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이야기

[하우스리더십학교] 제16강 리더십 강의-1(서문,프롤로그)

presentlee 2024. 4. 14. 00:32

https://youtube.com/watch?v=GcoXZ9ubpZs&si=GF4_pPHRgFk55BqI

House Leadership School


□ 요약(서문-왜 리더십인가?:적불균형,결속,페어니스-연세대 송복 교수)


 ①왜 리더십인가? 사람들은 ‘강력’하고도 ‘민주적’ 리더십, ‘도덕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리더십, ‘창조적’이면서도 ‘적응적’인 리더십, ‘가치 지향적’이면서도 ‘목표 달성적’인 리더십, ‘지적’이면서 ‘대중적’인 리더십, ‘강인’하면서 ‘유연한’ 리더십을 찾지만, 그런 리더도 없고, 그런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연구하지만 이 책의 저자 ‘제임스 M. 번즈’교수님도 말씀하셨듯이 이것은 ‘실패 선언’임(p10). ②‘리더’에 대해선 많은 ‘사실들’(fact)을 알아냈지만 그 ‘리더십’에 대해서는 뭐 하나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하는 ‘리더십의 무지’ 내지 ‘리더십 불명료성’이 리더십 연구의 일치된 의견인데, 그 이유는 ‘리더’와 ‘리더십’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해왔기 때문임. 그러나, 사람들이 바라는 ‘리더’와 ‘리더십’은 거의 대부분 ‘양향적’(兩向的, ambivalent)인 것이고, 인간의 행동과 심성은 그같이 ‘양향적’이 될 수 없어서, ‘강력’하면 ‘민주적’이 되기 어렵고, ‘도덕적’이면 ‘효율적’이 되기 어려움(p10). ③그렇다 하여 인간이 양자 중 한쪽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이고, 합리적이면서 비합리적이듯이 인간은 서로 반대되는 것, 서로 모순된 것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균형있게’ 지니고 있느냐, 얼마나 ‘균형된’ 양향성을 띠고 있느냐? 하는 것임. 그러나 ‘균형’이라는 면에서 사람은 자유롭지 못하며, ‘리더’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이같이 불균형적인 지도자-한쪽으로 기운 불균형 성향의 지도자, ‘균형이 깨진 양향성’의 리더를 한결같이 규탄하고 비판함. 결과적으로 아무도 리더로 인식되지 못함(p11). ④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리더며, 누가 리더십 소지자인가? 누구나 다 ‘균형이 깨진 양향성’의 인간이라면, 도대체 ‘리더십’은 무엇이며, 현실적으로 그 ‘리더십’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경험적일 수 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흔히 “그 사람 리더며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말함. 균형이 어떻게 깨져 있던 사람들이 느끼고 평가하는 ‘리더’와 ‘리더십’이 있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이 소지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적불균형’(適不均衡, proper-unbalance), 즉 양향성의 균형이 지나치게 깨지지 않은 ‘적절한’ 불균형, 곧 ‘과불균형’(過不均衡, over-unbalance)이 아닌 ‘적불균형’에서 찾을 수 있음(p12). ‘리더’는 이 ‘적불균형’을 지향하는 사람이고, ‘리더십’은 이 ‘적불균형’의 성취 그 자체임. ‘일방적 지나침’이 없는 양향성, 균형이 깨지되 적절히 깨져 있는 양향성, 한쪽으로만 실려있지 않은, 적절히 기울여져 있는 지렛대의 상태가 ‘리더십’의 본모습이며 ‘실체’(實體, entity)임(p13). ⑤중요한 것은 리더십의 ‘역할’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리더십’의 필요를 늘 느끼게 하는 것, ‘리더십이 없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리더십의 ‘역할’임. 한 마리 양이 이끄는 99마리의 사자와 한 마리 사자가 이끄는 99마리 양 때 중 어느 그룹이 강하냐는 질문에, ‘리더십’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대답은 당연히 한 마리 사자가 이끄는 양 때인데, 아무리 약하고 순한 양이라도 출중한 ‘리더’만 잘 만나면 큰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임(p13). 그렇다면 ‘리더십’은 ‘만능’(萬能)이며, 중요한 것은 그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인데, 리더십의 역할에 있어서 그것은 ‘결속’(solidarity)이며, 그것은 단순한 결합이 아닌 ‘단합적’ 결합, ‘단합적’ 상호작용인 것임(p14). ⑥인간은 누구나 ‘남과 더불어’ 살게 되는데 이 때 두 가지의 ‘속성’(屬性)이 생태적으로 수반되며, ‘전쟁’과 ‘평화’, ‘경쟁’과 ‘협동’이 그것임(p14). 이 전쟁과 평화, 경쟁과 협동에서 ‘혼돈’과 ‘질서’, ‘해체’와 ‘통합’이 생겨나고 따라가며, 이러한 세상 속에서 ‘결속’은 생명의 근원이 되고, 여기서부터 ‘법’, ‘제도’가 만들어지고 ‘질서’가 형성됨(p15). 그러나 아무리 오순도순 살아도 시비(是非)가 있고 마찰이 있는데, 그러면 다툼을 없애고 분열을 방지하는 것이 ‘리더십’이 의미하는 ‘결속’인가? 결코 아니며, ‘부정적 요인들’(minus factor)을 ‘긍정적 요인들’(plus factors)로 돌리며 단합시키는 것이며, ‘리더십’의 결속은 발전의 ‘견인차’(tractor)이며 ‘추진자’(promotor)의 의미를 가짐(p16). ⑦‘리더십’의 본질(本質)은 무엇인가? ‘리더십’을 ‘리더십’으로 기능케 하는 것, 그것이 ‘리더십의 본질’이며, ‘학문’이 ‘학문’되게 하는 것이 ‘진리 탐구’이며, ‘언론’이 ‘언론’되게 하는 것이 ‘저항’인 것처럼, ‘리더십’을 ‘존재적’으로 구속하는 것, ‘리더십’을 사실상 ‘적불균형’ 상태로 실재케 하는 것은 ‘페어니스’(fairness)인데, 우리 말로는 2개의 개념으로 나눠볼 수 있으며, ‘공명정대’(公明正大)의 준말인 ‘공정성’(公正性)과 ‘공평무사’(公平無私)의 준말인 ‘공평성’(公平性)dlfkrh 할 수 있음. 공정성-공명정대는 ‘투명성과 올바름’이라 할 수 있으며 속임이 없도록 ‘리더’가 집단관리를 투명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집단은 ‘디서플인’(discipline)이 정립된 집단임(p17). 공평성-공평무사는 ‘기회’의 평등이며 누가 의식해도 부당하게 ‘사익’(私益)을 보고 있지 않는 것을 뜻하며, 공정성과 공평성에서 궁극적으로 조직의 ‘효율’이 도출됨(p18). 


● 비평 및 토의
  본 서문에서는 리더십의 ‘실체’, ‘역할’과 ‘본질’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함. 제갈량의 리더십 3원칙인 ‘페어니스’를 실천하는 현실에서의 ‘리더’를 찾는다면?


□ 요약(프롤로그 리더십의 위기 : 도덕적 리더십)


①오늘날 사람들이 결핍을 느끼며 가장 갈망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강력하고 창조적인 ‘리더십’이며, 우리는 거인들의 시대(the ereas of titans)에 젊은 시절을 보내었음. 이 위인들 중 대부분은 20세기 중반에 사거(死去)하였는데, ‘드골’, ‘네루’, ‘케네디’, ‘킹 목사’ 등과 같은 사람들은 영웅적인 ‘리더십’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 거인들은 정치적 경계선을 성큼성큼 넘나들며 한 시대를 풍미하였음(p23). 우리는 그들을 존경하여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고, 그들에 저항하여 싸우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음(p24) ②20세기 후반부터 우리와 지도자들의 관계는 개인숭배와 명사들에 대한 ‘일화 중심적’(gee whiz)접근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되었는데, 우리는 마치 수면습관, 좋아하는 음식, 취미 등과 같은 것들이 ‘리더십’과 관련하여 깊은 의미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지도자들의 사생활을 주의깊게 살피며 대부분의 잡지가 ‘사람들’의 하찮은 일상사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음. 이처럼 개인숭배는-영웅뿐 아니라 악마에 대한 숭배도 포함하는-동서양에서 다같이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는데, 오늘날의 이러한 ‘리더십의 위기’는 권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탁월하지 못함과 무책임성에서 비롯되었음. 그러나 ‘리더십’이 사람들의 욕구와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정도로 발휘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임(p24). ③이러한 ‘리더십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지적인’(intellectual) 것이며, 우리는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리더십’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하였으며, 현시대에 적합한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 온전히 파악하는 데 실패하였고, 그 결과 ‘리더십’을 평가하고, 충원하고 또는 거부하는 데 필요한 기준에 대해서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음(p24). ‘리더십’이란 단순히 문화․정치적 차원의 혁신을 뜻하는 것인가?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영감’인가? ‘리더십’이란 목표설정인가? 목표달성인가? 지도자는 가치의 규정자들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과 같이 ‘리더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관찰되고 있으면서도 가장 적게 이해되고 있는 현상 중 하나임(p25). ④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최소한 2천년 동안 사상의 지도자들은 지배자/피지배자 관계라는 달갑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으며, ‘플라톤’은 ‘철인왕’뿐만 아니라 교육․사회․경제제도가 지배자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추종자들의 반응을 분석하였음. 오늘날 정치지도자의 ‘도덕적 리더십’과 ‘용기’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표출되기 훨씬 이전부터 유교 사상가들은 ‘리더십’을 도덕교육과 솔선수범으로 이해하였으며, ‘간디’가 있기 훨씬 전 기독교 사상가들은 비폭력을 설파했고, ‘플루타르크’는 철학자들이 “특히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과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음. 그는 “나이 많은 노인도 공공업무에 참여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도 검토했는데, 세익스피어가 소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이 선구적인 전기작가 때문임(p25). ⑤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시대에는 ‘지배’(rulership)에 관한 문헌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후 ‘지배’와 ‘리더십’연구는 심각한 지적 위기에 봉착하였음(p25). 이제까지 ‘리더십’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작고 다양한 의미들로 분해되어 이해돼 왔는데 한 연구에 의하면 ‘리더십’이란 단어가 130가지로 정의되고 있음을 밝혔음(p26).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 공공도서관에서는 정치지도자 개인에 관한 수만 권의 전기와 단행본 연구, 그리고 신물클리핑이 소장되어 있으나, ‘정치 리더십’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목록만을 소장하고 있음(p26). ⑥요컨대 이론적 차원에서든 실천적 차원에서든 ‘리더십’을 연구하는 학파가 없다는 것인데, 우리에게 과거, 현재 그리고 잠재적 지도자들을 평가할 기준이 부족하다는 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는 것인가? 문제가 되는데, 강력한 근대의 철학적 전통이 없다면, 이론적․경험적 축적이 없다면, 연구수행에 필요한 기초적 개념이 없다면, 그리고 실천적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들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으며, 이와 같이 ‘기준’과 ‘지식’이 없으면 서로 다른 형태의 지도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를 구별할 수 없는데, 우리는 ‘지배자’(rulers),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power wielders), ‘전제군주’(despots), 그리고 ‘지도자’(leaders)를 구별할 수 없게 됨(p26). ⑦현재 ‘리더십’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파는 없지만, 그런 학파를 만들 수 있는 재료는 얼마든지 풍부하고 다양하며, 방대한 양의 자료와 분석과 이론들이 개발되고 축적해왔음(p26). ‘리더십’에 대한 중심적 개념이 아직까지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부분적 이유는 학자들이 서로 다르고 종종 서로 관게가 없는 질문과 문제들을 추구하면서 각기 다른 학문분야와 하위 학문분야의 범주에서만 연구를 해 왔기 때문. 필자는 ‘리더십’과 관련한 지난 10년 동안의 풍부한 연구, 분석 그리고 사상적 경험들이 ‘리더십 이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거라 믿음. 오늘날 인간주의 심리학에 있어서 실로 중요하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연구업적은 문화적 차이나 시대적 차이를 넘어 ‘리더십’ 과정을 일반화할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이것이 이 책의 중심 목적임(p27). ⑧‘리더십 연구’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실패 중 하나는 ‘리더십’ 문헌과 ‘팔로어십’(folloership) 문헌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인데, 전자는 영웅적인 혹은 악마적인 인물들을 주요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것은 대개 전기의 방식을 통해서 연구하고 있고, 후자는 청중․대중․유권자․인민을 주요대상을 삼고 있으며, 이것은 보통 대중의 여론 혹은 선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시도됨. 이것은 결국 지도자들은 추종자들의 대행자로서 행동한다는 확신을 전제로 하고 있음(p27). ‘리더십 접근법’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엘리트주의적 경향을 보이는데, 즉 그것은 무력한 대중을 배경으로 하는 영웅적인 인물을 그리고 있으며, ‘팔로어십 접근법’은 이데올로기에 있어 대중주의적 또는 반엘리트적인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민주적 사회에서 조차 대중들이 보수적 정치인들, 군장교들, 사제들 그리고 기업가들이 관여하는 작고 중첩되는 각종 집단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함(p27). ⑨필자는 ‘리더십’을 단순히 엘리트주의자들 사이의 게임이나 단순한 대중적인 반응이 아닌, 사회 전반적 수준과 환경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개인들을 끌어안는 하나의 행동구조(a structure of action)으로 묘사함. 이제는 이 두 갈래의 문헌이 묶여져서 지도자와 추종자의 역할이 개념적으로 통합되고 ‘리더십 연구’가 인간 발전과 정치행위의 구조화 과정에서 제대로 자리잡아야 함. 즉 ‘리더십 과정’들이 ‘갈등’과 ‘권력’의 다이내믹스로 간주되어야 하며, 1)‘리더십’은 집단적인 목적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며, 2)지도자의 효율성은 지도자의 의지와 대중의 인간적인 요구와 기대를 얼마나 충족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3)‘정치적 리더십’은 생물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과정들, 정치적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차단하기도 하는 구조 사이의 상호작용, 도덕적 원칙들에 대한 요구와 현실적인 권력의 필요성 사이의 상호작용 등에 따라 달리 나타나게 되며, 4)‘정치 리더십’의 이러한 개념들을 역사적 인과이론과 관련시켜 볼 때, 우리는 국민과 관련된 업무수행에 있어서 결단력있는 자발적 의지와 정의에 대한 일반적 기준이 매우 다양해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임. ⑩필자는 ‘리더십’을 단순한 권력소유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며 ‘야만적 권력’(brutal power)과는 정반대의 것으로 간주하고, ‘거래적(transactional) 리더십’과 ‘변혁적(transforming) 리더십’이라는 두가지 기초적인 리더십 유형을 검토할 것임. 대부분의 지도자와 추종자들 사이의 관계는 거래적인데, 지도자들은 어느 한가지를 다른 것과 교환할 목적으로 추종자들에게 접근하며, 투표로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 대한 보상으로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것 등임(p28). 반면, ‘변혁적 리더십’은 더욱 복잡하지만 훨씬 강력한데 ‘변혁적 지도자’는 현존하는 요구 또는 잠재적인 추종자들의 필요와 수요를 인식하고 그것을 활용하며, ‘변혁적 지도자’는 그 이상으로 추종자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적 동기들을 살펴서, 더 높은 요구를 만족시키며, 추종자들을 전인격적으로 사로잡기 때문에, 여기서 지도자와 추종자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추종자들은 지도자로, 지도자들은 도덕적인 존재로 변화시키며, 서로 자극하고 서로 고양시키는 ‘상생’(相生)의 관계임(p29). ⑪필자는 앞에서 나온 논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온 개념인 ‘도덕적 리더십’(moral leadership)이야말로 가장 큰 관심사라고 보며, 이 개념을 사용함으로서 1)지도자와 지도받는 사람은 권력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상호적 필요와 희망, 그리고 가치들이 개재된 관계도 유지하며, 2)추종자들은 대안적인 지도자들이나 프로그램들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갖고 있어 여러 대안들 중에서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고, 3)지도자들은 자신이 내세운 공약들에 대해 책임을 지며, 만일 그들이 어떤 종류의 경제적․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약속한다면, 그러한 변화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리더십’을 행사함(p29). ‘도덕적 리더십’은 단순한 훈계조의 설교나 경건함의 강조가 아니며, 추종자들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 희망 그리고 가치로부터 등장하는 것이며, ‘도덕적 리더십’이란 추종자들의 진정한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사회적 변화를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리더십’을 말함(p29). ⑫이러한 의미에서 필자가 말하는 ‘도덕적 리더십’은 ‘십계명’(Ten Commandments)이기 보다는 ‘황금률’(Golden Rule)에 더 가까운 개념인데, ‘황금률’조차도 ‘도덕적 리더십’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이유는 ‘황금률’도 단지 우리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를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임(p30). 필자는 늘상 예기하는 대부분의 ‘현실적인’ 물음들부터 가장 정확하게 이론적이고 도덕적인 물음으로 옮겨갈 것을 제안하며, 우리는 지도자들이 ‘태어나는 것’도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가정하고, 지도자들의 개인적 기원과 사회화의 어떤 패턴을 발견하여 ‘리더십’을 설명하려고 함. 또한 우리는 ‘동기’, ‘가치’, 그리고 ‘목표’들로 구성되고 형성되는 일련의 구조를 강조하는 개념을 사용하여, 여러 ‘리더십’들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역할과 질적 차이를 구별할 것임. ⑬‘리더십’과 ‘추종자’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교차적 맥락에 유의하면서, ‘위대한 지도자들’의 역할 뿐 아니라 ‘보다 낮은’ 수준의 리더십 현상에도 주목할 것이며, 우리는 항상 ‘리더십’의 도덕적 기반을 추구하며, 충족되지 못하고 짓밟힌 상태에 방치된 인간의 잠재력을 해방시키고 발현시키는 일에 공헌한 지도자의 행위만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할 것임. 과연, 진정한 ‘도덕적 리더십’을 이루는 ‘힘’을 규명 가능한가?(p30)

● 비평 및 토의
  필자는 과거 ‘리더십’의 연구가 ‘사람’ 중심의 단편적인 것이었음을 지적하고, ‘리더십’의 기본 원리를 ‘도덕적 리더십’을 통해 구명하고자 하고 있으며, 결국은 ‘도덕적 리더십’을 통해 ‘리더십’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툴을 만들고자 하고 있음. ‘리더십’을 어떻게 인식하며 무엇을 중요한 요소로 보는가?

리더십강의(제임스맥그리거번스)_24하우스(이현재)_서문,프롤로그.hwp
0.05MB