주 고용센터의 조사로 일자리를 찾는 실직자도 많지만 일손이 부족한 기업이 많다는 것이 밝혀지자, ‘루스벨트’는 시스템 점검을 시작했는고, 1929년 10월 주식시장이 붕괴되기 전에 취해진 작지만 중요한 조치였음(p316). ⑪항상 그랬듯이 ‘루스벨트’는 구체적인 불만과 고충에 관련된 이야기에서 활력을 얻었는데, ‘퍼킨스’의 기억에 따르면, 까다로운 통계 자료와 사실도 인간의 이야기로 전환될 수 있으면 루스벨트는 관련된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했음(p316).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뉴욕 주지사에 당선된 이후 ‘앨 스미스’의 외압에 대해 대처해나가며 독립성을 얻은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음. 또한, 그의 주지사 시절의 정보를 취합하는 방법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음.
● 토의
‘리더십’의 독자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또한 ‘루스벨트’를 통하여 ‘지적 리더십’의 특징과 관련하여 발견할 수 있는 점은? 또 그 필요성은?
□ 요약(제2-3부 역경과 성장 5. 프랭클린 루스벨트_대공황 속에서의 리더십)
①‘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포킵시 근처의 작은 마을에 있는 스웨터 공장을 방문했을 때 사장과 직원들이 ‘두려움과 혼란’에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주식 시장이 붕괴되기 전까지 그 공장은 150명이 일하며 고급 스웨터를 제작하던 곳이었음(p317). 직원들은 넉넉한 급료를 받았고, 사장도 상당한 이익을 거두었으며, 공동체 마을도 번성했는데, 대공황이 심화되고 수요가 줄어들자, 사장은 어쩔 수 없이 작업량을 절반으로 줄였고 임금도 깎았음(p317). ②게다가 저렴한 실로 값싼 스웨터를 제작했는데, 사장은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며 공장을 최대한 계속 운영했으며, 사장은 그 마을에 살았고, 직원들은 친구였음(p317). 하지만 수요가 계속 급전직하로 감소하며,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는데,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그 작은 스웨터 공장은 ‘추락한 악순환’(descending spiral)이라는 추상적인 경제학 용어에 인간의 모습을 덧씌운 상징적인 비유가 됐음(p317). ③‘루스벨트’에게도 대공황에 대처할 포괄적인 해법은 없었고, 그는 단편적인 해법부터 시작했는데, 시간제 노동, 노동 시간의 단축, 업무량의 감축, 공동체별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 등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더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려 애썼음(p317). ‘퍼킨스’의 기억에 따르면 “루스벨트는 부분적으로라도 해법을 찾아내고, 부분적으로라도 즉각적인 행동을 독려했다.” 그는 구호 단체 활동을 극대화하며 지역의 구호 활동을 조직화했고, 크고 작은 지방 정부에게 대출 여력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촉구했는데, 하지만 대공황의 파급력은 이런 모든 기관의 한계를 넘어섰음(p317). ④‘루스벨트’는 1931년의 겨울과 이듬해 봄까지 ‘후버’ 대통령과 공화당 정부가 연방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를 기다렸다가, 늦여름에서야 “스스로 ‘리더십’을 자임하고 뉴욕주를 위한 행동을 취하기로 결심했다.” 공화당이 다수인 주의회에 임시회기를 열어, 당시에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로 여겨진 법안-주정부가 지원하는 포괄적인 실업보험 프로그램-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한 것임(p318). 주의회는 공화당이 다수였기에 법안이 채택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애초부터 예측되었는데, ‘후버’ 대통령처럼, 뉴욕주의 공화당 지도자들은 민간 기업과 자선 단체와 지방 정부만이 경제적 난국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고, 예상대로 주정부나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은 미국인의 진취성을 훼손하며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쏟아졌음(p318). ⑤‘루스벨트’는 의회에 보낼 연차 교서를 준비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루스벨트’는 연설문 작성자이던 ‘로젠먼’과 ‘몰리’에게 입법자의 허점을 찌르기 위해 일반인과 직접 소통하는 방법-따분한 사실을 피하라, 쉽게 기억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라, 모든 쟁점을 인간적인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라, 평범한 일상 언어를 사용하라, 쉽게 말할 수 있다면 현학적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을 사용하라고 당부했음(p318). 예컨대 “우리는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는 국가를 만들 것이다.”라고 말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는데, 연차 교서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고, “상호적 보호와 행복”을 위해 국민이 설립한 것이 국가라고 정의했음(p318). ⑥국가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는 환경이 악화될 때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시민을 돌보는 것인데, 정상적인 시기라면 그런 도움은 민간과 지역 차원에서 제공되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는 정상적인 시기가 아니었음(p319). 실업이 장기화되며 수백만 가정의 저축과 잔고가 바닥났고,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책임지고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의무였는데, ‘루스벨트’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운 좋은 시민에게 과세함으로써 실직한 시민에게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고, 적절한 일자리가 찾아지지 않으면 공적 자금으로 실업 급여를 제공하자고 촉구했음(p319). ⑦하지만 공화당 지도자들은 ‘루스벨트’가 제안한 법안을 거부했는데, 그들은 ‘루스벨트’ 주지사가 “미온적인” 대책이라 칭한 법을 제정하고 휴회에 들어가려고 했으며, ‘루스벨트’는 그 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실질적인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몇 번이고 임시회기를 요청하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공화당 지도자들은 ‘루스벨트’에게 항복했음(p319).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뉴욕의 포괄적 구제 프로그램(relief program)은 다른 주의 본보기가 됐고, ‘루스벨트 주지사’는 민주당 개혁파를 끌어가는 대변인으로 부상했으며, 1932년 4월 라디오 연설에서 ‘루스벨트’는 미국인에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잃어버린 번영을 재건하고, “경제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잊힌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믿음을 주자!”고 촉구했음(p319). ⑧‘새뮤얼 로젠먼’이 직접 증명했듯이, ‘루스벨트’에게 이런 호소는 추상화된 웅변이 아니었는데, 잊힌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빚더미에 짓눌린 농부, 독점 기업과 경쟁할 수 없는 소기업인, 입에 풀칠조차 못하는 가정주부-이었으며, 실천적인 ‘리더십’ 방식, 정보를 끝없이 추적하는 열의, 통계 수치에 인간적인 피와 살을 더한 이야기 덕분에 ‘루스벨트’는 개개인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고, 대공황의 파국적인 영향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음(p32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개인적인 소아마비의 상황과 미국의 경제 대공황의 상황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루스벨트’ 개인의 위기가 결국 공황 속에 있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읽게 되었음을 잘 보여줌. 위기 극복 ‘리더십’의 모습은 무엇?
□ 요약(제2-3부 역경과 성장 6. 프랭클린 루스벨트_대통령 리더십으로)
①보통 사람의 대변자로 올라서자, ‘루스벨트’는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국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는데, 첫 투표에서 대표단의 과반수를 얻었지만, 후보로 지명되는 데 필요한 3분의 2에는 104표가 부족했으며, 경쟁 후보들은 민주당의 보수 진영을 대변했음(p320). 두 번의 투표가 더 진행됐지만 판세는 변하지 않았고, 그러나 격렬한 논쟁이 있은 후, 마침내 ‘루스벨트’계가 교착 상태를 깨뜨렸으며, 텍사스의 ‘존낸스 가너’(John Nance Garner)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겠다는 합의가 이루어 졌는데, 그 대가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대표단이 ‘루스벨트’ 쪽으로 돌아섰고, 그 결과 ‘루스벨트’는 3분의 2를 넘는 표를 얻었음(p320). ②세 번째 투표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루스벨트’는 직접 지명을 수락하기 위해 전당대회장으로 향했고,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행동이었는데, 전통에 따르면, 전당대회가 선발한 위원회가 승리한 후보를 한 달이나 6주 후에 느긋하게 방문해 공식적인 후보권을 전달하는 게 원칙이었음(p320). 하지만 ‘루스벨트’는 이런 전통을 깨뜨리기로 마음먹었으며, 훗날 말했듯이, 몇 주 동안 “모르는 체하며” 지내야 한다는 게 “부조리한 짓”이라 생각한 때문이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대담하고 실천적인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아직 항공기 여행이 흔하지 않던 시대였지만 ‘루스벨트’는 삼발 비행기를 타고 올버니에서 시카고로 날아갔음(p321). ③관습적인 방법과 낡은 해법은 미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던 당시 상황에서, 무력증과 소심증과 완고한 생각을 척결하는 전쟁을 끌어갈 준비가 됐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데, ‘루스벨트’는 “여러분에게 맹세합니다. 저 자신에게도 맹세합니다. 미국 국민을 위한 대변혁을 이루어내겠습니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 선거가 아닙니다.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시대입니다.”라고 후보수락 연설을 끝맺었음(p321). ‘허버트 후버’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전투는 서로 극명하게 다른 성격과 기질, ‘리더십' 방식이 미국을 엄청나게 짓누르던 압박과 불확실성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보여줌(p321). ④‘후버’와 ‘루스벨트’는 모두 ‘우드로 윌슨’의 진보적인 피후견인이었는데, 해군성 차관보였던 1920년 ‘루스벨트’는 민주당에게 ‘후버’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라고 촉구했고, ‘후버’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벨기에 구제위원회(Commission for Relief in Belgium)의 책임자로서 눈부신 성공을 거둔 계몽된 기업가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았음(p321). 1928년 공화당은 ‘후버’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는데, 미국이 호황을 누리던 때 행해진 후보 수락 연설에서 ‘후버’는 “미국은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가난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에 한층 가까워졌다.”고 선언했음(p321) ⑤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강점을 굳게 믿은 까닭에는 ‘후버’는 미국이 여태껏 경험한 적이 없는 최악의 대공황기에 연방정부가 국민을 돕는 데 주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까지도 깨닫지 못했는데, 주식 시장이 조금이라도 상승하면 ‘후버’는 최악의 시기가 끝났다고 믿었고 성급히 이것을 선언했음(p322). 경제가 다시 계속 추락하자 ‘후버’는 비판적인 공격을 받을 수 밖게 없었는데, 그런데도 ‘후버’는 자선 단체와 지방 정부의 자발적인 봉사 활동이 이미 실패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고, 그는 반복된 공격으로 비롯된 방어 심리, 즉 벙커심리(bunker mentality)를 극대화하며,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데도 동의하지 않음(p322). ⑥반면에 ‘루스벨트’는 변화된 상황에 맞춰가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는데, 아버지의 심장마비와 그에 따른 죽음으로 평온하던 어린 시절이 완전히 뒤집힌 기억이 있었고, 또 영원히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란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이동 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시도하고 실험해 보았음(p322). 대통령 선서를 앞두고 좀처럼 끝나지 않는 역경과 맞딱드려야 했는데, “지금은 대담하고 끈질긴 실험이 필요하고 또 요구됩니다. 어떤 방법이든 취해서 시도해봐야 합니다. 그 방법이 실패하면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봐야 합니다. 그것이 상식입니다. 여하튼 무엇이든 시도해봅시다.” ⑦대통령 선거일, 미국 국민은 압도적 다수가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는데, 전국이 불황의 늪에 허덕이던 시대에 보통 사람들은 ‘루스벨트’의 자신감에 찬 표정과 굳건한 어깨를 보며, 그를 믿고 신뢰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자신을 동일시했음(p322). ‘프랭클린’은 어렸을 때 대통령까지 한 걸음씩 착실히 올라가는 꿈을 꾸었지만, 마비로 인해 그 꿈은 좌절되었고, 하지만 웜스프링스에서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백악관으로 가는 길과 실천적이고 실험적이며 공감하는 ‘리더십’의 받침점을 기적적으로 찾아내었으며, ‘루스벨트’는 어두운 시절을 극복하고 이겨냈는데, 국민들은 자신들도 위기를 극복해낼 거라 믿었음(p323).
● 비평
필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보통 사람의 대변자로 나서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과 함께,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선출될 당시의 미국과 세계의 경제적 상황 및 그 상황 속에서 대통령이 무엇이든 할 수 밖에 없음을 그의 언급한 말 등을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짐.
● 토의
사회적 위기 가운데 ‘리더십’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어떤 정책이든 펼쳐가기 위해서 가져야 할 태도 및 국민들을 아우르는 ‘리더십’의 모습이란?
□ 요약(제2-4부 역경과 성장 1. 린든 존스_내 삶에서 가장 참담했던 기간)
①20대 초부터 ‘린든 존슨’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늦게 잠자리에 들면 승리는 그의 것”이란 전제에서 활동했는데, 그때부터 10년 동안 그는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고, 그는 취미도 없었고 휴식을 취하는 방법도 몰랐음(p325). 그의 목표는 그저 승리하는 것이었는데, 토론 교사로 활동할 때는 토론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연방 하원의원 ‘리처드 클레이버그’의 비서로 일할 때는 의사당에서 최고의 비서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또 최연수 청소년 관리국 국장으로서는 전국에서 본보기로 사용할 만한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음(p325). ②초선 의원으로는 텍사스 중서부의 외진 곳까지 전기를 끌어들여 ‘귀재’(wunderkind)란 칭찬을 들었는데, 1941년 ‘존슨’은 연방 상원에 출마했고, 그의 삶에서 무척 중요한 선거였지만 패배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은 첫 출마에서 패했다고 낙담하거나 야망이 꺾이지는 않았음(p325). 오히려 “낙심하는 데 익숙한” 사람답게, 그는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뉴 세일럼이란 작은 촌락의 유권자들-에게는 거의 만장일치의 표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큰 용기를 얻었는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부통령 후보로 겪은 패배를 ‘정말 좋은 항해’(darn good sail), 즉 그의 이름과 명성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로 받아들였음(p325). ③그러나 ‘존슨’에게 선거는 더 큰 의미가 있었는데, ‘존슨’은 상원 선거의 패배에서 충격을 받았고, 이를 자신의 가치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받아들였는데, 즉 국민에게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여겼으며, 그 패배는 그의 정치 경력에서 작은 걸림돌에 불과했어야 했지만 삶을 바꿔놓은 시련이 되었음(p326). 그의 야망이 본질적으로 달라졌고, 훗날 그 자신이 “내 삶에서 가장 참담했던 기간”이라 칭했던 오랜 침체기가 시작되었는데,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피후견인, ‘린든 존슨’은 어떤 경쟁자보다 집중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간절히 원하던 상원 선거에서 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p326) ④죽음이 다시 한 번 그에게 기회와 승진의 문을 열어주었는데, 4년 전 공원 벤치에 남겨진 신문에서 ‘제임스 뷰캐넌’ 연방 하원의원 사망 기사를 우연히 보고, ‘존슨’은 하원의원에 도전해서 성공했으며, 이번 1941년 4월 9일에는 텍사스의 원로 상원의원, ‘모리스 셰퍼드’(Morris Sheppard)가 뇌출혈로 사망하여 보궐 선거가 실시돼야 했음(p326)
● 비평 및 토의
‘린든 존슨’에게 선거에서의 패배가 그가 긴 침체기를 겪게 된 시작이 되었음을 필자는 잘 밝혀내고 있음. 이와같이 한번의 위기가 아닌 침체의 위기 속에서 극복하기 위한 ‘리더십’의 요소 및 극복의 비결, 방법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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